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교류
“정말 영초가 있으십니까? 꼭 천년 이상이어야 합니다. 7, 800년 된 영초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한립이 보호막을 설치하자마자 청년이 시간이 없다는 듯 다급하게 물어왔다.
정말 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담담이 그를 보던 한립은 대답을 하기 보다는 바로 저물대에서 영초가 든 함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이전에 팔아 치운 천년 황정지는 아니었으나 그와 비슷한 가치를 지니는 천년 자계화(紫桂花)였다.
상대가 특정한 약초를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아무 영초든 천년 이상 자란 것이면 될 터였다.
한립의 예상대로라면 주약재에 배합해 약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 분명했다.
“이게 바로…….”
청년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래. 천년 영초니라. 그러나 함을 열기 전에 일단 무엇으로 거래를 할 것인지 알아야겠지?”
한립은 자못 냉랭하게 말했다. 상대가 영초를 구하며 애걸을 하는 상황이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기회가 왔을 때 진법이 담긴 법기 외에도 가능한 많은 것을 가져오면 좋을 것이었다.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후배는 아까 말씀 드린 법기들 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 겨우 흠이 있는 법기 몇 개를 천년 영초와 바꾸려는 게냐?”
청년이 한립의 말에 얼어서는 안절부절 했는데 한립의 기색은 시종일관 평이했다.
“그것은…….”
청년이 생각해 봐도 이렇게는 거래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혹시 법기를 제련하는 데는 흥미가 없으신지요?”
한참을 고민하던 청년이 돌연 입을 열어 한립을 당황스럽게 했다.
“무슨 뜻이지? 설마 내게 법기를 제련하는 법을 전수해 주기라도 할 셈이더냐.”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지닌 것이 바로 법기를 제련하는 법술입니다.”
한립이 이해가 안 되어 아무렇게나 던진 질문에 청년이 반갑게 답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청년이었다.
기껏해야 진법이 담긴 법기나 몇 개더 얻어낼까 했는데 어찌 생각이 법기를 제련하는 술법으로 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너무 스스로를 대단히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법기를 제련하는 법을 아는 축기기 수사는 허다했다.
“그러나 사문의 규율 때문에 직접 전수해 드릴 수는 없고 그간의 심득을 모아 놓은 서책을 넘겨 드릴수 있습니다.”
갈수록 가관인 말에 한립은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자신의 이야기에도 줄곧 침묵을 지키는 한립을 보고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 여겼는지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저희 사조는 이전 신병문(神兵門)의 법기 제련 장로까지 지낸 분으로 이미 그 경지가 최고봉에 이른 분입니다. 제 연기술은 그분이 친히 전수해 주신 것으로 심득이 담긴 서책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사조의 가르침을 어기는 셈이지요. 다만 그 서책을 통해 얼마나 법기 제련의 성취를 쌓을지는 익히는 이의 노력에 달려 있을 겁입니다. 보장하건데 수도계에서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법 중의 비법입니다!”
신병문은 천성종, 만묘관과 함께 원무국의 삼대정파로 각각 법기, 진법, 부적으로 주변 국까지 명성이 자자한 곳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가 내준다는 심득이 담긴 서책 역시 가지고 있어 나쁠 것이 없었다.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전도오행진을 담은 법기들은 정말 더 개선 할 수 있더냐.”
“물론입니다! 진법에 이미 조예가 깊은 벗들이 있어 제가 익힌 법기를 제련하는 법술을 더 연구한다면 분명 가능한 일입니다.”
상대가 이렇게 물어오는 것으로 보아 거래가 성사될 희망이 생긴 듯하여 청년이 고개를 마구 흔들며 장담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함을 열자 동시에 영기가 충만한 영초의 향이 보호막 안을 맴돌았다.
청년은 그 향을 맡고 또 세심히 영초를 살피더니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에 한립이 함을 닫아 청년에게 건네었다.
청년은 바로 손을 뻗어 함을 가져가려는데 마치 한립의 손과 영초가 든 함이 붙은 것처럼 꼼짝을 안 했다.
청년의 굳은 얼굴에서 의아한 기색이 가득 차올랐다. 한립은 고개를 들고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청년의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정말 상대는 세상 풍파를 겪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렇게 분명한 의도를 어찌 못 알아본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한립이 직접 입술을 달싹거렸다.
“너도 법기들과 서책을 꺼내거라. 동시에 교환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아……! 그렇지요. 급한 마음에 그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청년이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함을 붙잡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리곤 허둥지둥 저물대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진법 판 18개와 진법 깃발 36개 입니다. 전도오행진이 담긴 것들이니 이 서책에 따라 배치만 잘하면 진법을 펼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은 제가 스무 해 동안 법기를 제련하며 얻은 깨달음을 적은 것입니다. 신병문 사람들에게 화를 당할 수 있느니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는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많은 내용이 신병문의 문중 비법을 담고 있어서요.”
청년은 자세히 설명을 해주며 중요한 충고까지 잊지 않았다. 그 진솔한 모습을 보니 청년에 대한 호감이 생겨났다.
한립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 주저하던 한립은 손에 들고 있던 함을 상대의 품에 넣어주며 물건을 받아 들었다. 이런 움직임이 청년을 당황하게 한 것 같았다.
“운소심득이라, 그럼 운소가 네 이름이겠구나. 그럼 성은 어떻게 되느냐?”
줄곧 무심한 어투로 말하던 한립이 물건을 확인하고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 저는 제운소라 합니다.”
머뭇거리던 그가 이름은 밝혔으나 한립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다. 내가 심득을 받기는 했으나 봉인술을 이용해 서책을 봉인해 5년 동안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으마. 네가 그 동안 이 법기들을 개선시켜준다면 한 장도 펼쳐보지 않고 돌려준다는 말이다. 어떻겠느냐?”
“정말이십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 입니다! 전도오행진 법기를 고치는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공하지 못한다면 친우들에게 부탁해 진법이라도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뜻밖에 제안이었던지 청년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을 양 손바닥을 이용해 들어올렸다.
그가 무어라 주술을 외자 양 손에서 연이어 은색의 부호가 생겨나며 손을 맴돌더니 서책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동시에 에서 은빛이 감돌며 딱딱하게 굳어 봉인을 풀지 않고는 넘겨 볼 수 없게 되었다.
“봉인이 되었으니 너도 영력을 서책 위에 남겨두거라. 그래야 교환을 할 때 봉인이 풀린 적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봉인이 된 책을 기뻐하는 청년에게 넘겨주었다. 청년은 바로 영력을 주입해 자신의 영력이 봉인으로 스며들어 섞이는 것을 지켜보고는 한립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해도 단번에 상대의 신임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봉인이 훼손되지 않는 서책을 돌려준다면 이 청년과 진법사 벗들과 교류를 할 만한 충분한 믿음은 줄 수 있을 터였다.
당연히 상대가 진심으로 교분을 쌓을 만한 자인지는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 알 것이다. 한립은 서책까지 챙기고는 청년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바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아직도 그 자리에 선 청년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자신이 천년 영초를 이렇게 쉽게 구하다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 한립은 다시 아까 들른 법기 제련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제운소의 법기를 제련하는 실력이나 그 친구들의 신분은 쓸모없는 비법 책 보다는 백배는 값진 것이었다.
정말 좋은 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수도계 생활이 한결 수월해 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드디어 노인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가게로 들어섰다. 한립이 식언을 하지 않고 정말 다시 나타나자 주름진 얼굴에 가득 웃음꽃이 핀 노인은 직접 차를 나르고 또 과일을 내오고 하며 그를 대접했다.
게다가 공경을 다하는 말투가 더해지니 얼굴 가죽이 두꺼운 한립도 점점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어서 한립이 노인 앞에 지네의 껍데기를 꺼내 놓았다. 서 노인은 바로 그 중 하나를 집어 만져도 보고 살펴도 보며 감별에 들어갔다.
“일급 상계 독충류 요수의 껍데기이군요. 정말 좋은 재료 입니다. 요수의 개체수가 줄고 있고 그 중에서도 독충류 요수는 마주치기가 어려운데 대단하십니다.”
역시 예상대로 축기기 수사가 내놓은 재료는 달랐다. 그간 봐온 대부분 조잡한 물건들과는 확연히 다른 희귀한 독충류 요수의 껍데기인 것이다! 갑옷이나 방패 등의 법기를 제작하기에 적합했다.
그에 판단에 따르면 이미 재료 자체가 최상급 법기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이니 제련만 성공한다면 최상급 법기에 들 것은 당연했다. 신이 난 노인이 어서 독충의 껍데기를 챙기려는데 한립이 막았다.
“주인장, 서두르지 말게. 아직 재료가 더 있으니.”
한립은 서두르는 노인의 모습이 성급하다 여겨져 사람을 잘못 고른 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재료가 더 있단 말입니까?”
노인이 멍해졌다. 한립이 어떤 재료를 꺼내놓을 지 몰랐지만 더 좋은 물건을 나중에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기대감이 커졌다.
가게 주인의 태도가 영 못미더웠지만 그래도 다시 쓸 만한 제련사를 찾아다닐 시간도 없으니 흑룡의 사체에서 가져온 부속물들을 꺼내놓았다.
만일 노인이 지금 꺼내놓는 재료의 정체까지 알아맞춘다면 상대의 견식이나 실력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되었다.
그럼 일단 지네의 껍데기부터 찬찬히 제련을 시켜보면 될 일이었다. 흑룡의 재료들은 정말 좋은 재료라 더 고명한 제련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볼 생각도 있었다.
노인이 차로 목을 축이려다가 한립이 꺼내놓는 재료들을 보더니 돌연 찻물을 뿜었다.
“이건 교룡의 가죽과 뿔! 거기다 이빨과 눈알까지! 세상에 이런 일이! 손님, 혹시 교룡을 잡으신 겁니까!”
대경실색한 노인은 정말 기이하다는 눈빛으로 눈앞의 재료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놀란 이유는 교룡과 같은 요수는 벌써 이 부근의 수도계에선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한 번 진화를 한 교룡이라면 축기단 후기에 이른 수사와 맞먹을 정도였다.
결단기 수사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축기기 수사가 상대할 요수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러 수사들이 힘을 합쳐 요수를 죽인 것이라면 또 저렇게 귀한 부위가 줄줄이 한 사람에게 나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거의 교룡 한 마리를 토막 내 전부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설마 여럿이 싸우곤 재료는 홀로 독식했거나 괴이한 수단을 써서 교룡을 홀로 잡거나 그런 것인가? ’
노인은 서둘러 재료들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 정말 한립을 향해 경외감이 생기려는 찰나였다. 가게 주인이 이렇듯 한눈에 재료를 알아본 것은 의외였다.
원래는 그래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물건들을 꺼내놓자마자 정확한 감별을 해내는 것에서 조금 믿음이 생겼다.
“서 점주, 단번에 재료를 알아보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네. 그럼 어서 제련을 시작하지!”
“예! 어서 시작하시지요! 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련술을 익힐 때 아버지와 함께 교룡의 재료로 제련 한 일이 있어 어찌 다루어야 할지 충분히 숙지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손에는 교룡의 발톱을 들고 있는 것이 손에서 떼어 놓고 싶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그런 애착에 한립도 웃음이 날 뻔했다. 상대가 법기 제련에 푹 빠져 있는 인물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 서야 아무리 재료가 좋다 한들 저렇게 추태를 보일 리 없었다. 이제 노인은 재료를 모아 한립을 이끌고 후원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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