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해원도
고 장로는 당장 그 사악한 법기들을 없애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말로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거검이 뒤에서 그를 치자 고 장로를 감싸고 있던 빛이 약해졌고 그 틈을 타 13개의 침들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고 장로의 얼굴에 한기가 돌며 바로 저물대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알았다. 괴상한 진법의 공세 앞에 원기가 크게 상한 그가 법보 하나에 의지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무언가를 꺼내기도 전에 손가락 굵기의 핏빛이 번뜩이며 그의 바로 앞에서 노란 기운을 뚫고 들어왔다.
뒤쪽에는 한립의 거검이, 사방에선 열댓 개의 침들이 공격을 가하고 있었기에 이미 희미해진 노란 빛이 가볍게 뚫린 것이다.
그러나 고 장로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그의 귀 한쪽이 무언가에 베어 피를 뿜었다. 간신히 머리가 쪼개지는 것은 피했으나 한쪽 어깨는 내줘야 했다.
“으악!”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다리가 풀린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 한립이 아니었다. 곡혼의 몸이 파도를 뚫고 드러나더니 그의 양 손에서 핏빛 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한립 역시 은색 검을 휘둘러 고 장로의 노란 보호막을 찔러댔다. 그러자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거기에 한립이 손에 들고 있던 부적 뭉치를 던지자 무수히 많은 화구와 얼음송곳이 쫙 퍼졌다.
극심한 통증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고 장로는 이미 속수무책이었다. 진법의 거대한 압력에 상대의 무차별적인 공격까지 받으니 그것을 막는 엄청난 영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린 그가 다시 비술을 펼쳐 몸 안의 법력을 끌어올리려고 할 때는 이미 한립의 주술이 끝난 후였다.
곳곳에 파도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그의 몸을 내리누르는 진법의 압력이 다시 몇 배로 증가되었다. 그를 보호하던 최후의 보호막도 가냘픈 울림을 내며 꺼져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고 장로의 눈빛을 뒤로하고 결국엔 보호막이 사라졌고 그를 향해 쏟아지던 13개의 침들이 바로 붉은 빛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붉은 빛은 결단기 수사의 급소들을 줄줄이 뚫어버렸고 한립이 말없이 은색 검을 휘두르니 고 장로의 목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엄청난 양의 선혈이 분출되며 진법 안이 짙은 피 냄새로 가득 찼다. 한립은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성큼성큼 걸어가 은검을 이용해 시신의 허리춤에서 저물대를 낚아챘다. 동시에 곡혼 역시 노란색의 원혼발 법보를 들었다.
한립은 곡혼을 데리고 결계를 빠져 나와 신풍주에 빠르게 영력을 불어넣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겨우 삼십 리 정도를 날아간 한립은 신풍주를 틀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법기를 거둔 그는 기척과 영력 등을 감춰주는 붉은 천을 꺼내 곡혼과 함께 법기의 보호막 속에 숨어버렸다. 그리고 둘 다 무명구결을 운용해 다시 한 번 영력을 완전히 감추었다.
그가 모든 준비를 마치자 잠시 후 강한 기운이 그의 인근에서 감지되었다. 분노한 누군가가 그가 숨어있는 해저의 상공과 그 주변을 몇 번이나 수색했다.
그는 빈틈없이 곳곳을 뒤지고 다녔으나 한립과 곡혼을 찾지 못했다. 그는 바다 위를 한참을 맴돌다가 결국엔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장 튀어나갈 수는 없었으니 아예 해저에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한립은 물 계열의 방어막을 치고 바닷물을 차단한 뒤 곡혼과 가부좌를 하고 원기 회복에 들어갔다.
이렇게 물속에 뛰어든 지 어느덧 열흘이 훌쩍 넘어갔다.
며칠간은 강력한 기운이 포기를 모르고 한립이 있는 곳 주변을 몇 번이나 더 찾아왔으나 한립이 매번 영력과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수확 없이 돌아갔다.
이젠 그 자도 희망을 버린 것인 지 여러 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움직일 때였다. 한립은 조심스레 의식을 퍼뜨려 근처 백여 리 내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고 바로 어떤 방향을 골라 날아올랐다.
괴성도로는 돌아갈 수 없었으니 머물만한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던 것이다.
비록 여섯 전각의 고 장로와 묘 장로가 오축이란 청년과 무슨 말 못할 관계 이길래 살인멸구를 하려 했는지는 모르나 자신과 같은 축기기 수사가 파고들 문제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이런 쓸 데 없는 일에 휘말렸을 때는 멀리 떠나는 것이 제일이었다.
다만 소환도에 남겨둔 진귀한 진법 법기 세 벌과 이번 전투에 잃은 수많은 최상급 법기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립은 신풍주를 타고 질주하면서도 이것들을 생각하니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중년 문사 등 다른 수사들이 당한 화를 생각하면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자신을 다독인 한립은 돌연 고 장로의 저물대를 꺼냈다.
그간은 언제 적에게 발각 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주위를 경계하느라 저물대를 살펴볼 새도 없었다.
결단기 수사의 저물대에 든 물건들이 소박할 리가 없었다. 아마 그가 입은 손해의 일부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의식을 불어넣자마자 무려 80개 가까이 되는 중계 영석을 발견했다. 고 장로란 자의 재산이 상당했던 것이다.
겨우 영석에서 시선을 돌린 그는 다른 물건은 없나 살펴보았다.
노란색 옥으로 된 병과 남색의 반짝이는 부적 그리고 서책과 남색의 구슬이 보였다. 그 외에 돈 안 되는 잡다한 물건도 꽤나 많았다.
서책이야 상층 공법인 을 다루고 있어 좋은 물건이었지만 익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부적들은 한 장은 금색 검이 그려진 부보였고 다른 한 장은 남색 교룡이 그려진 이름 모를 부적이어서 그를 기쁘게 했다. 또한 남색 구슬은 어떤 오급 요수의 내단인 것 같았다.
최후에는 노란 옥병만 남았다.
한립이 그것을 꺼내 살피자 엄지손가락만 한 황색 단약이 다섯 알이 굴러 나왔다. 단약은 모두 동일한 크기에 색체가 맑고 투명했는데 기이한 약향을 뿜어냈다.
“강진단!”
한립은 그것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에서 묘사한 것과 일치하니 강진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손가락으로 단약을 하나 집어 살피니 자연히 미소가 지어졌다.
목숨을 걸고 이번 거래에 응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강진단만 있다면 자신과 곡혼이 결단에 성공할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지게 된다.
한립은 단약들을 다시 저물대에 잘 챙겨 넣었다. 이제 영맥이 흐르고 안전한 지역을 찾아 결단을 할 일만 남은 것이다.
곡혼이나 그 둘 중 하나만 결단에 성공해도 결단기 수사의 추격에 살아남을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결단이란 것이 단번에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천영근을 보유한 이나 하늘이 내린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이들은 충분한 영약과 시간을 들여 경지를 뛰어넘는 과정이 필요했다.
미리 구입해 놓은 설령수와 천화액도 결단을 하는데 꼭 필요한 영약이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결단을 돕는 영약들은 다양했고 모두 결단기에 들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다만 설령수와 천화액이 그 효과가 다른 것들에 비해 분명했을 뿐이다.
대부분의 수사들은 다른 영약을 구할 능력이 안 되었다. 설령수와 천화액을 구하고 다른 영약 한, 두 가지만 갖춰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당연히 예외였다. 그에게 종자가 아예 없거나 희귀한 영초를 제외하고는 다른 것들은 이미 소환도에서 수련하는 동안 길러내 수십 종의 결단 보조 영약을 제련해 지니고 있었다.
뜻밖에도 이런 영약들은 선천진화 등의 특수한 제련 조건이 필요 없이 범인들이 단약을 제조하듯 그저 적정 분량의 재료만 배합하면 되었다. 게다가 이에 관련된 약방은 각종 경전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렇게 쉽게 결단 관련 영약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에 한립은 놀라웠다. 거기다 지금 손에 넣은 강진단은 난성해 수사들 고유의 결단 보조 영약으로 구하기 어려운 귀한 물건이었다.
모든 영약들은 그저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가 운공을 하며 여러 영약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경지를 높여야 했다.
또한 결단 과정도 열흘이나 몇 달 만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경전과 이화원이 이전에 말해 준 바에 따르면 3년에서 5년까지의 시간은 소비해야 했다. 구체적인 기간은 개인의 자질에 따라 달라졌다.
이 기간 동안은 감정을 조절해 기쁘거나 슬픈 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다른 이와 결투를 벌일 수도 없었고 반드시 일정한 천지의 영기를 흡수해야 했다.
그러니 영맥이 흐르는 섬 중에 하나를 찾아 반드시 폐관 수련을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한립은 괴성도 등 세 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한 해역 지도를 꺼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 지도를 샅샅이 살폈고 겨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얼마 후 한립이 지도에서 의식을 거둬들였다.
한립은 태양의 위치와 사방을 살피더니 곡혼과 함께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종적을 감추었다.
이동하는 동안 한립은 인적이 없는 섬에서 잠시 쉬며 법력을 회복했고, 수도자의 존재를 감지하면 바로 경로를 우회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렇게 두세 번 방향을 튼 한립은 그제야 진정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 * *
두 달 후 어떤 외진 해역의 섬 위에 한립과 곡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섬은 괴성도에 비해서는 한참 못 미쳤으나 소환도에 비해서는 꽤 컸다. 아마 간신히 중형 섬의 축에 낄 듯 했다.
이곳이 바로 한립이 수고를 마다 않고 날아온 해원도(海猿島)였다. 섬은 소수의 범인들과 대다수가 아직 축기에 성공하지 못한 수도자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도주가 없어 자유로운 지역 중 하나였다.
해원도라는 명칭은 섬 주변의 요수 해원(海猿)에게서 따온 것이었다.
바다 원숭이라 불리는 이 요수는 육지의 원숭이와 똑같이 생겼으나 물 계통 저계 법술인 수전술(水箭術)을 사용할 뿐 아니라 지능이 꽤 높았다.
다 자라면 일곱 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지녔으며 심해의 물고기를 주식량으로 삼으니 영수를 길들이기 즐겨 하는 수도자들에겐 좋은 목표가 되었다.
게다가 해원은 알려진 것에 비해 약해 실제론 오, 육성의 연기기 수사도 포획이 가능해 바다 원숭이를 잡아 용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작은 소상인들이 자금을 모아서 섬에 진법도 설치하고 상점을 개설해 해원을 매매하게 되었다.
진법이 설치된 이후 더 많은 저계 산수들이 이 섬을 찾아 장기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해원도에 영맥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희미한 영기를 퍼뜨리는 영맥이었으나 그래도 그 범위가 광범위해 해원도 안에서라면 어디에서나 영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영기의 밀도 탓에 고계 수사가 와서 자리싸움을 할 일도 없었다.
축기기나 결단기에 이른 수사는 정말 잠깐 지나갈 때나 들르는 곳이니 한립에게는 최적의 수련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이틀 후 한립은 해원도 모처의 황산에 새로운 임시 동굴을 만들었다. 새로운 동굴은 간단한 약초밭과 두 개의 밀실 외에는 없었다.
한립은 동굴 입구에 일반적인 은닉용 진법을 설치하고는 혈옥지주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이 투명한 거미들은 몇 년간의 훈련과 양육을 거처 이미 사람 머리통 만하게 자라있었고 등급도 두 단계나 올라 일급 상계의 수준이었으니 보통의 연기기 수사들을 상대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혈옥지주는 그가 소환도에서 데리고 나온 유일한 곤충 영수였다.
다른 기이한 곤충 요수들은 모두 아직 소환도 거처에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그를 쫓는 자가 고 장로의 복수와 증인 인멸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아마 이미 그의 거처를 찾아냈을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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