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몸 밖의 몸
이튿날 아침, 한립은 고 선생에게 남기는 서신 한 장을 탁자에 남기고는 곡혼을 데리고 인근 마을로 날아갔다.
마을에서 괴성도와 인근 해역 지도를 구입한 그는 바로 항구로 향했다.
왕장청의 말에 따르면 괴성도 서쪽 지역에는 본 섬 최대의 성인 괴성성(魁星城)이 있었는데 그곳에 전문적으로 선사들의 물건을 매매하는 거리인 천도가(天都街)가 있었다.
사실 항구가 아니라 그곳에 가 바다 지역의 선사들이 쓰는 물건과 어떤 공법을 익히는지 견식하고 싶었으나 가지 못한 것이다.
그의 성취가 너무 낮아 선사들이 잔뜩 모이는 곳은 불안한 마음에 꺼리게 되었다. 어느 새 항구에 다다른 그는 홀로 중얼거렸다.
성취가 낮아지니 담도 작아진 것 같네.
그가 청운산의 거처를 포기하고 영기가 부족한 소환도를 선택한 것은 오직 신비한 병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외딴 섬이어야만 마음껏 영초를 키우고 엄청난 속도로 성취를 이루어도 다른 선사들의 주의를 끌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분명 수련 속도는 조금 못 미치겠지만 소환도의 영기로도 영초를 키우기엔 충분할 것이다.
어쨌든 단약을 먹어 생긴 영력을 수련을 통해 법력으로 소화하는 그이니 실제 주변 영기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립은 괴성도를 감싼 거대한 금제를 벗어나 지도에 표시된 소환도 방향으로 날아갔다.
지도상에는 괴성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신풍주를 타고 하루 밤낮을 꼬박 날아서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소환도 상공에 도착한 한립은 섬을 한 바퀴를 돌고서야 진법의 입구로 보이는 작은 부둣가를 발견했다. 그는 서서히 부둣가를 향해 하강했다.
부둣가에는 열댓 명의 어민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한립과 곡혼을 보더니 모여들었다.
“흑귀가 선사 대인을 뵙습니다.”
모두가 분분히 예를 올렸으나 그 중 튼실한 체구에 새까만 얼굴을 한 사내 하나가 나서 공손히 말을 걸었다. 아마 어민들의 우두머리쯤인 듯 했다.
일단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한립은 진지하게 물었다.
“여기가 소환도겠지?”
“그렇습니다, 선사 대인! 그런데 영석을 교체하러 오신 것입니까?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요.”
이곳이 소환도가 맞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놓은 한립은 모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난 영석을 교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 소환도를 관리하고, 이곳을 수련지로 삼아 머물러 온 것이다. 그러니 이후 그냥 한 선사라 부르면 된다.”
그는 사람들의 놀라는 눈빛을 뒤로 하고 다시 곡혼과 날아올라 섬의 중심부로 향했다.
* * *
소환섬 유일한 마을은 섬의 동부에 있어 부둣가와 아주 가까웠고 서쪽은 이십여리 정도가 작은 산맥이었다. 그 산맥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어 높은 쪽이 2, 300여 장 정도, 낮은 쪽이 100여 장 정도 높이였다.
한립은 공중에서 산봉우리를 내려다보다가 일단은 마을로 내려갔다.
곡혼과 그가 하늘에서 떨어지자 조금 소란이 일더니 마을 장로라는 노인이 나섰다.
노인에게 등선각에서 발급 받은 증명서를 보이자 장로는 앞으로 모든 일을 한립의 뜻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예를 갖췄다.
당연히 범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은 없었으므로 한립은 섬의 대강의 사정을 물으며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거두는 영석의 수량이 진법이 소모하는 영석을 얼마나 충당하는지를 물었다. 가장 관건이 되는 문제였다.
노인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수량을 언급하자 한립은 좀 울적해 졌다. 앞으로 소모할 영석의 대부분을 그가 충당하게 생긴 것이다.
중년 수사가 거주민들에게 영석을 거둘 수 있다 한 것은 전혀 실속이 없는 이야기였다. 속으로 중년 수사에게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마을 중앙에 있는 진법의 핵심을 살펴보았다.
잠시 살피며 필요한 영석의 수량을 파악한 한립은 노인을 불러다 1년치 영석을 미리 주었다. 또한 매년 그가 만든 거처로 와서 다음 해에 필요한 영석을 받아가도록 명했다.
이후 노인의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며 다시 섬의 서쪽으로 날아올랐다.
일단 섬 주민들이 소환산(小寰山)이라 부르는 산맥에 접어들자 옅지만 분명한 영기가 느껴져 그를 즐겁게 했다.
이후 신풍주에 탄 그는 높고 낮은 두 개의 산봉우리를 몇 번이나 맴돌았다.
영기가 농후한 쪽은 조금이라도 높은 산봉우리였지만 낮은 산봉우리가 굵직한 것이 거처를 마련하기에 적합한 면적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에 머물던 선사가 마련해 놓은 동굴이 그대로 있어 그것을 이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가 갑자기 눈을 빛내더니 결정을 내렸다.
낮은 쪽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간 한립은 법기를 이용해 지하 굴을 뚫기 시작했다. 반나절을 파내려 가자 지하 굴은 제법 규모가 커져서 직경이 두 장은 되었고 낮은 산봉우리 하단까지 이어졌다.
한립은 아예 지면까지 십여 장만을 남겨 놓은 채 굴의 방향을 틀어 높은 산봉우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닌 법기가 뛰어나고 곡혼의 도움까지 더해졌지만 건너편 산봉우리까지 이어진 통로를 뚫는 작업은 다음 날 낮까지 계속 됐다.
최후엔 천남 지역에 있던 동굴처럼 높은 산봉우리에도 새로운 동굴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태악 산맥의 거처와 똑같았다.
다만 출입구를 뚫지 않고 오직 옆 산봉우리와 이어진 지하통로 만이 유일한 통로란 점이 달랐다. 앞으론 이곳에서 진정한 수련과 영초 재배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두 산봉우리를 이어 진짜와 가짜 거처를 마련해 놓으면 훨씬 안전할 것이다. 모든 일을 마친 그는 전도오행진 법기들을 꺼내 낮은 산봉우리 쪽 입구 부근에 설치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허공에 떠올라 내려다보고는 조금 마음에 차지가 않았다.
한립은 신여음이 준 다른 진법 법기들 중 두 가지 강력한 법기들을 골랐다. 바로 천풍광렬진(天風狂烈陣)과 환형천라진(幻形天羅陣)이었다.
넓은 범위를 포함하는 두 개의 진법을 더 설치하자 두 개의 산봉우리가 모두 결계 안에 들어왔다.
비록 전도오행진에는 못 미쳐도 축기기 수사 이하에겐 골치 아픈 진법들이었다. 결단기 수사가 진법을 깨부수려 하지 않는 한 그의 거처는 안전했다.
다시 하늘에 떠 하얀 안개로 뒤덮인 산봉우리를 확인한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동굴로 돌아온 그는 휴식하기는커녕 더 바삐 움직였다.
일단 영초의 종자를 새 동굴의 비밀 약초밭에 심었다. 어쨌든 새싹은 터야 신비한 병의 녹색 액체로 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신비한 병을 법보 조각으로 덮어 약초 밭 한 쪽에 묻어두었다. 그리고 동굴에 내놓은 세밀한 작은 구명을 통해 영기를 흡수하고 녹색 액체를 생산하게 했다.
이어 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밀실을 만든 그는 어령종 수사에게 얻은 곤충 요괴를 기르는 방법을 참고해 하얀 거미와 다른 곤충 표본들을 풀어 놓았다. 물론 밀실의 환경을 조성하고 금제를 걸어 그것들이 달아나는 것을 막는 작업도 꼼꼼하게 진행했다.
충분한 식량까지 넣어주자 완벽한 사육장이 완성 됐다.
세심하게 거처를 꾸민 한립은 바로 수련에 들어가지 않고 월국 황실에서 얻은 회백색 서책을 저물대에서 꺼내 그곳에 실린 비밀 술법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가 오랫동안 펼치고 싶던 몸 밖의 몸을 만드는 신외화신(身外化身)의 술법도 그중 하나였다.
이전부터 이 술법을 익히려 결정을 내렸지만 오늘 자세히 세부사항을 점검하니 위험하기 그지없는 술법이었다.
서책에는 분신의 제련에 실패하면 나누어 흘려보낸 의식이 철저히 망가져 복구할 수가 없다고 명시 되어있었다.
수련자의 의식이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면 이런 손실로 미쳐버리거나 술법의 반사를 받아 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제련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신외화신의 육체는 그저 스스로 수행을 하고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고급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전설 속에 나오는 정말 같은 사람이 두 사람이 되는 그런 신묘한 경지와는 천지 차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혈응오행단이 있는 한립은 상당한 확률로 살단(煞丹)을 형성하게 할 수 있었기에 잘만하면 결단기에 이른 꼭두각시 호위가 생기는 셈이었다.
아무리 연기기 초기에 불과하더라도 결단기 수사 앞에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이 술법에서 가장 중요한 영력을 보유하고 아무 손상 없이 살아 있는 육체가 그의 손에 있었다.
곡혼은 혼백이 없으면서도 모든 조건에 적합했다.
보통 수도자의 원신을 거둬들이면 육체가 손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 다시 법술을 익히기 어려운 몸이 되곤 한다. 그래서 여러 선사들이 곡혼의 몸에서 영력의 파동을 느끼고 이상하다 여긴 것이다.
원신을 취하고도 육체가 멀쩡한 경우가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정말 100번 시도하면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미미한 확률이었다.
또한 신외화신의 비술은 육성 이하의 저계 수사의 몸에만 가능했다. 비록 이런 괴상한 조건이 왜 필요한 것인지 확실히는 몰랐으나 아마 의식을 나눠 육체를 통제할 때 쉽게 장악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문 대인과 임자동이 어떤 방식으로 곡혼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나 정말 신외화신의 술법을 펼치기에 최상의 대상인 듯 했다.
아마 월국 황제도 분신을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저계 수사들을 희생하고서야 겨우 하나를 완성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여러 개의 분신이 더 있었을 수도 있었다.
바닥에 앉은 한립은 한참을 헤아려 보다가 대연결을 이성까지 연성한 후 이 술법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때가 되면 신외화신 술법의 실패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대연결의 특수한 효과에 십분 매료되었다.
당연히 대연결을 수련하기 전에 축기기 초기 이상의 수행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말이다.
또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비술을 시도해보고 삼전중원공(三轉重元功)을 본격적으로 익혀야 했다. 어쨌든 청원검결과 삼전중원공이 그가 결단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한립은 앞으로의 수련 계획을 수립하고서야 밀실 중 하나로 들어가 단약을 복용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황룡단과 금수환만 복용해도 되었다. 축기단 같은 경우는 약성이 너무 강해 지금은 받아들이기 무리였고 아마 칠성에 이른 이후에나 복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축기 이전의 병목 현상이 없을 테니 조만간 다시 축기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매일 약초를 키우고 황룡단과 금수환을 만들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부좌를 하고 수련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 외에는 하얀 거미와 다른 기이한 곤충들을 훈련하는 것이 유일한 놀이였다. 그는 예상대로 겨우 1년여 시간에 연기기 구성에 이르러 이전보다 훨씬 빠른 진보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런 속도도 조금 답답했는지 겨우 구성에 이른 한립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축기단 3알을 복용했다.
엄청난 약성에 다시 1년여 동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는 결국 축기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야 고급 단약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선천진화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는 약방에 따라 축기기 이상에 효과가 있는 방약을 제련할 때였다.
연기산은 너무 많이 복용해 약효를 잃었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방의 단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축기 후기까지 수행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리 정해둔 계획대로 바로 경지를 높이는 데 매진하지 않고 일단 대연결과 분신술을 익히는 것으로 수련 방향을 틀었다.
이전에 대연결 일성을 수련할 때는 겨우 반년 만에 성공했었다.
오행법술 상에는 정말 자질이 떨어졌지만 대연결에는 천부적 자질이 있는 것이 분명했으니 이성을 익힐 때도 얼마 걸리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공법이 기술된 서책에 따르면 대연결 이성에 이르면 의식은 지금의 수배로 강해지고 백여 개의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했다. 이 공법과 꼭두각시들이 만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대연결 이성의 수련이 일성에 비해 어려우리란 것은 알았으나 소요된 시간이 한립의 예상을 훨씬 초과해 버렸다.
사실 2년 정도면 되리라 여겼던 과정이 6년을 밤낮없이 매진하고서야 겨우 성공했던 것이다. 원래 예상한 기간의 3배에 달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수련을 하던 그 시간을 떠올리니 아직도 두렵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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