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참살
다른 수도자들은 저런 영수가 영수산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기에 모두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가죽주머니가 공중에서 멈추더니 다시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려천몽은 서둘러 법력을 쏟아 강제로 주머니를 회수하려 했으나 빛이 여러 번 발하였을 뿐 제자리에서 꼼짝도 안 했다. 그러자 잠시 후 가죽 주머니의 표면이 울룩불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요수가 난동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아주 짧게 지속되더니 곧이어 가죽 주머니 전체가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펑!’
마침내 완전히 찢겨나간 법기 사이로 흰 거미가 멀쩡히 원형을 회복해 나와 버린 것이다.
거미의 투명하게 빛나던 하얀 몸뚱이가 돌연 붉게 변해가더니 붉은 빛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핏빛으로 물든 거미가 다리를 움직이자 번개처럼 가장 멀리 있는 두 수사 사이에 다다랐다.
동시에 하얀 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두 수사의 방어막을 뚫은 다리가 그들을 허리를 두 동강 내버렸다.
그 둘 중의 하나는 추남 종오로 다른 이들 보다 멀리 도망가면 안전할 거라 여겼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두 수사의 끔찍한 모습과 거미의 빠르고 조용한 몸놀림을 본 다른 이들은 크게 놀라 사방으로 더 멀리 거리를 유지했다.
한립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지체 없이 부적과 법기 등을 거미의 머리를 향해 내던졌다.
그러나 이미 온 몸에 붉은 빛을 뿜으며 바람처럼 이동하는 거미를 법술이나 법기들이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수사 두 명이 거미의 이빨에 물어 뜯겨 숨을 거두었다.
그 중 하나는 법기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몸과 통째로 뜯겨나가며 죽어버렸는데 거미의 발과 이빨이 너무 날카롭고 강해서 최상급 법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제 동굴 안에는 려천몽, 선악 그리고 한립만이 남아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만일 넓거나 탁 트인 공간이기만 했어도 이렇게 쉽게 수사들이 죽어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펑’
거미가 려천몽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를 가르려 하는데 검은 물체가 날아와 막아냈다.
그것은 거대한 거북이 등껍질로 납작한 작은 방패 같았는데 놀랍게도 거미의 발에 옅은 흔적을 남기고 버텨내었다.
거미는 자신의 일격이 효과가 없자 바로 려천몽을 버려두고 한립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나 싸늘한 표정의 한립은 형체가 모호해 지더니 바로 사라져 일곱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요수도 놀랐던지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거미가 멈춰 서자 그 뒤를 쫓던 선악의 노란 종이 겨우 그것을 따라잡아 몸을 키워 요수를 가둬버렸다.
“걱정 마십시오. 차천종(遮天鐘)은 법보를 만드는 재료인 동정(銅精)을 섞어 만든 법기라 저 거미라 해도 탈출하진 못할 겁니다.”
선악이 조금 편해진 기색으로 한립과 려천몽을 향해 설명했다. 그 말에 한립도 안색이 밝아지며 오룡탈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려천몽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불안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안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안심할 수가 없으니 당신이 저 종으로 요수를 조금만 더 가두어 두면 제가 부보를 발동해 저것을 없애지요.”
그 말에 선악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딱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한립은 전송진과 해골이 든 영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한쪽으로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마치 나머지는 둘이 알아서 하라는 의도 같았다.
이때 려천몽의 푸른빛이 찬란한 부적을 들어 손에 올리고는 서서히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축기 후기의 수사는 부보를 구동하는 것도 빨라서 잠시 후 두 손을 떼니 정교한 푸른빛이 날아올라 려천몽의 머리 위를 선회했다.
“다 되었으면 요수를 풀어 놓겠습니다.”
선악이 그것을 보고는 종을 통제하면서도 말을 건넸다.
“그래, 되었으니 너희는 안심하고 죽기나 하거라! 저 대나이령(大挪移令)이 려천몽의 것이다.”
려천몽의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돌연 살기를 드러냈다. 그의 외침과 함께 머리 위의 짧은 빛이 순식간에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으로 늘어나며 수백 개의 동일한 빛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모든 빛들이 려천몽 조종 하에 선악과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한립은 안색이 아주 미미하게 변해서 손에 든 물건을 꽉 쥐고 자신을 습격하는 부보를 바라보았고 선악은 갑작스런 공격에도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둘의 표정에 려천몽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채고 바로 거북이 등껍질로 된 법기를 부르려는 찰나 그의 등 뒤에서 폭음이 들리며 핏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그의 몸이 두 토막이 나 바닥을 구르니 그 붉은 빛이 그를 지나 멈춰 섰고, 놀랍게도 빛의 정체는 종에서 탈출한 거대 거미였다.
려천몽이 죽자 영력을 잃은 백여 개의 빛들이 전부 깨져나갔다. 최후에는 한곳에 모여 부적 형태로 떨어져 내렸는데 마침 한립과 선악 그리고 거미가 있는 정중앙이었다.
선악은 무표정하게 한립을 주시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한립은 그와 거미를 번갈아보고는 말없이 하얀 비늘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여덟 개의 하얀 빛이 생겨나며 꼭두각시들이 그의 곁에 출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선악은 노란 종을 거둬들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사제가 뜻밖에 괴뢰술(傀儡術)에 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겨우 그런 꼭두각시들이 제 상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거미는 당신이 풀어 준 것이오?”
“그렇습니다.”
선악이 담담히 인정하며 손에 망토 같은 비단을 꺼내들었다.
“잘못하면 당신이 요수에게 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두렵지 않았소?”
“하하! 내가 당한다? 겨우 그런 하찮은 요수가 내 상대가 된다고 여기시오? 그런 걱정은 내가 아니라 한 사제가 해야지요. 내 당신이 살아남길 빌겠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비단을 몸에 감고 돌연 사라졌다. 모습은 그대로인데 호흡이나 기운이 사라진 것이다. 선악이 조용히 웃으며 서서히 동굴의 한쪽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비단의 용도를 알아챈 한립은 곧바로 거미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러자 흉악한 기세를 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거미가 눈에 들어왔다.
화가 난 거미는 이빨을 부딪치며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한립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이에 한립은 미리 준비해둔 꼭두각시들을 불러내 거미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리고 선악이 숨어 있는 구석으로 달려갔다.
선악은 한립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 손에 들어 있던 노란 종을 던지며, 붉은 가죽 갑옷으로 전신을 보호했다.
그러나 그가 가죽갑옷에 법력을 써버리자 비단은 자연히 그 효력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립이 바로 작은 거울을 꺼내자 그 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청응경(靑凝鏡)!”
선악은 놀라 소리쳤다. 저것은 그의 문파에서 유명한 최상급 법기였기에 모를 수 없었다. 한립이 십여 장까지 다가오자 선악은 얼음송곳으로 변해 나가는 빙우술(氷雨術) 부적을 뿌렸고, 그가 빙우술을 막는 사이 엄청난 위력의 법기를 발동할 생각이었다.
엄청난 양의 얼음송곳이 한립을 향해 날아들자 그는 방패를 회수하고는 신속하게 몸을 움직여 피했다. 상하좌우로 굽혀지고 꺾어지며 빠르게 회피하는 날렵한 몸놀림에 어느새 선악의 여유 넘치던 표정이 사라졌다.
선악은 한립이 다시 코앞까지 다가오자 다른 법기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신의 법력을 붉은 가죽 갑옷에 불어 넣었다. 이 최상급 방어성 법기가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기 만을 간절히 바란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미리 준비해둔 검은 색의 날카로운 물체로 그의 갑옷을 뚫었고 경천동지할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붉은 갑옷의 목 부분에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고 영기를 잃은 갑옷은 고물이 되어 힘을 잃었다.
한립은 곧바로 청원검망을 이용해 선악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 자의 저물대는 자연히 한립의 차지가 되었다.
저물대를 바라보는 한립은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축기기 후기에 이른 수사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한립은 이것은 온전히 이 협소한 지형이 주는 제약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일 다른 곳에서 다툼이 생겼다면 그에게 접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수십 장은 거리를 둘 것이고, 공중법기를 이용한 비행속도도 그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상대의 갑옷을 뚫은 것은 교룡의 뿔로 제련한 일회성 폭발 법기였다.
한립이 청응경과 선악의 종을 회수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연이어 무언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지체 없이 저물대를 뒤져 미리 만들어 놓은 여러 꼭두각시 요수들을 내보냈다.
거미를 막아내던 꼭두각시들이 결국에는 요수에게 완전히 박살나고 만 것이었다.
핏빛의 거미는 다시 한립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한립은 교룡의 발톱인 오룡탈 한 쌍을 보내 거대 거미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어서 꼭두각시 요수들의 빛기둥 공격도 끊임없이 이어지니 거미도 그곳에서 꼼짝을 못했다.
한립의 공격에 거미는 연달아 거미줄을 쏘아 공격했는데 꼭두각시 요수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안에 걸려들었다.
그러자 바로 꼭두각시들을 회수한 한립은 새로운 꼭두각시들을 꺼내 공격이 쉼 없이 이어지도록 했다.
그는 이 틈을 타 부보를 구동하고 싶었지만 법기와 보호막만을 믿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다.
일각이 지나자 거미의 몸에서 핏빛이 사라져갔고 단단하기 그지없던 껍데기에도 조금씩 공격의 흔적이 남았다.
한립의 얼굴에 미소가 어릴 때쯤 거미도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몇 번이나 좁은 통로를 통해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꼭두각시들의 빛기둥이 날아드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미가 거의 모든 진원을 소모하고 반격할 힘을 잃어버리자 그는 은검을 꺼내 앞으로 다가가 거미의 목을 내리쳤다.
단단하기는 하지만 영기가 흐르지 않는 거미는 은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후 한립은 바로 엉덩이를 붙이고 그 부근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죽은 수사들이 보였다. 그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먼저 작은 빛을 내는 부보를 챙기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이들의 저물대를 뒤졌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전송진에 다가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해골이 든 영패를 살펴보았다.
“분명 려천몽이 대나이령이라 불렀는데 말이야.”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립은 ‘대나이령(大挪移令)’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려천몽과 선악이 다른 사람들을 처지하고 이것을 차지하려 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보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괴이한 해골을 보고 있자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는 금부자모인 칼날을 보내 조심스럽게 해골을 건드려 보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제야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해골이 떠받치고 있는 영패는 남색 빛이 밝게 빛났고 예스러운 문양 위에 고대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고대의 물건이었다. 그 외에는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영력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칼날을 보내 영패를 가져오게 했다. 그의 손에 떨어진 영패를 만져보니 부드러운 느낌으로 나무를 이용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이리 저리 살피다가 시험 삼아 영력을 불어 넣어보았다. 그러자 영패가 엄청난 흡입력으로 체내의 법력을 대량을 빨아들였다. 깜짝 놀란 한립은 서둘러 영력을 거둬들였고 그제야 그런 현상이 사라졌다. 그는 영패를 조심스레 저물대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어서 그는 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송진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 전송진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 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그가 올라가서 그것을 시험해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자 해도 이미 전송진 한쪽이 훼손되어 불가능했다.
훼손 정도가 심하진 않았으나 정상적인 운용은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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