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설령수와 천화액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들이 먼저 다가와 교류를 청하는 일은 처음이라 한립은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둘의 시선을 보니 그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곡혼으로 겨우 연기기 수사인 자신은 들러리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엄청난 미인들과 함께 다니며 시선을 끌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립의 조종에 따라 시종일관 침묵하던 곡혼의 입이 열렸다.
“난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이니 되었느니라. 한 사질 가자꾸나!”
곡혼은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는 한립을 데리고 거침없이 걸어가 버렸다.
그 무뚝뚝한 모습에 여인들은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따라 오던 사내들은 오히려 몰래 희색을 드러냈다.
그 중 얼굴이 가장 못생긴 사내가 그녀들을 달랬다.
“어쩐지 성질이 괴팍할 것 같더라니 역시 그렇습니다. 저들은 되었고 우리끼리 다니시지요.”
여인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동의했다.
두 여인이 사내들을 데리고 어떤 점포로 들어간 순간 한립과 곡혼은 다른 점포에 숨어있다 걸어 나왔다.
그는 여인들이 사라진 점포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곡혼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상점 거리는 범인들의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양쪽으로 늘어선 점포에는 간판이나 깃발이 걸려 있었고 오가잡화점, 진기법기포, 오행연기점, 곽양원료 등 각양각색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한립은 이런 점포를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상점거리를 지나 천도가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재력과 명성이 있는 큰 상점들은 주로 눈에 띄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운몽각이었다.
한립의 걸음이 빨라졌다. 가는 길에 보니 오늘 천도가에 상당히 많은 이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하던 곳에 도착하자 한립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눈앞이 확 트이며 광장이 드러났는데 광장은 새하얀 옥으로 장식되어 있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 중심의 상공을 부유하는 운몽각이란 곳은 문을 굳게 닫아 건 것이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전각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각 전각의 거리가 동일한 것이 이 거대 점포 외에는 다른 상권이 끼어들 수 없는 듯 했다.
한참 허공의 누각을 바라보던 한립이 드디어 시선을 여섯 개의 전각으로 돌렸다.
“산해각(山海閣), 백수루(白水樓), 옥환거(玉環居)…….”
한립은 여섯 개 점포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선사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는데 여섯 개 점포들은 드나드는 이가 거의 균일했고 대부분이 여섯 개 점포를 모두 돌아보고는 신이나 떠나곤 했다.
한립은 다른 기준으로 점포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전각엔 각각의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그곳을 상징하는 표식이 달랐다.
산해각은 남색의 요수를, 백수루는 금빛의 검을, 옥환거는 청색의 영지초를…….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립은 곡혼을 데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백수루로 걸어갔다. 백수루의 대청에 들어서자 안은 그리 넓지 않아서 대략 서른 장쯤 되어 보였다.
곳곳에 옥으로 만든 탁자가 있었고 그 위로 반짝이는 백여 개의 법기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나 기껏해야 상계 법기로 한립의 눈에 들 리가 없었다.
탁자 앞엔 남색 의복을 입은 점원 다섯 명이 일고여덟 명의 손님들에게 이것저것 법기를 추천하고 있었다.
한립과 곡혼이 들어서자 남색의복의 점원 중 한명이 바로 곡혼의 신분을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곡혼에게 예를 취한 그는 영민한 말투로 물어왔다.
“선배님 어떤 법기를 찾으시는지요? 아마 일반적 법기는 눈에 차지 않으실 테니 옆방으로 옮겨 점주님이 수집한 최상급 법기를 둘러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점원의 말에 곡혼이 냉랭히 말했다.
“어디 한번 안내해 보거라.”
점원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한립과 곡혼을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고 점주를 데려오겠다며 물러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하인이 들어와 차를 내고는 다시 나갔다. 한립이 차를 즐기고 있자니 머리를 세 가닥으로 묶은 이상한 차림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처음엔 싱글싱글 웃고 있던 그는 곡혼의 수행을 파악하고는 서둘러 달려와 예를 취했다.
“저는 이곳 주인인 조록이라 합니다. 결단기에 이르기 직전인 선사님이 찾아 주시다니 하루 빨리 금단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상대의 공손한 말에 한립이 곡혼을 조종해 말했다.
“결단이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허나 이곳에 온 것은 확실히 결단기에 들 준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천도가가 처음이라 어디에서 설령수(雪靈水)와 천화액(天火液)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곡혼은 꽤 예의 바르게 답했는데 상대 역시 축기 중기의 수사였기 때문이었다.
“하하!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여섯 개 전각은 공동체나 다름없으니 옥환거의 구양 선사에게 연락을 넣어 물건을 가지고 오라 이르겠습니다.”
조 점주가 바로 반색을 하며 말을 전하는 부적을 날려 보냈다. 이어서 곡혼과 담소를 나누며 그의 사문이나 내력을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어찌 처음 본 이에게 그런 것을 노출 하겠는가? 한립은 곡혼을 조종해 괴성도를 지나다 우연히 사질을 만났고 그 김에 잠시 머무는 중이라고 얼버무리게 했다.
말이 이어질수록 조 점주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지는 것이 한립은 조금 마음이 불편해 졌다. 상대의 꿍꿍이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밖에서 녹색 장포를 입고 턱수염이 난 거한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보라색 빛이 돌았고 체격이 건장한 것이 아주 위압적이었다.
“조 선사, 어찌 갑자기 설령수와 천화액을 찾는 것이야? 설마 누가 결단을 하려 하나?”
거한은 호쾌하게 웃으며 들어서더니 한립과 곡혼을 보고는 곡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립은 벌써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묻는 거한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가 겉으로는 호쾌해 보이나 심계가 깊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거한에 대한 경계심이 일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한립이나 곡혼 모두 아주 침착한 표정으로 미소를 띠었다.
조록이 한립과 곡혼을 가리키며 웃었다.
“허허! 내가 소개를 하지. 구양 선사, 이 분은 막 괴성도에 오신 곡 선사이고 이쪽은 곡 선사의 사질로 괴성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 선사라 하네. 곡 선사께서 결단을 시도하시려는 것이지.”
“핫하하! 축하드립니다. 만일 곡 선사가 결단에 성공한다면 우리 난성해를 지키는 대들보가 하나 늘겠습니다.”
열정적으로 축하를 표한 그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미안한 기색을 띠며 말을 이었다.
“제가 너무 기뻐 곡 선사께서 설령수와 천화액을 찾으시던 걸 잊을 뻔 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게 챙겨 왔으니 걱정 마십시오.”
턱수염 사내는 품에서 갈색의 옥함 2개를 꺼내 놓았다.
“영기를 감춰주는 이 옥함도 흙의 속성을 가진 심해의 옥을 깎아 만든 보물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안에 담긴 것들에는 가치를 비할 수 없습니다.”
“고생이 많습니다.”
곡혼은 개의치 않고 예의를 차린 후 조심스레 두 개의 옥함을 열었다.
첫 번째 함에는 투명한 물 같은 것이 담겨 뚜껑을 열자마자 한기를 뿜어냈고 다른 것에는 불타오르는 듯한 선홍색 액체가 역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곡혼은 물건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옥함을 닫았다.
“영석 몇 개면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설령수나 천화액은 천년 영초만큼 진귀하고 드문 물건은 아니나 그래도 구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결단을 할 확률을 높여주는 보조 작용을 하니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턱수염 사내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저희 여섯 개 전각은 사대 상권연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성해에서 이름이 알려진 상가입니다. 이 정도 물건이야 곡 선사의 결단을 축하하는 의미로 선물로 드리지요.”
그 말에도 한립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런 진귀한 물건을 선물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곡혼이 바로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굳혔다.
“그럴 수야 없지요. 얼마든 적정한 가격을 지불할 테니 말해 보십시오. 아니면 두 분께서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도 있습니까?”
복덩이가 굴러온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곡혼이 도리어 경계심을 드러내자 조록과 거한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조록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곡 선사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저희 둘이 선사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 물건들은 일단 성의로 받아두시고 일을 마치면 더 큰 사례를 해드리지요.”
그 말에 한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몰래 냉소를 흘렸다. 곡혼이 미소를 지으며 완곡히 거절했다.
“저는 지금 결단에 관해 신경 쓰느라 다른 것에 관여할 시간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못할 듯 하군요.”
곡혼은 무슨 일인지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단칼에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조록은 화를 내기보단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허허, 결단에 신경을 쓰실수록 이번 일에 나서셔야지요. 이번 일만 성공하면 저희 여섯 개 전각에서 강진단(降塵丹) 한 알씩을 사례로 드릴 것입니다. 결단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결단기 수사가 될 확률을 크게 높여주는 단약 말입니다.”
곡혼은 조금 놀랐는지 중얼거렸다.
“강진단이요?”
“예, 이번 일에 축기 후기 수사 여섯 분이 필요한데 이미 다섯 명은 모집이 되었고 딱 한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성공만 한다면 각자 강진단 한 알씩을 사례로 받게 되지요.”
상대가 진지하게 강조하는 것을 보니 강진단이 난성해(亂星海)에서 유명한 단약인 듯 했다. 그러나 줄곧 폐관수련만 해온 한립이 어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았겠는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곡혼이 입을 열었다.
“일단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요, 별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본 점포에서 육급의 요수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잡아 요괴의 내단을 얻도록 도움을 주실 분들을 모시고 있는 것이지요.”
“육 급 요수요…….”
곡혼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지만 옆에 있던 한립은 거의 펄쩍 뛰며 두 사람을 욕할 뻔 했다.
겨우 사급 요수인 거대 사마귀와 맞서 거의 죽을 뻔 했는데 육급 요수라니?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곡혼이 거절할 기미를 보이자 거한이 얼른 나서서 설명을 보충했다.
“걱정 마십시오. 본 점이 미리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으니 큰 위험은 없을 것입니다. 일단 저희 쪽 결단기 수사 두 분이 나서주시는 데다 육둔수파대진(六遁水波大陣)을 펼칠 것이니까요. 여섯 분의 선사님들은 그저 이 전법을 지탱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육둔수파대진.
한립은 진법의 이름이 귀에 익었다. 아무래도 신여음이 준 진법서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곡혼은 한립의 조종에 따라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안이 중대하니 이틀간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어떠십니까?”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자 조록은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바로 웃음을 터트리며 편할 대로 하시라 말했다.
그러나 한립과 곡혼이 점포를 나설 때는 결국 설령수와 천화액을 받아가지고 나왔는데, 일의 참여와 관계없이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성의의 표시라는 명목으로 점주들이 선물한 것이다.
백수루를 나온 한립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광장을 나섰다. 저 여섯 개 점포가 다 같은 가문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또 다시 들어가 물건을 고르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는 광장 밖으로 나와 작은 점포들을 돌며 사려던 물건을 구입하기로 했다. 결단용 물품 외에도 이급 꼭두각시들을 만들 원료를 구입하는 것도 출관을 한 목적 중 하나였다.
주재료인 수백 년 된 철목은 스스로 기른다지만 보조 재료인 철과 운정석 등은 대량으로 구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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