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심마(心魔)가 생기다
운이 따른 탓인지 한립의 머릿속에 한 줄기 광채가 번득 스쳤다. 그는 다시 가죽주머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주머니를 들어, 어머니가 주신 부적 평안부를 꺼내 들었다.
손바닥에 평안부가 닿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그 느낌이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초조한 마음이 즉시 진정되었고 울적했던 마음 또한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몸 안의 각종 이상 현상도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모든 것이 마치 정상으로 돌아온 듯 했다.
한립은 결코 알지 못했다. 방금 자신을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갈 뻔한 것이 ‘주화입마’가 아니라, 도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심마입침(心魔入侵)’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일찍이 외부의 물건을 통해, 이 심마를 몰아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심마가 그의 원신(元神)에 침입해 환각에 빠트리고, 광무(狂舞)를 추게 하여 죽었을 터였다.
이 모든 것은 이후, 그가 수도(修道)의 길에 오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한립이 운기행공을 하여 온 몸을 살펴보았다. 별 다른 이상은 없는 듯 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내력이 적지 않게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비록 아직 3성에 머무르고, 4성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4성이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에 미소를 지었다가 곧 흥분을 가라앉혔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다시 한 번 주화입마의 상태에 놓이게 될까 불안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는 다시 가죽주머니에 큰 공을 세운 평안부를 정성스런 손길로 다시 넣어두었다.
“맞다!”
한립은 뜻밖에 주머니 안에서 그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몇 년 전에 발견한 신묘한 작은 병(甁)이었다.
이 병에 대한 것은 벌써 한립의 뇌리에서 깨끗하게 잊혀 졌기 때문에, 만약 지금 발견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한립은 4년 전과 비교해 식견과 안목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문 대인의 서재에서 읽은 각종 장서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았고, 구결을 수련하면서 두뇌 또한 더욱 총명해졌다.
그는 일전에 이 병에서 생긴 기이한 현상을 통해 이 병이 기이한 물건이며,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 판단 할 수 있었다.
그는 병을 들어 천천히 마개를 열고 그것을 살폈다. 이전에 그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번 살펴봐도 새로운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병 속에 담겨 있던 한 방울의 비취색 액체는 여전했다.
4년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립이 확신컨대 병의 모든 비밀스런 작용은 이 한 방울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녹색 액체 방울에는 그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다. 이 액체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동물에게 먹여보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저물어 동물을 잡기 좋은 때는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겪었던 괴로운 경험들로 인해 한립은 매우 피로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한립은 오늘은 푹 쉬는 것으로 결정 내렸다.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고 내일 살펴봐도 늦지 않았다.
그는 오늘 밤이 지나면 엄청난 소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 * *
이튿날 아침, 한립은 세수를 마치고 신수곡 밖으로 가 아침을 해결하였다.
이전에 문 대인이 있을 때는 일꾼들이 신수곡으로 와서 음식을 해주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문 대인이 없으니 자연스레 일꾼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도 권력에 의해 움직이니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한립은 주방관사를 찾아가 엽전 몇 개를 주고는, 잿빛 산토끼 두 마리를 가지고 신수곡으로 돌아왔다.
산토끼는 비교적 널찍한 약재원에 묶어 두고 햇볕을 쏘이게 놔두었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큼지막한 그릇을 찾아 조심스레 병에 들어 있던 녹색 액체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맑은 물을 부어 넣었다.
이 콩알만 한 액체는 손쉽게 물속으로 녹아들어 그릇 안의 물을 연한 청옥색으로 바꾸어놓았다.
이 청옥색 물을 보고 있자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한립은 곧바로 그릇을 들고 목마른 토끼들 앞에 조심히 나두었다. 뜨거운 햇살로 목이 말랐던 산토끼들은, 그릇으로 모여들어 그 안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토끼들이 절반쯤 물을 마셨을 때 한립은 그릇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한쪽에 서서 인내심을 갖고 산토끼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에게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토끼들이 조급하게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작은 가면 갈수록 거세졌다.
이어서 산토끼들의 몸에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피부에서 하나 둘 계란 크기의 혹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해 졌고 점차 온 몸을 뒤덮었다.
이후에는 이 종기들이 모두 붙어 산토끼들의 몸이 하나의 거대한 공처럼 변해 버렸다. 산토끼들의 비대한 몸집은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푸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 갔다.
토끼들의 신체는 마치 어떤 종류의 기운을 끊임없이 흡수하듯 점점 더 커져갔다.
최후에 이르자 산토끼 두 마리가 마치 누군가가 바람이라도 불어 넣은 것처럼 커다란 수박 같은 형태가 되었다.
눈앞에서 산토끼들의 몸이 상상을 초월하여 괴이하게 변해가자 한립은 깜짝 놀랐다.
이것은 그의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이 이름 모를 액체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어떤 종류의 독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공력을 크게 증가시켜주는 영약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머리가 곤두서고 소름이 끼치는 현상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 *
눈앞의 산토끼들은 아직도 쉼 없이 커지고 있었다. 한립은 겁에 질려 손에 든 그릇을 혐오스런 물건이라도 된 듯 약초 밭 한쪽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산토끼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다. 한참을 달려 뒤를 돌아보려는데, 앞 다퉈 두 번의 폭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립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두 마리의 산토끼가 부풀어 오른 몸을 견디지 못하고 터졌다.
토끼의 몸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 흩어졌고 피도 사방으로 튀어 있었다.
산토끼들을 묶어 두었던 곳에는 두 개의 큰 구덩이가 파였는데, 그 구덩이 주변이 토끼의 잔해들로 낭자하여 참혹한 광경이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운 정도였다.
한립이 길게 숨을 내쉬며 엉덩방아를 찧으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가 조금만 더 그곳에 있었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설령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온 몸에 동물의 피와 살점으로 뒤덮는 일은, 결코 기분 좋은 아니지 않았겠는가.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한립은 몸을 일으켜 구덩이 근처로 다가갔다.
이 녹색 액체를 통해 무슨 신묘한 영약이라도 발견하길 기대했지만, 이렇게 공포스러운 것이었다니, 다시금 약초 밭 위에 깨져나간 사발을 쳐다본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지금 뭐라 해도 이것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한립이 독약을 접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 대인의 문하에서 몇 년간이나 수학하며 수백 종의 독극물을 보고 배웠다. 하지만 이렇게 공포스러운 독극물은 처음이었다.
한립은 수련을 통해 정신적인 충격을 견뎌내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도 진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곧 오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둔 비약을 려사형에게 전해줘야 했다.
아무래도 뒷일은 약을 주고 돌아온 후에 처리해야 할 듯 싶었다. 한립은 귀찮은 일들을 모두 뒤로 미루고 길을 나섰다.
* * *
한립이 시간에 딱 맞춰 신수곡 입구에 이르자 마침 딱 오시가 되었다. 입구에는 백색 비단으로 된 도포를 입은 한 소년이 등에는 장도를 메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서두르는 기색을 보아 일찍부터 나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한 사제, 정말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군. 오시 무렵이라 하더니 정말 오시 정각에서야 도착하다니 말일세! 반 시각이나 기다린 것 같네.”
려비우가 반쯤은 농으로 반쯤은 원망을 담아 이야기 했다.
“미안하게 됐어요. 어제 약을 배합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한밤중이 돼서야 잠이 들어 늦잠을 자고 말았네요. 게다가, 아침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끝내고 오니 이렇게 됐네요.”
한립은 진실과 거짓을 섞어 대답했다.
“한 사제, 약, 그 약은…… 잘 만들어 졌는가?”
려사형이 다급하게 서두르며 말했다. 한립은 려사형을 보고 미소를 지은 후 품속에서 천천히 손바닥만 한 보자기를 꺼냈다. 그리고 휙 하고 손목을 흔들어 려사형에게 던져주었다.
“추수환을 먹기 전에, 끓여서 식힌 물에 약 꾸러미에 담긴 분말을 한 술 풀어 마시기만 하면 몸의 고통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고맙네, 한 사제. 고마워!”
려사형이 뛸 듯이 기뻐했다.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줄일 수만 있다면, 그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추수환이 주는 고통은 그를 덜덜 떨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려비우는 이전에도 수많은 진통제를 먹어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허나 이 한립이 만든 약은 정말 효과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추수단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먹어보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미리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이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먹어본 후에 감사해도 늦지 않아요. 또 이건 1년 동안 먹을 양 밖에는 안 돼요. 지금 수중에 있는 약재를 모두 소진했으니, 충분한 약재를 모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더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한립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괜찮소. 1년이나 먹을 수 있는 양이니 한동안은 충분할거요. 이 약이 효과가 있든 없든, 한 사제의 성의만큼은 이 려비우의 마음에 깊게 새겨 놓을 것이요.”
려사형은 원하던 물건을 얻자 안색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꾸밈없이 한립을 향해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려사형을 향해 할 일이 있으니 먼저 가봐야겠다고 했다.
려비우도 비약을 받았으니 어서 돌아가 이 약의 효능이 어떠한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이별을 고하고는 바로 헤어졌다.
* * *
신수곡 내로 돌아온 한립은 약재원으로 들어가 한 바탕 청소를 했다. 산토끼들의 잔해와 피에 젖은 진흙, 박살 난 그릇 등을 전부 구덩이 안으로 쓸어 담았다.
그리고 두 개의 구덩이를 매워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한립이 만족스럽게 손의 먼지를 털어내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이 그릇이 깨진 땅에 닿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그릇을 던진 후에 그 안에 담겨 있던 약물이 모두 약초가 자라는 곳에 엎질러졌다. 저 곳에 자라고 있던 약초를 적셨을 것이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머뭇거렸다. 약초들이 그 물을 흡수하고 독성을 갖게 돼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독성이 깃든 약초를 먹어 산토끼처럼 돼버리면 어떡하지? 지금 저 독초들을 다 뽑아내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
이런 일련의 의문들이 한립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립은 한동안 약초들을 살펴보고, 며칠 사이에 약초들이 독성을 생긴다면 그때 없애버려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은 더 할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는 바로 석실로 수련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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