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올가미
역시 거대한 빛기둥이 잠시 후 점차 가늘어지며 호랑이의 입 안으로 사라져갔고 수사들도 희색을 드러내며 방어막에 가져다 댔던 손을 떼고 숨을 내쉬었다.
이를 보던 사내는 비웃음을 띠더니 돌연 호랑이 머리에 숨겨진 문을 열어 중계 불 속성의 영석을 던져 넣었다. 그러자 막 꺼져 가던 빛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수사들이 뛸 듯이 놀란 것은 당연했고 지켜보던 한립도 입술을 깨물었다.
한립이 놀란 점은 뜻밖에도 저 거대 호랑이의 공격 한 번에 중계 영석 하나가 통째로 소모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일전이었다.
저게 무슨 법술을 이용한 대결이란 말인가! 엄청난 가치의 영석을 옆에 쌓아두고 하나하나 폭발시키는 꼴이라니, 먼 타국의 천죽교(千竹敎)란 문파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았다.
이런 헛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닥쳐올 거대한 위협에 결국엔 수사들이 동시에 뛰쳐나가 버렸다. 남은 법력도 얼마 없는데 또 저 공격을 맞섰다가는 죽을 것이 뻔했다.
이제는 죽기 살기로 달아나며 운에 기대볼 수밖에는 없는 시점이었다. 덩치 큰 사내가 그들을 보고는 연이어 두 번의 빛기둥을 발사했고 두 명이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나머지 두 명은 이미 법기에 올라 멀리 사라지고 있었는데 사내는 호랑이 위에서 꼼짝도 않으며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숨어있던 한립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독하고 잔인한 면모를 유지하던 그가 저들을 이리 보내 준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막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체격이 건장한 사내가 다시 냉랭하게 입을 뗐다.
“숨어서 어부지리(漁父之利)나 노리다니. 볼 만큼 봤으면 이제 나오거라.”
‘설마 이렇게 높이 숨었는데 들킨 건가? ’
한립은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껏 저 꼭두각시 요수들의 위용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불덩이가 된 수사들의 뒤를 잇고 싶지는 않았다. 저 초대형 빛기둥은 위력도 강했지만 속도도 너무 빨랐다! 그가 몸을 드러낸다면 바로 전력을 다해 신풍주를 가동시켜야 저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일단은 당장 공격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은신을 풀고 나서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막 모습을 드러내려다 사내의 행동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사내와 꼭두각시들이 그가 있는 공중이 아니라 근처의 흙더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한립은 놀라 괜히 혀를 깨물 뻔 했다. 숨어있는 이가 더 있었는데도 자신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좌르륵’
흙더미가 뒤집어지며 그 안에 몸을 감추었던 이가 걸어 나왔고 얼굴을 보니 바로 경매장에서 괴뢰기관수를 놓고 경쟁하던 회색 주머니의 괴인이었다.
“역시 네 놈이었구나. 정체가 무엇이냐? 이 괴뢰기관수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냐?”
사내는 예상한 일이었다는 듯 흉흉한 기세로 괴인을 노려보았다.
“황룡,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성격은 여전하구나.”
잠시 침묵을 지키던 괴인이 뜻밖의 말을 꺼내 사내와 한립을 모두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찌 나를 아는 게냐?”
사내는 상대가 단번에 자신의 이름을 내뱉자 놀라면서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신분이 노출 된 바에 숨길 것도 없어 삿갓을 풀어 던지고 맨 얼굴을 드러냈다. 사납게 생긴 누런 얼굴의 사내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천죽교 호교법왕 자리에서 일이나 잘 처리하지 않고 무엇 한다고 이 먼 곳까지 온 게냐. 설마 그것에 숨겨진 대연결(大衍決)의 일부를 노리고 있더냐.”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 황룡이 어찌 나오든 원망할 생각 말거라.”
괴인의 담담한 말에 자신이 숨기던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있자 사내가 서둘러 소리쳤다.
“당초 누가 네게 대연결의 일성 구결을 몰래 전수해 주었는지 잊진 않았겠지?”
잠시 주저하던 괴인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말에 사내가 안색이 변해 뒷걸음질 쳤다.
“임 사형? …… 말도 안 돼. 임 사형은 이미 몇 해 전에 죽었거늘 나를 가지고 놀려 들다니! 죽여 버리겠다.”
사내가 놀란 것도 잠시 바로 분노에 찬 음성으로 팔을 휘둘렀고 백 여 개의 꼭두각시들이 명에 따라 괴인을 멀리서부터 둘러 싸버렸다.
“황 사제가 옛일을 잊지 않고 있는 듯 하니 안심이 되네.”
그런 모습이 도리어 괴인의 말투를 온화하게 만들며 드디어 회색 주머니에 가려져 있던 본 얼굴이 드러났다.
“임 사형!”
‘임 사숙!’
사내와 한립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다만 한립은 소리 없이 벙긋거렸고 사내는 소리를 내지른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저 괴인은 한립이 황풍곡의 제자가 되어 물품을 받으러 간 날 보았던 조각에 빠진 노인이었다!
그가 조각한 나무 원숭이가 마치 살아있는 듯 정교해 한립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오늘 단번에 그를 알아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정말 임 사형이로군요! 사형 어찌 그런 노인의 모습이 된 겁니까. 게다가 이미……”
사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 겨우 기쁘다는 얼굴이 되어 임 사형의 두 손을 맞잡았다. 얼굴에는 감격이 어려 있었다.
“핫하하! 황 사제, 그 때는 그저 죽음을 가장해…… 윽, 뭐 하는 짓이냐!”
한립의 사숙이 웃음을 띠던 얼굴에 노기를 담아 황 사제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양 팔목에는 젓가락만한 굵기의 깊은 상처가 패여 검붉은 핏물을 분출하고 있었다.
“사형이 요 몇 년간 도망 다니느라 뇌는 어디다 빠뜨리셨나 봅니다. 이렇게 부주의하게 사제에게 당하시다뇨? 쯧쯧, 제가 천신만고 끝에 고독종(蠱毒宗)에서 받아낸 흑사고(黑絲蠱)이니 없애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이게다 사형 탓입니다. 죽음까지 가장하고 도망을 쳤으면 얌전히 지낼 것이지 무슨 대연결(大衍決)에 욕심을 부려 옛 부하에게 연락을 취하고 난리란 말입니까. 이제 금 교주의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사제가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 부득불 우스운 연극까지 했지 무엇입니까!”
황룡이란 자는 임 사형을 비웃고 있었다.
“정말 내가 사제 하나는 잘 두었구나!”
임 사형은 곧장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다. 수결을 맺으며 법력을 순환해 독이 스며든 피를 뽑아내고는 품에서 병을 꺼내 그 안에든 약 분말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내 부하란 이들이 알려준 소식도 모두 거짓이겠지. 그 인형 안에 대연결의 구결 따위는 없고 단지 나를 끌어낼 미끼에 불과했던 게야. 다만 비밀 점포가 너희에게 협조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구나.”
“재물 앞에 흔들리지 않는 이가 없다는 범인들의 말이 수도계에서도 통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본 교가 충분한 대가만 치른다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죠.”
입을 비죽거린 사내가 고개를 수풀로 돌려 소리쳤다.
“이제 나와서 위풍당당했던 임 교주의 아드님을 만나 뵙거라.”
“헤헤! 소매, 임 사형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다만 입문이 늦어 뵐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요.”
“흥! 사형은 무슨 이제 상갓집 개에 불과한 이다.”
간드러지는 말투의 여인과 이를 반박하는 질투 어린 사내의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남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등정했다.
“사형에게 소개해 드리죠. 두 분은 본 교의 새로운 호교법왕들인…….”
황룡이 항상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던 임 사형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 사형의 두 손이 쉼 없이 춤을 추며 각기 다른 빛을 뿜어내는 검은 점들을 생성해 곳곳에 뿌렸다. 그 즉시 무수히 많은 빛들이 지상에서 번쩍이더니 무장한 꼭두각시 사병으로 변해 임 사형의 사방을 막아섰다. 그 수가 200명에 이르니 정말 장관이었다.
“조심해! 저렇게 많은 꼭두각시를 부리는 것을 보니 놀랍게도 대연결 3성을 연성했구나! 모두 저자를 절대 놓치지 마라! 아무리 대단한 실력이라도 일단 독이 발작하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황룡이 자신이 부리는 꼭두각시들을 움직여 공격해 들어갔다. 남녀도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함께 검은 점을 흩뿌려 200개가 넘는 꼭두각시 요수들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수백 개의 꼭두각시들의 난전이 시작되었다. 빛의 화살과 빛기둥이 쉼 없이 뿜어졌고 꼭두각시 요수들을 막아서 꼭두각시 사병들은 도검을 휘두르니 지켜보는 한립은 얼이 빠져있었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실하게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대강의 정황은 알게 되었다. 임 사형은 황풍곡에 들어오기 전 놀랍게도 천죽교라는 곳 출신이었고 심지어는 교주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세력을 잃고 황풍곡에 은신해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운결의 소식을 듣고 탐하다가 신임 교주의 분노를 사서 동문 사제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일의 전후 관계를 정리해본 한립은 탄식했다.
아주 요란하기 그지없는 전투를 내려다보니 자신 같은 축기기 초기의 수사가 나설 자리가 아님이 확실해 졌다.
다들 경황이 없는 틈을 타 최대한 빨리 달아나는 것이 상책일 듯 했다.
결론이 서자 한립은 바로 청화장(靑火瘴)을 거두어들이고 신풍주(神風舟)를 전력으로 발동시켰다. 즉시 그는 한 줄기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사라져갔다.
당연히 이에 놀란 네 사람은 전투 중에도 그를 시선으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를 쫓을 수도 없었으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치열한 전투를 재개했다.
* * *
전력을 다해 비행한 한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동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제운소가 준 서책을 펼쳐들고 진법 법기를 살펴본후 일단은 거처의 방어와 은신을 강화했다. 그들이 다투던 장소는 자신의 거처와 너무 가까워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전도오행진(顚倒五行陣)의 설치는 광장이 간단했다. 정확한 위치에 깃발과 원판을 묻어 두고 영석을 이용해 충분한 영력을 펼치면 끝이었다. 이렇게 진법이 발동되면 환영으로 적을 미혹하거나 가둘 수 있었다.
한립은 진법용 법기들을 정해진 위치에 깊이 묻어 두고는 이를 악물고 저물대에서 중계 영석들을 꺼내 진법의 곳곳에 끼워 넣었다.
그가 가진 중계 영석 중 절반이 이렇게 사라졌다. 피와 살을 내주는 기분이었지만 진법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진법이 운행을 시작하니 겉으로는 전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어 생각보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는 이제야 안심을 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앞으로의 수행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운이 좋아 축기에 성공했으나 더 높은 성취에 이르기 위해선 만 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자질과 인연이 필요했다.
축기(筑氣)의 어려움은 결단(結丹)을 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였다. 솔직히 축기는 자질만 월등하게 뛰어나다면 축기단 한, 두 알이면 해결되는 일 아닌가!
그러나 결단은 위의 조건이 갖추어진 수사라 해도 성공 확률이 적었다. 그러니 각 문파에서 새로운 결단기 수사가 등장하면 잔치까지 벌이는 것 아니겠는가?
한립은 자신의 자질이 엉망진창이라 기본적으로 다른 축기기 제자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청원검결까지 익혔으니 앞으로 어떤 기연(奇緣)을 만날 수 있을 지는 하늘의 조화에 기대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정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질이 극히 떨어지는 점은 영초로 영단을 만들어 복용하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결단에 필요한 상품 공법을 찾는 것이었다. 공법에 대해 생각하자 한립이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스승 이화원이었다.
그가 자신을 기면 제자로 받아주었으니 어쨌든 쓸 만한 공법 몇 개는 전수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결단에 성공했으니 자신이 공법을 고르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황풍곡으로 돌아가 이 사부의 거처가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 해봐야 할 듯 했다. 아직 많은 이들이 그가 축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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