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전황
황야에 도마뱀 한 마리가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바위 위를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사냥을 시작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도마뱀이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모래 속에서 기다란 노란 괴물이 솟아오르더니 앞발과 입을 이용해 그것을 덮쳐 목을 물어뜯어 버렸다. 그리고 도마뱀의 시체를 물고는 어딘가를 향해 내달렸다.
그 괴물도 네 개의 다리를 가졌으며 꼬리와 주둥이를 지닌 것이 거대한 도마뱀의 형상이었다.
다만 온몸이 딱딱하고 달릴 때 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기관으로 만든 물건 같았다.
괴물이 한참을 달려 평평한 암석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황삼의 청년 곁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도마뱀의 시체를 그 옆에 두고는 다시 달려 나갔다.
황의인은 놀란 기색도 없었다. 그가 느긋이 손을 뻗자 도마뱀의 몸체가 그의 앞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손가락을 도마뱀의 머리 부분에 검지손가락을 두고 입으로 무언가를 읊조렸다. 주술이 끝나자 하얀 빛이 발생돼 점점 눈이 부셔왔다.
“질(疾)!”
불빛을 보고 이 정도면 되었는지 그가 낮게 외치자 손가락의 하얀 빛에서 돌연 하얀 실이 생성되었다.
그 실은 손끝부터 도마뱀의 머릿속 깊은 부위까지 연결되어 황의인은 신중한 표정으로 천천히 그것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결국에 그의 세밀한 조종에 하얀 실이 도마뱀 시체에서 녹색의 불빛 덩어리를 끌어냈다.
이제야 그의 얼굴에 보물을 얻은 듯한 기쁨이 드러났다. 다른 손으로 노란 색의 옥병을 꺼내니 병 안에서 노을 빛 무리들이 청색 광구를 감싸 안고 들어가 버렸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구슬땀을 닦아내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심력을 소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견혼술(牽魂術)은 축기기 초기에 쉽게 할 만한 게 아니야. 성공률이 너무 낮잖아. 세, 네 번을 시도해야 겨우 한 번 성공하다니. 보아하니 오늘은 내내 이곳에서 죽치고 있어야겠어.”
황의인은 손에 든 옥병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다름 아닌 대연결을 수련하는 한립이었다.
영석 광산에서 백 리는 떨어진 곳에서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작은 동물들의 혼백을 모으는 것이었다.
이런 마도 사람이나 할 만한 짓을 하는 이유는 모두 그가 수련한 탓이었다.
그가 서책을 살펴보면서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꼭두각시를 제련하는 것은 다른 법기를 제련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살아있는 영혼을 재료와 융합해야만 제대로된 꼭두각시를 만들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판단을 내리거나 기민한 반응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등급이 높은 꼭두각시 일수록 더 강한 혼백을 써야 했는데 그렇게 해야만 꼭두각시가 극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 후반부에는 마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견혼술(牽魂術), 응혼술(凝魂術), 연혼술(煉魂術)의 세 가지 법술이 기재되어있었다.
그 중 견혼술은 한립이 방금 한 것처럼 혼백을 시신에서 끌어내는 법술이었다. 이 법술은 위력도 별 볼일 없었고 성공률도 낮았을 뿐 아니라 막 죽은 시체가 아니면 소용도 없었다.
그리고 응혼술은 혼백을 응집하는 법술이었다. 사실 강한 혼백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니 고급 꼭두각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 개부터 많게는 수십 개까지의 혼백을 모아 인위적으로 강한 혼백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꼭두각시는 자신의 활동 범위가 너무 작았다. 일정 거리를 넘어서면 꼭두각시들은 꼼짝 안 할 뿐 아니라 분리된 의식 역시 돌아와 버렸다. 그의 예상으론 이것은 의식이 주인의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거리 제한 때문인 듯 했는데 그렇다면 수련을 통해 원신의 경지를 높이면 개선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 결점은 꼭두각시 술법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명령과 꼭두각시의 행위 사이에 뜨는 시간이 생기는데 그동안 움직임이 없는 꼭두각시는 상대에게 허점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두 결점을 가만해도 사실 꼭두각시 술법은 대단하긴 했다.
꼭두각시들을 더 생산하고 대연결 일성을 익히면 축기기 수사와의 싸움은 두렵지 않았다. 비록 연기기 정도의 실력이라도 열 명 정도가 그와 함께 한다면 목숨을 보전할 확률이 높아진다.
다시 귀령문 소주에게 갇히더라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혈귀 대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저급 기관요수는 저계 영석 몇 개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 수십 개의 초급 꼭두각시들을 만든 그는 이제 이(二) 급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그가 천죽교 인들이 싸울 때 보았던 꼭두각시들이었으니 여기까지만 성공해도 앞으로 꼭두각시가 부족할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했다.
이 급 꼭두각시들은 이전처럼 잡동사니들로 만들 수야 없었고 거의 상급 법기를 만들 수준의 원료는 되어야 했다. 특히 대량의 철목(鐵木)이 주재료로 필요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시켜 근처 시장에서 이것들을 조달했다. 이제 재료도 구비가 되었으니 적당한 영혼을 모으는 일이 남았다.
들쥐로는 아무리 한 무더기를 응결해도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립은 목표를 들쥐의 천적인 황야의 도마뱀으로 바꾸었다.
이때 그는 벌써 세, 네 달을 수련해서 의식을 몇 개로 나눌 수 있었고 의식이 담긴 저계 꼭두각시들이 황야를 가로지르며 도마뱀이 살만한 소굴을 뒤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도마뱀 혼백들이 모인 병을 잘 챙긴 후 그는 다시 눈을 감고 대연결의 수련에 집중했다.
대연결이야 말로 점차 자신의 원신을 강하게 만들어 수많은 고급의 꼭두각시들을 조종하게 해줄 공법이었기에 조금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대연결(大衍決)이 담긴 서책에 따르면 일성을 이루면 원신을 열 개 정도의 분신으로 나눌 수 있고 이성을 이루면 백 개 이상, 삼성을 이루면 임 사형처럼 수백 개 이상 나눌 수 있다 했다. 삼성에 이르러 한 번에 수백 개의 꼭두각시들을 조종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어쨌든 문파의 실력은 결단기 이상의 수사의 수에서 결정 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천죽교에 결단기 수사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면 축기기 수사가 아무리 많고 강하다 한들 다른 문파를 이기기 어려웠다. 그러나 당장 한립의 전력을 크게 강화해주는 것은 사실이니 앞으로의 일까지 따질 겨를이 없을 뿐이다.
여러 국가의 수도계가 이미 거대한 전란에 휘말렸다. 한립이 영석 광산의 호위로 온 지 얼마 안 되어 마도육종과 칠대선파 사이의 기습 및 매복이 어느 구석진 황산에서 발발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점차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칠대선파 중 영수산(靈獸山)이 마도 어령종(御靈宗)의 분파였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월굴에 심어놓은 작전세력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마도육종은 전쟁이 발생하면 영수산을 이용해 미국(美國)과 차기국(車騎國)을 차지했던 수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영수산 고위층은 수천 년의 계승을 통해 벌써 어령종의 분파라는 신분을 부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로 누가 올라간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머지 여섯 개 선파들과 작당을 해 모종의 방법으로 마도 사람들을 속인 후 월국의 어떤 거점을 공격했다.
기습을 가던 마도인들은 매복을 하고 있던 칠대선파 수사들을 만나 크게 당하고 심지어 결단기 수사까지 둘이나 잃고 말았다.
이렇게 먼저 마도육종의 뒤통수를 치니 칠대선파의 사기는 올라갔고 마도육종은 치욕 속에서 전면전을 시작했다.
칠대선파도 당연히 지지 않고 응전했다. 월국과 미국 그리고 월국과 차기국 사이의 두 개의 국경을 두고 연달아 열댓 번의 전투가 벌어졌고 사상자는 이미 만 명에 달하며 결단기 수사도 일고여덟 명이나 죽어나갔다니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영석의 운송을 맡은 수사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고 두려워 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런 전투에 징발당하지 않고 이곳에 배치된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결단기 수사가 그렇게 죽어나갈 정도면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마도육종은 천남(天南)지역의 양대 세력인 만큼 무력에서 월국 수도계를 압도했다.
일곱 번 정도의 전투가 끝나자 칠대선파는 적의 맹공에 확연히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만일 이쪽에서 미리 수 개의 금제를 쳐놓고 대비 하지 않았다면 벌써 함락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법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이대로 가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월국 수도계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자, 칠대선파의 요청 하에 주변국인 원무국(元武國)과 자금국(紫金國)이 드디어 원병을 보내왔다.
칠대선파는 마도육종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솜씨가 좋은 문파 사람들을 파견해 각 국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렇게 세 나라 수도계가 맹약을 맺으니 드디어 마도육종에 밀리지 않을 만한 세력을 이루었다. 칠대선파는 거대한 진법의 힘을 빌려 수비에 만전을 기하면서 지금까지 마도의 공세를 막아내었다. 이렇게 대규모 전투가 지지부진해지자 서로 상대의 후방을 노리는 소규모 기습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광산 등이 칠대선파와 마도의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한립이 있는 영석 광산은 격전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한 번도 상대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
다른 비슷한 규모의 광산들이 이미 세, 네 번은 공격당한 것을 보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럴수록 칠대선파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반개월 전에 다시 스무 명이 넘는 지원인력을 보내 주었다. 그들을 이끌고 온 것은 영수산 축기 후기의 수사였다.
이렇게 광산의 방어력은 크게 높아졌지만 한립은 지금의 평화가 도리어 폭풍전야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대연결의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두 번째 지원병들 틈에서 한립은 뜻밖에도 익숙한 연기기 수사를 마주쳤다. 혈금시련에서 마주친 추남 종오였다.
당연히 종오도 한립을 알아보았다. 결국에 종오가 쓴웃음을 지으며 한립을 향해 예를 취했다.
* * *
날짜는 계속 지나갔고 한립은 잠시 보초를 서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대연결 수련과 꼭두각시 제작에 쏟아 부었고 이렇게 1개월이 지나자 대연결 일성을 원만하게 익혀낼 수 있었다. 기쁘기도 하지만 놀라운 성과였다.
오행도법이든 청원검결이든 한립은 항상 자질의 부족으로 수련에 어려움을 겪어 왔었다. 그런데 대연결의 수련은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듯 전혀 막히는 부분이 없었다. 그러니 한립은 너무 기쁘면서도 이상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급 꼭두각시는 열 번이 넘게 실패하다가 겨우 이틀 전 처음으로 한 개를 성공시켰다.
비록 천죽교 인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들 보다는 엉성하고 위력도 떨어졌지만 그의 얼굴에 웃음을 띠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운공을 하고 있던 한립의 귀에 방 밖에서 날카로운 파공성들이 들리더니 이어서 어떤 수사가 미친 듯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마도가 습격해 왔다. 모두 나와 응전 준비를 하라!”
그 소리에 한립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진중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다른 방에서 수련을 하던 칠대선파 수사들도 모두 숙연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엄월종 선악과 영수산 축기 후기 수사 려천몽은 이미 사살진(四煞陳) 근처에 날아올라 협곡 방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 당직을 서던 십 수 명이 불안감을 보였으나 한립 등 다른 이들이 몰려나오자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한립도 선악 등의 시선을 쫓아 대협곡 쪽을 바라보니 역시 이, 삼십 명쯤 되는 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적국에 잠입시킬 정도라면 아마 모두 축기기 수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력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니 이번 일전이 어렵게 돌아갈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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