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뢰만학
한립은 내일 일을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가 엄청난 진동에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 했지만 격렬한 진동이 전해지자 잠이 확 달아났다.
‘쿠구쿵!’
진동 외에도 폭음이 들려왔기에 누군가 자신의 금제를 공격하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난 그는 성큼성큼 방을 걸어 나가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빽빽하게 날아드는 빛의 화살과 빛기둥 공격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꼭두각시 요수들을 보니 기겁하고 말았다.
“이곳의 주인은 잘 들으시오! 안에 들어간 이를 내놓는다면 당신을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소! 괜히 남을 위해 천죽교(千竹敎)와 척을 질 생각은 없겠지요!”
격렬한 공격에도 전도오행진의 금제가 꿈쩍도 않자 사내가 회유해 왔다. 분명 황룡이란 자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한립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꼭두각시들이 밀집한 지역에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뗏목이 떠있었다. 천죽교 쪽에 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뗏목 위에는 복색이 다양한 이들이 타있었고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이가 바로 황룡이었다.
아까 본 남녀 외에도 네 명이나 되는 마른 사내들이 서있었는데 생김새가 모두 똑같았다.
황룡의 말에 놀란 그가 의심스런 눈길로 전도오행진을 살피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확인하자 모든 의문은 사라졌지만 속이 쓰려왔다. 임 사형이 하필 자신이 쳐둔 진법 안으로 숨어들어 이런 성가신 일을 벌인 것이다.
‘어쩐다? ’
하지만 전도오행진이 엄청난 공세를 모두 막아내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한립은 진법을 헤치고 천천히 임 사형에게 다가갔다.
그가 힘을 실어 몸을 뒤집어 얼굴을 확인하고는 잠시 난색을 표하며 말을 잃었다. 임 사형은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고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한숨을 내쉰 한립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손을 뻗어 상대의 품속을 뒤지려 했다. 상대의 저물대를 찾아 꼭두각시들을 찾고 싶었다.
그와 황룡의 일전을 본 뒤로 이들이 쓰는 수법에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옷자락을 들춰내자 초록 빛깔의 빛이 그 안에서 날아들어 곧장 한립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너무 놀라 급히 몸을 뒤로 빼고 그 빛이 얼굴에 닿기 전에 번개처럼 그것을 잡아챘다. 그러자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제, 살려주시게! 나도 원한을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야. 날 살려 준다면 반드시 사제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걸세!”
“방금 내 몸을 빼앗으려 한 것이요?”
다른 건 관심도 없다는 듯 한립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그건…… 그건 그랬지만,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가서 그랬던 것이네. 반드시 이 잘못을 보상할 테니 사제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이 사형을 한 번만 봐주시게!”
임 사형은 난감한 목소리로 연이어 사죄를 했다.
한립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상대의 원신(元神)을 관찰했다.
“만일 잡히지 않고 내 몸에 들어왔다면 당신은 날 살려두었을까? 법력이 높은 당신에게 방금 축기에 성공한 사제 따위는 한입거리였을 터.”
다시 고개를 들고 냉랭히 되묻는 한립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제가 나를 구해준다면 절세의 공법과 비밀을 알려주겠네!”
“절세의 공법? 천죽교의 대연결(大衍決) 말인가?”
차분한 한립의 말에 그가 몸을 꿈틀거렸다.
“대, 대연결은 본교를 창립한 사조가 만들어낸 비술로 의식을 강화하고 의식을 나누는 법을 익히는 것이네. 천죽교 사람들이 꼭 익혀야 하는 공법으로 이를 통해 대량의 꼭두각시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지.”
“그런 기초공법을 당신은 어째서 훔쳐내려 한 것이며 대연결의 반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한립의 매서운 눈빛에 임 사형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건 감출 일도 아니니 솔직히 말하겠네. 대연결이 본교의 기초공법이긴 하나 천죽교의 근본인 공법을 아무나 익히게 할 수는 없지. 그래서 기초공법으로 쓰이는 것은 본래 공법의 일성을 간단히 줄인 요약본에 불과해. 익히기는 쉬우나 위력은 본래 공법에 훨씬 못 미치지. 진정한 대연결은 본 파의 고관대작만이 익힐 수 있네.
지금 밖에 있는 이들도 진정한 대연결을 이(二)성까지 익혔기에 100개의 꼭두각시를, 삼(三)성에 이른 난 300개의 꼭두각시를 다룰 수 있지. 그러나 삼성 이후의 대연결은 교주와 그 계승자만이 익힐 자격이 있어.”
상세한 내막을 풀어놓던 그가 끝에 가서는 분노에 휩싸였다. 원신의 형태를 한 임 사형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던 한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한 비밀은 무엇이지?”
“그건……? 일단 나를 우선…… 으악! 잠깐만, 말 하겠네! 말 한다고!”
임 사형이 또 머뭇거리며 수작을 부리려 하자 한립은 지체 없이 그를 눌러 죽이려 했다.
“내가 묻는 말에 모두 답하면 당신의 조건을 들어주지.”
한립의 매서운 손놀림에 놀란 임 사형은 조급히 입을 떼었다.
“그 비밀도 대연결에 관련된 것이야! 바로 천죽교 고관들에게만 도는 소문이기에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하네. 그러나 부친께서 말씀해 주시길 그 소문은 사실일 거라고 하셨어. 그건 대연결의 상층 공법을 익힌 이가 결단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네. 보통 수도자들보다 경계를 뛰어넘는 어려움이 줄어든다는 얘기지. 그것을 증명하듯 교주나 교주 계승자 중에서 결단기 수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
“결단기에 이를 확률을 높여 준다?”
냉랭하기만 하던 한립이 드디어 약간의 흥미를 보였다.
“그렇다네! 사제가 적절한 몸을 찾도록 도와준다면 사성까지의 구결을 공유하겠네. 그 후 우리가 연합해 금남천에게서 나머지를 훔쳐내는 거야. 그렇게 함께 결단기에 이르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처음에는 간절하기 이를 데 없던 목소리가 점점 한립을 충동질했다. 그러나 한립은 콧방귀를 뀌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에 임 사형이 좌불안석한 것은 당연했다.
“반드시 결단의 확률을 높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한립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제, 다른 것도 아니고 결단에 관한 일인데 아무리 작은 확률이어도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겠나!”
당황한 임 사형이 당초 부친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사실 그의 아비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말해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형은 언제 축기에 성공했고 대연결은 얼마나 익힌 거지? 그리고 의식을 강화해주는 것 말고 법력을 증진해 주는 효과는 어떤지 말해보게.”
“수련 속도는 그럭저럭 괜찮네. 법력도 약간은 늘려주는 것 같고…… 축기라 그건 내가 스무 살 즈음이었으니 100년 전이네. 대연결은 축기를 시작한 후 익히기 시작했지.”
한립의 물음에 당황하던 임 사형이 앞의 두 질문을 애매하게 넘어가고는 나머지는 성실히 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한립은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원신을 쥐고 있던 오른 손에 힘을 가해 망설임 없이 그것을 으깨버렸다. 그러자 참혹한 비명이 울리며 빛이 소실되어갔다.
“난 몸을 빼앗는 술법을 굉장히 혐오하는 사람이라서 말야.”
임 사형은 한립의 거처가 있는 절벽을 지나 황풍곡에서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가 우연히 그의 진법에 걸려든 것이다.
그는 온갖 환영과 환각에 시달리다 온몸에 독이 퍼져 어쩔 수 없이 원신이 빠져나가는 술법을 써서 죽어가는 몸을 탈출했다. 그리고 목숨을 부지할 몸이 필요했기에 한립을 보자마자 달려든 것이다.
이제 정말 죽었으니 임 사형에게 신경을 쓸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그가 처리해야 할 엄청난 무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천죽교 무리의 공세가 대단하긴 했으나 자신의 진법이 꼼짝하지 않는 것을 보며 한결 안심이 되었다.
이곳이 태악산맥의 외곽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황풍곡의 영역이었다. 이런 굉음과 진동을 발산하며 그들도 근심하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사실 한립도 이 시신을 던져주고 저들을 보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시신에 원신이 탈출한 흔적이 뚜렷한데 이를 확인하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진법 안에서 잠자코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쨌든 저들도 전도오행진을 뚫을 능력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는 무슨 선견지명이 있어 오자마자 진법을 설치했는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 진법이 없었다면 벌써 무슨 꼴을 당했을 지 알 수 없었다.
진법이 잘 버텨주고 있으나 그래도 이런 상황에 잠을 청할 수도 없어 그는 석회암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꼭두각시들을 이용한 공격은 끝없이 이어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한립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장장 반 시진 동안의 공격이 이어지자 드디어 진법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본래 고요하기만 하던 진의 겉 표면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발산되었고 꼭두각시들의 빛의 화살 등의 공격이 가해지면 물결과 같은 파동이 생겼다.
이를 확인한 천죽교 인들은 신이나 더욱 맹렬히 공격했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이 진법을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천죽교인들이 공격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한립의 안색도 미미하게 달라졌을 무렵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어디서 온 잔챙이들이 감히 태악산맥에서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오만방자 하게도 본문 제자의 거처를 공격해! 노부가 너희를 상대해주마!”
마치 천둥번개가 귀 바로 옆에서 치는 것처럼 진의 보호를 받는 한립 조차 귀가 울렸으니 천죽교 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결단기 수사다. 철수해!”
황룡이 흉악하고 체구도 좋았지만 사실 그들 중 가장 머리가 잘 굴러갔다. 그는 바로 철수를 명했으나 결단기 수사의 비행속도나 어마어마한 법력을 간과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서둘러 꼭두각시들을 불러 모으는데 그들과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하얀 빛이 모이더니 순식간에 그들 앞에 당도했다. 그제야 그들은 꼭두각시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빛은 수십 장은 될 법한 은빛을 이루었다. 그 빛은 황룡 등이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일곱 갈래로 나눠져 천죽교인의 뒤를 쫓았다.
“선배님 살려주십시오! 저희들은……!”
황룡이 서둘러 용서를 구하는데도 은광은 전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은빛은 손쉽게 그들을 따라잡았고 몇 번의 천둥소리가 들리자 천죽교인들은 재가 되어 흩날렸다.
황룡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은빛이 하나로 모이더니 살집이 두둑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두 눈은 살에 파묻혀 가는 실 같았고, 턱에 붙은 살은 얼마나 두꺼운 지 알 수도 없었다.
한립은 그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뚱뚱한 사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바로 결단기 수사였으며 방금 사용한 법술은 이영근(異靈根) 번개 속성의 공격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한립의 거처를 공격하던 이들을 해결해 주었고 황풍곡의 선배였으니 한립은 주저할 것 없이 진법을 거두고는 서둘러 법기를 타고 그를 맞이하러 갔다. 뚱뚱한 사내 앞에 멈춘 그는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사질 한립, 사백을 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백의 존함을 알 수 있을는지요?”
사내는 한립이 날아오르는 순간부터 그 앞에 멈춰서기까지 한립을 쳐다보다가 공손한 인사를 받고 서야 웃음기를 보였다. 첫 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 했다.
“난 뢰만학이니 앞으로 뢰 사백이라 부르면 된다. 저 천죽교 인들은 어찌 네 거처를 공격하고 있던 게냐? 설마 네가 자초한 일이더냐.”
첫 마디부터 바로 사실을 물어왔다. 뢰 사백은 쉽게 상대할 만한 인물이 아닌 듯 했다. 한립은 항상 그렇듯 차분한 태도로 일의 정황을 설명했다.
“그 천죽교 녀석이 문제였구나. 내 그 녀석을 황풍곡에 받아들일 때부터 언젠가는 말썽이 생길 줄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추살 당하다니 금 교주인가 하는 자의 속이 좁아 터졌나 보구나!”
뢰 사백은 그리 상심한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숨을 내쉬었다.
“임 사질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거라.”
“네! 사백 저리로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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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