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흑살교주
류정은 불새가 변한 화염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보며 속이 쓰려 죽을 것 같았지만 다른 이들의 찬사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서두르시죠! 이미 시간을 많이 지체했으니 어서 흑살교 교주를 잡아야 합니다!”
그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손을 휘저었다. 모두들 그의 말을 듣고는 폐궁으로 날아들려 했다. 한립도 이어서 움직이려는데 그의 시선이 왕 사형에게 닿았다. 그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표정이 기이했다.
한립이 순간 움찔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으나 재로 변한 청문 요괴와 반려의 시체를 수습하는 사형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왕 사형, 왜 그러십니까? 뭐 이상한 점이라도…….”
“이상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한립의 의혹에 왕 사형이 놀라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왕 사형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으나 그와 비밀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립은 속마음을 숨기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서 출발하죠. 류 사형과 다른 이들은 벌써 들어가고 있습니다.”
폐궁의 대문을 가리킨 한립은 법기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뒤에 남아 심란한 표정을 짓던 왕 사형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한립이 땅에 발을 디디려는데 여인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 사형! 한 사제! 기다려요!”
류정과 한립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허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나타난 이들은 역시 종위랑과 진교천이었고 그 둘은 창백한 인상의 중년인을 데리고 있었다.
중년인은 황금색 곤룡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옷깃이 종위랑의 법기에 단단히 묶여 끌려오고 있었다.
류정은 이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두 사매가 순조롭게 일을 마쳤구나. 이 자가 월국 황제인가?”
두 여인 역시 땅에 도착하자 류정의 시선이 중년인에게 꽂혔다.
“그럼요! 신하들과 이야길 하고 있길래 나머지 범인들은 모두 기절시키고 잡아온 거예요. 연기기 흑살교 제자들이 막아섰지만 단숨에 처리하고 오는 길이죠. 류 사형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종위랑이 류정의 모습에 기쁜 듯 떠들어대니 누가 보아도 그에게 푹 빠진 모습이었다. 이에 차분하던 류정조차 난감한 기색을 떠올렸다.
“진 사매도 괜찮은 거지?”
진교천의 사형 두 명도 바로 그녀의 안위를 살폈다. 그녀의 시선이 무리 속에서 한립을 한번 스쳤다.
“설홍 사저는요?”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잘 맞아서 진교천의 물음이 떨어지자 모두의 안색이 가라앉았다.
“……설홍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설홍의 반려였던 사내가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고 간신히 사실을 밝혔다. 그 소식에 종위랑과 진교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종위랑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참혹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번뜩 정신이 들어 주위를 살폈다.
무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사람이 서있었는데 그 자의 팔이 왕 사형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와있었다.
푸른 장포를 입은 자가 팔을 빼자 왕 사형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이미 숨이 끊긴 뒤였다.
“이놈이 가져선 안 될 물건에 욕심을 부려서 말이야.”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을 짓는 이는 사십 대의 중년인으로 말을 마친 그가 허리를 숙여 왕 사형이 한 손에 쥔 푸른 구슬을 빼앗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류정과 한립의 얼굴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당신이 흑살 교주로군!”
류정이 먼저 상대를 탐색하는 질문을 던졌다.
“하하! 영리하기도 하지. 내가 바로 흑살교를 만든 인물이다. 네 놈이 무리의 대장이로구나!”
중년인이 평이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폐관 수련 중인 흑살교주라 하니 한립은 물론이고 모두가 대전을 준비하며 긴장감을 유지했다.
류정은 깊게 숨을 들이 쉬어 마음속의 불안을 잠재웠다. 이어 몰래 동문들을 향해 손짓을 한 그가 차갑게 일갈했다.
“그래 나 류정이 모두를 이끌고 너희 흑살교를 멸하러 왔다. 감히 혼자 남아서까지 동문을 헤치다니 담도 큰 놈이로구나!”
위엄 있는 태도와 당당한 목소리는 류정 자신이 판단하기에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제 저 교주란 자만 처단하면 자신의 명성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류정이 손을 뒤집자 은색의 갈고리와 반지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모두 공격을 개시하라 명하기도 전에 흑살교 교주란 자가 기괴한 웃음을 흘렸고 또 다른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럼 네놈부터 죽여야겠구나.”
동시에 류정은 가슴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눈앞에 피에 젖은 어떤 이의 팔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왔는데 새빨간 다섯 손가락이 아직도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곧 하늘과 땅이 뒤집어 지며 눈앞이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의 비명소리만 들려왔다.
그 중에는 자신을 좋아하던 종위랑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생소하고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립의 얼굴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흑살교 교주란 자와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기습으로 무리의 축기 중기 수사 둘은 잃은 것이다!
그 자는 한 손으론 류정을 다른 한 손으론 진교천의 사형 중 하나를 꿰뚫고 있다가 번개처럼 흑살교주 옆에서 나타났다. 한립이 막을 새도 없는 빠른 움직임을 선보인 그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남은 황풍곡 수사들을 바라보았다.
종위랑은 류정의 죽음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더니 이제는 완전히 넋이 나가 무기력하게 서있었다. 진교천이 서둘러 그녀를 뒤로 숨겨 보호하고는 흉수를 노려보았다.
흉수는 류정과 다른 한 명의 시신을 대충 털어내 버렸다.
“이왕 모두 와주었으니 내 수련을 위해 제물로 잘 써주겠다.”
그 자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놀랍게도 그는 방금 전까지 공포에 질려 떨던 월국의 황제였다! 두려움은커녕 동요조차 없는 그자에게서 푸른 장포 사내와 비슷한 축기 후기 수사의 영력이 느껴졌다.
어떤 공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수사들의 감각을 피해 영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립은 곧 소왕야와 왕 총관에게서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을 떠올렸으나 황제는 자신의 비상한 직감마저 피해갔다.
한립은 바로 하얀 방패와 거북 등딱지 법기를 발동해 온 몸을 철저히 방어했다. 옆에 서있던 진교천과 송몽 등도 긴장한 표정으로 방어를 강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황풍곡 동문들이 만전을 기하는 것을 보고는 황제와 남의인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음침한 웃음을 교환했다.
남의인이 먼저 몸을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열댓 장 가량 떨어진 빙요의 잔해 위에서 나타났다.
그가 투명한 잔해를 향해 손을 내미니 빙요의 시신 더미에서 푸른 구슬이 솟구쳤다. 동시에 황제 역시 진보에 의해 재가 된 다른 두 혈시의 잔해에서 금빛과 노란빛의 구슬을 거두어들였다.
“저건!”
저것들이 바로 소왕야가 말한 결단(結丹)에 주요한 작용을 한다는 혈응오행단(血凝五行丹)이었다. 다만 이곳엔 네 개 밖에 없으니 나머지 하나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황제와 푸른 장포의 중년인은 구슬을 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각자 다른 곳에 서서 웃음을 흘린 둘은 남은 수사들을 보며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
“모두 하늘로!”
재빨리 머리를 굴린 한립이 소리치며 신풍주에 올라 먼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앞서 선보인 비범한 능력을 믿고 송몽과 설홍의 반려가 먼저 뒤를 따랐고 잠시 주저하던 진교천도 종위랑을 끌어다 자신의 법기에 태우고는 하늘로 치솟았다.
황제와 푸른 장포의 중년인이 그것을 보더니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으나 동시에 냉소를 흘렸다. 분명 용모가 판이하게 다른 인물들이었으나 한립이 보기엔 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저 녀석이 꽤나 영리하군. 아무래도 네 몸이 필요하겠다!”
“내 몸이 바로 네 몸이 아니더냐. 마음대로 하거라!”
황제와 중년인이 웃으며 나누는 기이한 대화에 한립의 마음이 서늘해 졌다.
“한 사제 저들이 뭐라는 거야!”
송몽이 놀라 침을 삼키며 한립을 찾았다.
눈앞에서 동문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투지에 불타던 송몽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고 기가 죽은 것이다.
이에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떼려다가 발밑에서 일어난 기이한 현상에 입을 다물었고, 진교천의 비명에 송몽의 시선도 아래를 향했다.
황제가 푸른 장포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는데 당장 죽게 생긴 중년인은 오히려 웃음을 흘리며 그의 공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중년인과 황제의 몸에서 눈부신 핏빛이 요란하게 발산되더니 상대를 꿰뚫은 팔을 타고 두 기운이 연결되었다.
순식간에 중년인의 기운이 황제에게 흡수당했는데 중년인이 황제와 하나가 되려는 듯한 기이한 모습이었다.
결국엔 중년인은 붉은 빛이 줄어들며 피부가 쪼글쪼글해졌고 반대로 황제는 기운이 강해져 놀랍게도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저런 사이한 공법이!”
놀란 송몽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은 송몽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이 바로 두 팔을 뻗었다.
곧 무수히 많은 불 뱀과 화염 등이 담긴 부적들이 앞다투어 황제와 푸른 장포의 사내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거의 이백 장은 될 법한 수량은 한립도 가진 불 계열 부적을 모두 털어낸 결과였다.
날아가던 수백 장의 부적이 각각 불꽃 계열 법술로 변해 하늘을 뒤덮자 그 기세가 류정이 보여준 불새 진보보다 못하지 않았다.
엄청난 공세에 송몽이나 진교천이 놀란 것은 당연했고 넋을 놓고 있던 종위랑까지 두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빼앗겼다.
상대를 흡수하고 있던 황제는 처음엔 무척 놀란 것 같았으나 자세히 그것들을 살펴 저계 법술들임을 깨닫고는 관심을 꺼버렸다.
그는 자신의 핏빛 방어막이 있는 한 겨우 저런 저계 법술로는 타격을 입힐 수 없다고 굳게 믿었으며 당장 눈앞의 급한 일을 마치면 저들쯤이야 개미처럼 눌러 죽일 수 있다 생각했다.
하늘을 뒤덮고 날아들던 불꽃들이 엄청난 굉음을 연달아 일으키며 황제와 중년인을 공격했다.
역시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발생하긴 했으나 핏빛 보호막 내에 있는 황제와 중년인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이제 중년인의 몸에서 대부분 혈기를 흡수한 황제는 거의 삼십 대 정도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때 진교천 등도 법기 등을 쏘아 보내 기이한 술법을 펼치는 황제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법기를 움직이기도 전에 눈을 찌를 듯한 하얀 빛이 황제와 중년인에게서 폭발했다. 이어 경천동지할 울림이 일더니 하얀 빛이 황제와 교주를 감쌌다.
그 하얀 빛이 포함한 강대한 영력 앞에 황제의 얼굴에도 드디어 공포심이 떠올랐다. 분명 자신들의 동문이 회심의 한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이를 확인한 진교천 등은 희색을 띠고 한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본 한립은 얼굴을 잔뜩 굳히고 있을 뿐이었다.
“죽이지 못했습니다.”
차분한 시선으로 그들을 본 한립의 말에 모두가 놀라 다시 아래를 보았다.
그의 말대로 연기와 먼지로 가득했지만 황제의 영력이 느껴졌다. 다만 그도 이번 공격을 막아내면서 법력 손실이 컸을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송몽 등 세 사람이 정신이 번쩍 들어 법기를 준비했다.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벌떼처럼 공격을 퍼부어 죽어나간 동문들의 복수를 할 참이었다.
“허…… 콜록!……하! 내 눈이 삐어서 네 놈이 가장 위험한 놈인 것을 몰랐다! 부적 중에 어떤 물건을 숨겨 보냈기에 내 방어막을 뚫은 것이더냐.”
뿌연 먼지 속에서 기침소리가 들리더니 상대의 서늘하고도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송몽 등은 물론이고 한립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천뢰자다! 나도 천뢰자를 맞고도 살아남을 축기기 수사가 있을지는 몰랐구나.”
한립이 탄식했다. 동시에 두 손을 휘저어 십여 개의 꼭두각시 야수와 병사들을 늘어놓았고 그것들은 점차 모습을 드러낼 인물을 조준하고 있었다.
황제의 모습이 드러나자 송몽 등은 준비하고 있던 법기로 기습을 감행했으나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모든 법기가 주인의 통제를 잃어버렸다.
이어서 핏자국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황제가 악랄한 눈빛으로 한립을 노려보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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