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선택
대사형 우곤은 즉시 얼굴에 웃음을 띠고 한립을 데리고 나가는데 대청을 나서기도 전에 말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사부님의 녹파동은 말이야, 방원 수백…….”
여인이 한립과 우곤이 점차 멀어지는 것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제자는 우곤을 견뎌낼지 모르겠어요. 전 이제 우곤이 말하기 전부터 머리가 아픈 기분인걸요. 너무 수다스러운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에요.”
“휴! 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부인 나도 방법이 없는 것을 어찌하겠소. 한립 저 아이야 절대 못 견딜 테지.”
“그도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 제자가 내일 어떤 요청을 해올까요?”
“뭐가 있겠소, 기껏해야 단약, 공법 아니면 법기겠지. 부인이 누차 사정하지만 않았어도 어찌 내가 제자에게 이런 상을 내리겠소.”
“그런 말 마세요. 생명의 은혜조차 갚지 않는다면 맑고 깨끗한 마음이 근원인 빙심결(氷心決)을 어찌 이루겠어요. 그리고 축기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하면 어찌 결단기에 이르러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겠냔 말이에요.”
여인이 눈을 부릅뜨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구구절절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이화원을 감동시켰다.
그는 바로 가슴을 두드리며 한립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야만 부인의 수행에 도움이 된다니 못할게 무엇인가.
한립은 자신에게 떨어진 꿀떡이 사모의 수행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지금 우 사형을 따라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런 행운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한 석실 앞에 이르자 마침 그곳에서 나오던 사내가 우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한립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우 사형께서 웬일로 한가하게 논검당(論劍堂)에 다 왔습니까? 법술 연구나 같이 하시겠어요?”
“나는 됐다. 넷째 사제가 오행법술로는 사부 문하에서 일인자임을 모두 다 아는데 괜히 망신당할 일 있어?”
사내의 말을 들은 우곤이 바로 안색이 변해서는 웃는 낯으로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나 돌연 고개를 돌려 한립을 가리켰다.
“소개할게. 사부님께서 정식으로 거두신 우리의 여덟째 사제, 한 사제야.”
“그리고 이쪽은 넷째 사형 송몽이네. 서로 인사들 해. 앞으로 동문 사형제로 지내게 될 테니 말이야.”
“여덟째 사제!”
넷째 사형이 소개를 듣자마자 눈을 빛내며 한립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가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입을 뗐다.
“넷째 사형을 뵙습니다. 사제가 축기에 성공한지 얼마 안 되어 많이 부족하니 사형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한립의 말에 사내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더니 곧 흥미를 잃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를 더 살필 것도 없이 휭 사라져 버렸다. 제자리에 선 한립과 우곤은 서로 눈만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하. 한 사제 너무 신경 쓰지마. 송 사제가 원래 저런 성격이거든. 겉으론 차가워 보여도 알고 나면 사람은 괜찮아.”
우곤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송 사제를 위해 변명했다. 당연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한 한립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꽤 넓은 곳이었으나 이화원과 부인 그리고 우곤과 송몽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머지 사형들도 보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들도 따로 거처가 있어 가끔 인사나 드리러 들른다 했다.
다만 우곤과 송몽은 어릴 적부터 이화원과 부인 곁에서 자란 터라 따로 거처를 마련하지 않고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우곤과의 한담을 통해 나머지 사형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니 어느새 모든 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우곤은 말하는데 흥이 났는지 자신을 끌고 침실로 데려가 앉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대사형이니 어느 정도 체면을 살려주어야 할 듯해서 한립도 거절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 쓸 만한 정보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청산유수처럼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마치 음공에 공격당하는 것처럼 한립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 * *
한립은 다음 날 이화원과 그 부인의 면전에 다시 섰다.
“한립아, 생각을 잘 해보았으면 받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 보거라.”
“제게 적합한 공법을 익히고 싶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별로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야기했다. 이화원은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부인을 향해 눈짓했다.
분명 ‘내 말이 맞지 않으오. 기껏해야 공법일 거라고 했잖소? ’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그래, 잘 선택했다. 사부가 네 영근 속성을 살펴 적합한 공법을 내리도록 하마.”
그 말에 한립이 주저할 것도 없이 바로 팔을 내밀었다. 상대가 손목을 잡자 뜨거운 기운이 신속히 그의 경맥을 타고 감돌았다.
“흠. 금속의 속성 외에도 다른 속성들도 다 수련해도 되겠구나. 뜻밖에도 네 개의 영근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야. 예전에는 그저 여러 영근이 혼잡하다는 것만 알아챘거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화원이 정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인도 한쪽에 서서 의외라는 기색을 보이며 자기도 모르게 한립을 다시 훑어보았다.
“제자의 자질이 이리 떨어져 사부를 실망시켜드렸습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하늘이 네게 축기를 허락했으니 그저 네 복인 게지. 그러나 이렇게 되면 알맞은 공법을 골라주기가 어렵게 되겠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뜻밖의 말에 한립이 두 눈을 깜빡였다.
“당신도 정말 설명을 잘 해줘야지요. 항상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마친다니까. 네 사부의 말씀은 사실 네게 좋은 공법을 내리려 했는데 네 영근 속성을 보고 고민이 되는 것이다. 사실 상승의 공법일수록 익히기 어려우니 차라리 간단한 공법을 익혀 빨리 성취를 이루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인은 이화원을 타박하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맞소, 부인의 말이 바로 내가 하려던 것이오.”
이화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서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수도자들의 공법은 위력과 성취 속도를 기본으로 세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를 수행하면 법력이 쌓이는 속도가 평범하거나 느리지만 부차적으로 누리는 공격력이나 특수한 수단의 위력이 강하지.
실전 대결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적을 쳐부수니 법력이 낮을 때도 더 높은 경지의 수사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생에 결단을 하지 못할 거라 포기한 이들은 대부분 이런 공법을 선택하지.
두 번째는 반대로 수행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익히기도 쉽다. 그러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
첫 번째 공법의 장점이 곧 이런 공법류의 약점이라 적을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부족하고 부차적인 효과도 미미하지. 이 공법을 익히면 수행을 하는 동안 동급의 수사들 중에 가장 약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도자로서 더 높은 경지에 이룰 꿈이 있고 하늘의 도를 익히기를 원하는 자들이 이런 종류의 공법을 익히지. 어쨌든 결단하기에 더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한립을 쳐다보았다.
“제자는 어느 종류의 공법을 익히겠느냐?”
“사부님,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아직 두 가지 밖에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말에 이화원이 부인을 보고 웃더니 한립과 눈을 마주했다.
“그래, 그 두 가지 외에도 세 번째 부류의 공법이 있다. 그게 바로 대다수의 수도자들이 칭송하는 최상급 수련 공법인데 네게는 추천할 수가 없구나. 일곱 명의 사형들 중에도 세 번째 공법을 익힌 이는 아직 없었다. 이런 공법은 방금 언급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장점을 아우르며 위력도 강하고 수행 속도도 놀랍지. 그러나 제한도 많고 수행을 하면 난관이 거듭된다는 점을 명심하거라.”
이화원은 한립이 마지막 공법을 선택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에 다시 한 번 경고했다.
이에 한립은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부님, 제자가 예의 없음을 탓하지 않으신다면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혹시 사부님께서는 어떤 공법을 익히셨는지요?”
“허허허. 최상급 공법 중 하나인 진양결(眞陽決)을 익혔다. 허나 나는 이 천영근에 버금가는 재능인 삼양지체(三陽之體)를 타고 났으니 손쉽게 익혔지만 다른 공법이었다면 힘들었을 터.”
제자의 당돌한 질문이 의외였지만 그래도 거만한 어투로 대답해 주었다.
”사부님 말씀을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럼 제자는 두 번째 법결을 익히겠습니다.”
“두 번째?”
담담한 한립의 요청에 이화원이 미미하게 놀라더니 바로 원래의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화원 부부는 한립의 선택에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네가 두 번째 공법을 선택하겠다니 사부로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수도를 함에 굳은 의지를 가진 점은 대견하다. 그래도 두 번째 공법이 익히기 쉽다는 것은 자질이 좋은 이들의 이야기일 뿐이란 것을 알아야지. 그렇게 뛰어난 이들도 비슷한 공법을 익혀 축기 후기에 이르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립을 더 설득해 보려던 이화원이 어떤 일이 생각났는지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연히 말소리도 끊기고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를 보던 여인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한립아, 정말 잘 생각해 보거라. 꼭 두 번째 공법을 선택해야겠니? 우리 뜻과 다르더라도 네가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면 반대는 하지 않을 것이야. 그건 최상급 공법을 익히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허나 그렇게 된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이러는 게야. 수도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굳센 게 아니라 너무 비현실적을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느냐?”
“그래, 사부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딱 한번만 다시 묻겠다. 정말 결정한 것이냐?”
상념에서 벗어났는지 이화원이 여인의 말에 동의했다.
“예, 제자 그렇게 결정하였습니다.”
한립은 긴 설득을 경청하고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냐. 네 뜻이 그렇다면 함께 장서실로 가자꾸나. 부인은 잠시 이곳에 있으시오. 내 한립과 둘이 다녀오리다.”
장서실은 대청에서 가까운 편이었고 크기도 보통의 석실만 했다. 다만 석실 전체가 붉은 결계로 막혀 있어 다른 사람은 침입할 수가 없었다. 결계로 다가간 이화원이 손가락을 찔러 넣자 곧장 두 사람이 지나갈 만한 통로가 생겨났다. 그 후에는 가볍게 석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됐다.
일단 안에 들어가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각종 옥으로 만든 서책과, 두루마리, 함, 서책 등이 모두 공중에 떠 있었는데, 쉰 권이 넘어 보이는 서책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아 이화원이 수백 년 동안 모아온 공법서들이 분명했다.
“각 권마다 금제가 걸려있어 나와 부인만 직접 꺼낼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손이 닫는 순간 석실 내의 금제가 발동되어 누구든 산채로 가둬 죽게 되어있다.”
이화원이 득의양양하게 설명했지만 경고도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한립이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짓자 이화원도 만족했는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붉은 빛이 날아가 옥으로 만든 서책을 끌어왔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한립에게 넘겨준 뒤 다시 연이어 일곱 개를 더 끌어오고는 멈췄다. 이미 한 무더기의 서책들이 한립의 품에 안겨 있었다.
“법력 증진이 빠르면서도 익히기 쉬운 공법들이니 주 공법으로 원하는 것을 하나 택하면 된다. 나머지는 원래 자리로 돌려두고 준비가 되면 다시 날 부르거라.”
할 말을 끝낸 이화원이 석실의 평평한 곳을 찾아 방석을 깔고 가부좌를 틀어버렸다. 한립이 조금 눈이 부시다 느낄 정도로 그가 손에 든 공법들은 각각의 특색이 분명했다.
공법들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옥함에 금색 두루마리를 펴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두루마리의 양식, 크기 등이 너무 눈에 익은 것이 자신이 가진 은색의 두루마리와 똑같았던 것이다.
지난 번 금지 원정 때 맨발의 거검문 사내에게서 얻은 것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이게 조금 더 얇았고 윗면에도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신 적혀 있는 빼곡한 고어를 자세히 살펴보니 응원공(凝元功)이라는 평범한 법결이었다. 공법을 익히며 따라오는 기술도 영기를 모으는 속도를 늘려주는 취령술(聚靈術)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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