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피의 주술
“넷째 오라버니 미쳤어요? 둘째 오라버니가 왜 그러겠어요?”
“둘째야, 셋째 누이가 그들 손에 붙잡혀 있으니 우리가 비밀을 누설하기라도 해 그 아이가 수모를 당할 까봐 이리 하는 것이구나!”
검은 얼굴의 노인의 목소리도 차가워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악랄한 지 모두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비밀을 누설한다면 백방으로 그녀를 괴롭혀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줄 것입니다. 그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하! 셋째 누님이 아무리 형님의 반려라지만 우리 셋의 목숨을 그녀 한 사람과 바꾸겠단 말입니까 지금?”
30대로 보이는 청년이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분노를 터뜨렸다.
“둘째야, 넷째가 화가 나 격하게 한 말이나 일리가 있다. 우리 다섯이 의형제를 맺을 때 공생공사를 약속했던 것을 잊은 것이냐? 네 이기적인 생각으로 우리 모두를 해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습니다. 제가 모두를 해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전들 그러고 싶었겠습니까? 삼(三) 매의 뱃속에 제 혈육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 씨 가문의 대가 끊길 상황이 아니라면 저라고 죽고 싶겠냔 말입니다!”
마른 사내는 주먹을 꽉 쥐고 꾹꾹 눌러두었던 진심을 털어놓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지 노인과 30대 청년은 물론 젊은 여인도 놀라는 눈치였다.
“서로 이야기를 마쳤으면 이제 내 차례겠지?”
그저 냉랭한 눈빛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한립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놀라고 있던 세 사람이 흠칫했다.
정말 그들 생명을 좌지우지할 사람은 눈앞의 축기기 수사였다. 동시에 마른 사내에 대한 분노나 놀라움은 사라지고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난 너희가 정말 죽고 싶은지 아니면 연극을 하는 것인지 도통 관심이 없어.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배후에 있는 자들에 대한 정보야. 정말 죽고 싶다면 내게 정보를 말한 다음에 죽으면 되겠지? 설마 아직도 죽고살고가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믿고 있는 건가?”
한립의 싸늘한 말에 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도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몸에 피의 주술이 걸려있어 중요한 정보를 누설하면 바로 금제가 발동돼 심장이 터져나가 죽게 됩니다.”
검은 얼굴의 노인이 이를 악물고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피의 주술이라? 흥미롭구나. 내가 한번 살펴보마.”
한립이 호기심이 일어 흥미롭게 나섰다. 노인은 그의 말에 당황하더니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손목을 내밀었다.
그가 저주를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저주를 걸던 이가 어떤 경우라도 비밀을 누설하면 죽게 될 것이라 장담했기 때문이다.
이때 한립은 영력을 주입해 노인의 몸을 샅샅이 살피며 안색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몽산오우 중 세 사람은 한립과 노인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제발 한립이 이 금제를 풀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일다경이 지나고 노인에게서 손을 뗀 한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너희에게 주술을 건 이가 이상한 주문을 외우거나 이상한 언어를 말했더냐?”
“그렇습니다! 정말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였는데 주문 같기도 하고 방언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술을 건 이는 축기기 수사였습니다.”
청년이 흥분해 대답했다.
“또한 주술이 끝나자 어떤 동물의 피 같은 것으로 어깨에 이상한 부호를 그려두었는데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기이한 문양이었습니다.”
노인도 청년의 말을 보충하며 소매를 끌어올려 어깨의 흐릿한 문양을 보여주었다. 한립은 그것을 자세히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묘한 미소를 지은 한립이 모두를 대상으로 결과를 말해주었다.
“피의 주술이 어떤 것인지 감이 오는구나.”
“정말이십니까?”
노인이 덜덜 떨며 물었고 다른 이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주술이 걸린 뒤로 하루하루 목에 칼날이 놓인 채 사는 기분이었다.
강제로 남을 해하며 괴로워했는데 한립이 다시 자유를 찾아 줄 수 있다니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피의 주술이지 그저 언어 주술의 일종에 불과할 게야. 금제는 처음 이상한 언어로 읊은 주술에 의한 것이니 후에 피로 쓴 문양과는 일체 상관도 없다는 것이지. 아마 주술의 정체를 숨기려 눈속임을 한 것 같구나.”
한립은 이미 무언가를 꿰뚫어 본 듯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말 요행히 알아맞힌 것이다.
전에 대나이령(大挪移令)과 고대 진법에 관해 찾다가 구석진 곳에 있던 서책에서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어찌 이리 쉽게 주술을 알아보았겠는가!
“그럼 선배님께서 이 금제를 풀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글쎄?”
여인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대답에 모두의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언어로 건 주술을 푸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주술의 구결을 알아내 영력을 이용해 안전하게 해결하는 것이야. 두 번째는 주술이 걸린 자의 의식에 침투해 주술의 흔적을 강제로 지우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주술을 풀려는 자의 의식이 주술을 시행한 이를 상회해야 하는데 이런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주술만 자극해 바로 발작이 일어나게 되지. 그 뒤에 너희가 어찌 될지는 모두 잘 알고 있을 테고.”
한립은 미간을 모으며 진지하게 설명했다.
“바로 발작한다고요?”
여인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주술이 발작하면 어찌 피바다가 되는지 놈들이 산 사람을 붙잡아다가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불쌍한 희생자가 입으로 심장을 토해내던 끔찍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했기에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져 감히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립이 그들에게 냉소를 보이며 입을 떼려는 찰나, 키 크고 마른 사내가 고개를 쳐들었다.
“제게 그 방법을 시도해 주십시오! 모두가 같은 사람에게 피의 주술을 당했으니 절 고칠 수 있다면 다른 이들도 안전할 겁니다.”
“둘째 오라버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너무 위험해요.”
여인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
“이미 결정했으니 더 말할 것 없다!”
마른 사내가 의연한 태도로 말하자 여인이 청년과 노인을 향해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다. 그녀의 시선에 두 사람이 눈이 마주쳤지만 노인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둘째를 그냥 놔두어라. 방금 전 행동을 후회하고 속죄하기 위해 나선 것일 터.”
“그래도 이렇게……!”
여인이 뭐라 말하려는데 이미 둘째 오라비가 한립 앞에 선 것이 보였다.
“선배님, 시작하십시오.”
사내의 표정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너희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내 언제 너희 주술을 풀어주겠다고 말했더냐?”
서늘한 한립의 말에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이 빠졌다.
“주술을 풀어주시지 않을 것이라면 큰 형님의 상태는 왜 확인하신 겁니까? 주술도 풀어주지 않고 어찌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십니까?”
둘째가 황망히 물었다. 그러나 한립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 냉랭한 얼굴 앞에 그들 모두 할 말을 잃고 두 눈만 깜빡였다.
“무얼 물어보느냐.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목숨을 살려줄 만큼 가치 있다 여기지 않는 게야.”
검은 얼굴의 노인은 사내보다는 눈치가 빨랐다.
“선배님께서 원하는 조건을 말씀해 주십시오. 주술만 풀어주신다면 우리 형제들이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 입니다.”
“그렇지! 진작 그리 나왔으면 이리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돌연 박수를 치는 한립의 얼굴엔 드디어 미소가 드러났다. 그들은 순식간에 바뀐 한립의 모습에 두려운 마음이 더욱 커졌다.
“조건은 간단하다. 내가 너희의 주술을 풀어주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 뿐 아니라, 내 명에 따라 그들의 습격을 막아야 한다. 저들이 날 살려두지 않을 테니 나 역시 저들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난 황풍곡 수사로 문파의 일을 맡아 이곳에 파견된 것이니 얼마간만 버텨낸다면 본문에서 원병이 올 것이다. 그땐 저 자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겠지.”
한립은 조건을 나열하며 자신이 소속된 문파의 이름까지 내세웠다. 이렇게 해야 저 자들이 내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풍곡 수사셨군요!”
축기기 수사인 한립이 칠대문파 소속일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직접 그리 말하니 노인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예, 전부 선배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어차피 주술이 풀리면 저희도 그들의 추살 대상이 될 테니 오히려 선배님 곁에 있는 것이 안전하겠지요.”
노인의 대답은 빠르고 호탕했다. 청년과 여인도 노인의 대답에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그들 마음속의 칠대선파는 자신들을 이용하려던 집단보다 훨씬 크고 대단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마른 사내만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슨 할 말이 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를 흘끗 본 노인이 대신 입을 열었다.
“주술이 성공적으로 풀린다면 선배님께 드릴 청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가 아니라면 내 생각해 보지.”
“저희 셋째가 저들에게 잡혀 월경성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니 기회가 되면 그녀를 구해주시길 청합니다.”
노인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맺었다.
“큰 형님…….”
마른 사내는 노인의 요청에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마. 너희가 잠시 동안이나마 날 따르기로 했으니 동료를 구출하는 것 정도는 도와줘야겠지. 일단 너희 몸의 독이나 해결하고 이야기하자꾸나. 서두르지 않으면 당장 비명횡사 할 테니.”
단번에 그들의 청을 수락한 한립은 모두가 경악할 만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독이라니요? 저희는 주술에 걸렸을 텐데요?”
청년이 안색이 변해 다급히 물어왔다. 한립은 청년의 물음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아챘지만 전혀 노한 기색이 없었다.
“방금 주술을 살피다 보니 너희 몸에 극독이 심어져 있더구나. 독성이 강한데다 아주 불안정해서 당장이라도 발작할 기세였지. 다행이 내가 해독 방면에 재주가 있느니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날 믿지 못하겠다면 조금 더 기다려보다가 죽으면 될 일이다.”
“그랬군요. 어쩐지 일을 보내기 전 갑자기 우리를 불러다 술을 먹인다 했습니다. 설마 이미 주술까지 걸어놓고 무슨 짓을 할까 하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는 자들입니다!”
그의 말에 마른 사내와 여인도 번뜩 그 일을 떠올린 눈치였다.
이미 해독을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니 독이 발작할 때까지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한립은 바로 저물대를 뒤져 하얀 병과 푸른 병을 한 개씩 노인에게 건넸다.
“병에 든 단약을 한 알씩 먹으면 대부분의 독성은 해결이 될 것이다. 이후 천천히 운공을 해 남은 독을 몰아내면 될 게야.”
간단한 지시에 노인은 바로 단약을 분배했다. 그들은 의심 없이 단약을 삼켰다. 사실 한립이 그들을 해하려 했다면 해독한다는 구실을 빌릴 것도 없이 그냥 죽이면 그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사람은 복부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 중 젊은 여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돌연 법기를 타고 날아올라 가까운 언덕 뒤편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몸에 한립이 걸어 놓은 금제가 있었기에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이를 확인한 다른 세 사람도 모두 구석진 곳을 찾아 뱃속에서 요동치는 독극물을 배설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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