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차 향기
한립은 신풍주에 앉아 최고 속력을 내었다. 그가 가는 곳은 보호할 일가가 있는 월국의 수도 월경(越京)이 아니라 원무국 방향이었다.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제운소를 만나 고대 전송진 일을 알아볼 참이었다.
만일 이번 전쟁에서 진다면 고대 전송진만이 달아날 최후의 수단이었다.
예상대로라면 20일 정도면 다녀올 거리라 이화원의 일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제운소와 한립이 만나기로 한 곳은 연무국의 어느 다관(茶館)이었다. 그가 말하길 그 다관은 제운소의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라 했다.
한립은 번개처럼 날아가 겨우 7일 만에 금마성(金馬城)이라 불리는 작은 성에 도착했다.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성에 당도하기 전부터 법기를 회수한 그는 유유자적하게 성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금마성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성문에 왕래하는 이가 많은 것으로 보아 꽤 번화한 곳 같았다.
한립은 평범한 인상에 의복도 도포로 갈아입었기 때문에 사람들 틈에 섞여 자연스럽게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만나기로 한 청천다관(淸泉茶館)이 유명한 곳이었던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청천다관 앞에 도착해 흥미롭게 그곳을 살펴보았다.
다관은 방 세 개를 엮어 놓은 모양새였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밖에서부터 진한 차의 향을 맡을 수 있었다. 한립은 탐색을 마치고 안으로 들었다.
세 개의 방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이미 네다섯 무리의 손님들이 모든 탁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여덟 명 정도는 한쪽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들 중 대부분 눈을 감고 차의 향기를 감상하고 있었고 몇 명만이 작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중간 방 외벽에는 노란 종이에 ‘매일 고객 1명당 한 주전자의 차만 맛보실 수 있습니다.’ 등이 수려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그렇게 스치듯 다시 그곳을 둘러보고 한쪽에 주인장처럼 보이는 이에게 다가갔다. 주인장은 대번에 안색이 변해 계산대 앞으로 뛰어나왔다.
“선배님, 무슨 일이 신지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뜻밖에 그도 수도자였으나 성취가 미미해서 연기기 사성 수준으로 보였다. 그 앞에 한립과 같은 축기기 수사가 나타났으니 좌불안석이었다.
한립은 말없이 투명한 푸른 옥패를 내려놓았다. 그것을 확인한 주인은 처음에는 얼떨떨해 하더니 곧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선배님이셨군요! 작은 어르신께서 선배님이 가까운 시일에 찾아주실 거라 분부해 놓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한립은 소매를 스치듯 옥패를 회수해갔다.
“지금 너희 어르신을 뵈어야겠으니 안내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주인은 한립을 데리고 후문으로 나섰다. 그리고 성을 나서 바로 서쪽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금마성의 서쪽으로는 황녹색의 구릉들이 솟아있었고 다관 주인은 크기가 제 각각인 구릉들 사이로 이리저리 길을 꺾으며 익숙하게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곧 상당한 면적의 분지에 도착했는데 그 중앙에는 일곱 개의 하얀 석조 건물이 지어져 있었으며 도처에 대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다.
주인은 그 부근에 도달하자 한립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작은 어르신께선 이곳에 계십니다. 본래 건물 주위로 진법들이 설치되어 있어 나리께 고하고 외부인을 모셔야 하나, 한 선배님의 일은 미리 명 받은 바가 있기에 지금 바로 모시겠습니다. 혹여 금제를 발동시킬 수 있으니 바짝 따라와 주십시오.”
한립은 분지와 볼품없는 대나무 등을 둘러보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 안내하거라.”
주인이 아주 조심스레 건물 방향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은 아주 특이해서 앞으로 세 걸음을 갔다가 다시 뒤로 두 걸음을 가는가 하면 동서로 이리저리 움직여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천천히 분지 중심으로 향했다.
“작은 어르신! 한 선배님 오셨습니다!”
다관 주인은 숨을 길게 내쉬고 크게 소리 쳤다.
“한 선배님이 오셨다고? 잘 됐구나! 잠깐만 기다리거라. 내 금방 나가마!”
반가워하던 제운소의 목소리는 곧이어 ‘펑’ 소리와 함께 앓는 소리로 바뀌었다.
“이런! 또 실패야!”
석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얼굴에는 깊은 실망이 담겨 있었고 건물 내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한립을 보자 곧 안색이 밝아졌다.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드시죠. 대접할 만한 것은 없지만 향이 좋은 차가 있습니다.”
제운소가 열정적으로 옆 건물로 안내했다. 그의 행동거지가 수년 전에 비해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제 수사, 그럼 부탁하지.”
그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 한립은 자연히 예의 바르게 답했다. 그들은 방에 들어서 기다란 장방형 탁자에 앉았다.
“선배님, 그럼…….”
다관 주인에게 차를 내오라 명령한 그는 무엇을 말하려다가 머뭇거렸다.
이에 한립이 바로 소매를 저어 아직도 은광이 반짝이며 봉인 되어 있는 을 꺼내 놓았다.
제운소는 서책을 보자마자 신이나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가볍게 미소를 지은 한립은 상대의 의중을 알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운소가 손에 목함을 들고 들어왔다.
“선배님! 전도오행진(顚倒五行陣) 법기를 개량해 위력을 높인 것입니다. 말씀 드린 것만큼은 아니나 이전 법기에 비해서는 곱절 이상의 위력이고 진짜 전도오행전의 삼분의 일 정도의 기능은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겸손하게 설명을 하면서도 자신이 장담한 만큼 개선을 이루지 못해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다.
‘삼분의 일!’
한립은 무척 놀랐다. 사실 정말 개선에 성공하리라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전도오행진의 기존 법기에도 무척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뢰만학 같은 결단기 수사도 골치 아픈 진법이었는데 두, 세 배나 강해지면 결단기 수사도 거뜬히 막아낼 것이다.
한립이 목함을 들어 자세히 살피자 그제야 제운소도 서책을 손에 집었다. 목함의 뚜껑을 열자마자 영기가 진동을 하는 진법 깃발과 원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립이 자세히 살피니 수량도 훨씬 많아졌을 뿐 아니라 새겨진 문양과 주술도 복잡하고 정교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원래 법기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을 만 했다. 이때 제운소도 희색이 만연해 서책을 살피는데 봉인이 잘 유지 되고 있나 확인한 듯했다.
“이번에 개량한 법기는 마음에 쏙 드네! 자네가 고생했겠어.”
“별 말씀을요. 무사히 서책을 보관해 주셨으니 제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한립의 말에 제운소가 고개를 저으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다관 주인이 청록색 찻잔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그가 내온 것은 청천다관에서 맡은 것보다 더 뛰어난 향을 지닌 차로 농염한 영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제운소가 차를 들어보라 청하자 찻잔을 든 한립은 한 모금 만에 입안이 상쾌하고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 좋은 차구만! 찻잎을 배합해 영기를 발산하다니 대단한 솜씨야. 제 수사가만든 것인가? 정말 감복했네.”
지금 말한 것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었다. 보통이 찻잎으로 영기를 우려내다니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윽한 차 향기는 세상 어느 명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제운소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오해십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저의 벗이 선물한 것으로 그 친구가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차입니다.”
“벗이라면 설마 영초로 살려내야 한다는 그 친구 말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지만 한립은 속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어떻게 진법으로 화제를 돌릴지 고민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제운소는 한립의 물음에 당황하더니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곧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바로 그 친구가 이 영차(靈茶)를 만든 이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 친구가 선배님께서 주신 천년 영초로 약효를 끌어올려 겨우 목숨은 부지하였으나 아직도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후배가 너무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염치없는 물음이오나 혹시 다른 영초를 지니신 것은 없으십니까? 천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칠, 백 년 정도 된 영초라도 있다면 완쾌할 희망이 생길 듯합니다. 혹시나 거래를 원하신다면 제가 어떤 진법 법기와도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이제 기대가 잔뜩 담긴 눈빛으로 한립의 입만을 쳐다보았다. 한립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부탁할 것이 있던 차에 상대가 먼저 이리 나오니 전송진 수리에 관한 일은 일사천리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려운 일이라는 분위기를 슬슬 풍겼다. 그래야 더 인정을 베푸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이런 셈을 한 한립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영초라…… 내게 쓸 만한 것이 있기는 한데 단약을 제련할 용도로 구한 것이라…….”
말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서도 얼굴 가득 곤란하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했다. 어쨌든 영험한 단약이 수도자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상대도 알 것이었다.
제운소는 한립에게 적당한 영초가 있다는 이야기에 뛸 듯이 기뻐하려다가 단약용 이라는 말에 얼굴에 긴장과 조급함을 드러냈다.
그래서 한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의 애걸하는 자세로 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제가 영초를 주십사 하는 것이 선배님을 곤란하게 하는 것을 알지만 막역한 벗이 수년을 고통 속에 시달리니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선배님께서 조금만 나누어 주신다면 어떤 법기든 마음대로 골라 가셔도 됩니다. 아니, 전부다 가지고 가신다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온 목적은 상대에게 고대 전송진 수리를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법기가지 받아 챙기고 전송진 이야기까지 꺼낸다면 너무 탐욕스러운 인상을 남기지 않겠는가?
잠시 이런저런 사정을 헤아려본 한립이 전송진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밖에서 젊은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우리 집 아가씨 좀 살려주십시오!”
그 목소리를 들은 제운소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급히 밖에 나가느라 한립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들 옆에 서서 대기하던 다관 주인도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쪽 눈썹을 끌어 올린 한립이 표정의 변화도 없이 뒷짐을 지고 그들을 따라 나섰다. 무언가를 직감한 것이다.
거처 밖에서 제운소와 주인 그리고 얼굴색이 새파래진 십대 후반의 소녀가 급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녀는 무언가를 설명하다 한립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초조한 와중에도 분명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한립은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은 후 더 다가서지 않았다. 그러나 제운소는 한립을 돌아보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제 벗이 지금 악인에게 잡혀있다 합니다! 선배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고 보답하겠습니다!”
“제 수사, 자세히 좀 말해 주게. 설마 저 소저가 말하는 아가씨가 진법에 정통 하다는 그 친구인 겐가?”
“바로 그렇습니다! 선배님이 쓰시던 전도오행진 법기도 그녀와 함께 만든 것이지요!”
그제야 소녀도 연기기 오성에 불과한 자신이 법력을 측정할 수 없는 인물이란 것을 깨닫고는 경외감을 갖고 한립을 보았다. 한립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저, 다시 한 번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지금이 은혜를 베풀 최적의 기회인 것은 분명했으나 적의 실력이나 수를 가늠해 보아야 했다. 여인도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당한다면 최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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