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344
10화. 에르마노의 팔불출들
에르마노 제국에서 메이블 가데니아 윈터 에르마노 황제 폐하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였다.
대륙을 위협하는 재앙의 징조를 막아 온 신의 씨앗.
적국 데블린과의 오랜 대립을 끝내고 결국 전쟁을 완벽한 승리로 끝낸 전쟁 영웅.
에르마노에 변혁의 물결을 일으키고 태평성대를 이룩한 성군 중의 성군!
거기다 형편없던 제국 복지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뒷골목에 방치되어 있던 빈민, 특히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관심과 손길을 준 황제이기도 했다.
에르마노의 모든 제국민들이 사랑하는 황제 폐하의 후계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제국은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쌍둥이 황자 전하께서 탄생하셨다더군!”
“후계자 탄생을 축하하며 축배를 들자고!”
“크하하. 오늘 음식은 공짜야, 공짜!!”
제국 곳곳에서 자발적인 축제가 벌어졌다. 이에 질세라 상황제의 명으로 수도 거리에 황실에서 주관한 축제가 벌어졌다.
특히 상황제 에스테반은 사재까지 풀어 이 기쁨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흥분한 건 상황제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마법사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이자 전공을 세워 백작위를 수여한 케이시 트로이셀 백작 또한 개인 재산을 탈탈 털어 황자 탄생 축하 기념품을 제작하여 배포했다.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지르자 오히려 소속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말렸다.
“케이시 님. 분명 열심히 저축해서 연구실 확장하신다고…….”
“몰라, 그런 거. 어차피 내 돈은 황제 폐하 돈이다!”
“아, 네.”
황제 폐하가 아니었다면 어차피 벌금으로 사라졌을 돈!
그렇게 제국의 온 백성이 먹고 마시고 떠들며 국가의 경사를 축하했다.
한편, 에르마노의 황성.
메이블의 몸조리를 위해 사용인들은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출산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메이블은 컨디션 회복에 전념을 다 하는 중이었다.
에이단 또한 메이블을 배려하여 웬만하면 옆 침실에 가 있곤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메이블이 보고 싶어질 때면 소리 없이 발코니를 타고 들어왔다.
메이블이 어릴 때부터 에이단이 워낙 자객처럼 숨어들었던 탓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맞이하곤 했다.
“폐하께서는 주무시고 계세요.”
아기 요람을 살피던 라리마가 에이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에이단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요람으로 다가갔다.
그의 두 아이가 두 팔을 만세하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첫째인 페르난도는 툭하면 칭얼거렸고, 둘째 아르덴은 인생 2회차인 것처럼 잘 울지 않았다.
태어난 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된 주제에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에이단은 다소 어색하게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그는 작고 쭈글쭈글한 제 아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능숙하게 아기들의 상태를 살펴본 라리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에이단에게 권했다.
“각하. 한번 안아 보시겠어요?”
“……뭐?”
“그렇지만 상황 폐하께서는 오시면 바로 안아 보겠다고 난리신 걸요.”
출입이 허락된 사람 중 한 명인 에스테반은 방문할 때마다 아기들을 사력을 다해서 귀여워했다.
그에 반해 에이단은 아직 아이들을 안아 본 적 없었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을 관찰하듯 꼬물거리는 아기들을 보던 에이단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비장하게 손을 씻고 왔다.
“자아. 첫째 황자 전하. 어이쿠, 둘째 황제 전하입니다.”
라리마는 공평해야 한다며 에이단의 양 팔에 두 아이를 한 번에 안겨 주었다.
에이단이라면 절대 떨어트리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이단은 뻣뻣하게 굳은 채 제 품 속에서 꼬물거리는 아기들을 내려다보았다.
지나치게 가벼웠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에르마노 황성 한가운데에서 처음 메이블을 마주쳤을 때, 그때 메이블도 토끼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디작았다.
그런데 이 아기들은 그보다도 더 조그마했다.
‘숨은 쉬고 있는 건가?’
살아 있는 건지도 의심이 되어 에이단은 아이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다행히 숨은 잘 쉬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 아이들의 친부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는 며칠 전에 그보다 먼저 아버지가 된 로이스를 다짜고짜 찾아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기분이 어떻냐고요? 아무래도 제가 아이의 아빠니까, 우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하하…….”
“우산.”
“네. 어떤 비바람도 막아 주는 우산입니다.
“네 우산은 태풍이 오면 찢어질 것 같은데.”
“너, 너무하십니다……!”
기어코 에이단은 로이스를 울린 후 하비에르 가문을 벗어났다.
그때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산은 약하다.’
에이단은 이 아이들에게 우산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차라리 죽기를 바랐던 과거의 그처럼 고통스럽지 않게.
“…….”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식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메이블과 약속했지만 다 필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언제부터?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완연한 아버지처럼 두 아이를 든든하게 안고 있는 에이단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라리마가 그를 불렀다.
“그거 아세요, 각하? 아기들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부모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알아듣는다고 해요.”
“근거가 있는 말인가?”
“그거야 모르죠? 모두 아기 때 기억은 없잖아요.”
그는 아기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을 알았다.
하지만 메이블은 그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자라면 결국 잊더라도 정말 아기일 때 목소리를 기억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건가?
에이단은 두 아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페르난도. 아르덴.”
“끄아으……!”
“으우으.”
그러자 아기들이 작은 입술을 웅얼거리며 응답했다.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르는 표정. 하지만 반응하는 건 확실했다.
이건 어떤 의미의 표정일까. 에이단은 라리마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왜 이런 표정을 짓는 거지?”
“아버지를 알아보는 게 아닐까요?”
“갖다 붙인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아하하! 안 통하네요.”
신생아 메이블을 돌볼 적에 유모였던 루페가 저렇게 말하면 에스테반이 함박웃음을 짓곤 했는데, 역시 에이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컸던 탓일까. 낮잠을 자고 있던 메이블이 부스스 떴다.
“하아암, 에이단? 언제 온 거람.”
자는 중에도 에이단의 목소리를 들었던 메이블이 하품하며 그를 불렀다.
에이단은 아이들을 안은 채로 메이블에게 향했다. 세 사람을 본 메이블이 활짝 웃었다.
“에이단, 우리 아기들 보고 있었어?”
“네.”
쿠션을 잔뜩 깔아 몸을 편하게 기댄 메이블이 에이단 품에 고이 안긴 두 아이의 뺨을 차례대로 콕콕 찔렀다.
“너무너무너무 귀엽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누구 아긴데 이렇게 귀여워?”
첫째인 페르난도는 에이단을 닮은 검은 머리칼에 메이블을 닮은 연하늘색 눈동자를 타고 난 아이였다.
둘째인 아르덴은 연분홍 머리칼과 연하늘색 눈동자를 타고 난, 메이블 판박이 그 자체였다.
메이블은 첫째 페르난도를 보며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에이단이 아기였으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 봐. 눈코입이 다 에이단 빼닮았잖아. 머리카락 색도 에이단이랑 똑같고, 눈 색만 다르다니까? 아기 에이단이다, 아기 에이단.”
메이블은 아기 에이단을 연신 중얼거리며 으헤헤 웃었다.
두 아이를 빤히 보던 에이단이 말했다.
“둘째는 메이블을 닮았습니다.”
“그건 나도 인정해.”
아르덴은 메이블이 남자아이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똑 닮았다.
메이블은 행복에 겨워 양 뺨을 감쌌다.
“벌써 이렇게 잘생기다니, 에르마노를 한바탕 뒤집겠어. 어떡하지?”
메이블이 주접을 떨자, 심각한 표정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던 에이단이 짧게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팔불출 아버지였다.
***
한 달 후, 출입 금지 명령이 해제되자마자 메이블과 아기 황자 전하들을 만나기 위해 측근들의 방문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원래도 틈만 나면 찾아왔던 에스테반은 아예 자리를 잡고 떠날 줄을 몰랐다.
“누구 손자인지 연하늘색 눈동자가 아주 예쁘구나. 마치 신생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군.”
“신생아 때의 아빠가 어땠는지 아빠가 어떻게 알아?”
“그런 사소한 부분은 신경 쓰면 안 된다, 메이블.”
“완전 신경 쓰이는데…….”
에스테반은 메이블의 말을 흘려들으며 두 손자를 흐뭇하게 얼렀다.
둘 중에서 에스테반이 특히 편애하는 건 둘째인 아르덴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메이블을 더 닮아서였다.
“아빠. 애들 차별하지 마.”
“차별이라니. 첫째도 깨물어 주고 싶게 귀엽다고 말하려고 했다, 메이블.”
“우리 페르난도, 에이단 닮았지?”
“……하아.”
“아빠. 차별하지 마.”
“깨물어 주고 싶다니까.”
에스테반은 지나치게 에이단을 닮은 페르난도를 보며 두 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망할 에이단 아세라드가 생각나서 괴로운 마음과,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꼭꼭 씹어먹고 싶은 할아버지로서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페르난도가 그의 손을 붙잡고 배시시 웃으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다행히도 성격은 메이블을 빼닮은 듯했다.
에스테반은 두 아이에게 딸랑이를 열심히 흔들어 주며 말했다.
“임신을 알기 전에 두 개의 태양이 내게 떨어지는 꿈을 꿨었는데, 역시 이 녀석들이 그 태양이었구나.”
“아빠가 태몽을 꿨구나…….”
에스테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자들과 놀고 있을 때, 오스카 또한 황성에 입궁했다.
“얘들아. 삼촌 왔어!”
그런데 이번에 오스카는 이상한 목표를 하나 세웠다.
바로 ‘삼촌’을 말하도록 하는 것.
“페르난도. 아르덴. 삼촌, 해 봐. 삼촌.”
“아직 엄마 아빠도 못 하는데 무슨 삼촌이야, 오스카.”
메이블이 타박했지만 오스카는 꿋꿋했다.
“조기교육이야.”
“생후 한 달에 조기교육은 너무 빠르지 않을까?”
“괜찮아. 하다 보면 돼. 자, 삼촌. 해 볼까?”
누가 조기교육의 산증인 아니랄까 봐, 오스카는 삼촌을 연습시키려 난리였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에이단과 에스테반까지 참전하여 아기들에게 주입을 시작했다.
“아빠.”
“할아버지, 해 보거라.”
“아빠.”
“자, 삼촌. 해 볼까?”
“할아버지.”
“아빠.”
“삼촌.”
“할아버지.”
그렇지 않아도 몸집 큰 세 남자가 아기 요람에 달라붙어서 주문처럼 외는 꼴은 가관이었다.
흡사 사이비 교단의 예식 행사 같았다.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야…….”
메이블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특별외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