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허수아비와 수사
열흘 후, 한립은 드디어 점포를 나설 수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 은은한 미소를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시장의 법기 비행이 금지된 범위를 빠져 나오자 한립은 팔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소매에서 정교하게 생긴 하얀 배가 날아올랐다.
은은히 빛을 내며 떠 있는 배를 사랑스럽게 바라본 한립은 손가락을 들어 배를 가리켰다. 점차 몸집을 키우더니 잠시 후에는 여러 명을 태울 정도의 나룻배가 되었다. 그가 몸을 날려 법기에 올라타니 하얀 빛이 반짝이며 공중으로 떠올라 있었다.
“흑룡의 지느러미와 꼬리 부분으로 만든 신풍주(神風舟)가 대단하구나! 엄월종의 천월신주(天月神舟)처럼 대량의 물자를 운반하거나 방어술이 펼쳐져 있진 않으나 속도만은 어떤 법기와 견주어도 아쉽지 않아. 앞으론 그 거북이 같은 나뭇잎 법기는 탈 필요가 없겠어!”
나룻배의 앞머리에 서서 중얼거리는 한립의 얼굴이 밝았다. 그가 맹렬히 영력을 주입하자 신풍주에서 하얀 빛이 발산되더니 하얀 무지개라도 된 듯 하늘에서 쏘아져 나갔다.
정말 놀랄 만한 속도였다. 한립은 배의 앞머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을 감고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고속질주의 쾌감을 즐겼다.
여유를 즐기던 그는 돌연 엄청난 영력의 흐름을 신풍주 아래에서 감지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엄청난 영력으로 보아 나룻배와 부딪치면 법기도 끝장나고 자신도 죽을 판이었다.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뜨니 나룻배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지며 수십 장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거대한 황색의 빛기둥이 한립이 방금 지나온 곳을 꿰뚫으며 아직까지도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설마 누군가 내가 지날 것을 대비해 매복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
놀람과 분노 속에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붉은 빛과 푸른빛을 동시에 띠는 구슬을 꺼내 터트렸다.
‘퐁’
작은 소리와 함께 농염한 운무가 붉은 빛과 푸른빛을 만들어내며 한립을 뒤덮었다.
게다가 쉼 없이 범위를 넓혀 거대한 구름을 형성하더니 한립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어 버렸다. 이제야 안심을 한 그가 냉정을 되찾고 지면을 살폈다.
아래쪽의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하고는 한립의 입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어떤 이들이 패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섯 명의 축기기 수사가 열세인 것이 역력했는데 그들은 100명이나 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의 적은 모두 표정이 없고 살아있는 생물이 아닌 것이 확실했다.
놀랍게도 호랑이나 표범 등 꼭두각시 요수 등이 대부분이었고 한립이 지닌 것과 비슷한 사람 형상의 꼭두각시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꼭두각시들은 동작이 느린 편이라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수도자들의 법기에 저것들이 때려눕혀지거나 망가지면 수풀 한 쪽에서 새로운 꼭두각시가 걸어 나와 그 수량을 채워버렸다. 게다가 꼭두각시들의 공격도 무척 사나웠다.
요수들이 종종 입을 벌리면 사발만한 굵기의 빛의 기둥이 분출되었는데 한립을 맞출 뻔한 바로 그 공격이었다. 각 요수들마다 빛기둥 빛깔이 제 각각인 것이 속성이 다른 것이 분명했다. 보아하니 한립은 그저 우연히 비명횡사 할 뻔 한 것이었다.
심지어 꼭두각시 인간들은 더 대단했다. 한립이 가진 궁수 인형 같은 꼭두각시는 손에 기다란 활을 들고 줄줄이 손가락 굵기의 빛의 화살을 쏘아 보냈다.
비록 위력은 요수들의 빛의 기둥에 비할 바 아니었으나 정말 공격이 끊임이 없다는 점이 관건이었다.
수도자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하지 않았다면 빛의 기둥이든 활에 맞아 죽어나갔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손에 검을 쥐고 휘두르는 근접전 용 꼭두각시 인간이었다.
그들은 두꺼운 갑옷을 입은 데다 손에든 도검류가 하나 같이 빛이 반짝이는 것이 못해도 저계나 중계 급의 법기들이었다.
그들은 열댓 개에 불과했으나 방어막에 붙어 강력한 일격을 멈추지 않으니 보호막이 요동을 치고 암담해 지기 일 수였다.
수도자들 중 몇 명이 수시로 영력을 불어넣어 보강하지 않았다면 벌써 여러 번 깨져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수사들도 꼭두각시들에 속수무책인 것은 아니었다.
다들 축기기에 이른 수도자들이니 법력도 깊었고 가진 무기들도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잠깐만 지나면 그들 손에 3, 40개의 꼭두각시들이 공격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얼마만큼을 처리하든 수풀에서 나오는 꼭두각시의 수는 무궁무진하기라도 한 듯 줄지 않고 있었다. 법력을 차츰 소진해 갈수록 수도자들은 서늘한 심경을 감출 길이 없어졌다.
한립은 그저 입을 벌리고 구경 중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걸 보니 방금 있었던 일은 우연일 가능성이 컸다.
결국 한 명이 숨을 고르지 못하더니 돌연 몸에 수십 개의 방어술을 덧대고 법기에 올라 거대한 방어막을 벗어났다. 아무래도 홀로 도망을 치려는 심산인 듯했다.
다른 이들이야 당연히 그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가 막 거대한 보호막을 벗어나자마자 초대형 빛기둥이 날아들어 그를 맞추었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화염덩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자에게 욕설을 퍼붓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제 슬슬 두려운 마음이 커진 것이다.
그들은 비록 열세였으나 조금 울적한 것을 제외하면 생명이 경각에 달린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꼭두각시들을 모두 죽이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해 달아나는 것이야 아직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이 먼저 달아나다가 당한 것을 보니 모든 것이 헛된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겹겹이 방어막을 펼치고 방어 법기를 이용해도 방금 본 공격을 막아낼 것 같지가 않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금 본 빛기둥은 정말 엄청났다. 홀로 달아난 이의 방어구가 아니라 그들이 공동으로 형성한 보호막에 날아들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가 승기를 잡고 있는데 자신들이 물러나고 싶다고 놓아줄 리가 없어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 숨어있던 한립 역시 방금 본 위력에 한기가 들었다. 꼭꼭 숨어서 절대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곧바로 이어졌다. 당장 달아나기에는 무언가 아쉬웠다.
어차피 방금 손에 넣은 신풍주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라면 발각이 되더라도 어찌 살아 도망가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더욱 숨을 죽이고 모든 상황을 눈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원래 한립의 법기가 변한 붉은 빛과 푸른빛의 구름도 그들 머리 위에 둥둥 떠있기에는 눈에 띄는 감이 있었다.
허나 다행이 신풍주를 타고 쾌속으로 솟구쳐 지면과의 거리가 백여 장은 넘었기에 다른 수도자들이나 수풀에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인물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숨어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최선은 아니었으나 당장 구름을 없애 정체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교룡의 눈알로 제련한 최상급 법기 청화장(靑火瘴)은 몸을 가려주어 정확한 위치를 감지할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교룡의 단액이 섞인 운무에 접촉한 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중독 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몸도 지켜주고 적도 공격하는 법기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을 하는 그때 한립은 자신의 머리 위로 멀지 않은 곳에 짙은 먹구름이 표표히 떠있음을 발견하고 씩 웃었다.
그는 바로 서서히 그 안으로 다가가 아예 법기가 변한 구름과 함께 그 안으로 숨어들어 버렸다.
이젠 누가 하늘을 자세히 올려다봐도 철저히 속일 정도가 된 것이다. 걱정이 없어진 그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으로 싸움을 지켜보았다.
방금 보여준 엄청난 빛기둥에 다들 기세가 꺾였는지 여전히 뛰어난 법기를 휘두르기는 하고 있었으나 그 위력이 처음만 못했다. 다들 서로 살 궁리를 하느라 완전히 힘을 합쳐 대항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립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 모습을 보는데, 수도자들 중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이도 이건 아니라 느꼈는지 돌연 수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우리를 전부 죽일 작정입니까? 우리는 각각이 원무국 내로라하는 가문들의 제자로 우리를 죽이면 원무국 수도계 전체와 척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굳이 화를 자초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하. 화를 자초한다? 방금 도망가려던 놈을 죽이기 전에 했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만, 이미 한 놈을 죽였는데 이젠 전부 죽여 입을 막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우리도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 살려만 주신다면 절대 이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겠습니다!”
젊은 청년 하나도 서둘러 나서 말을 거들었다.
“흥! 맹세 따위를 믿고 풀어주라니,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 뒤를 은밀히 쫓았는데 악의가 없었다면 뭐 함께 식사나 하자 청할 마음이었다는 게로구나! 게다가 난 본래 원무국인이 아니니 너희 나라 전체를 등져도 상관이 없다. 어찌 너희 문파 선배들이 천죽교(千竹敎)까지 라도 찾아와 시시비비를 가릴 성 싶더냐?”
수풀에서 들려온 무뚝뚝한 목소리가 너무 귀에 익었다.
‘아까 그야!’
목소리로 보아 분명 경매장에서 괴뢰기관수를 낙찰받아간 덩치 큰 사내였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수도자들이 경매가 끝나고 사내의 뒤를 쫓아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경매품을 강탈할 작정이었던 듯했다.
그것을 미리 알아 챈 사내가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다가 저들을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저자와 결사의 각오로 싸웁시다, 안 그랬다가는 모두 죽을 것이니!”
처음 말을 꺼낸 수사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다른 이들의 전투의지를 북돋았다.
“결사의 각오 좋아하네. 내 꼭두각시 인형들조차 상대하지 못하면서 내게 맞서겠다? 놀만큼 놀아주었으니 이제 좋은 곳으로 보내주마!”
목소리는 무뚝뚝했으나 살기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몸을 숨긴 수풀 속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진동과 소리로 판단할 때 무언가의 발자국 소리 같아 보호막 뒤의 수도자들이나 공중의 한립 모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걸음 소리는 깊고 둔중했지만 속도는 빨랐다. 순식간에 숲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높이가 다섯 장은 될 법한 초대형 꼭두각시 호랑이가 여전히 삿갓을 쓴 사내를 머리에 태우고는 나타났다!
그 비대한 몸집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수도자 하나를 죽인 빛의 기둥이 누구의 입에서 분출된 것인지 분명해졌다.
사내는 헛소리 한마디를 더 하지 않고 바로 호랑이의 머리를 박찼다. 동시에 호랑이의 입이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하얀 빛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확인한 보호막 속 수사들도 작은 꼭두각시들을 부수는 행동을 멈추고는 뒷걸음질 쳤다.
당연히 상황이 좋지 못함을 깨달은 이들은 동시에 양손을 뻗어 보호막에 가져다 댔다.
지금 이 보호막만이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물론 모두 날아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방금 처참히 당한 자를 떠올리니 경거망동 할 수가 없었다.
거대한 백색이 빛기둥이 다시 분출되었고 수사들이 합심해 강화한 보호막은 일시적으로 그것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립이 뛰어난 안력으로 보니 그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순식간에 빠져나간 법력으로 인해 모두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던 것이다.
한립의 예상으론 공격 역시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방어구 안의 수사들도 같은 생각인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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