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계략
서책을 받아 든 한립이 그것을 훑어보고는 이 기이한 거래의 원인을 찾아냈다.
이건 놀랍게도 고대의 약방문이었는데 고대의 수사가 영수를 기를 때 먹이는 사령환(飼靈丸)을 제조하는 법을 담고 있었다.
사령환은 대다수 영수들이 좋아했을 뿐 아니라 장기 복용 시 영수가 빨리 진화하는 기이한 효과를 내서 영수를 기르는 데는 최고의 단약이었다.
사실 단약의 이름과 효과를 볼 때만 해도 한립도 이렇게 괴한 약방을 거래하겠다 내놓은 상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필요한 원료를 확인하고는 그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이 사령환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일반적인 수사들이 놀랄 만한 것들이었다.
한립이 연기산(煉氣散)을 만들 때 쓰는 재료들처럼 진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재료가 이렇게 귀하니 사실 다 모을 재간이 있다 해도 누가 그것을 사령환을 만드는데 쓰겠는가?
당연히 자신이 복용할 단약을 만들 것이다. 어쨌든 영수를 성장시키는 것 보다는 자신의 법력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시주, 어떤 약방이든 상관없다 했으니 이제와 말을 바꾸진 않겠지요.”
무유자의 얼굴이 조금 간사해 보였다. 이 약방이 다른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더라도 한립은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러니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그는 저물대에서 열 장의 부적을 꺼내 주었다. 이 정도면 상대가 만족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역시 부적을 쥔 무유자는 만족했는지 말이 없었다. 한립의 차례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자 다른 이가 서둘러 일어났다.
“저는 100년 된 철목(鐵木)이 좀 있는데…….”
교환회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그와 동 시간대에 비운각(飛云閣) 안 의사당(議事堂)에서는 비밀스럽게 문중 회의가 벌어졌다.
권력이 좀 있다 하는 장로들은 모두 2열로 늘어선 의자에 앉아 상석에 앉은 연가 어르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어르신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선녀 같은 자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귀령문이 제시한 조건이 대단이 후하구나. 일단 의 복사본을 연가에 주고 귀령문 부문주 직책을 우리 연가 사람에게 맡긴다 한다. 그들의 유일한 조건은 언이를 그들 소문주와 혼인하게 해 함께 혈령대법(血靈大法)을 익히게 하는 것인데 앞으로 연가 가주는 장래의 소문주와 언이 사이의 자식이 맡으며 귀령문 문주의 직책 역시 이와 같다 한다.”
연가 어르신이 어두운 얼굴로 설명을 하자 목소리는 작았으나 마치 모두의 귓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명히 전달되었다.
“모두 우리 연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생각해 보거라. 우리 연가의 선조는 사실 귀령문 출신의 수사로 당초 귀령문 내의 수사와 불화가 있어 월국으로 건너와 가문의 기틀을 잡으신 게다. 그렇게 따지면 귀령문 문주가 노부의 사질 뻘이 되는 것이지. 그러나 다른 것은 고려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 연가의 이해득실만을 생각하면 될 것이야.
또한 귀령문 소주가 갖고 온 소식에 다르면 천라국 마도 종파가 닷새 후에 월국을 침략한다고 하더구나. 미국(美國)과 차기국(車騎國)은 이미 반 년 전에 함락되어 대부분 종파가 멸문 당했고 일부는 투항을 해 마도육종(魔道六宗)에 귀속되었다.
그러니 우리 연가가 귀령문의 조건을 수락할 것인지 따져 보기 전에 반드시 월국 수도계가 멸망한 후 우리 가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할 지 고려해야 한다.”
노인이 경천동지할 만한 소식을 연달아 내뱉자 장로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찌 벌써 미국과 차기국 수도계가 점령당했단 겁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양국 모두 절대 약한 곳이 아니며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마도의 여섯 개 종파와 대치를 이루었던 곳입니다. 하루아침에 그들 말만 믿고 정복당한 것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순식간에 당했다면 무슨 음모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조용히 하거라. 누구든 의문이 있다면 한 사람씩 차례로 말해 보거라. 이리 체면을 잃고 중구난방으로 소란을 피우지 말고!”
듣고 있던 연가 노인이 싸늘하게 명하자 동시에 대청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홍발 노인의 우측 세 번째에 자리한 중년 문사에게 향했다. 노인도 그 시선들을 보았는지 눈썹을 꿈틀거린 후 문사를 돌아보았다.
“현야, 넌 어찌 생각하느냐? 네가 우리 연가의 두뇌이니 가문의 생사존망이 걸린 일에 한번 마음껏 분석을 내려 보거라.”
“예, 어르신!”
문사가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소손, 그 전에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 이야기해 보거라.”
연가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선, 혈령대법(血靈大法)의 위력과 천령근을 지닌 언 질녀와 상대 소문주가 함께 수련을 하면 그 위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습니다. 둘째, 상대가 어찌 우리 연가를 지목한 것인지 저희 선조가 귀령문 출신인 것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르신께서 미국과 차기국이 마도육종에 점령당했다 여기시는 것이 오로지 상대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풍도국 정도연명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단숨에 세 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연가 노인이 문사가 관건이 되는 지점을 짚어내자 칭찬의 기색이 어렸다.
“선조께서 혈령대법(血靈大法)을 연가로 가져오진 못하셨지만 친필 서한에서 크게 추앙하신바 있다. 이 공법은 의 첫 번째 마공으로 대성하면 마도육종을 주무를만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술 중 하나다. 그러나 위력이 너무 흉포해 이것을 수련하는 자는 오히려 그것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필수적으로 남녀가 함께 수행해야 한다.
또한 영근의 자질에 따라 수행 정도가 결정되니 자질이 좋지 않다면 삼성까지 밖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니 천영근을 가진 여언은 최고의 수련 상대라 할 수 있고, 귀령문 소문주 역시 혈령대법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체질이다. 이 둘의 자질이라면 함께 혈령대법을 수련해 그 공법이 대성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연가에 내력에 이미 알고 있었다. 선조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귀령문과 소식을 주고 받으셨고 아마 그때부터 우리 연가가 그들 눈에 든 것이겠지. 여언의 일도 오래 전부터 준비가 된 것일 게다. 지금처럼 연가가 허락을 할 수 밖에 없을 시기를 골라 온 것이겠지.
또한 마도육종이 월국을 침입할 거란 정보는 상대의 서신에 기반한 것이지만 미국과 차기국이 함락당한 것은 우리 연가에서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있었다. 우리가 양 국가에 파견해 놓은 이들이 정기적으로 정보를 전해오곤 했는데 오늘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야. 아무래도 그들의 말이 맞는 것이겠지.”
노인이 현야의 질문에 답해 줄수록 듣고 있던 이들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도와 정도가 동시에 영역 확장에 들어갔단 말이지요? 허허, 사실이라면 흥미롭습니다.”
문사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현야, 그게 무슨 말이더냐?”
“둘째 백부님, 그저 제가 한 추측일 뿐이고 지금 연가의 결정과는 관련이 없으니 일단 목전의 문제를 처리하시지요.”
문사 앞에 앉은 하얀 얼굴의 노인이 참지 못하고 물어왔지만 문사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럼 이후 내게는 그 추측을 들려줄 수 있겠느냐?”
“어르신이 듣고 싶으시다면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이번엔 연가 어르신이 자못 흥미롭다는 듯 말하자 문사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그래 좋다. 그럼 일단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꾸나. 우리 연가가 이번에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삼켜지거나 혹은 상대와 철저히 척을 져 멸문 될 수도 있다.”
홍발 노인도 연가의 실력이 약해 그들과 대항할 수가 없다는 점만은 알고 있었다.
“예, 어르신 말씀대로 현재 연가는 어떤 선택을 해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상대의 요구에 응했다가 그것을 기회로 삼켜질 수도 있고 또 요구에 응하지 않자니 상대의 세력이 강해 후환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문사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다가 다시 결연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령문에 들어가야 할 듯 합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반대 의견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 말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겉으로는 칠대선파와 우리 가문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암암리에 그들은 우리의 성장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압력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거래에 응하지 않는다고 칠대선파가 우리에게 보상을 해줄까요?
저희가 귀령문과의 거래를 수락하지 않고 마도가 침략한다는 소식을 알린다 해도 아무런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월국의 이권은 칠대선파에 고루 나눠져 있으니 어느 누가 자신의 이권을 토해내 연가에게 주겠습니까?
게다가 월국의 수도계는 승리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연가는 승자의 편에 서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또한 연가도 마도가 세력을 넓히고 있을 때 그에 편승해 힘을 기를 절호의 기회입니다. 당연히 그들을 경계해야겠지만 우리의 세력도 언젠가 그들과 대등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후일을 도모한다면 우리가 귀령문을 삼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의 입에서 이야기가 쏟아지자 위기를 극복한 아름다운 미래가 그려졌다. 하지만 당연히 일부 장로는 아직도 걱정이 많았다.
귀령문이 연가가 성장해 나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이야기에 나머지 장로들도 설득 당했다.
“당연히 상대의 말을 함부로 믿을 순 없겠지요. 정말 귀령문이 우리 연가가 귀순하길 바란다면, 그 조건으로 소문주 및 함께 온 결단기 수사들이 언이와 본가의 두 백부님들과 생사(生死)의 주술을 교환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향후 이, 삼백 년 내로는 우리 연가에 불리한 행동을 하기 힘들겠지요.
만일 귀령문이 이런 사소한 조건도 승낙하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투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절은 곧 그들의 거래 조건이 우리 연가를 옭아매려는 함정에 불과하다는 뜻일 테니 말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상대의 의도를 확인할 방법까지 제시하자 장로 등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믿을 만한 방법이었다. 연가 어르신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두 눈을 부릅뜨며 분부했다.
“여언, 연문, 연기는 당장 대청으로가 귀령문에서 온 자들과 생사의 주술을 맺거라. 만일 그들이 거절한다면 바로 진법을 발동해 모두 갇혀 죽게 하거라!”
“알겠습니다!”
홍불 노인 옆에 있던 절색의 소녀가 우아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서 명을 받들었다. 그녀의 옆에는 두 명의 중년인이 함께였다.
“여언아 조심하거라. 밖에 도와줄 사람을 배치해 놓을 테니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몸을 빼거라.”
노인은 이 연가 소녀를 아끼는 것이 확실했다.
“어르신, 걱정 마셔요. 자운기(紫云旗)가 있으니 달아나는 것 정도는 자신 있습니다.”
소녀가 노인을 안심시키고는 중년인들과 함께 의사당을 나섰다.
홍발 노인은 현손녀가 나가는 것을 보며 걱정이 되었는지 대청 주위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치고 연아를 보호하라 명했다.
그들이 나가고 일다경이 지나자 돌연 밖에서 말하는 부적이 날아들어 연가 어르신의 손에 떨어졌다. 그가 부적을 쥐니 그 안에서 여언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르신, 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받아들였습니다. 생사 주술이 순조롭게 이뤄졌고 소주가 어르신께 드릴 말씀이 있다 하여 함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연가 어르신 뿐 아니라 다른 연가 사람들도 주술이 맺어졌다는 말에 한숨을 돌렸다가 그들이 오고 있다는 말에 다들 표정이 얼어붙었다.
“현야만 남고 모두 물러가거라!”
연가 노인도 바로 분부를 내렸고 동시에 장로와 관사들이 명을 받들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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