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수련 반려
대청에 있는 사람들은 이화원과 부인 그리고 붉은 옷의 여인이었는데 여인은 서른 살 정도로 생긴 것은 우아하고 예뻤으나 냉랭한 표정에서 수도자에게 보기 드문 흉악한 인상을 풍겼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 매우 존중하는 느낌이었다.
그 옆에 서있는 두 사람 중 하나는 일전에 보았던 넷째 사형 송몽이었고 그 옆에는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역시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외모는 그럭저럭 수려한 편이었는데 은은히 고혹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처음 보는 여인과 비슷한 복색인 것이 관련 인물인 듯했다.
“한립아, 이리로 와 홍불 사백에게 인사 올리거라.”
이화원은 한립을 보자마자 신이나 그를 불러들였고 무현이란 사형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송몽의 옆으로가 섰다.
“홍불 사백께 인사 올립니다.”
비록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연히 공손히 예를 올렸다. 홍불 사백은 그가 인사를 하는데도 아무런 반응 없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은은한 미소가 어리며 약간 무뚝뚝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 괜찮구나.”
“허허! 보아하니 홍불 사제께서 만족하셨나 보군요! 제자가 비록 평범한 용모이나 그래도 축기기 수사입니다. 게다가 평소해도 얌전하고 영리해 마음에 차는 아이예요.”
뜬금없는 말들이 오가자 한립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뭔 말이야 만족하다니? ’
이화원이 자신을 과하게 칭찬하는 모습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대청으로 들어오자마자 느낀 것인데 붉은 옷의 소녀가 자신을 몰래 훔쳐보며 불만스런 기색을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홍불 사숙이 자신을 좋게 평가하자 너무 놀라 몸이 굳기까지 했다. 동시에 적의가 가득한 다른 시선도 느껴졌는데 바로 자신을 안내해 준 일곱 째 사형 무현이었다.
무현은 한립이 자신을 마주보자 바로 시선을 돌리며 모른 척했다.
이 모든 정황이 한립을 불안하게 했지만 평소의 습관대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이런 점이 그를 암암리에 살피던 홍불 여인의 눈에 더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이 아이가 적당하겠네. 그럼 난 먼저 훤아를 데리고 돌아가 좋은 소식을 기다리마.”
“걱정 마시지요. 제가 잘 이야기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홍불의 이야기에 이화원이 서둘러 배웅을 하러 일어났다. 한립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돌아온 이화원 부부는 기분이 좋은 듯 했다. 다시 의자에 앉은 그들은 한립을 계속 살펴 봐 그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한립아, 사부가 일단 축하해 줘야 할 듯하구나.”
“제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없자 결국에는 공손히 물었다.
“하하. 저 홍불 사제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셨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니? 그분의 제자와 수련 반려가 될 수 있는 게야.”
부인이 이화원이 답하기도 전에 한립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한립은 그저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수련 반려? ’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정신이 혼미했다.
“어떠냐? 다른 이들은 꿈속에서도 바랄 일이다. 본래 황풍곡 내에 여제자가 별로 없는데다 축기에 성공한 여제자를 찾으려면 희박하기 그지없지. 게다가 수련 반려와 함께 수행을 하면 남녀 모두에게 도움이 되니 다른 제자들은 고대해 마지않는 기회다.”
유쾌한 목소리의 이화원이었다. 그에겐 법력이 높은 홍불 사제와 이런 인연을 맺어두면 유리한 점이 많았다.
홍불 선고(仙姑)는 월국 전체에서도 결단기 수사 중 맨 앞줄에 위치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황풍곡에서라면 나이가 많은 사조들을 제외하면 거의 법력으로 으뜸이었다.
그 제자와 이런 인연으로 엮일 것을 생각하니 평소에 엄하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제자는 이런 일을 생각해 보지 않은 터라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황풍곡 전체에 용모와 자질을 갖춘 제자들이 허다한데 어찌 저를 고르신 겁니까?”
“허허, 네 복인 게야. 홍불 사제는 일찍이 남녀 간의 정에 데여 외모가 곱상하거나 경박스런 사내는 끔찍이 싫어하지. 그러니 제자의 반려를 고를 때도 그런 남제자들은 눈에 차지가 않은 것이다. 내 거처에 들르기 전 여러 군데를 돌아보았다던데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네가 처음이라 한다.
게다가 자질은 그리 까다롭게 따질 여건도 아니지. 오늘 옆에 서있던 여제자 역시 평범해 축기단을 연달아 세 알이나 먹고, 대량의 진귀한 보조 약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축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녀도 친 조카가 아니면 그렇게 해주진 못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총애가 지나친 게지.”
한립에게 설명을 해주던 그가 잠시 후 한탄했다.
“사실 처음엔 나 역시 널 추천할 생각을 못했고 네 일곱째 사형을 불러들였지. 용모로 보나 자질로 보나 너보다 못할 것이 없었으니 그녀가 용모가 괜찮은 사내에 편견이 있는 줄은 알았으나 시도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너도 보다시피 그녀의 눈에 들지 못했다. 그 계집애는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더라만.”
그런데 이화원이 육 가 계집애라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번뜩 육 사형이란 자를 죽인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가 눈이 뒤집혀 자신의 연인을 해하려 하며 역시 홍불 사조와 동 가 여인을 언급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설마 그 여인이 아까 그 소녀?
그 일이 생각나자 온 몸에 힘이 들어가며 그 홍불 사백인가 뭔가의 제자에 대한 인상도 나빠졌다. 소녀에 대한 호감이 전무하니 이화원의 설명을 들으며 기울었던 마음도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제자는 아무래도 좀 그렇습니다. 일단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충분히 고려해볼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 홍불 사백의 제자도 저를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이니 서로 억지로 엮여서 좋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다른 사형들 중에 더 좋은 인연이 있나 알아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말은 길었지만 분명 거절의 의사가 들어있기에 이화원과 부인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부인은 그런대로 받아들이는 듯 했으나 이화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잘 듣거라! 이미 홍백 사제 앞에서 약속한 일을 어찌 그리 쉽게 뒤집겠느냐? 더 좋은 선택이 있다 해도 그러기는 힘들 것이야. 게다가 그 계집이 마음에 차지 않아할까 거절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본래 처음에는 마음이 잘 맞지 않더라도 수련 반려로 시작해 정을 쌓다가 부부의 연을 맺기도 하는 것이다.”
이화원이 엄한 어투로 한립을 타박했다. 한립은 몰래 앓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 좋은 일을 거절할 명분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부인이 꺼낸 이야기가 이화원을 놀라게 했다.
“한립아, 네가 그 아이와 입곡한 시기도 비슷하고 축기도 비슷한 때에 성공했으니 그 사이에 무슨 소문을 들었던 게로구나.”
“그 계집애에 관해 무슨 소문이 있단 말이오?”
“소첩이 친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듣게 된 유언비어입니다.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요.”
여인이 붉은 입술로 조금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 둘은 일단 나가고 한립만 남아 있거라.”
부인이 이렇게 나오자 이화원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손을 저어 송몽과 무현을 내보냈다. 송몽이야 별다른 생각 없이 예를 올리고 물러났고 무현은 사부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으나 떠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이제 우리뿐이니 사실대로 말해보시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들어나 봅시다.”
이화원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부인이 한립을 한 번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도 2년 전 우연히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홍불 사제의 여제자가 연기기에 남자관계가 복잡해 여러 남자들과 한데 얽혀 그 사내들끼리 다툼도 일어났다 해요. 동문 간에 살인이 일어날 뻔한 일이라 홍불 사제가 노하여 그 아이를 감금해 두었다가 축기에 성공하고서야 풀려났다 하더라고요.
게다가 그 후에는 또 봉가 아이와 마음이 맞아 수련 반려가 되려 했으나 홍불 사숙이 봉가 아이를 싫어해 재차 감금당했다 들었어요. 지난 2년간 별다른 소식도 없었고 저도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은 일에는 흥미가 없어 홍불 사제가 제자를 데리고 찾아오셨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립의 태도를 보니 불현듯 그 일이 생각이 나는군요.”
부인이 늘어놓은 이야기에 이화원뿐 아니라 한립도 놀랐다. 이화원은 그 계집이 그리 악명 높은 줄도 모르고 홍불 사제에게 제자를 주겠다 약조했으니 당황스러웠고 한립은 육가와 얽혀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내와도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닌 소녀였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부인 정말이오? 홍불 사숙이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여제자를 데리고 있었단 말이오?”
이화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며 일어섰다. 그가 이리 대청을 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한립 때문이 아니었다. 만일 그런 여자와 자신의 제자가 엮여 이상한 소문이라도 난다면 이화원의 명예는 어쩌란 말인가?
“저도 어찌 알겠어요. 다들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하는 이야기니 아마 그들도 사실인지는 모를 것입니다.”
그런 사정이라면 이화원도 제자를 강요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자신도 지금 후회막심이지 않은가!
그러나 홍불 사제 같은 이에게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정말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대청을 몇 바퀴나 돌고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는지 한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제자가 우두커니 서서 그의 입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는 것을 확인하자 무척 심란해졌다.
“일단 가 보거라. 네 사모와 상의한 후에 어찌 할지 결정을 내리겠다.”
사실 한립도 상대가 소문 따위는 개의치 않고 일을 밀어 붙일까 봐 조금 염려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화원도 마음이 걸리는지 상의를 해보겠다는 이야기에 안심이 됐다. 그는 신이나 물러가 보겠다 인사를 올린 후 대청을 나섰다.
밖에서 송몽와 무현이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았으나 그저 걸음을 재촉해 사부의 거처를 벗어났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한립은 편치 않은 마음으로 사흘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이화원의 부름을 받아 녹파동으로 찾아갔고 사부와 홍불 사제의 합의를 듣고서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 *
몇 달 후, 녹파동 폭포 앞에서 이화원 부부와 홍불 사백이 두 사람을 배웅하고 있었다. 원행을 나서는 이들임에도 두 사람의 표정에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고분고분 말에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 일남일녀가 바로 한립과 홍불 사백의 제자인 동훤아였다.
“한립아, 나가서는 둘이 서로 도우며 항상 조심해야 한다. 최근 수도계가 불안정해 실종사건이 많다 들었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연기기 수사에 그쳤으나 이제 축기기 수사들까지 사라지니 주의를 기울이거라!”
이화원이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당부를 했음에도 한립은 꽤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홍불 사백이 소녀에게 남긴 당부는 한립의 견문을 넓히는 사례로 남았다.
“원행 동안 한 사형의 말을 잘 듣고 얌전히 다니거라! 한 번만 더 사고를 쳤다간 사부가 정이 없다 원망하지 말거라!”
이렇게 한립과 동훤아가 법기를 타고 남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화원이 그런 둘을 보고 돌연 걱정이 되는지 홍불 사백을 바라보았다.
“사제는 정말 연가의 보물대회에 저들을 대표로 보내는 것이 안심이 되십니까? 둘 다 축기에 성공한 지 얼마 안 되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을 겁니다.”
“이 사제는 더 실력이 좋은 제자를 내놓지 못해 명성에 흠이 갈까 걱정이냐? 아니면 이번 연가 대회에 걸린 건곤탑(乾坤塔)이 아까워 그러느냐.”
그런 이화원을 본 홍불이 쓴웃음을 지었다.
#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