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요괴를 없애다
류정 등은 근거리 육탄전에 익숙하지 않아 상대의 신법이 신묘해 보이겠으나 한립은 자신이 늘 사용하던 방식이니 경험이 풍부하고 대처 요령도 익숙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은 상대의 날카로운 발톱을 은검으로 쳐낸 후 몸을 드러냈다.
“류 사형! 어서 법기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 나머지 혈시들을 공격해 주십쇼! 이 요괴는 사형들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의 몸이 번뜩이며 다시 종적을 감추었고 은검으로 빙요를 압박하며 그를 땅에 붙잡아 두었다.
그가 들고 있는 은검은 혈색시련의 전리품으로 상대의 발톱을 공격하면서도 전혀 손상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의 발톱 역시 멀쩡하니 한립은 이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류정은 한립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립의 뜻은 충분히 알겠으나 마음 속에서 격렬한 갈등이 일었던 것이다.
그는 비록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 유괴를 당해 불운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다.
학대 속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겨우 가문 사람들에게 구출돼 이화원 문하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암울한 나날 때문이었는지 악한 이와 불의를 참지 못했다. 이상한 사술을 부려 횡포를 일삼는 수사라면 누구라도 가만 두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그는 통쾌함을 느낌과 동시에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그보다 수행이 높은 칠대선파 수사들조차 그를 마주하면 경탄을 금치 못했으니 말이다.
이후 일부러 사악한 무리들을 처단하고 다녔던 것도 절반은 다른 이들의 흠모를 받기 위해서였다.
물론 대외적으론 이런 마음을 철저히 감춰 의기가 하늘을 찌르고 악을 증오하는 철혈 류 사형으로 남았던 것이다.
류 사형으로서 흑살교는 그가 만난 적들 중 가장 강한 집단으로 결단코 없애야 할 사악한 무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적을 보통의 법기로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공격이 조금만 약해도 나머지 혈시들이 변이중에 뛰쳐나오게 만들뿐이었다.
반요 하나가 이리 상대하기 어려운데 나머지 셋까지 누에고치를 빠져나온다면 승산은 없었다.
지금 철수한다면 흑살교는 바로 은밀한 곳으로 세력을 감추고 그가 수년간 쌓아온 명성도 끝장 날 터였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비웃고 얕잡아 볼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류 사형 일단 후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흑살교의 세력이 우리의 예상을 초월했으니 더 지체하다가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왕 사형이 겁에 질린 눈으로 속삭였다.
‘후퇴? 이대로 물러서면 비겁자가 될 뿐이겠지.’
“모두 허공에서 날 보호해 준다면 나머지 세 명의 혈시는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류정은 담담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국 그걸 써야겠구나. 그래야만 이번 일전을 이기고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 테지.’
“류 사형이 혼자 모두를 처리하겠단 말입니까?”
곁에 있던 왕 사형을 물론이고 부근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수사들까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을 보여 류정을 애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법기를 타고 공중에 떠오른 류정은 숙연한 표정으로 붉은 옥함을 꺼냈다.
이미 평정을 되찾은 류정의 얼굴엔 차분함이 어렸고 이를 본 나머지 수사들도 믿음이 생겼는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옥함을 바라보는 류정의 얼굴에 아까운 기색이 어렸으나, 바로 마음을 다잡고 그것을 내리쳤다. 그러자 옥함은 산산이 부서져 파편 사이로 붉은 빛이 도는 특이한 부적이 등장했다.
부적에는 불새가 그려져 있었는데 분명히 종이에 그려진 불새가 날개를 펄럭거렸고 남색 눈까지 굴리며 곳곳을 주시하는 것이 살아있는 듯 생생했다.
더 놀라운 것은 부적의 열기로 인해 주위 온도가 일순 상승한 것이다. 그 부적의 모습이 나머지 사람들 눈에도 들어왔다.
“부보!”
“아니야. 저건 그냥 부보(符寶)가 아니라 진, 진보(眞寶)일세!”
송몽의 말을 왕 사형이 정정했다. 진보는 부보의 종류라 할 수 있으나 보통 부보와는 달랐다.
일단, 부보는 기껏해야 원래 법보(法寶)의 십분의 일의 위력밖에 내지 못했으나 진보는 법보의 삼분의 일의 위력까지 펼칠 수 있었다.
또한 진보는 법보 주인의 피를 이용해 제련을 하여 혈연관계에 있는 이만이 그것을 구동할 수 있었다. 부보와 달리 아무나 그것을 사용하려 영력을 주입했다간 종잇조각이 된다.
그러나 진보의 가장 큰 결점은 강력한 위력을 한번 밖에 뿜어내지 못하는 일회성 부적이란 점이었다. 일단 위력을 사용하면 다신 이용할 수 없었다.
조금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진보가 진귀하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진보는 부보에 비해서 발동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류정이 다른 수사들에게 호법을 서 달라 부탁한 것이다.
그는 노란 고리 형태의 보고 법기를 유지한 채 가부좌를 하고 불새 진보에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불타오를 듯 새빨간 부적은 그의 손에서 붉은 기운을 키워갔고 그럴수록 그려진 불새의 움직임은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 새가 부적을 탈출해 날아오르면 진보를 깨우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한립은 빙요와 일전을 치르면서도 동문들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안심했다. 그가 지금 가장 걱정하던 것은 황풍곡 수사들이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 버려 얻고자 하는 물건을 홀로 빼앗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란하던 마음이 안정이 되었으니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할 일만 남았다. 그가 축기기 중기에 라연보를 더 오래 시전 할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신체에 무리를 주었기에 속전속결을 하는 것이 옳았다.
그는 한 손으로 은검을 쉼 없이 휘둘러 빙요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다른 한 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저물대를 스쳐 무언가를 손가락에 감아두었다.
준비를 마치자 눈에 살기가 가득한 한립은 두 손을 모아 은검을 단단히 잡고 최후의 공격을 시작했다.
한립의 얼굴이 흉악한 기세를 내뿜고 은검의 속도도 이전 공격들을 추월하자 빙요는 서둘러 뒤로 물러서며 투명한 발톱을 교차해 그것을 막으려 들었다.
‘탕’
맑은 소리가 울리고 빙요는 냉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공격을 받은 김에 속력을 높여 한립과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한립이 그를 그대로 놔둘 리 없었다.
빙요가 무언가 이상하단 생각을 했을 때, 한립이 한 손을 검에서 떼고 맹렬히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그 결과 빙요는 오히려 한립 쪽으로 날아왔다.
한립은 다시 한 번 은검을 움켜쥐었는데 대경실색한 빙요가 방향을 돌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 한립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잠시 후, 달빛 아래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한 사람은 검은 쥔 채 꼿꼿이 서있었지만 다른 이는 온몸이 수없이 베인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송몽 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빙요가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한립의 뒷모습을 보고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가 튀어나가려는데 오히려 그의 투명한 몸은 순식간에 산산 조각이 나며 얼음 덩어리 같은 것들을 남기고 사라졌다.
빙요에게 남아있는 것은 날카로운 발톱뿐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음산한 기운을 뿜으며 은검과의 수많은 격돌에도 멀쩡한 표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빙요를 바라보던 한립이 멀리서 휘황찬란한 핏빛을 내뿜는 세 개의 누에고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한 손을 당기자 빙요의 발톱 중 하나가 그에게 날아왔다.
달빛에 한립의 손가락과 발톱 사이에 투명한 가는 줄이 연결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 투명한 실이 빙요가 목숨을 잃은 원인이었다.
빙요는 온몸이 단단하고 투명하게 변한 대신 예민한 촉각을 대부분 상실했기 때문에 한립이 투명 실을 조정해 그의 발톱을 감아버린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 투명한 발톱을 내려다보던 한립은 결국엔 그것을 다시 던져버렸다.
은정(銀精)을 섞어 제련한 은검과 대등하게 다툴 정도라면 최상급 법기를 만드는데 좋은 재료이겠지만 사람의 손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을 알았지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 그럴 마음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는 몇 걸음 더 다가가 빙요의 조각들을 뒤져 저물대를 찾아내 챙겼다. 그리곤 바로 날아올라 자신의 동문들에게 다가갔다.
한립 등은 몰랐으나 빙요의 숨이 끊기던 순간 황궁 정원의 어느 인공산 지하에서 연공을 하던 중년인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빙요가 죽었나? 힘쓸 일을 덜었구나.”
그는 중얼거리더니 다시 조용히 눈을 감았는데 앞에는 피골이 상접한 시체가 누워있었다. 뼈를 제외하고는 피와 살이 전혀 없는 소름 끼치는 모습엔 황풍곡 수사의 옷이 입혀져 있었다.
한립이 법기를 타고 날아오자 송몽 등이 서둘러 그를 맞이했다. 한립은 류정과 그의 부적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진보에 대해 설명해주자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기쁨이 차올랐다.
진보에 대해서라면 한립도 들은 바가 있었기에 류정이 그런 보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과 겨우 흑살교를 척살하기 위해 그것을 쓴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보 같은 보물은 정말 목숨과도 같기에 절대 피할 수 없는 생사존망의 순간이 아니면 절대 꺼내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립은 류정의 과거사에 대해 몰랐기에 그가 겪은 심리적 충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류정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한립은 조금 감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틀렸고 정말 악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좋은 사람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돌연 사나운 포효가 들려왔다. 모두가 놀라 고개를 돌리니 누에고치 세 개 중 하나가 몸을 부풀리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기세였다.
‘아무래도 저 놈과 싸워 류 사형에게 시간을 벌어줘야겠구나!’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고 막 행동에 옮기려는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저 요괴들을 멸하겠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웃음을 띤 류정이 아기자기한 붉은 새 한 마리를 손에 올리고 있었다.
“모두 오랜 시간 호법을 서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 류정이 휘파람을 불자 새가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파직’
이때 변화를 보이던 고치도 원형을 깨고 푸른빛을 내는 괴물을 밖으로 뿜어냈다.
괴물은 빙요가 반요괴화 된 모습과 비슷했는데 얼굴이 시퍼런 것이 다를 뿐이었다.
요괴 인간은 청문 도사의 얼굴이 남아있었지만 발광하며 날뛰는 모습이 정신을 반쯤 놓은 것 같았다. 괴물은 포효하며 날아드는 작은 새를 보곤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괴물은 당황해 몸의 푸른 기운을 북돋는 것이 당장이라도 달아날 기세였다.
‘촤르륵’
그때 작은 새가 일장은 될 법한 거대한 화염의 새로 변했다. 거대한 새가 두 날개를 펄럭이자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먼 거리에 있던 요괴의 등 뒤에서 새가 나타났고 뾰족한 부리로 괴물의 등을 찍어버렸다.
타오르는 화염이 치솟으며 불새의 부리에 찍힌 청문은 거대한 화염덩어리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지면에 닿기 전까지 고작 두 번의 참혹한 비명을 지르고서는 반항조차 못하고 잿더미가 된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화염의 새가 맑은 울음소리를 내더니 지체 없이 나머지 누에고치들을 덮쳤다.
이제 거의 변이를 마친 혈시 두 명이 들어있는 누에고치들에도 아까와 같은 화염에 휩싸여 불바다를 만들어 냈다.
두 개의 누에고치는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겨우 버티다가 결국에는 녹아내려 버렸다.
이건 보통의 화염 덩어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력이었다. 진보를 통해 한립은 결단기 수사들이 사용하는 법보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송몽 등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벌어진 광경에 기쁨을 드러냈다.
“대단한 위력입니다!”
“이 사악한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이제 류 사형만 믿겠습니다!”
흥분한 수사들이 분분히 외쳤다.
그들 생각엔 이미 혈시 넷을 처리했으니 고작 폐관수련 중인 흑살교 교주 정도는 쉽게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도 모두 축기기 수사인데 같은 축기기 수사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 리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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