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미혼술
수도자는 일반적으로 범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고관들이었으니 자연히 그런 쪽으로도 소식이 밝았고 심지어 조상이 산수들을 마주했던 기록도 남아있었다.
게다가 황궁도 수도자의 비호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경외의 대상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 수도자가 형왕부에 나타났다니 귀빈들 대부분이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 소리를 듣자 진언은 자기도 모르게 한립을 향해 시선을 주었지만 한립은 여전히 시골 청년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진언은 감히 먼저 묻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형 왕야의 말에 집중했다.
“본 왕도 그것이 궁금해 직접 여쭤보았고 그분이 스스로 수도자가 맞다 인정하셨습니다. 게다가 간곡히 청하자 우리 형 왕부에 몇 달간 머물며 도(道)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시기로 하셨는데 그분과의 이야기 중 속세에서 선도와 연이 있는 제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 여러분들이 떠올라 각자 자질이 뛰어난 자제들을 데려와 오 선사님께 선보일 기회를 주고자 한 것입니다. 다만 정말 선도와 인연이 있고 없고는 각자의 운명에 달린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저 부러움과 탄성을 자아내더니 뒷부분에 이르자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에게 수도자들은 살아있는 신선이라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수행을 통해 몇 백 년을 살아가며 법술과 조화를 부려대니 만일 자신 가문에서 수도자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모든 일이 탄탄대로 일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한립은 다른 이들처럼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형 왕이 수도자를 언급할 때는 마도인들의 흔적을 찾았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제자를 찾아다니는 수도자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남의 나라에 침입한 수도자가 이렇게 함부로 날뛰고 다닐 리가 없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그 오 선사라는 이가 나타났다.
화색의 도복에 하얀 머리와 수염을 흩날리는데 또 피부는 아기피부 같아서 누가 보아도 신선 같은 모양새였다.
그가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않았는데도 대중의 절반은 이미 그가 수도자임을 믿고 있었다. 한립은 막 신선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겨우 연기기 오성의 수사로 그가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눌러 죽일 수 있는 초심자였다. 그런데 속세의 신분이 높다 하는 이들이 앞다퉈 아첨을 하며 자신의 자녀들을 제자로 받아 주십사 사정을 하고 있었다.
진언도 욕심이 나는 듯 했으니 그 뒤에 있던 젊은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들이 늦어 이런 기회를 놓칠까 한껏 고양돼 있었다. 머뭇거리던 진언의 귀에 한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자는 마도인이 아니니 걱정 말게. 난 진가를 보호할 뿐이니 손자 손녀들을 데려가 인사를 시킬지는 알아서 결정할 일이야. 다만 저자의 수행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만 알아두게.”
진언은 놀라 주위를 바라보았지만 자신 말고는 아무도 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저 화 노인에게 어서 수도자에게 아이들을 소개시키지 않고 뭐하냐는 질문을 들었을 뿐이었다.
지금 화 노인은 자신이 고치지 못한 병을 고친 것이 수도자였다는 것에 놀란 듯 했다. 진언을 일깨운 화 노인도 서둘러 손자소녀를 대동해 오 선사라는 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진언은 화 노인까지 다급히 다가가려하자 결국엔 마음이 흔들렸다. 한립에게 상대가 그리 높은 수준의 수도자가 아님을 들었어도 제자를 들이기를 원하는 수도자가 아닌가! 한립은 아무리 수행이 높다 한들 못 먹는 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어린 손자 손녀들을 한립의 제자로 들이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와 교류하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부친도 임종 전에 이화원 선사가 진가를 찾아 선도에 인연이 있는 자녀가 있는지 알아보러 왔다가 실망해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해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것을 놓칠 수는 없었다.
진언이 결정을 내리고는 서둘러 아이들을 불러 모아 걸음을 옮겼다. 이 광경을 보고도 한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진언에게 사실을 전달했으니 그가 자녀들을 저자 밑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은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오 선사에게 모여든 진가 자녀들 중 두 명이 그를 돌아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냈다.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한 그를 놀리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저 아이들은 진언이 한립에겐 이런 기회를 권하지 않는 것이 그들을 더 아끼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몰래 고개를 내저은 한립은 그들을 상대하기 귀찮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가만히 앉아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립의 시선이 향한 곳은 대청의 한쪽에 있는 노인과 소년이었다.
회색 머리의 노인은 60대로 푸른 장포를 걸쳤고 아주 차분히 차를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용모가 수려한 소년은 오 선사 쪽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한 한립은 엷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둘은 뜻밖에도 수도자로 실력도 상당했다. 노인은 구(九) 성, 소년은 오(五) 성에 이르렀던 것이다.
놀라운 점은 겨우 연기기 수사가 어찌 영력을 숨겼는지 미미하게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처럼 월등이 차이가 나는 수사가 아니면 그들이 수도자란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을 터였다.
그 오 선사란 자도 자신은 물론이고 저 노인과 소년이 동류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비슷한 등급의 수사에게 영기를 숨기는 공법이 한립의 관심을 끌었다. 저런 공법을 익힌다면 축기기 수사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유리해 질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그들을 보는 한립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소년이 좀 이상했다. 아무리 보아도 체구가 남장을 한 소녀처럼 보였다.
그 발견에 놀라 한립이 소녀를 멍하니 쳐다보니 그녀가 시선을 느끼곤 얼굴을 붉히며 마주 노려보았다. 남장한 소녀의 행동에 노인이 한립을 보고 엄한 표정을 지었으나 젊은 청년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그에게 웃음을 짓는 게 아닌가!
조금 심기가 불편해진 노인이 자신의 두 눈을 감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한립은 살짝 놀랐다.
‘눈을 감아? 설마…….’
그가 추측을 마치기도 전에 노인이 예상한 그대로 움직였다. 노인이 다시 눈을 떠 한립을 마주보자 눈에서 자색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뜻밖에도 한립에게 미혼술을 걸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한립으로서야 그저 웃긴 일이었다. 겨우 구성의 수사가 축기기 수사를 상대로 미혼술을 걸려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다.
그가 조금만 법술을 부려 반격한다면 노인은 미혼술이 튕긴 대가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공법에 관심이 있는 한립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한립을 비웃고 있던 노인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시선을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한립의 두 눈에 노란 빛이 일렁이며 자석처럼 자신의 시선을 붙들어 놓았던 것이다. 이제 그가 시선을 돌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노인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다.
설마 저렇게 어린 청년이 수도자인데다 자신보다 성취가 높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 줄 알았다면 몽염술(夢魘術) 따위로 상대를 제압할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노인은 생각할수록 긴장이 되어 순식간에 콩알만 한 땀방울들을 흘려댔다. 그리고 이미 흙빛이 된 얼굴로 그저 한립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가 노인의 이상을 발견하고는 그의 소맷자락을 끌어당겼다.
그 결과 놀랍게도 한립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몽염술의 반작용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고 지옥불에서 막 건져진 느낌이었다.
그의 등 뒤는 땀범벅이 되어 옷이 다 축축할 정도였다. 바로 남장 소녀에게 무어라 일러준 그는 다시는 한립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노인도 이리 쉽게 자신이 풀려난 것은 상대의 의도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한 의식에 손상이 와 오래 고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어찌 그런 인정을 베푼 것인지는 모르나 저런 자는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분명 천안술을 통해 상대에게서 영력이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하고 몽염술을 쓴 것이었으니 그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설마 저 자가 벌써 축기에…….’
노인은 생각을 전개해 나갈수록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작은 일족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거물을 건드린 셈이었다. 남장 소녀는 수시로 얼굴색이 변하는 노인을 보고 더욱 놀랐다.
평소 웬만한 일에는 감정기복이 없는 할아버지가 이리 동요하다니 저 평범한 청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립 쪽을 힐끗 살피려 했지만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손녀의 거동을 눈치 챈 노인의 꾸지람이 떨어졌다.
“저 청년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말거라! 내 예상이 틀림없다면 이미 축기에 성공한 수사일 테니 절대 상대를 건드려선 안 돼.”
“예? 설마요, 저렇게 어린데요?”
소녀는 말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으나 노인의 긴장된 모습에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비록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조부가 아무 말이나 하는 이가 아님을 알았기에 그 말을 따랐다. 한립도 상대에게 따끔한 교훈은 주면서 상해는 입히지 않은 자신의 영특함에 만족스러웠다. 그는 입술을 달싹거려 전음을 보냈다.
“형왕부에서 나가면 바로 떠나지 말고 후문에서 나를 기다리거라.”
갑자기 들린 명령조의 목소리에 노인이 몸을 흠칫 떨었다.
‘설마 우리를 놔주지 않으려는 것인가? 그래도 행동으로 보아 그리 악랄한 자는 아닌 듯한데 축기기 수사가 내게 무슨 볼 일이지? ’
상대가 나쁜 의도는 아닐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해 보아도 좌불안석이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오 선사는 이미 대다수의 젊은이들을 살펴보고도 선도와 연이 있는 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수도자가 될 자질이 없다는 결과를 받은 이들은 당연히 실망이 컸다.
‘선도를 닦을 인연은 무슨, 영근이 있는 자를 찾는 거로군. 그래도 정말 제자를 찾긴 하는 모양이네 안 그랬다면 아무나 몇 명 골라냈으면 됐을 테니.’
한립은 늙은 도사가 한 사람씩 영근이 있나 살피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그러나 겨우 5, 60명 중에서 영근이 있는 자를 찾아낼 가능성은 너무 떨어졌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백발의 도사가 소리쳤다.
“이 아이가 인연이 있구나! 내 문하로 들일 수 있겠어.”
그 소리에 놀라 한립도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사 앞의 하얗고 토실토실한 젊은이가 오 선사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 옆에 서있던 배가 빵빵하게 나온 중년인이 보라색 비단 옷을 몸에 두르고 되물었다.
“선사님! 정말 우리 동경이 선도에 연이 있단 말입니까!”
중년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수많은 장정과 재원들 사이에서 먹고 놀기 좋아하는 자신의 아들이 선사의 눈에 들었다는 것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허허! 걱정 마십시오, 시주! 몇 번을 확인해 보았지만 귀댁의 자제가 자질이 있으니 소왕야와 함께 선도를 닦을 수 있겠습니다.”
오 선사는 자신의 하얀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사님! 저희 집안이 무슨 거상은 아니어도 약간의 땅이 있으니 아들자식을 거둬주시는 감사의 표시로 그 땅을 떼어 드리겠습니다. 어서, 어서 사부님께 인사를 올리거라.”
중년인은 흥분해 있었다. 선사의 눈에 들지 못해 낙담해 있던 젊은이들도 그가 선택한 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도와 연이 있다며 뽑힌 이가 자신들이 멍청하고 뚱뚱하다며 놀리던 동 뚱보가 아닌가!
저런 얼간이가 자질이 있다니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각 집안의 어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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