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뜻밖의 만남
이후 모란족 법사가 점차 늘어나며 영기가 흐르는 지역과 영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도저히 대초원에서는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어졌다.
어쨌든 초원이란 지형이 수도자가 수행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모란족 법사들은 호시탐탐 9개 국가의 풍부한 자원을 노리게 되었고 빈번히 국경을 넘어 영석 광산 등을 털어갔다.
9개 국가의 수도계가 목숨 같은 자원을 그냥 내줄 리가 없었느니 피비린내 나는 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각 국가가 따로 전투를 벌여 모란족의 연합군에 대패했고 영토 일부를 잃기까지 했다.
이후 상대의 무서움을 깨달은 9개 국가의 수도계가 서둘러 구국맹(九國盟)을 맺으니 겨우 상대와 호각을 이루며 잃었던 영토를 찾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단맛을 본 모란족도 가만히 있지 않으니 세월이 지날수록 이 분쟁 속에 죽는 자들만 늘어갔다. 이렇게 쌓인 모란족과 9개 국가의 원한은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모란족과 연족 간의 원한으로 자리 매김 했다.
이제 모란족이 구국맹 영토에는 한 발자국도 들일 수 없듯이 모란초원 백리 내에도 연족이 들어가 살아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모란족에 얼마나 많은 수도자가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란 대초원은 너무 넓어서 구국맹과 분란을 빚었던 부족들은 그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란대초원이 무변해처럼 끝없이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모란족인들도 초원을 가로지르면 다섯 번이나 같은 계절이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넓은 평야였다. 게다가 모란초원은 모란족이 자칭하는 것일 뿐 그곳엔 그들의 천적인 돌올인(突兀人)이 사는 지역도 있었다.
역시 유목민족인 돌올인들은 이 거대한 초원을 천란초원(天瀾草原)이라 불렀는데 그들이 신봉하는 전설 속의 요수, 천란수를 수호신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민족이 같은 초원에 있으니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관계가 되었다. 두 민족의 전사들과 수도자들은 수대에 거쳐 서로를 죽였다.
양쪽은 매 100년마다 초원 중앙에서 대대적인 전투를 벌여 땅에서는 수 천 수만의 범인 전사들이 하늘에서는 수도자들이 다툼을 벌였다.
당연히 최종 승패를 가리는 것은 천상의 싸움이었다. 이런 내용들은 한립도 문파에 보관된 경전을 통해 익힌 것이다.
또 경전에 적혀있기로는 초원의 끝에는 거대한 제국이 있어서 천남지역 전체를 합쳐도 그곳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했다.
사실 그 내용은 한립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천남지역 보다 열 배나 큰 나라라면 도무지 얼마만한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월국의 여섯 문파가 인근 국가에 기반을 마련하려면 분명 구국맹이 눈치를 챌 것이다.
어쨌든 구국맹 수도계도 모란족 법사들과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을 격차로 전투를 이어가는 형편이니 대규모의 조력자를 반기긴 할 것이다.
다만 각 문파가 그들 국가 내에서 얼마나 좋은 지역을 차지할 수 있을 지는 각 문파의 역량에 달렸다. 이렇게 되면 한립은 천남지역 남쪽으로도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난다.
이런 생각을 이전에 안한 것은 아니나 결정을 앞두고 차분히 정보를 조합해 보니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일단 고대 전송진을 복구하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 했다.
사실 고대 전송진으로 날아간 지역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 * *
결심이 선 한립은 조용히 법기에 올라 산봉우리를 떠났다.
한립은 일단 천성종 시장에 가서 전송진을 복구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월국으로 향했다.
이번엔 처음 원무국으로 들어올 때 거쳤던 경로가 아니라 일부러 크게 원을 그리며 국경의 가장 구석진 곳을 노려 잠입했다.
월국은 이미 마도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진배없으니 언제든 추살 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조심한 덕분에 또 한 번 큰 위험을 비켜갔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도는 이미 상당수의 제자들을 국경에 파견해 밤낮없이 지키기 시작했고 원래 그가 이용하던 곳으로 지났다면 아무리 조심했어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몰래 월국에 들어와 인적이 드문 길만을 골라 이동하니 안전하게 고대 전송진이 숨겨진 영석 광산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영석 광산도 마도인들의 관리 하에 있었다.
한립이 멀리서 관찰하니 광산에는 녹색과 흰색 두 종류의 의복을 입은 마도 제자들이 있었다. 청록색 해골과 분홍색 도화 꽃 표식을 보니 귀령문과 합환종 출신들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마도인들의 신분을 알아낸 그는 조용히 은신술을 펼쳐 숨겨진 지하통로로 들어섰다.
그가 이전에 막아 놓은 입구를 법기를 이용해 뚫고 들어가 일부가 훼손된 고대 전송진 앞에 당도했다. 고대 전송진이 아직까지 멀쩡한 것만으로도 그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우선 새로 얻은 환영 결계용 진법 법기를 이용해 숨겨둔 지하입구를 철저히 감추고 개선된 전도오행진 법기로는 고대 전송진이 있는 동굴을 보호했다.
이렇게 해두어야 마도인들에게 발각 당해도 시간을 벌수가 있었다. 적당한 조치를 취한 한립은 그제야 안심하고 전송진 복구에 전념했다.
신여음이 준 서책에는 고대 전송진은 정밀해서 작은 선 하나만 잘못 그어도 전송진 전체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작업의 진행은 더딜 수밖에는 없었다.
꼬박 7일이 지나서야 전송진 복구가 절반쯤 마무리 되었을 때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는 위기에 봉착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최대한 넉넉히 준비했건만 그가 복구 작업을 하며 실수를 해 많은 부분을 날려 먹은 것이다.
사실 그가 무슨 전문 연기사나 진법사가 아니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손재주가 부족하니 계속 실수를 연발했고 겨우 반절을 복구하고 서는 재료가 다 떨어졌다.
다시 한 번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았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영석 광산의 동쪽으로 며칠만 가면 어떤 수도 가문이 관리하는 작은 시장이 있었다.
비록 시장 규모가 작아도 철이나 수정, 옥 등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는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송진은 핵심부분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서 복구하는데 아주 귀한 재료가 필요한것은 아니었다.
지금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은 혼란스런 상황에 그 일가가 시장거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거기까지 가서 맨 손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다.
고민하던 한립은 날이 저물자 어둠을 틈타 동굴을 빠져 나왔고 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만일 지금 가는 곳에서 재료를 구하지 못한다면 다시 원무국으로 돌아가서 재료를 구해 돌아오는 방법밖엔 없었다. 어쨌든 고대 전송진은 반드시 복구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칠흑 같은 밤에는 동쪽으로 쉼 없이 날아가며 조금씩 동이 틀 기미가 보이면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그가 아래쪽으로 시선을 주는데 돌연 안색이 변해 어느 한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의식에 어떤 무리가 전속력으로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수직으로 하강해 어둠 속에 몸을 감추었다.
몸을 숨기고 영기를 감추자마자 강렬한 하얀 빛이 번뜩이며 다가왔다. 그 백광 뒤로는 붉은 운무가 귀곡성을 내며 바짝 따라붙었고 그 옆에서 노을빛 같은 것도 보였다.
숲에 숨어서 올려다보던 한립은 백광이나 노을빛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핏빛 구름만이 눈에 띄었다.
‘저건 분명 귀령문 소주의 마공이었는데 설마 그가 이곳에? ’
귀령문 소주의 위력을 떠올리니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 앞서던 백광이 이곳을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섰고, 검 위에 서있는 하얀 옷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인은 삿갓을 쓰고 있었는데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어린 녀석들이 날 이리 쫓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그 냉랭한 목소리가 한립의 귓가에 울리자 그는 거의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이, 이건 남궁완의 목소리잖아. 설마…….’
그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여인은 짧은 만남이었으나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 이 목소리는 정말 남궁완과 비슷했는데 다만 목이 조금 잠겨 있는 듯 했다.
한립 뿐 아니라 그 뒤를 쫓던 피 구름이나 분홍빛 안의 인물들도 놀랐던지 그녀와 십여 장을 남기고 멈춰 섰다.
이어 핏빛과 분홍빛이 옅어지며 그 안의 수사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눈에 익은 핏빛 구름 안에서는 역시 귀령문 소주 왕선이 있었고 노을빛이 흩어진 곳에는 연령보에서 본 아름다운 미남과, 실종된 동훤인이 있었다.
동훤아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어서 이전의 여우같은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축기 초기였던 수준 역시 축기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기이한 미남과 나란히 선 그녀를 본 한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때 귀령문 소주와 아름다운 사내는 서로 주저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여인은 엄월종의 공방전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마도 수사들과 결단기 수사까지 죽였다. 그녀가 힘을 다해 이들과 동귀어진 하려 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마도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먼저 나서지 않았다.
수려한 사내가 눈을 굴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복면의 여인에게 말했다.
“만일 이전에 남궁 선배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물러섰을 테지만, 지금은 엄월종과 합환종의 인연을 생각해 제가 물러나려 해도 귀령문 소주인 왕 형이 그리 하려 할 지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모든 문제를 말로 풀자는 태도를 보이고 슬쩍 화살을 왕선에게 돌렸다. 왕선이 그 말을 듣고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도 희로애락을 아무 때나 드러내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사내를 돌아봤다.
“합환종에 현월흡음공(玄月吸陰功)이란 비술이 있다던데, 이 공법을 수련한 이는 여인의 극한 음기를 흡입해 법력을 증진할 수 있다지? 결단기 선배님의 수행을 흡수해 전 공자가 축기 중기에서 벗어나 후기에 이를 날이 멀지 않았겠어!”
왕선이 허를 찌르자 수려한 사내의 얼굴이 조금 비틀어졌다. 상대가 자신이 죽어라 결단기 수사를 쫓는 이유를 간파하고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동시에 복면 여인의 눈에도 불꽃이 튀기며 이를 악물었다.
“그 놈이 그 놈이구나. 모두 죽거라!”
그녀의 손이 들리고 뿌연 기운의 검광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왕선과 사내가 대경실색해 혈무와 노을빛으로 공격을 막고는 뒤로 물러났다.
요사한 사내와 함께 있던 동훤인까지 모두 뒤로 물러섰다. 결단기 수사의 분노가 담긴 일격은 그들이 쉽게 막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복면여인의 구동에 하늘을 뒤덮던 하얀 검광이 십여 장을 날아가다 돌연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법기에 올라선 여인도 비틀거리며 언제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 모습에 기회라 여긴 귀령문 소주와 수려한 사내가 동시에 튀어나갔다.
한립도 안색이 변해 저물대를 스치자 손에 열세 개의 홍선둔광침(紅綫遁光針)이 들렸다.
지금 나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만 남궁완이 이렇게 죽도록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이기적이고 차가운 것은 분명했지만 무정하거나 냉혹한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귀령문 소주와 사내를 상대로 이기지는 못해도 달아날 자신은 충분했다.
그가 막 손을 쓰려는데 하늘 위의 상황이 또 뒤집어졌다. 검에서 불안정하게 비틀거리던 여인이 왕선과 사내가 다가오자 돌연 서늘한 눈빛을 흘린 것이다.
왕선과 사내도 깜짝 놀라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았지만 거리를 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여인의 두 손이 들리며 무수히 많은 검의 기운이 하늘을 뒤덮을 듯 세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그 장면에 한립도 조금 안심을 하고 법기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여인의 뿜어내는 회백색 광채 속에서도 그들은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특히 수려한 사내와 동훤인이 동시에 방출한 청색과 홍색이 섞인 빛은 놀랍게도 여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한립이 이를 확인하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자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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