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이별
연주라는 중년 사내는 연령보의 연기기 저계 제자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엄 씨 모녀에게 정성을 다했다.
엄 씨는 자신과 딸을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1년 후 그에게 재가를 했고 딸의 뛰어난 용모가 화를 부를까 문채환이 이미 결혼한 적이 있는 과부라 모두에게 소개하며 그때부터 혼인한 부인의 복색을 찾아 입혔다.
문채환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가서 진상을 밝힐 생각이었다.
이렇게 겨우 2년을 평화롭게 보내다가 안타깝게도 가장인 연주가 가문의 일을 수행하다가 죽고 말았다.
이제 다시 의지할 곳이 없어진 엄 씨 모녀는 결국 연령보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남은 재산을 털어 작은 점포를 꾸리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작은 가게지만 엄 씨의 약값은 치를 만큼 장사가 되었는데 얼마 전 그들에게 부적을 납품해 주던 이들이 물건을 끊어버렸다.
엄 씨와 문채환은 당장 그들을 찾아 나섰고 결국 이 사단의 배후를 찾아냈다.
알고 보니 그는 부근에 사는 어떤 수도가로 문채환이 늘 그의 집 앞을 지나다니니 그 외모에 혹해 문재환을 첩으로 들이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그것을 엄 씨가 허락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오늘 한립이 문채환을 마주쳤을 때에도 어떻게든 판매할 물건을 받아오려고 하다가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 것이었다.
엄 씨가 이야기를 하면 가끔 채환이 몇 마디를 보태자 한립은 곧 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누군가 문채환을 첩으로 삼고자 이런 유치한 짓까지 한다는 것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작은 요물이라 여겼던 소녀가 어느덧 장성해 첩으로 삼고 싶을 정도의 여인이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수련을 했으니 이미 구성 이상까지는 성취를 이루었겠구나.”
엄 씨가 한립을 살피더니 수도계에 있으면서 알게 된 상식을 토대로 물었다.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수도자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저 미소를 보인 한립이 그녀들이 원하는 답을 미리 내놓았다.
“그 수도자의 성취는 어떤지 아십니까? 만일 연가의 핵심 제자가 아니고 수행도 그리 높지 않다면 이야기로 순조롭게 해결하겠습니다.”
코를 긁적인 한립이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 이런 방법으로 범인 여자를 핍박할 시간이 남아도는 부류는 절대 법력이 높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한 물음이었다.
“내 채환을 시켜 알아놓은 바로는 겨우 기본 공법이 오성에 이른 자라 하더라. 성은 연 씨이지만 집안에서 별다른 지위도 없는 게지. 그러니 범인들과 한 데 얽혀 지내는 것이 아니겠니.”
역시 문부를 이끌었던 인물 답게 엄 씨는 이미 그 수도자의 뒷조사를 해놓았다.
“그럼 정말 문제없겠네요. 잠시 후에 사매와 그를 찾아가 일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사형! 사형이 꼭 도와줄 거라 믿었어요!”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채환이 신이나 외쳤다.
“우리가 너를 귀찮게 하는구나. 그러나 같은 수도자가 나서 주지 않는다면 우리 모녀의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구나.”
엄 씨는 탄식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수사가 범인들을 괴롭히는 것을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수모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연가에서 어찌 쉽게 수도자들을 처벌하겠니? 도리어 한 순간의 실수로 수도자에게 죄를 지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범인들도 많은데 말이야.”
“그런데 사매는 벌써 시집갈 연령이 된 듯 한데 어찌 좋은 사람을 찾아 맺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수도자를 장부로 맞는다면 의지할 곳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시집이라?”
“난 절대 연가 수도자들에겐 시집 안 가요!”
“어째서 말이냐?”
한립은 정말로 의아했다.
“사형, 연가 수도자들은 근본적으로 범인 여자들을 사람 취급을 안 해준다고요. 그들의 첩이 되면 세속의 노비와 다를 바가 없어요. 조금만 기분을 상하게 하면 욕지거리를 듣기 일쑤에요. 평생 혼자 살더라도 그렇게는 못 살아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혼사를 꺼려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랬군요. 그래도 평생 혼자 지낼 수야 없을 텐데…….”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아무렇게나 대답을 한 것인데 어쩐지 말을 하고 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엄 씨도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문채환도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숙이고 말을 멈췄다. 이러니 한립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사매, 안내해줘. 일단 그 수사 문제를 해결하자.”
“네!”
문채환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반대할 리야 없었다. 엄 씨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점포를 나와 그 수사가 산다는 집으로 향했다.
* * *
“사형은 공법을 몇 성까지 익힌 거예요? 연가 수사가 사형을 보자마자 선배님이라고 했잖아요. 마치 어른을 대하듯이 공손하고 깍듯하게 대하고요.”
연가 수사의 문제를 해결해준후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외진 길에서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모습이 스무 살이 넘은 여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저자보다 조금 높을 뿐이야. 수도계에선 경지가 다른 수사에게 선배라고 부르곤 하거든.”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서는 연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한립이 무어라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자 부끄러운지 문채환도 고개를 돌리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가 한립이 놀랄 만한 질문을 해왔다.
“사형, 정말 영근이 없는 사람은 절대 수도자가 될 수 없어요? 저도 사형 같은 수도자가 되고 싶어요.”
마음이 아팠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예로부터 영근이 있는 사람만이 법술을 익힐 수 있었고 그 원리는 수십만 년간 한 번도 깨진 적 없었다.
한립의 표정만으로도 그녀는 기대가 수그러들었다. 그녀는 말없이 묵묵히 한립을 따라 걸었다. 둘이 점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한립이 걸음을 멈추었다.
“난 일이 있으니 들어가지 않을게. 여기서 인사하자. 연령보에서 며칠 더 머무를 예정이니 인연이 되면 다시 볼 수 있겠지.”
“네? 지금 간다고요?”
“응, 여기 이거 받아. 영석 수십 개는 들었을 테니 사모님과 잘 지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인 듯해.”
저물대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낸 한립이 그것을 문채환에게 쥐어주었다.
“고마워요, 사형.”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는데 힘이 하나도 없었고 아쉽다는 기색이 만연했다. 그 표정을 보니 또 마음이 이상하게 안 좋았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결국엔 은색 병을 찾아 그 안에서 분홍색 단약을 꺼냈다.
“삼켜봐. 내 널 수도자로 만들어 줄 순 없지만, 이번 생에 지금 모습 그대로 늙지도 변하지도 않게 해 줄 수 있겠지. 내 사형으로서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줘!”
“사형, 나는…….”
그녀가 무어라 입을 떼려 하는데 기쁜 기색과 함께 속에 있는 말을 지금 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나 한립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손가락을 튕겨 단약을 그녀의 입 안으로 넣어버렸다. 자연히 문채환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꿀꺽 삼켰다.
“사매, 잘 지내! 몸 잘 챙기고!”
그 말을 끝으로 몸이 흐릿하게 변한 한립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사형!”
놀란 문채환이 서둘러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섰으나 이미 종적을 감춘 한립을 그녀가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조용히 점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천학거(天鶴居), 한립이 찾아가던 다루의 이름이었다. 그는 바로 2층으로 향했다. 1층은 법력이 없는 범인들이 전부였다.
2층에 올라가자 수사들이 보였지만 대부분 연기기 수준이어서 여전히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3층에 올라갈수록 아까 느꼈던 법력의 파동이 가까워지며 그의 교류 목표들이 모여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3층의 상황이 어떠한 지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축기에 성공한 수사들이었고 분명히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복장이 눈에 익은 칠대선파 수사들이었고 다른 이들은 다양한 의복을 입고 있었으나 생소한 타국의 수사들이었다.
한립이 들어서자 자연히 다른 수사들의 시선이 모여 들었는데 처음에 그를 관찰하던 몇몇 외에도 대부분이 그를 의식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바로 칠대선파가 모여 있는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목적지가 분명해지자 다른 수도자들은 곧 관심을 껐고 칠대선파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아주었다.
“황풍곡 한립이 여러 사형, 사제들을 뵙습니다.”
사실 다섯 명중 세 명은 축기기 중기였으나 나머지는 그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초면이기에 겸양을 한 것이다. 그러자 탁자에 있던 도사 두 명 중 중년의 비교적 연장자가 나서서 한립에게 예를 올리고 간단히 모두를 소개했다.
“저는 청허문 무법자로 이쪽은 무유자 사제이고, 저 세 분은 영수산 무 사제, 거검문 파 사형, 천궐보 방 사매입니다.”
“사제 우선 연가의 유명한 설령(雪嶺) 차부터 맛보시지요. 이 다루에서 전문으로 우리 같은 수사에게만 제공하는 극상품 차입니다.”
방금 말을 꺼낸 것은 싱글벙글 거리던 중년인 영수산 무 수사로, 한립이 자리에 앉자마자 찻주전자를 들어 하얀 안개 같은 것이 감도는 영력이 깃든 차를 따라주었다. 한립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며 가볍게 한 모금을 넘겼다.
“좋군요.”
그는 정말 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으나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찻물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에는 눈을 삼킨 듯 한기가 전해졌으나 입가와 혀에 감도는 향기로운 향은 음미할수록 그윽했다. 무 수사도 그의 말에 웃음이 짙어졌다.
“한 사제는 처음 보는 듯 한데 황풍곡 어느 사백님의 신 제자인가요?”
“축기에 성공한 후 이화원 사부님 문하에 정식제자로 든 것이 겨우 몇 해 전 입니다. 여러 사형, 사제들의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평범한 외모의 방 사매가 시원시원하게 물어오자 한립이 성의껏 답했다.
“우리가 무슨 가르침을 줄 것이 있겠습니까! 모두 서로서로 돕는 것이지요. 한 사제가 뜻밖에 이 사숙 문하에 있는데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대표로 파견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지 않아도 됩니다.”
거검문 파 사형은 중년에 외모는 투박하게 생겨도 말이 청산유수였다.
여전히 겸손한 한립의 대답과 여러 수사들의 안부가 오가자 지금까지 말이 없는 무유자를 제외하고는 금세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까?”
사소한 화제가 지나가자 드디어 본론으로 돌아가기 위해 던진 물음이었다.
“별 것은 아니고 모두 이렇게 많은 타국 수사들이 연령보로 몰려드는 연유를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건곤탑(乾坤塔) 부보가 진귀한 보물이라고는 하나 이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요.”
무법자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자연히 한립도 그것이 내내 의문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딱히 단서가 없더군요.”
“어떤 중요한 보물 때문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 그랬으면 이렇게 축기기 수사들만 왔겠어요? 벌써 결단기 고수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을 겁니다. 다만 다른 적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게 문제네요.”
천궐보 방 사매가 이어서 말했다.
“일단 이상한 추측은 삼가지요. 어차피 이틀 후에 보물대회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전 오늘 본 귀령문(鬼靈門) 수사들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더군요. 연가 제자들은 연달아 이긴 것이 심상치가 않아요. 혹시 그들에 대해 아시는 분 있습니까?”
그 물음에 한립을 포함한 다른 이들이 대부분 모르겠다는 눈치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대부분 오늘 처음 들었으나 귀령문이란 소리만 들어도 그렇게 좋은 부류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십중팔구 마도(魔道) 문파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무유자가 자신은 귀령문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 평이한 안색이었다.
“사제, 귀령문에 대해 아는 게 있는가?”
무법자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는 무유자가 남들과 왕래하는 것은 꺼리고 서책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기대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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