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천화술
한립은 자신도 신풍주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법력을 점검했다. 곧 있을 일전은 위험하기 그지없었기에 준비가 필요했다. 곡혼이 바로 그 뒤에 서서 충성스럽게 주위를 경계했다.
얼마가 지나자 황 사숙이 서서히 눈을 떴다.
“적이 다가온다. 그들의 경로와 벗어나 있으니 그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무어라 하지도 않고 바로 풍운번을 구동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안에 숨어있던 이들도 전속력으로 법기를 운용해 황 사숙을 따랐다.
한립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을 알고 거대한 은검을 꺼내 곡혼에게 던져 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전력을 올릴 만한 일을 찾도록 한 것이다.
“곧 적이 당도할 것이니 모두 준비하라!”
그가 감지한 적의 경로에 도착했던지 명이 떨어졌다. 동시에 스무 명 정도의 수사들이 각자의 법기를 구동하고 온몸에 방어술법을 거는 듯 분주해졌다.
한립은 붉은 색과 푸른색이 혼재된 구슬 두 개를 꺼내 부딪쳤다.
‘펑’
청홍색의 짙은 안개가 구술 속에서 분출되어 순식간에 한립을 덮더니 직경이 오륙 장은 될 법한 구름의 형태가 되어 그의 흔적을 지워주었다.
그가 청화장을 이용해 구름 속에 구름을 만들어 내자 주변의 수사들은 어리둥절해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동문들의 의문을 풀어줄 마음이 없었기에 한립은 그저 구각법기를 쥐고 다른 손에는 평범한 남색 비도를 준비했다.
놀랍게도 가장 중요한 오룡탈을 꺼내 들지 않았는데 이번 작전은 공격력이 낮은 법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맡은 바 임무대로 습격은 하면서도 적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긴장해서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빨리 흘러 순식간에 반각이 지났으나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슬슬 초조해진 이들이 황 사숙 쪽을 힐끔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좋은 황 사숙도 무언가 이상했는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시 수색해 보겠다.”
‘쿠르르르!’
말을 마치자 다시 가부좌를 한 그가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돌연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모두가 고개를 드니 황풍곡 제자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언제부터인지 온 하늘이 붉은 색으로 덮여 모든 구름이 노을빛이었고 그것들이 요동을 치며 갈라지고 흩어지고 하면서 이런 거대한 폭음을 내고 있었다.
“저게 뭐란 말인가!”
소리친 것은 한립 주변의 축기기 수사였지만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다.
“중급 고계 법술 천화술(天火術)이니 모두 조심하거라! 저 용암 한 방울 한 방울이 축기기 수사의 일격과 맞먹으니 막아내지 못한다면 재가 될 것이야.”
황 사숙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황풍곡 무리가 그들을 기습하려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매복에 당한 셈이었다.
“그럼 어서 도망쳐야지요!”
한 수사가 당황해서 소리치고는 법기를 전속력으로 몰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황 사숙의 눈에 한기가 서리더니 단호히 명했다.
“상대의 술법이 완성되었으니 이미 늦었다. 달아나서는 법술의 범위를 빠져 나갈 수 없으니 모두 힘을 합쳐 연합 방어막을 펼친다.”
명이 떨어지자 나머지 축기기 제자들이 신속히 영력을 방출해 남색이 도는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해 냈다.
방어막이 막 그들을 덮은 찰나 중급 고계 법술이 드디어 날뛰기 시작하니 선홍색의 용암 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간히 떨어져 내리더니 이제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수직으로 낙하했기에 대다수는 그들의 방어막을 피해갔고 극히 일부만 황풍곡 수사들을 덮쳤다.
모두가 힘을 합친 방어막이 충분히 술법의 공격을 무마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떨어져 내리는 용암의 속도는 더욱 빨라져만 가니 한립 등 다른 축기기 수사의 영력 역시 순식간에 소모되었다.
그들을 덮은 남색 광채가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다행이 상대의 법술도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방어막이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붉은 구름들이 종적을 감추기 시작하자 초조해하던 수사들은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채 한숨 돌리기도 전에 얼굴이 굳었다.
붉은 구름이 사라진 자리에는 백여 명의 수사들이 있었는데 전부 그들을 죽이려는 마도육종들이었다.
급박한 순간이었으나 그래도 백여 명이 모두 축기기 수사들이란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결단기 수사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희소식이었다.
그들이 이미 많은 법력을 허비했지만 결단기 수사인 황 사숙이 나서면 크게 밀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운법에 가린 흔적을 어찌 알고 우릴 찾아낸 것이냐?”
황 사숙이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
“그 답은 내가 해드리지요.”
그때 하늘에서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황 사숙은 흠칫해서 시선을 돌렸다.
일남일녀가 천천히 하강해 그들에게 내려오고 있었다.
사내는 백발에 피골이 상접해 바람에도 나부낄 정도였고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데다 풍만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시선을 끌었다.
적진에 결단기 수사가 둘이나 나타났으니 일이 틀어져도 크게 틀어진 것이다.
“홍분해골(紅粉骸骨)?”
황 사숙은 둘의 모습을 파악하고는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상대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법기를 거두어 하얀 구름을 흩어버렸다.
강적을 마주한 그는 사질들을 챙길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하, 우리 부부를 알아보실 줄은 몰랐네요. 저희는 수사를 모르는데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그래도 듣자 하니 황풍곡에 얼음장 같은 얼굴의 수사가 풍운번(風云幡)이란 법보를 사용한다던데 그게 당신인 듯 하군요.”
여인이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태도가 적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이 짙어 질수록 황 사숙의 얼굴은 도리어 더 싸늘해졌고 그들의 장난에 놀아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재미없는 남자네. 그냥 죽여야겠어.”
여인이 입을 비죽거리더니 갑자기 돌변했다.
“좋지, 사매가 그리 말한다면 내 당연히 죽여줘야지.”
그 옆에선 해골 같은 사내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한립 등의 귓가에 황 사숙의 전음이 울렸다.
“내가 움직이는 순간 모두 달아난다.”
전음을 보낸 황 사숙의 풍운번이 노란빛을 터뜨렸고 동시에 농밀한 안개가 나와 적들을 가두었다.
“죽고 싶구나!”
안개 속에서 해골 같은 이의 외침과 여인의 웃음소리가 동시에 들려왔고 이어 엄청난 굉음이 그 안에서 울려 퍼졌다. 황 사숙과 마도의 결단기 수사 둘이 손속을 겨루기 시작한 것이다.
황풍곡 축기기 수사들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풍운번에서 안개가 분출되는 동시에 사방으로 법기를 타고 흩어졌다.
한립은 신풍주의 쾌속에 의해 당연히 남들보다 빨리 튀어나갔다.
그가 향한 방향은 가장 많은 수사들이 날아간 방향이었고 그 중엔 비교적 약한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동문은 아무도 없는 방향을 향해 뛰쳐나가 한립이 고개를 내저었다. 순식간에 혼란을 틈타 포위의 가장 바깥부근에 이르렀다.
이제 짙었던 안개가 많이 옅어져 마도인들도 한립의 윤곽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청화장을 두른 탓에 다른 이들에겐 색깔이 이상한 구름 뭉치로 보이니 일순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세 명의 마도 수사들이 손을 들어 한 줄기 금빛과 세 개의 노란 물체 그리고 검은 기운이 일시에 한립을 덮치려 했다.
한립이 콧방귀를 끼며 손가락으로 앞에 떠있던 구각법기를 건드리자 거북 등딱지가 수배로 커지며 공격을 막아섰다. 동시에 발밑으로 영력이 방출되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는 미리 작전을 짜 놓은 바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들과 승부를 가려 법력을 소모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신속히 달아나야 했다. 조금만 지체했다간 이들의 포위망이 견고해져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린순 보다 단단한 구각법기가 충분히 공격을 막아줄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역시 구각법기를 앞세워 금빛과 노란 물체는 통과할 수 있었으나 검은 기운은 영민하게 경로를 바꾸어 미끄러지듯 방패를 지나 한립의 측면을 노렸다.
거대한 귀신 머리로 변한 기운은 한립과 신풍주를 통째로 삼킬 기세였다.
그 모습에 한립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가 손을 들자 백 개에 달하는 불덩이들이 뿜어져 나가 귀신 머리를 완전히 분쇄해 버렸다.
한립은 이런 자질구레한 마도의 사공에 대해 도가 터있었다. 모든 공격을 가볍게 처리한 그가 그 틈을 타 순식간에 포위망을 벗어나 버렸다.
마도가 그들을 끈질기게 따라 붙었으나 한립이 그들을 기다려 줄 이유는 없었다.
신풍주는 비행 법기 중 보기 드문 걸작이라 뒤에서 쫓는 이들의 고함 소리가 점차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시간이 흐르자 아예 추적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더 이상 쫓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한립은 한참을 더 가서야 속도를 줄이고 곳곳을 살펴 밑으로 내려갔다.
지금 그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방금 연합해서 보호막을 유지하느라 법력의 반절은 소비했고 거기에 미친 듯 질주하느라 남아있는 법력이 거의 없었으니 반드시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내린 곳은 어느 황산으로 청화장의 독무를 거두고 은밀히 거대한 암석 아래로 숨어들었다.
이어 저물대에서 중계 남색 영석을 꺼낸 법력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곡혼이 그의 뒤에서 주위를 지켜주었다.
그가 가부좌를 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누군가 다급히 달아나며 그 뒤를 대여섯 명이 쫓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한립처럼 포위를 벗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한립이 다른 사람의 일까지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그는 바로 무의식의 세계로 접어들어 몸 상태를 회복하는 데만 전력을 다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손실된 법력이 칠성 이상 보충되었다.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조금도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기운 것이 어둠을 틈타 달아나기엔 적기라 할 수 있었다.
한립은 우선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의식을 주의로 퍼뜨려 탐색을 진행했다.
마도인들의 행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벌써 그들을 해치우고 나머지 무리를 쫓으러 간 것 같았다.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 확인한 상대의 무력과 머리수라면 먼저 달아난 무리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곡혼을 챙긴 그는 바로 신풍주를 꺼내 원무국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비록 원무국 수사들도 대부분이 월국에 파견을 나와 있었으나 마도육종이 월국 수도계를 완전히 장악하려면 수개월은 걸릴 테니 잠시 동안은 안전할 것이다.
그는 흩어지기 전 모이기로 한 장소에 찾아갈 마음이 없었다. 이미 마도육종의 추적이 시작되었으니 그들의 종적을 따라 모두 일망타진될 일만 남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원래도 이번 임무를 기회 삼아 달아날 생각이었다. 황풍곡을 재건하며 고계 관사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마도가 여러 나라를 차지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도맹과의 대대적 전쟁이 시작될 터였다. 그러면 이 천남 지역 전체는 지옥이 된다.
그는 그저 조용히 수련을 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일단 원무국으로 가 폭풍우를 피하고 고대 전송진의 수리 상황에 따라 다음 결정을 내려야 할 듯 했다.
만일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고대 전송진을 이용해 다른 낯선 지역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묵묵히 여러 가정들을 따져 보며 신풍주와 함께 하늘을 갈랐다.
* * *
이틀 후, 겨우 월국과 원무국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월국의 모습을 눈에 담곤 원무국으로 진입했다.
자신이 지나간 이 길에 겨우 반나절 후 수십 명의 마도인들이 도착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채였다.
그들의 임무는 자연히 이곳에 촘촘히 매복해 원무국 방향으로 달아나는 월국 수사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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