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세월을 잊고 수련에 매진하다
대연결을 익힌 지 3년째 되는 해, 대도 교역권을 두고 겨루었던 등선각 수사의 제자가 그를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한립이 설치해 놓은 강력한 진법에 갇혀 삼일 밤낮을 고생하고는 우연히 출관한 한립에게 구출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한립은 대연결 수련이 너무 고돼서 5년 후 대결하기로 한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명의 공법을 이용해 기운을 숨긴 한립은 진법에 며칠을 갇혀 있어 격분해 제정신이 아닌 사내를 가볍게 이겼고 그는 다시 씩씩대며 돌아갔다.
이 일이 있고 3년 후 겨우 대연결 이성에 이른 그는 이제 신외화신의 술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며칠간 요양을 하며 원신의 상태를 극상으로 올려놓았고 연공을 하는 밀실에서 곡혼과 마주한 채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 밀실의 석문을 단단히 닫은 그는 뚫어져라 곡혼을 보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추악하지만 또 익숙한 얼굴을 보고 잊자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칠현문이며 노을산 그리고 그리운 벗의 얼굴 등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아무런 정신이 깃들지 않은 곡혼의 눈을 보자 한립은 그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풍차처럼 두 손을 회전하며 수결을 맺기 시작하자 전신에서 옅은 푸른빛이 방출되며 밀실 전체를 비추었다.
얼마 후 한립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땀방울이 맺혔고 두 눈에선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요란한 빛이 쏘아져 나왔다.
“합!”
그의 입에서 돌연 이상한 고함이 울리더니 두 손으로 괴이한 수결을 맺었다. 몸은 꼼짝 하지 않고 있었으나 콧속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녹색 빛이 나와 곡혼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때 한립의 안색은 굉장히 창백했고 콩알만 한 땀방울들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두 눈에서 방출되는 빛은 더욱 강렬해져 곡혼의 두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립과 곡혼의 몸이 정신없이 떨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 연공 밀실의 석문은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열렸다.
그곳에서 초췌해진 한립이 걸어 나왔다.
이번 분신 제련은 근근이 버티며 결국 성공한 것이다. 아직 효과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제련이 실패해 도중에 법력의 반사를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는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는 밀실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석실로 들어가 폐관 수련을 시작했다.
원신의 손상이 심해 당장 영단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다시 연기기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분신화된 곡혼은 아직 완전히 육체를 장악하지 못했기에 그대로 밀실에 두고 점차 적응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후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 한립은 바로 출관하지 않고 이어서 삼전중원공 수련에 들어갔다.
삼전중원공은 축기 후기에 이르러 청원검결로 쌓은 법력의 대부분을 흩어버린 후 축기 초기부터 다시 수련해 액체 상태의 원신을 고체화 시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공법을 창조한 고인의 예상대로라면 이렇게 3번을 하면 절반의 확률로 결단에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립은 법력이 축기 후기가 아니라 중기에 법력을 흩어버렸는데 원신 응결이 조금 덜 되었을 뿐 큰 문제가 아니라 판단했다.
앞으로 두 번 남은 수행에서 착실히 축기 후기에 법력을 흩으면 될 일이었다.
한립은 몇 개월간 삼전중원공을 세심하게 익혀 완전히 파악한 후 약간의 단약을 지니고 밀실로 들어갔다.
그는 삼전중원공의 첫 번째 회차를 성공하고 청원검결이 육성에 이르기 전까지는 절대 동굴을 나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분신화된 곡혼도 데려다 옆에 놓고는 영단을 복용시키며 축기를 준비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곡혼은 세 개의 영근 속성을 지녀 한립보다 자질이 좋은 편이었기에 똑같이 약물로 보조한다면 훨씬 빠르게 진보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 2년 정도의 시간이면 곡혼도 축기기 수사의 몸이 될 것이다.
한립은 월국 황제에게 빼앗은 회백색 서책에서 그가 사용하던 혈련신광(血煉新光)이란 마공을 골라 축기 후의 곡혼에게 익히게 할 작정이었다.
혈련신광의 위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 위력은 확실했다. 이 공법이 결단 후에 더 정진할 법결이 없다는 점은 곡혼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곡혼은 살단을 통해 결단기 초기와 비슷한 수행이 될 뿐이니 더 이상 진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렇게 시작된 수련은 단시일 내 끝나지 않았다.
정말 세월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오직 수련에만 매진하니 순식간에 스무 해가 지나버렸다.
이 기간 동안 한 번도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은 한립은 자연히 섬 주민들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환도의 주민들은 한립이 기거한 이후에도 그 전과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했다. 어부는 물고기를 낚았고 농부는 곡식을 기를 뿐이었다.
멀쩡하던 산봉우리가 안개 속에 파묻혀 처음엔 조금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광경이라 여겨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마을에서는 아이들에게 절대 산중의 안개 속에 접근하지 말라 당부했다.
일단 안개 속에 들어가면 방향을 잃고 헤매며 며칠을 고생하고 “한 선사님”을 수없이 외쳐대야지만 겨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섬을 지키는 진법에 필요한 영석은 1년에 한번 마을 장로가 안개 밖에서 산봉우리를 향해 고함을 치면 영석을 담은 쟁반이 날아왔다. 그것을 가져다 원래 있던 영석을 교체하면 되었다.
스무 해가 넘게 지나자 원래 마을 장로를 맡았던 노인이 세상을 떠났고 한립이 소환도에 처음 온 날 만났던 어부 흑귀가 다음 대 장로를 맡아 같은 일을 수행했다.
이렇게 소환도 주민들은 숭배한다고 까진 할 수 없으나 한 선사란 이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괴성도 항구는 여전히 시끌벅적했고 수많은 크고 작은 배들이 오고 갔다. 하늘 위로도 수시로 빛줄기가 지나갔는데 수도자가 날아다니는 모습에도 범인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섬 밖에서 한 줄기 하얀 빛이 전광석화처럼 날아 들더니 항구의 상공에서 잠시 배회하다 괴성도의 중심부로 향했다.
누군가 자세히 살폈다면 하얀 빛 속에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둘은 삼전중원공의 일회차를 성공해 축기 후기에 이른 한립과 영약의 보조 작용으로 그에 맞먹는 수행에 이른 곡혼이었다.
스무 해 넘는 원신의 응결로 한립은 동급 수사에 비해서도 훨씬 정순하고 응축된 법력을 지니고 있었고 곡혼이 같은 기간 자신의 수준을 따라잡아 큰 기쁨을 주었다.
아마 곡혼이 살단을 하는데 특수한 보조 물품이 필요하지 않고 한립도 결단 준비를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직도 소환도의 동굴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나서면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 고가에 들려 수십 년 전 약속했던 영석을 받으면 바로 다시 거처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의 수련에 중요한 시기였기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신풍주는 한립과 곡혼을 태우고 괴성도의 중심인 괴성성으로 날아갔다.
몇 시진 후 멀리서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한립이 지도를 꺼내지 않아도 거대한 규모만으로도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발밑의 신풍주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금제의 범위에 들어간 것이다.
괴성성이 본 섬의 제일가는 성이라 해도 이렇게 넓은 범위를 제한하는 금제를 설치해 두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사실 이미 축기기 최정상에 오른 그의 수준이면 억지로 금제를 이겨내고 날아가는 것도 법력을 약간 소모할 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래 시선을 끄는 것을 꺼리던 그는 바로 신풍주를 조종해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곡혼과 한립은 차분히 땅에 착지했다.
작아진 신풍주를 다시 저물대에 넣은 한립은 거대한 성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역시 괴성성은 이전에 가보았던 동석성에 비해 세, 네 배는 큰 것 같았다. 성에 들어서자 드넓은 길이 펼쳐졌다.
그는 지나가는 범인에게 천도가(天都街)가 어느 방향인지 물어 성의 북쪽으로 향했다.
“여기가 천도가!”
범인이 일러준 곳에 도착한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보호막으로 가려진 괴성성의 북부는 이름처럼 길이 하나 나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길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중심에 거대한 누각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체가 비취색인 누각은 은은히 빛을 뿜어내는 것이 누구의 눈길이라도 사로잡을 만 했다.
한립은 한참이나 그 누각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원리로 공중에 떠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무척 신기했다.
그때 한립의 안색이 조금 달라지더니 순식간에 영기를 숨겨 연기기 칠, 팔 성의 수준으로 바꾸었다. 곧 이어 그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듣기 좋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과 선사 분께선 처음으로 천도가에 오셨나 봅니다. 누구라도 처음 운몽각(云夢閣)을 보면 놀라곤 하지요.”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한립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와 열댓 걸음 떨어진 곳에 3명의 사내와 2명의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들은 차치하고 두 여인은 수려한 외모를 지닌데다 정말 대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얀 팔과 다리가 그대로 드러난 의복을 입은 데다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아 두 발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더 시선을 끄는 것은 그녀들의 팔목과 목에 찬 금색 고리였는데 만만치 않은 수사들이란 인상을 심어주었다.
사내 셋은 지극히 평범한 외모로 그 중 하나는 얼굴 전체에 마맛자국이 있어 조금 추하기까지 했다. 다섯 명은 연기기 십성 정도의 수사들로 함께 이곳에 온 것 같았다.
한립은 미모의 여인들을 보고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물었다.
“선사분들은 누구신지요?”
“저는 자연려라 하고 이쪽은 제 친우인 원요입니다. 인근 섬에 기거하는 산수들이지요. 시장거리에 대량의 진귀한 재료가 들어왔단 소식에 안면을 익힌 세 분과 함께 구경을 나선 참입니다.”
작은 체구의 고운 여인은 말을 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립과 곡혼을 살펴보았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처음 말을 건 여인인 듯 했다.
그 옆에 선 묘령의 여인은 훨씬 더 뛰어난 미모에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졌으며 부드러운 몸의 곡선은 의복으로도 가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정말 경국지색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한립이 아니라 곡혼에게 꽂혀 꼼짝하지 않았다.
자신은 무명의 공법을 이용해 진정한 수행을 감추었지만 곡혼은 축기 후기의 수사라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곡혼을 데리고 다니면 자신의 진짜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도 불필요한 말썽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강자는 도리어 너무 시선을 끄는 듯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이 차분히 말했다.
“저는 한립이고 이 분은 제 사숙되시는 곡혼 사숙입니다. 저와 사숙이 처음으로 천도가를 찾은 것이 맞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곡 선배님과 한 선사가 처음 운몽각을 본 것이라면 아니 가볼 수 없겠지요? 저희와 함께 둘러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저와 사제가 두 분에게 이곳의 여러 점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 섬 사람은 아니나 천도가는 자주 들르는 지라 이곳 사정엔 아주 밝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싱긋 웃으니 주변이 다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원요란 여인도 동의했다.
“곡 선배님께서 불편하시지 않으시다면 저희가 천도가를 안내해 만족할 만한 물건을 찾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들의 제안에 함께 움직이던 사내들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만 축기기 선배인 곡혼의 앞이라 무어라 말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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