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령호 사조
령호 사조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장내를 정리했다.
“조용! 이미 상대의 수에 당해 열세인데, 이제와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겠느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본 곡이 멸문지화의 위기를 피하는 것이다. 전방의 수사들은 기껏해야 이, 삼 일밖에 버티지 못할 것이니 그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월국에서 철수해야 한다.”
‘월국에서 철수를 한다고? ’
철수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대청 내의 제자들이 모두 놀라 입을 다물었다.
월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라 아무도 먼저 나서 입을 열지 못했다.
“어찌, 싫더냐?”
“사조님과 다른 원영기 선배님들께서 나서셔도 마도인들을 격퇴시키실 수 없는 것 입니까?”
결국 서른 살 정도의 청년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나와 몇몇 늙은이들이 협공한다면야 당연히 격퇴시킬 수 있다.”
령호 사조는 전혀 주저 없이 답했다.
“그럼 어찌…….”
령호 사조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제자들은 그간 알 수 없었던 사정을 알려주었다.
“대단한 명성을 지닌 마도육종에는 원영기 수사가 없을 것 같으냐? 벌써 그 쪽 늙은이들과 몇 번이나 겨루어 봤으나 우리 쪽이 열세였다.
그리하여 상대의 뜻에 따라 맹세를 하길 그들과 우리 모두 이번 대전에 참여하지 않고 결단기 수준의 수사들까지만 전쟁에 관여하기로 합의를 해놓았다.”
한립도 드디어 원영기 이상의 수사들이 어째서 이런 대사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달아나지 않는다면 황풍곡 전체가 포위당해 일망타진 될 것이고 맹세에 따라 난 너희를 구해줄 수 없다. 우리 문파는 반드시 월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지.
우리뿐 아니라 나머지 다섯 개 문파들도 함께 월국에서 철수할 터이니 아무리 낯선 지방에 정착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야. 언젠가 실력을 키워 월국을 다시 수복하면 그만이다.”
령호 사조의 결심이 이미 섰으니 비록 반대할 마음이 있더라도 아무도 나설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명을 따라야 했다.
“다른 것은 모두 준비가 되었고 일부만 위험한 일을 맡아주면 된다.”
금의 노인이 돌연 군중을 돌아보며 이리 말하자 모두 눈치만 보았다.
“내가 지목하는 이들은 모두 일어나 다른 전각으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남아 종 장문의 안배에 따른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 무표정하게 축기기 제자들 사이를 누볐다.
“너, 그리고 너…….”
모여 있던 이들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지목 당했고 한립과 마 노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인원을 지정한 령호 사조는 즉시 의사전을 떠났다. 한립 등도 불안하긴 했으나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의사전 뒤쪽에 위치한 전각 내에서 령호 사조가 뒷짐을 지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십 명의 수사들이 모두 들어서자 그는 평이하게 말했다.
“너희는 자질이 나쁘지 않거나 익힌 공법이 특수하니 본문이 재기할 기반이 될 인재들이다. 그러니 반나절 동안 짐을 챙겨 황 사질을 따라 먼저 철수한다.”
그 소리에 놀란 한 제자가 나섰다.
“사조님, 마도인들은 이틀 후에야 방어선을 뚫을 것인데 이리 서두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흥! 전면의 방어선이 뚫리는 것은 이틀 후에야 가능하겠지만 너희는 상대가 우리가 떠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듯싶으냐. 벌써 각 문파를 습격하려 일부가 방어선을 우회했다.
그들의 임무는 우리의 철수를 막는 것이겠지. 그러니 의사전에 남은 이들이 우릴 위해 시간을 벌 동안 너희는 반드시 탈출에 성공해야 한다.
만일 짐을 챙기는 동안 이 사실을 흘리는 자는 내가 나서서 처리할 것이야.”
“예!”
금의 노인이 냉혹하게 명하자 수사들이 모두 흠칫 놀라며 명을 받들었다.
* * *
한립을 포함한 축기기 수사들은 공손히 예를 올리고 모두 짐을 챙기러 떠났다.
마 노인과 한립도 각자의 거처로 흩어졌는데 모두 생각할 것이 많아 머리가 터질 듯했다.
한립은 비교적 먼 곳에 거처가 있기에 신풍주를 이용해 전속력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월국에서 철수한다는 령호 사조의 말에 따르면 목숨도 부지하고 앞으로 인원부족으로 상면의 신임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은 축기기 수사들은 황풍곡을 재건하고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대량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 수련할 시간을 누리지 못할 것 또한 분명했다.
모든 혼란이 수습되고 여섯 문파가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한립은 결단을 할 최상의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런 미래를 한립이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달아나려 해도 저 노인의 의식이 감시를 하고 있을 테니 태악산맥을 벗어나기도 전에 탈영병으로 간주돼 죽을 것이다.
진작 이럴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도망가지 않은 자신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고분고분히 거처로 돌아왔다.
그는 침실로 달려가 부적이 든 저물대들을 전부 품에 챙기고 저장고로 가 남은 약재들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안의 샘물이 있는 밀실의 문을 붕괴시켜 그곳의 존재를 감추었다.
당장 자신이 쓸 일이 요원한데다 마도인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둘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도면밀하게 뒷정리를 한 그는 다시 한 번 거처를 둘러보며 빠뜨린 것이 없는 지 확인했다. 그리고 곡혼을 불러내고 전도오행진의 깃발과 원반을 회수했다.
진법의 결계가 사라지자 거처의 대문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립은 돌연 두 손에서 한 쌍의 검은 빛 줄기를 쏘아 거처가 위치한 벼랑을 무너뜨렸고 그렇게 동굴의 입구는 사라졌다.
다시 곡혼을 데리고 신풍주에 오른 그는 하늘을 한 바퀴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가 곡혼을 밖에 두고 막 의사전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이들도 거의 다 돌아와 있었다.
놀라운 점은 수십 명의 축기기 수사 외에도 수백 명의 연기기 제자들이 함께였다는 것이다.
‘이들도 함께 철수를 한단 말인가? ’
무리를 둘러보니 저 멀리 마 노인과 소취인이 함께 서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히 한립의 발걸음이 그들에게 향했다.
“한 사숙님!”
소취인이 한립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연기기 제자들도 함께 가는 것입니까?”
다른 이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 모두 자질이 좋거나 특수한 신분의 제자들로 버리고 갈 수 없는 이들이지. 내 제자도 자질이 뛰어나 이곳에 있는 게야.”
마 노인이 담담히 답하다 소취인 이야기에서는 조금 뿌듯함을 드러냈다.
얼마 후 령호 사조가 중년인 한 명과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들어온 첩보에 따르면 부근에 이미 마도 수사들이 모습을 보였다더구나. 나와 남은 이들이 그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너희는 바로 황 사질의 인도를 따라 움직인다.”
령호 사조는 진중한 표정이었다. 마도가 이렇게 빨리 도달했다는 소식에 모두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령호 사조 옆에 있던 중년인이 냉랭히 외쳤다.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니 명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야. 만일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반도로 보아 즉결 처분한다. 출발!”
이 말을 끝으로 옆에 서있던 사조에게 깊이 허리를 숙인 그는 모두를 이끌고 전각을 나섰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황 사숙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수백 명이 대오를 이루어 동북 방향을 향해 날아올랐다.
반나절 후 모든 이들은 태악산맥을 벗어나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립의 신풍주는 비교적 앞쪽에서 날고 있었는데 마 노인이 하얀 나룻배가 제법 큰 것을 보고는 소취인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소취인은 한립 뒤에 서 있는 곡혼에 흥미가 생겼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신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마 노인은 바로 무언가 이상한 것을 알고는 무어라 묻더니 관심을 꺼버렸다.
태악산맥을 겨우 백여 리 벗어났을 때 돌연 뒤쪽에서 눈을 찌르는 듯한 백광이 쫓아와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끌던 황 사숙에게 떨어졌다.
그것은 뜻밖에도 하얀 빛이 요란한 단검에 서신을 꽂아 날린 것이었다.
중년인의 얼굴이 굳으며 바로 모두를 세웠다.
그 후 서신을 챙기고 단검을 허공에 던지자 그것은 원래 왔던 방향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 사숙이 서신을 읽고는 어두워진 얼굴로 의식을 거두었고 곧 고개를 숙이고 숙고하는 것이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이 분명했다.
“축기기 수사들은 앞으로 나서거라. 상황이 달라졌으니 새로운 임무를 내리겠다.”
한립 등 축기기 수사들은 놀랐지만 어쩔 수 없이 법기를 타고 앞으로 가야 했고 소취인은 눈치 있게 먼저 신풍주에서 뛰어내렸다.
“사숙, 무슨 일이 난 것입니까?”
방금 단검에 꽂힌 서신을 받는 것을 모두 똑똑히 보았다.
“사조님께서 전하길 마도인에게 우리 행적이 벌써 발각되었다 한다. 그들은 우리의 전략을 파악하였는지 수사를 둘로 나누어 일부는 황풍곡에 일부는 우리 뒤를 쫓고 있다. 대다수의 안전을 위해 다시 일부를 선발해 그들의 주의를 끌겠다. 지정된 수사들은 나를 따라 적을 막고 나머지는 계속 달아난다.”
황 사숙이 차갑게 일갈했다. 그의 말에 모두의 가슴이 철렁했다.
누구라도 지금 남아 적을 막는다면 십중팔구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 눈빛을 피했으나 황 사숙은 가차 없이 손짓을 하며 바로 스무 명 정도의 축기기 수사를 선발했다.
불행히 한립은 그 중에 뽑혔고 마 노인은 뽑히지 않았다.
결국 황 사숙이 지정한 축기기 수사 하나가 나머지를 이끌고 출발하고 스무 명 정도가 단촐하게 남았다.
“너희 중 대다수가 이번 임무를 탐탁지 않게 여김을 잘 알고 있다. 허나 내가 원하는 것은 죽을 힘을 다해 상대와 맞서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추적자들을 습격해 주의를 끌고 도망쳐 앞선 이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만 하면 된다.”
황 사숙은 차분히 임무를 설명하며 품에서 스무장의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표시된 지형을 익히고 없애거라! 모두 흩어진 후에 이 장소에서 다시 집결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에서 날아간 두루마리가 각각의 수사에게 전달되었다.
그의 침착하고 단호한 명령에 이미 많은 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사실 상대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것이라면 살 확률은 크게 높아진다. 모두 두루마리를 들고 지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립은 그것을 손에 들고 슬쩍 살피면서도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이곳에 남아 적을 맞게 된다면 그에겐 달아날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결단을 위해 무너져가는 황풍곡에 평생을 걸 수는 없었다.
황 사숙은 모두가 두루마리를 확인하고 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그의 손에서 노란 빛이 번뜩이더니 작은 깃발이 나타났다. 하얀 깃발이었지만 노란 빛을 발산했는데 위에 무슨 수가 놓아져 있는지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풍운번(風云幡)을 이용해 행적을 감춰줄 것이니 적이 나타나면 즉시 기습한다.”
깃발에서 하얀 안개가 넘실거리더니 축기기 수사들 모두를 가릴 만한 거대한 구름이 형성되었다.
짙은 구름 속에 있어 외부로는 노출이 안 되면서도 시야는 또렷하게 확보되니 몸을 숨기기에 적합했다.
황 사숙의 수법에 따라 거대한 구름이 무리를 데리고 수직으로 상승하니 다른 구름들과 한 데 섞여 전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한립은 몰래 혀를 찼다.
운번이란 법보는 자신의 청화장(靑火瘴)과 비슷한 농무를 형성하지만 훨씬 뛰어났다.
청화장은 일단 범위가 매우 협소했고 오직 스스로만을 감출 수 있었다. 아마 동문들은 청화장에 들어가자마자 중독되기 시작될 것이다.
한립의 시선이 황 사숙에게 갔다. 그는 지금 구름의 중심에 가부좌를 하고 떠서는 꼼짝 않고 있었고 축기기 제자 둘이 곁에서 호법을 서고 있었다.
사숙은 지금 의식을 퍼뜨려 적의 종적을 찾고 있었다. 결단기 수사의 강한 의식이라면 방원 백리 내의 상황은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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