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귀환
한립이 법력을 소진할 때마다 여인이 묵묵히 자신의 법력으로 채워주었고 둘이 그곳을 탈출했을 때에는 그의 금광전 부보는 종잇조각이 되어버렸고 그녀는 30년 공력을 잃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겨우 살아나온 것이다.
여인의 소녀륜회공은 정말 특수했다.
윤회기 내에는 오직 금제에 걸린 법력을 사내에게만 넘겨 줄 수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금제를 풀 수도 여인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법력을 주는 데에도 제약이 있어 상대의 경지에 구속을 받았다. 연기기에 불과한 한립은 그 최고봉이 십삼 성까지는 주입을 받아도 축기기 이상으로는 법력을 담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막 땅이 뚫리기 직전에 공급받은 법력이 남아있어 지금까지도 십삼 성의 법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완’
속으로 조용히 여인의 이름을 되뇌어보았다. 그는 여인과 헤어지기 직전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녀의 머뭇거리던 모습을 떠올리니 울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기기가 아니라 축기기 수사라 해도 상대는 절대 자신과 무슨 연을 맺을 생각이 없을 터였다.
수도계에서 그들의 수명과 지위는 하늘과 땅처럼 달랐으니 무정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도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었다.
한립은 축기기에 들 자신이 어느 정도 생긴 상태였다. 그러나 결단기라면 또 다른 이야기였다.
황풍곡에 만 여 명의 수도자가 있다지만 그 중 결단기에 이른 이는 겨우 몇 명에 불과 했다. 자질이 뛰어나지 못한 그가 함부로 단언할 일이 아니었다.
‘슉’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바람처럼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복귀했다.
그의 손에는 저물대가 하나 들려있었고 근처 거목 위엔 영수산 제자의 시체가 쓸쓸히 누워있었다. 저물대 안을 대충 살핀 그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출발했다.
* * *
금지 원행의 5일째 오후가 되자 각 문파의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곱 명의 결단기 수사는 다시 온 힘을 다해 금제의 출구를 만들었고 그 어두컴컴한 통로에서 첫 번째 귀환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확실히 처음 금제를 개방하던 5일 전보다는 수월한지 일단 통로가 생겨나자 7인이 법보를 거두었다. 그래도 통로는 사라지지 않고 금지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뒤로 제자들을 이끌고 온 축기기 수사 열댓 명이 긴장해서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번 원행은 각 문파의 축기단 확보가 달린 일이라 조금도 소홀이 할 수 없었다.
엄월종 궁 노괴 조차 어느새 나타나 근처의 암석 위에 앉아 히죽거리고 있었다. 이번 내기에 승산이 확실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시진이 흐르자 중년 도사가 진중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몸에 걸친 회색 도복이 먼지투성이 인데다 몇 군데에선 자잘한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치열한 전투를 거쳐 빠져 나온 것이 분명했다.
중년 도사는 청허문 결단기 도사를 향해 예를 올리고 한쪽에 주저앉아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결단기 도사가 중년인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조는 아무런 내색을 안 했으나 궁 노인은 눈을 부릅뜨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어서 화도오의 온화한 사내를 시작으로 영수한 추남인 종오, 천궐보의 남의 청년, 황풍곡의 진 씨 오누이 등이 각자 크고 작은 상처 입은 채 앞다퉈 통로를 빠져 나왔다.
모두가 지친 기색이 다분해 각자 문파의 선배에게 예를 올리고는 가부좌를 하고 운공에 들어갔다.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여러 명이 줄줄이 나왔는데 앞서 와는 달리 모두 둘 또는 셋이 짝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표정들은 확연히 달라서 어떤 이는 신이나 있었고 어떤 이들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제 거의 스무 명이 나온 셈인데 그 중에 엄월종 제자는 단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두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으나 궁 노괴와 예상 선자만은 차분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일다경 후 다른 문파의 두 명이 빠져 나온 후에도 엄월종 제자들이 종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금제의 출구가 닫힐 시간이 겨우 한 시진 밖에 남지 않아 궁 노괴와 예상 선자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미미하게 불안한 시선을 교환했다.
이때 통로에 사람의 형상이 번뜩이며 화풍곡 제자 하나가 나타났다. 평범한 생김새에 단정한 복색을 하고 있는 한립이었다.
그는 전광석화처럼 달리며 마주치는 제자들을 죽이느라 방금 도착한 것이다. 엄월종 사람들은 통로에서 기대를 가졌다가 황풍곡의 복색을 확인하고는 실망한 눈빛이었다.
통로 바깥의 상황을 확인한 한립은 서서히 본문의 자리로 가 다른 사람들처럼 질서 있게 앉았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옆에는 진 씨 오누이가 앉아 있었다.
황풍곡에서 살아 나온 이들은 다른 문파와 비교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진 씨 오누이 외에도 노인과 청년에 한립까지 더해지니 벌써 다섯이었다. 다른 문파는 세, 네 명에 불과했고 심지어 거검문은 단 둘이 살아나왔으니 정말 많은 셈이었다. 이를 확인한 이 사조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희색이 돌았다.
황풍곡 제자들은 한립이 겨우 십일 성의 공력을 가지고 멀쩡하게 금지에서 걸어 나오자 꽤나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를 보는 시선들이 변해서는 다시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쥐새끼처럼 어디에 숨어서 어떤 싸움에도 끼지 않고 영초도 구하지 못했을 거라 확신한 것이다.
통로가 닫힐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엄월종 제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점점 궁 노괴와 예상 선자는 좌불안석이 되었고 반면 도사와 이 사조는 암암리에 고소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엄월종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히 남궁완과 함께 나왔는데 어찌 엄월종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조금씩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돌연 금지에서 만난 다른 소녀가 생각나 영수산 무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멀쩡한 모습으로 앉아 운기를 하고 있는 함운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과 헤어진 후 별다른 일에 휘말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통로가 닫힐 시간이 거의 임박하자 엄월종 사람들의 얼굴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문파 사람들은 겉으로는 함께 걱정을 나누는 표정이었으나 내심 신이나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엄월종이 월국(越國) 제 일 문파로 군림한지가 오래이니 시기하는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이번 기회에 그 세력을 조금 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많은 이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통로가 닫히기 겨우 일각 전에 희끄무레한 것들이 보이는 가 싶더니 열 명이 넘는 엄월종 제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빠져 나왔다. 당연히 그들을 이끄는 기는 아름다운 얼굴의 남궁완이었다.
그녀가 등장하자 궁 노괴는 길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놓았고 예상 선자는 당장 달려 나가 남궁완의 팔을 잡아끌며 걱정 어린 기색으로 그녀를 추궁했다. 이 모습이 다른 문파 사람들의 의심을 샀다.
남궁완이 몇몇 결단기 수사들과 만나본 적이 있으나 항상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 탓에 진짜 얼굴이 노출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눈앞의 어리고 꽃같이 어여쁜 여인이 그들이 아는 남궁 선자와 동일인일 것이라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안전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한립도 안심했다. 처음 연을 맺은 여인인데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없다 해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 사조와 도사의 얼굴에는 억지웃음이 만면하고 있었다. 저들이 얼마나 영초를 모아왔을 지도 모르는데 이미 살아나온 제자의 수가 황풍곡과 청허문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제자들이 모두 나온 듯 하니…….”
막 영수산의 축기기 대표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닫히기 직전의 통로에서 한 사람이 기어 나왔다.
뜻밖에도 그 교활한 인상의 황풍곡 노인인 향지례였는데 함께 영초를 채집하던 거검문 사내나 젊은 도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막 기듯이 빠져 나오자마자 통로가 진동하더니 푸른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제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제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한 번도 다음에 금지가 개방되었을 때 이전에 들어간 제자를 발견한 사례가 없었다.
아무도 원인은 몰랐으나 반드시 시간을 지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살아나온 이가 겨우 십성의 황풍곡 제자란 사실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듯했다. 다들 향지례를 향해 한 번씩은 시선을 주었다.
“이 형, 귀 곡에는 인재도 많습니다. 십일 성 제자가 멀쩡하게 걸어 나오더니 십 성 공법의 제자까지 살아남다니, 황풍곡의 지도력이 탁월해 그런 듯 하여 저는 탄복했습니다.”
거검문 수사가 자기 문파에는 단 둘 밖에 생존자가 없을 뿐 아니라 기대를 걸었던 맨발의 사내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황풍곡에서는 저계 제자들조차 살아나오니 울분이 차올랐던 것이다. 자연히 그의 말투에서 풍자와 비웃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조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도 한립과 향지례가 어딘가에 줄곧 숨어있다 나왔거나 기회를 틈타 이것저것을 훔쳐내 살아 돌아온 것이라 여긴 것이다. 방금 기어 나온 교활한 인상의 늙은이를 매섭게 보던 그라 해도 입으로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력이 얕은 제자들이 어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나 우리 선배가 그런 일까지 일일이 관여해서야 되겠습니까?”
“흥!”
거검문 수사가 이 사조의 가식이 눈에 거슬린다는 듯 무어라 반박하려는데 궁 노괴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너희가 싸울 게 무엇이냐? 제자들이 살아나온 것은 그들이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니 그랬겠지. 자 됐고! 이 가야, 어서 내기의 결과를 따져보아야지? 이 나이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기다려야 하느냐?”
궁 노괴가 재촉하니 거검문 수사든 이 사조든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둘은 시선을 교환하며 억지웃음을 짓고는 입씨름을 그만뒀다. 괜히 저 노괴에게 찍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이제 궁노인의 주도아래 청허문 부운자 도사와 이 사조 등이 모여 세 문파의 수확물과 금지에서 돌아온 제자 수 등을 고려해 승패를 알아보려 했다.
금지에서 돌아온 청허문 도사는 넷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금지를 빠져나온 도사가 내놓은 영초에 모두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백 년 혈란(血兰) 세 뿌리, 삼백 년 천령과(天靈果) 두 개, 사백 년 옥수지(玉髓芝) 세 뿌리……”
도사가 열두 개나 되는 영초를 일일이 바닥에 내려놓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치였다. 다만 부운자만은 득의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워 했다. 황풍곡 노인이나 엄월종 남제자가 내 놓은 물건은 모두 미미해 중년 도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어서 두 번째로 나선 청허문 도사도 엄청나다 할 순 없지만 여덟 개를 내려놓아 평균을 훨씬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이 사조는 조금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실실 거리던 궁 노괴의 웃음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다른 네 개 문파의 고인들도 내기 소식을 듣고는 분분히 참관해 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으로 나선 진 씨 오누이의 영초가 이 사조의 기분을 살려주었다.
두 명의 수확이 거의 스무 개에 달해서 두 명 도사와 엇비슷했던 것이다. 게다가 청허문에서 다음으로 나선 이는 겨우 평균인 네 개를 내놓았다.
엄월종의 경우 보통의 수준에 불과해 세 명이 연속으로 다섯 개 이하의 성적을 내서 나머지 사조들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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