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사상진(四象陣)
황성에 진입해 궁궐에 다가가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좋았어! 미리 숨겨둔 역기의 표식이 완전한 걸 보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거야.’
잠시 후 궁궐 위에 도착한 아홉 수사의 눈에 황궁의 모습이 들어왔다.
“계획대로 둘로 나뉘어 움직입니다. 일부는 월국 황제의 침전으로가 그를 구출해 내 흑살교인들이 퇴각하며 그를 인질로 삼을 것에 대비합니다. 다른 이들은 바로 흑살교 교주가 있다는 폐궁으로 가 사대혈시를 멸하고 그 동안 돌아온 수사들과 힘을 합쳐 마지막으로 교주를 처리합니다.”
류정이 진지하게 계획을 다시 정리해주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진교천과 종위랑이 월국 황제를 구해 나중에 무리에 합류하고 류정 등 나머지 사람들은 바로 사대혈시가 지키고 있는 폐궁을 친다는 계획이었다. 일행이 나뉘기 전 류정이 두 여수사에게 분부했다.
“일곱째 사매와 진 사매는 각별히 조심하거라!”
두 사람은 숙연히 답하고는 바람처럼 날아갔다.
“앞으로 마주치는 수사들은 사정을 봐줄 것 없습니다. 황궁 내를 돌아다니는 자들은 모두 흑살교 교인들이라 간주하고 처리합니다. 어서 움직여 두 사매들이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도웁시다!”
류정은 말이 끝나자 선두에 서서 폐궁을 향해 날아갔다. 한립 등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들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폐궁 밖을 지키던 흑살교 제자에게 발각되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경고성이 울리며 각종 법술과 법기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반딧불로 달빛을 이기려는 격이로다!”
류정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나타난 비단 천이 거대하게 변하며 그를 뒤따르던 일행을 모두 감싸버렸다. 이 법기의 위력에 자신감이 상당한 듯 했다.
비단천이 펼쳐지자 법기와 법술 등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을 뿐 아니라 법술이 일부를 튕겨내 폐궁 부근에 숨어있던 수사들의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역시, 류 사형!”
송몽이 칭찬을 던지더니 자신도 손에 든 법기를 뿜어냈다.
거대한 남색의 검이 상공에서 밤하늘을 갈랐다. 그가 애용하는 최상급 법기 남사검(藍絲劍)이었다.
“가거라!”
송몽이 수결을 맺자 남색 거검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거검의 조화를 보곤 흑살교 제자들도 두려움에 떠는 기색이었다.
송몽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가락이 원반처럼 둥글게 변한 남사검을 가리켰다.
동시에 거검의 남색 빛이 줄었다 늘어났다 하더니 무수히 많은 가는 빛을 분출해 수십 장 범위를 쏘아나갔다.
그 모습에 흑살교 제자들이 혼비백산해 각종 방어 법술과 법기 등으로 송몽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연달아 들리는 참혹한 비명이 그들의 시도가 대부분 실패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부분의 방어가 뚫려 온 몸이 벌집같이 구멍이 났고 일부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전투력을 상실했다.
“만사천하(万絲天下)로군요.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역시 비범하네요.”
진교천이 송몽의 기술에 대해 들은 바가 있던지 칭찬을 던져 그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게 만들었다.
이제 폐궁의 대문을 지키는 흑살교 제자들은 겁에 질려 함부로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사상진을 발동해 저들을 가두거라.”
그때 차갑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폐궁에서 울려 퍼졌다. 이어 하얀 그림자가 한기를 내뿜으며 등장했는데, 오늘 보초를 맡은 사대혈시 빙요였다.
그는 이를 갈며 명을 내리고 황풍곡 수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흥! 요사스러운 것, 목숨이나 내놓거라!”
류정은 그의 법력을 파악하자마자 사대혈시 중 1인이라는 것은 깨달았다. 콧방귀를 뀐 그에게서 은색 빛 두 줄기가 빠르게 분출되었다.
다른 이들도 바로 각종 법기를 발동해 합동 공격을 하려했다. 동문끼리 하는 대결도 아니고 일대일로 상대를 봐주며 싸울 리가 없었다.
한립 역시 여섯 개의 금광이 저물대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번 공격으로 저 혈시를 죽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한립 등 일행은 눈앞이 흐릿해 지더니 천지가 거꾸로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들이 깜짝 놀라 사방을 살피니 순식간에 얼음이 천지인 곳에 떨어진 것 같았다.
온 세상이 하얗고 눈이 흩날리니 방금 눈앞에 둔 하얀 그림자는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류정 등은 조금 당황하긴 했으나 곧 사상진에 갇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금세 진정되었다. 사실 이미 축기기 수사인 그들에게 별것 아닌 진법은 그리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히히, 감히 본교 제자들을 죽이다니! 잠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마치 사방에서 한랭한 하얀 그림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사상진?”
“이 진법에 대해 아는 이가 있습니까? 어서 진법을 깨고 나가지 못하면 사대혈시가 집결해 상대하기 어려워 질 것입니다.”
류정은 빙요의 말에 분노하기 보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도 아는 것이 없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교천이 모두가 말이 없자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진법에 대해 조금 익힌 바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법을 풀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보통수사들이 해결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란 것만 알고 있어요.”
“성가시게 되었습니다. 무력으로 진법을 깨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류정은 이런 데에서 시간과 법력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식하게 공격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깨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모두 상당한 법력을 소모해 앞으로의 대전에서 불리해질 것이 뻔했다.
“한 사제! 뭐 하는 겐가?”
송몽은 진법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 그저 도처를 살피다가 한립의 이상한 행동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
그는 수정구술 같은 것을 꺼내 들어 눈에 가져다대더니 어떤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송몽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립에게 집중되었다.
차분하게 수정구를 내린 한립은 류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법의 약점을 찾은 듯 합니다.”
“진법의 약점을?”
한립의 말에 모두 기뻐했고 류정도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진법의 허점을 찾아내다니 명성대로야. 약점이 무엇인가?”
류정이 그를 칭찬하며 물어왔다. 한립은 미소를 띠며 들고 있던 수정구를 류정에게 주었다.
“사형도 자광구(紫光球)를 통해 살펴본다면 알 것입니다.”
그는 방금 자신이 살펴보던 방향을 가리켰다. 류정은 바로 법기를 받아 들어 투명한 수정구술을 살폈다. 그리고 자광구를 통해 곳곳을 살피더니 다시 그것을 한립에게 돌려주었다.
“한 사제 말이 맞습니다. 저 부분이 영기의 파동도 불안정하고 얇게 보이더군요. 상대가 펼친 진법의 약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류정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럼 류 사형의 말은…….”
진교천이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모두 법기를 이용해 한 번에 공격합니다. 큰 법력 소모를 하지 않고도 이 진법을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서 움직이시죠!”
류정의 제안에 송몽이 바로 남사검(藍絲劍)을 발동해 머리 위에서 회전시켰다. 다른 이들도 확실한 목표가 생기자 의욕이 넘쳐 보였다.
류정은 지체 없이 소리쳤다.
“공격합시다! 단번에 진법을 무너뜨려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해줍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댓 개의 법기가 찬란한 빛을 뿜으며 한립이 가리킨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이때 밖에서 교도들을 지휘해 진법을 유지하는 빙요도 다급해하고 있었다. 흑살교 교주가 폐궁을 엄중히 방어하라 명한 이후 매일 당직을 서는 혈시는 최소한 두 명이어야 했다.
그런데 함께 번을 서야 할 엽사가 방금 큰 공을 세우고 자만해져 곧 축기 중기에 이를 것 같다며 몰래 혈뢰로 연공을 하러 가버린 것이다.
자신도 사대혈시에서 요즘 이름을 날리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해주었는데 이런 일이 터져버렸다. 한 순간의 실수로 강적이 쳐들어왔는데 폐궁을 홀로 수호하게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도 그리 멍청하진 않았다. 일단 사상진으로 적을 가두고 사람을 보내 혈뢰와 다른 전각의 사대혈시들을 불러들일 작정이었다.
연기기 제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강적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으나 진법으로 상대를 가둬 시간을 벌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일단 사대혈시 넷이 모여 협공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콰콰쾅’
이런 생각을 막 마쳤을 대 사상진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진법을 뒤엎은 만한 진동이 요동을 치니 당장이라도 깨져나갈 태세였다.
“말도 안 돼! 사상진이 이렇게 빨리?”
빙요의 하얀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빙 대인님 방금 공격으로 진법을 담당하는 제자들이 죽어나가서 사상진을 유지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아마 상대가 진법의 약점을 찾아 낸 것 같습니다.”
옆에 서있던 흑살교 제자가 조심스레 상황을 보고했다.
그 보고에 열이 받은 빙요가 그를 훈계하려는데 뒤에서 온화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일인가, 빙요? 사상진까지 발동했는데 상대를 가둬 놓지도 못하다니.”
“드디어 왔구나 청문!”
빙요가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오륙 장 떨어진 허공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삼십 대의 준수한 사내로 푸른 도복을 입고 사상진을 살피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키가 굉장히 큰 거한으로 대머리였다. 한 눈에 한립과 일전을 벌였던 철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침입자의 정체는? 엽사 이놈은 또 어딜 간 게고?”
철라가 자신의 대머리를 문지르며 흉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엽사는…….”
‘콰쾅!’
빙요의 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거대한 진동이 느껴지며 사상진이 터져나가 종적을 감추었다. 원래 하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한립 등이 얼굴을 드러냈다.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한 청문의 안색이 조금 달라졌고 철라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하하! 이런 후진 진법으로 우리 황풍곡 수사들을 가둘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황풍곡?”
청문이 의문을 드러냈으나 곧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황풍곡 같은 칠대선파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리 많은 축기기 수사들을 파견하겠는가.
“오밤중에 황궁을 침입하다니 문파의 명을 거역해도 되겠습니까?”
청문은 류정 등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담담히 물어왔다. 상대가 칠대선파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금지에 발을 들이는 것을 꺼릴 것이라 여긴 것이다.
류정이 그를 비웃으며 막 무어라 하려는데 더 큰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넌 천죽교 놈이 아니더냐! 어찌 황풍곡 수사들과 함께 있는 거지?”
대머리 철라가 황풍곡 무리에서 한립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놀라 소리친 것이었다.
그 말에 모두가 이상하단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는데 적은 물론이고 황풍곡 수사들도 이에 속해 있었다.
이때 청문도 처음으로 한립의 얼굴을 정확히 보고는 동요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언제 천죽교 사람이라 했지?”
대머리 거한의 질문을 받아 친 한립의 시선도 청문에게로 옮겨갔다. 예전 태남소회가 파하고 함께 이동하자 청하던 얼굴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제 끈질기게 동행을 요청하던 그와 헤어진 이후 자신이 황의인에게 쫓기게 된 이유가 분명해졌다.
옛 기억을 떠올린 한립은 분노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청문 도사에 대한 살심을 불태웠다.
“천죽교인도 아닌데 어찌 꼭두각시를 부린단 말이냐?”
대머리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듯 했다.
“한 사제가 무슨 공법을 사용하든 네 놈들이 알 바더냐? 모두 공격 합시다!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니 저들의 속셈에 넘어가선 안 됩니다.”
류정이 소리쳤다. 그에게서 당장 은광이 분출 돼 가장 가까이 있던 빙요를 기습해 들어갔다. 황풍곡 수사들도 그제야 상대의 교활한 속셈을 깨달은 듯 각자의 법기를 발동해 혼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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