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연단과 축기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을 보내자 체력과 법력이 최고조가 되었음이 느껴졌다. 이제 정말 연단을 연습할 차례였다.
다행히 공법이 십성이 넘어선 후로 곡기를 끊고도 얼마간 지장이 없었기에 배를 채울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저물대 안에서 은사로 치장된 솥을 꺼내든 한립은 표부술(漂浮術)을 걸어 둥근 그릇의 중앙에 그것을 띄워 놓았다. 표부술 역시 오늘을 위해 힘겹게 익힌 술법이었다.
다시 한 번 용의 머리에 붉은 빛이 닿으니 자색의 지화가 분출되었다. 아직 원래를 넣지 않은 상태이기에 화염은 실낱처럼 가늘게 유지하고 있었다.
서서히 예열이 되며 작은 솥이 공중에서 회전했다. 일각이 흐르고 어느 정도 달궈지자 솥이 발산하는 열기는 놀라울 정도였다.
이에 한립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솥의 뚜껑을 들어 올리고는 정확한 양을 나누어 놓은 백옥병에 든 분말을 전부 솥에 부어 넣었다. 이어서 백옥병을 버리고는 연달아 저물대에서 병을 꺼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공중에서 수십 종의 약 분말이 솥으로 스며들고는 마지막으로 덮개가 닫혔다.
연단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 셈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이 진행되었다.
여덟 마리의 용이 분출하는 보랏빛 화염은 한립의 조정 아래 손가락 굵기만 하게 변했고 솥 역시 회전 속도를 줄이며 화염 속에서 잘게 진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작은 솥 안에서 은은히 약의 향이 풍겨 나왔지만 아직은 단약을 꺼낼 수 없었다.
맹렬한 지화를 이용해 순식간에 단약을 뭉치는 작업이 지나야 온전한 환약의 형태로 축기단을 얻을 수 있었다.
한립은 보랏빛 화염을 북돋아 사발만한 굵기로 만들었다. 이미 솥은 멀리서 보면 주먹만 한 불덩이로 보일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고 단약의 향내는 사방을 진동 했다. 약의 분말들이 섞여 뭉쳐지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솥 안에서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 그의 안색을 어둡게 만들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지화를 멈추고 솥의 덮개를 열어 안을 살펴보았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남색 조각들이 놓여있는 것이 단약이 제대로 뭉쳐지지 않았다.
고개를 저은 그는 옥으로 만든 함을 꺼내 솥에 남은 실패한 단약 조각들을 모았다. 분명 실패한 결과물들이었으나 각종 영초의 분말이 모인 것이라 아까워 버릴 수 없었다.
모든 처리를 끝내자 한립은 냉큼 방석을 깔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솥이 완전히 식은 후에야 다시 연단을 시도했다.
같은 순서로 정확한 분말을 넣어 불을 조절했음에도 또 제대로 단약이 구워지지 않았다. 한립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묵묵히 다음 연단을 시작했다.
* * *
30여 일이 지나도 한립이 석실을 나서지 않자 솔직히 추남은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그 의외는 곧 즐거움으로 이어졌으니 그가 더 머물수록 치를 비용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세 달이 지나 총 반년이 되었는데도 한립은 전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제 추남은 신나던 모습은 종적을 감추고 만면에 근심을 담고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사실 반년이 연단이나 법기 제련을 하는 데는 너무 긴 시간이라 볼 순 없었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공들이는 경우도 이미 여러번 보아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최소한 축기기에 이른 제자들이었다. 한립처럼 겨우 연단기 제자가 연단을 위해 이렇게 오래 머무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연기기 제자가 곡기를 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한 달이었다. 이 사조의 제자가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해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버틸 방법은 없었다.
그때 한립은 석실의 방석에 앉아 눈앞에서 남색 빛을 발하는 스무 개의 축기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단약들은 정말 그의 심혈을 먹고 제련된 것이나 매 한 가지였다.
시작부터 연달아 스무 번이 넘게 단약이 굳는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며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점차 쌓여가는 실패작을 보는 한립의 속은 타 들어갔다. 심지어 일단 제련을 포기하고 다른 제단사를 찾아 정식으로 연단술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을 지체하긴 하겠지만 멀쩡히 귀한 재료를 모두 버리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가 석실을 나서기 전 귀신에 홀린 듯 마지막으로 연단을 시작했는데 마치 하늘이 알고 도운 것처럼 단약이 무사히 뭉쳐져 기적처럼 온전한 축기단을 연단해냈다. 직접 만든 축기단 한 알을 손에 쥔 순간이었다. 그가 만들어 낸 것은 약간 크기가 작았을 뿐 원래 가지고 있던 축기단과 완전히 똑같았다. 한립은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립은 이를 악물고 다시 연단에 정진하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이후의 연단은 성공률이 크게 높아져서 세 번을 시도하면 한 번은 단약의 응결에 성공했다.
게다가 화로를 개방하는 것 또한 뜻밖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는지 대부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은 한립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때 석실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나 배가 허기로 요동치기 시작했고 한립은 마 노인에게 얻은 벽곡단(避谷丹) 병을 꺼내 들어 단약을 한 알 집어삼켰다. 그렇게 또 다시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
그가 백년 된 약초 몇 뿌리를 황풍곡 시장에서 사왔다 둘러대고 바쳐 얻어낸 단약이었다.
이런 식으로 무수히 많은 나날을 보내니 수중의 재료가 모두 소진 될 즈음에는 그가 기대한 것 보다 더 많은 양의 축기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연단이 극히 어려운 일이라 들었기에 기껏해야 일곱 개 정도를 얻어도 대단한 성과라 여겼기 때문이다.
화로를 이용해 연단을 하는 어려움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단사들이 이런 잘못된 인식을 일부러 퍼뜨린 것이지 자신이 천부적 자질이 있었던 것인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연단은 수도계에 퍼진 소문보다 훨씬 어려운 길이었다. 일반적인 연단사를 육성하는 데도 2, 30년이 걸렸고 그에 따른 비용도 엄청났다.
한립의 축기단 제련 수준은 이미 보통 연단사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모두 반년 간 오로지 축기단만을 수없이 제련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재력이 넘치는 가문이라도 연단사에게 매일 충분한 영초를 제공해 같은 단약을 연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반년을 연속으로 축기단 같은 영약을 만드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비정상적인 일도 저급의 단약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불가능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재료가 귀하지 않아 몇 번 실패해도 지장이 없는 단약을 굳이 왜 연습까지 해가며 만들겠는가?
이런 사정을 미처 생각지 못한 그가 답을 찾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당장 눈앞의 축기단들을 복용해 축기에 성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집념이 점점 강해져서 심지어 그냥 지화의 방 안에서 폐관수련을 할 발상까지 하게 되었다. 11개월이 지나고도 한립이 머무는 석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추남은 멍하니 19호 석실 문을 바라보며 근심에 빠져있었다.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 한립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축기기 수사라 해도 벌써 빠져 나왔어야 했다.
그는 절대 한립을 위해 속을 끓이는 것이 아니라 멀쩡히 들어간 이 사조의 제자가 사고를 당해 자신이 화를 당할 것을 우려하는 중이었다.
비록 종 장문의 친척뻘이라 이곳을 관리하며 재물을 챙기고 있었지만 일단 이 사조를 화나게 하면 장문인이라도 어떻게 해결해 줄 거라 기대할 수가 없었다.
사내의 속이 타 들어가는 그때 돌연 석실의 문이 빛을 내뿜으며 소리 없이 열렸다. 거기서 나온 이는 당연히 얼굴 가득 웃음을 띤 한립이었다.
거의 1년 만에 보는 얼굴에 멍해있던 추남이 서둘러 걸어가 원망을 담아 소리쳤다.
“사제, 어째 이제야 나오는 것이오! 정말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나는…… 엇!”
불만을 한 가득 늘어놓으려던 사내의 두 눈이 급작스럽게 커졌다. 마치 넋이 나간 듯이 한 동안 지금 상황에 적합한 말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추남의 반응을 본 한립의 얼굴에서 맑은 빛이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공법이! 어떻게 이렇게……? 서, 설마 축기에 성공한 것입니까?”
조금 정신이 든 것인지 겨우 입은 떼었으나 말을 더듬는 모양새가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예! 연단을 마치고 이곳 환경이 수련을 하기 적합하다 여겨 바로 축기단을 복용했습니다. 그 후로 고된 수련 끝에 축기에 성공했으니 이제 축기기 수사라 할 수 있지요.”
“여기서 축기를 했단 말입니까?”
추남은 한립을 한 번 보고 그 뒤의 지화의 방을 한 번 보더니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 되었다.
전문적으로 연단이나 법기를 제련하는 곳에서 웬 축기란 말인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의문이 가득했으나 감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었다. 상대는 이 사조의 제자일 뿐 아니라 이제는 심지어 축기기 수사가 되었으니 겨우 연기기 제자에 불과한 그가 심기를 거스를 대상이 아니었다.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상대의 표정에 한립의 말투가 변하였고 축기기 수사 고유의 기세가 추남을 압박해 들어갔다. 즉시 몇 걸음 밀려난 사내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럴 리가요! 그런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을요. 사숙! 폐관 수련에 성공하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추남이 눈치가 영 없지는 않은지 바로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호칭 또한 사제에서 사숙으로 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축기에 성공했으니 앞으로는 사내의 선배가 되는 일이므로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옳았다. 추남 역시 전혀 개의치 않고 이리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실력이 최우선인 수도계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자 한립도 그를 더 위협할 마음은 없었다. 사실 추남이 처음 자신을 보고 무례하게 군것을 제외하면 크게 잘못을 한 일도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한립의 표정도 온화해졌다.
“별 다른 일이 없다니 그럼 난 먼저 가보겠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립이 조용히 그곳을 떠나갔다. 추남은 그가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고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떤 사람은 지화의 방에서도 금방 축기에 성공하는데. 어찌 따로 연공실을 마련해 엄청난 보조 단약까지 섭취한 나는 실패했단 말인가! 어쩐지 이 사조가 거둔 제자라더니 자질이 범상치 않았던 게로군.”
그의 결론을 한립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일이었다. 한립이 악록전을 빠져 나오는 전송진을 이용하는데 또 지키는 자가 바뀌어 있었다.
안 그랬다면 연기기 제자가 돌연 축기에 성공해 빠져 나온 것에 경악했을 것이 분명했다.
법기에 올라 하늘을 날아오르니 기분이 이루 말할 것 없이 상쾌했다. 동시에 축기에 성공하던 때가 떠올랐다.
5개월 전 축기단 연단에 성공한 후 심사숙고를 해보니 아무래도 지화의 방이 축기를 하기에 적당하게 여겨졌다.
최소한 누군가 중간에 방해해 일을 망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정한 그가 원래 보유하고 있던 축기단 중 하나를 복용하고 운공을 통해 약효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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