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암투
이어 빛줄기가 폭발해 비처럼 쏟아져 하늘 가득 금빛이 퍼지니 꿈에서 나 보았을 듯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그 아름다운 현상 속에 무서운 살기가 감춰져 있었다. 류정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수결을 맺으니 하늘을 떠다니던 금빛 하나하나가 가는 검으로 변해 놀라운 한기를 뿜어낸 것이다.
“천인술(千刃術)!”
드디어 류정의 입에서 금속 계열 법술의 명칭이 을퍼졌다. 이 모습에 부보를 구동하는데 전념하는 중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금속 계열 법술은 오행법술 중 가장 희귀했고 보통 금갑술(金甲術), 철부술(鐵膚術) 등 보조법술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류정의 부적은 중계 이상으로 보이는 공격성 금속 법술을 펼쳤으니 모두가 놀라 그것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정말 천 개는 될 듯한 날카로운 금빛 칼들이 사대혈시가 있는 상공에 모여 엄청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류정이 다시 입을 열어 구동을 하자 금빛 칼들이 우박처럼 우수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파바바박!’
이어 수많은 충돌음이 울리며 금색과 핏빛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본래 어떤 공격에도 꼼짝 않던 핏빛의 누에고치가 맹렬한 공세에 변화를 일으켰다.
핏빛이 몸집을 키워 붉은 빛이 더욱 두터워졌고 금빛 칼들과의 대치도 더 격렬해 진 것이다.
류정은 이 모습에 조급해 하기 보다는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변화를 보였으니 분명 자신의 공격이 영향을 미쳤다는 뜻 일 것이다. 이대로 밀어 붙인다면 저 핏빛 누에고치를 깨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칼날들의 반절이 벌써 떨어져 내렸지만 누에고치가 내뿜는 붉은 기운은 처음처럼 선명했다.
이때 송몽이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울렸다.
“류 사형, 제가 갑니다!”
들고 있던 회색 부적에 변화가 생기더니 엄청난 길이의 회색 창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쁨을 드러낸 류정이 송몽을 향해 소리쳤다.
“일단 맨 왼 쪽에 공격을 집중하자!”
이어 아직 남은 검들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동시에 모든 금빛 검들이 조밀하게 모여 맨 왼쪽에 위치한 빙요의 누에고치로 쏟아져 내렸다.
‘파파파파파팍!’
이렇게 많은 금빛 칼날이 찌르고 지나간 자리엔 핏빛이 눈에 띄게 옅어진 빙요의 누에고치가 드러났다.
드디어 고대하던 결과가 나오자 모두의 법술, 법기 및 한립의 꼭두각시 공격이 재개되었다. 송몽의 회색 장창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랐다.
천인술과 다른 수사들의 공격이 집중되자 순식간에 빙요의 누에고치가 옅어졌고 그 안의 모호한 형상까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회색 장창이 그것을 뚫어버렸고 안에서 분노에 찬 포효가 들리며 모두의 머리를 울렸다. 곧 투명한 발톱 두 개가 이미 흩어질 대로 흩어진 핏빛을 뚫고 나와 진면목을 드러냈다.
반절 밖에 변하지 못한 새하얀 괴물이었다.
그는 분명 수려하게 생긴 청년이었지만 두 개의 작은 뿔과 꼬리 그리고 발톱은 요수의 것이었으며 하얀 껍질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깨엔 분명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선홍색 피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주변의 살과 근육이 스스로 수축해 구멍을 메우니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죽여버리겠다!”
아직 반절밖에 요화 되지 않은 그는 놀랍게도 의식을 갖고 있었다. 빙요 입장에선 완전히 변하진 못했어도 다른 혈시들이 변할 시간을 끌기엔 이미 충분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이한 현상에 류정 등의 안색이 변했다. 한립에게 듣기는 했으나 공포스런 광경에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해진 것이다.
갑자기 하얀 빛기둥이 빙요의 적나라한 몸에 날아들자 그는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하며 피했다.
한립의 괴뢰술 공격이었다. 한립이 먼저 움직이자 다른 이들도 굳은 얼굴을 풀고 다시 폭풍처럼 공격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전신에 차가운 안개를 뿜어내며 빙요가 공중에서 사라져버렸다.
깜짝 놀란 모두가 곳곳을 살피며 그의 행적을 찾았다. 이런 경우 상대가 모종의 술법을 이용해 신속히 그곳을 뜬 것이었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핏빛을 발하는 누에고치 세 개를 빼면 어디에도 다른 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흑살교 제자들도 바보는 아니라 실력이 안 되는 이들은 벌써 내뺀 지 오래였다.
흠칫 놀란 한립이 서둘러 하얀 방패와 거북 등껍질로 만든 법기 등을 꺼내 몸을 완전히 방어하고 소리쳤다.
“모두 조심 하십시오! 은신술을 부리는 자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인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왔다. 서둘러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을 향했으나 가부좌를 하고 부보를 구동하던 설홍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커다란 구멍이 뚫려 누군가 산채로 심장을 뜯어 낸 듯 했다.
피범벅이 된 고운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눈동자는 곧 마지막 생기마저 잃어버렸다.
“설홍……!”
그녀의 반려로 보이는 사형이 비통한 목소리로 절규했다. 그리곤 그가 두 팔을 내지르니 검은 빛이 분출돼 그녀의 시체 곳곳을 난도질 했다. 아무래도 설홍을 죽인 빙요를 찾아 죽이려는 듯 했다.
그녀가 부보를 구동하고 그 시간을 줄이려 방어 법기를 회수하고 있을 때 적의 습격에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주위에 동문들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부보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인데 뜻밖에도 빙요가 불완전한 몸으로 누에고치를 탈출한 것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송몽 역시 부보를 발동할 때 보호막을 두르지 않았는데 부보의 위력이 그리 크지 않아 먼저 구동에 성공했다. 만일 두 사람이 모두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면 누가 죽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이 뚫린 여인의 처참한 결말을 확인하고 한립의 고함을 들은 이들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들은 서둘러 방어 법기며 보호막을 이용해 흉수의 다음 습격을 대비했다.
그러나 놀라운 건 그들이 어떤 법술이나 법기를 써도 숨어있는 빙요의 종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흐릿한 모습을 드러내긴 했으나 순식간에 사라지니 영성이 대단한 법기로도 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립만이 눈을 빛내며 이 광경을 차분히 주시했다.
한립과 나란히 서 있던 왕 사형은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대결은 처음인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왕 사형의 시선이 미친 듯이 분개하고 있는 설홍의 반려에게 닿자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러자 공포에 질린 그의 표정이 빙요의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레 다음 목표가 되었다.
두려움이 그를 집어삼키자 투명한 발톱이 그의 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다행히 왕 사형의 보호 법기인 청동 방패가 주인의 명도 없이 영민하게 움직여 그것을 막아냈다.
‘챙!’
가벼운 울림이었으나 빙요의 발톱을 막아낸 청동 방패는 영성을 잃어 순식간에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제야 등 뒤의 공격을 알아챈 왕 사형은 핏기 없는 얼굴로 몸을 돌려 황망히 뒤를 살폈다.
주위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잠시 주저하던 그는 바로 아래로 내려가 황동방패를 찾으려 했다.
“피해!”
그 모습을 본 류정이 놀라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가 주저하자 왕 사형을 보호하던 물 속성 보호막이 뚫리는 소리가 뒤편에서 들리며 한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왕 사형은 자신이 처한 위기를 깨달았다. 숨어있던 빙요가 자신 뒤에서 기습한 것이다.
‘이렇게 빨리 내 차례가 올 줄이야!’
그리고 눈앞이 빛나며 몸이 가벼워졌다. 그의 몸이 위로 치솟으며 동시에 아래에서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분노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두 발은 곧 바닥에 닿았고 왕 사형은 멀쩡한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
“괜찮은가, 왕 사제!”
완전 넋이 나가 자신이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어리둥절한 왕 사형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류정이 걱정스런 기색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류 사형이 절 구해주신 겁니까?”
“부끄럽지만 사제를 구한 건 내가 아니네. 한 사제가 자네를 구하고는 요괴와 싸우고 있어. 이전에는 한 사제가 수십 명의 마도인 축기 수사를 처리했단 것이 의문이었는데 이제 보니 그 실력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야.”
“한 사제가 말입니까?”
왕 사형은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잠시 멍해졌다. 분명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한 사제가 어찌 그를 구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방금 습격을 당한 곳에는 분명 아무도 없는데 연신 법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왕 사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보려 하자 공중에서 돌풍이 불며 반투명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를 습격했던 혈시로 반쯤 요괴로 변한 몸이 놀랍게도 수정처럼 투명했다.
“어찌 내 은신을 꿰뚫고 날 따라잡기까지 한단 말이냐!”
빙요의 투명한 얼굴엔 분노와 함께 공포가 어려 있었다. 그는 야수처럼 울부짖으며 맹렬히 뛰어올라 다시 사라졌다.
그러나 잠시 끊어졌던 소음이 다시 이어졌다. 이제 법기 부딪치는 소리가 한 곳이 아니라 곳곳을 옮겨 다니자 류정 등의 안색도 변해 뒷걸음질 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립과 빙요의 전투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볼 수도 없는 싸움에 끼어 들 수는 더더욱 없었다.
“어서 아래를 보십쇼!”
갑자기 송몽이 놀라 소리쳤다. 아래를 보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간교한 빙요가 언제 일을 꾸민 것인지 땅에 두터운 수정이 맺혀 차가운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저런 간사한 요괴 같으니. 한 사제가 불리해 지겠어!”
초초한 기색으로 송몽이 걱정했다.
“그건 아닐 거다. 한 사제가 은신술을 써 감지할 수는 없으나 들려오는 소리로 보면 열세는 아니야. 요괴 인간의 능력이 예상을 초월해 뜻밖에도 동문 수사가 죽다니 모두 내 책임이다!”
류정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의 얼굴을 보며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한립이 격전을 벌이며 그들에게 엄청난 욕을 퍼붓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한립은 지금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방금 왕 사형을 구한 것은 청문과의 일전에서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정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에겐 확실히 어려운 상대이니 한립이 나선 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인원이 줄면 앞으로의 일전에 영향을 미칠 터였다.
그런데 자신이 싸우는 동안 다른 이들은 불난 집 구경 하듯 가만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립의 예상과 달리 그들도 이것이 기회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빙요의 괴이한 움직임에 세 혈시가 빙요처럼 반절쯤 요괴로 변해 나타날 상황이 두려워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완전히 변이를 마치면 더 무서운 적이 될 것이기에 이쯤에서 후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듯 했다.
그러나 한립은 흑살교를 물리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사실 빙요는 사실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완전히 요괴로 변한 대머리 거한보다 훨씬 수월한 상대였다.
빙요는 대단한 은신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몸이 투명하고 빠르며 한기를 조종할 뿐이었다.
상대의 괴이한 신법은 땅에서나 위력을 발휘할 뿐 공중으로 떠올라 거리를 두고 광범위 공격을 가하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육체의 속도는 거리가 멀어지면 극성으로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장거리에서 법기와 비교하면 우위에 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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