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새로운 거처
성문에서 이어지는 길은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였다. 사람 넷이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영수가 끄는 마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기에도 충분했다.
길 양옆의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들은 척 보기에도 범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로 매매하는 물건도 일상 잡화들이었다.
길가에는 보통 사람들만이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흥정하였지 곡혼과 한립에게 관심을 갖는 이도 없었다.
한립이 물끄러미 그런 모습을 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드니 상공 위에 적지 않은 불빛들이 오가고 있었다. 수사들은 하늘 위로 법기를 타고 다녔던 것이다.
난성해 제일의 천성성에는 법기를 타고 날아다녀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한립은 바로 신풍주를 꺼내 곡혼과 날아오르려 했다.
“선사님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입가 양쪽으로 수염이 난 몹시 여윈 사내가 길 한쪽에서 소리치고는 달려와 예를 취했다.
그의 두 눈에 빛이 번뜩이는 것이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자였는데 몸에서 법력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의 한립이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날 아느냐?”
“하하! 저는 노이라 하옵고 선사님들을 처음 뵈옵니다.”
얼굴에 웃음을 띤 노이와는 달리 한립의 얼굴에 유쾌하지 못한 기색이 떠올랐다. 한립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노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두 분 선사 대인께서는 천성성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시지요? 아마 이곳 지리나 상황을 잘 모르실 텐데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천성성 일이라면 제 손바닥 안에 있습죠.
혹시 찾으시는 곳이나 처리할 일이 있으시다면 소인이 안내를 해드려 두 분의 시간을 아껴드리겠습니다. 소인이 영석 2개에 모시지요.”
그는 말을 마치고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이미 두 선사 중 청년이 진정한 결정권자임을 눈치 챈 것이다.
한립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노이라 했더냐. 네가 일을 잘해준다면 영석 5개를 주마. 허나 내 마음에 들지 않다면 당연히 하나도 줄 수 없겠지?”
한립은 곡혼과 함께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신풍주에 올랐다. 신풍주에 선 한립이 노이를 내려다보았다.
여윈 사내가 조금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한립의 시선을 느끼고는 이를 악물었다.
“예! 선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꼭 만족하실 테니 걱정 마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신풍주를 바닥 가까이로 가져갔다. 노이는 눈치 빠르게 다가와서는 조심스레 신풍주 위로 올라탔다.
이후 신풍주가 천천히 떠올라 도시의 중심인 높은 산 쪽으로 날아갔다.
수십 장 높이에 올라오니 노이는 조금 두려워하는 기색은 있었으나 심하게 떨지 않았다.
“보아하니 처음 법기를 타는 것이 아니로구나. 자주 외부 선사들을 안내하더냐?”
“이전에 대여섯 분을 안내해 드리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날아오른 것은 두 번째입니다.”
노이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땅에서 수십 장 위의 하늘은 보통 사람에겐 너무 높았다. 거센 바람에 노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자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푸른 장막을 펼쳤다.
그제야 노이의 얼굴이 훨씬 나아졌다. 그가 감사의 말을 하기 전에 한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수련을 할 수 있으면서도 방해 받지 않을 만한 곳으로 안내하거라.”
한립의 말에 노이가 잠시 눈을 굴리더니 두 선사의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당연히 붉은 색 반지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말했다.
“선사님들께선 이곳에 장기 체류하실 예정이셨군요! 아주 잘 되었습니다. 저 앞 성산(聖山)에 수많은 건물들이 보이십니까?
저 중에 아무 곳이나 골라 수련을 하시면 되는데 다른 선사 대인들이 하는 말씀을 들어보니 산 전체에 영맥이 흐른 다더군요. 산에서 더 높은 곳에 기거하실수록 영기가 농축되어 있는데 그만큼 가격이 비싸진다고 합니다.
만일 일반 거처보다는 홀로 수행하시는 것을 원하신다면 이미 뚫려 있는 동굴을 대여해 개인 공간을 확보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비용은 방을 빌리는 것보다 훨씬 비싸겠지요. 또한 방세는 10년 마다 납부를 하는데 다음 번 납부일에 비용을 계산하지 못하면 성궁에서 사람이 나와 거처를 회수합니다.”
노이가 날래게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 말에 한립도 꽤나 흥미 있어 했다.
“그래? 그럼 영석만 충분히 지불하면 산 정상에서도 수련할 수 있다는 건가?”
노이가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농담이시지요? 정상은 당연히 안 됩니다. 성산의 가장 아래쪽을 둘러싼 방들을 1층으로 보아 총 81층이 있습니다. 아래쪽 50층은 외부 선사에게 개방되어 누구나 영석을 지불하면 수련을 하며 머무를 수 있지요.
그 다음 30층은 오직 성궁의 대인들께서 거주하시고 마지막 최상층은 성궁의 성주 대인 두 분께서 지내시니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럼 안내하거라.”
“예, 소인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선사님께선 이대로 성산 방향으로 가주시면 되는데 산기슭에 이런 일을 전문으로 처리해 주는 누각이 있습니다.”
노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풍주가 하얀 빛 줄기가 되어 멀리 있는 성산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성산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거의 일각이 되어서야 겨우 부근의 산기슭에 당도할 수 있었다.
노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꽤나 분위기 있는 누각이 보였다.
한립 외에도 이곳을 찾는 선사들이 많은지 수시로 누군가 법기를 타고 날아오르거나 내려섰다.
누각의 1층에 들어서니 안에는 열댓 명의 선사들이 각각 다섯 개의 협탁을 사이에 두고 백의 수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이는 신이 나 보였고 또 어떤 이는 근심이 가득했으며 심지어 백의수사를 향해 무언가 사정을 하는 선사도 보였다.
한립은 한쪽에 서서 이 모든 정경을 눈에 담았다. 잠시 후 노이가 아주 조심스럽게 한립을 일깨웠다.
“선사 대인, 저쪽에 자리가 났는데 가보시지 않으십니까?”
빈 자리를 한립도 보고 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번엔 곡혼이 먼저 걸음을 옮겼고 한립은 그 뒤를 따랐다. 이 변화에 이제껏 한립이 결정권자라 여겼던 노이가 눈치를 보며 따라왔다.
성궁 수도자로 보이는 백의 선사가 곡혼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공손히 예를 취했다.
“선배님 성산에 저택을 빌리시려 하십니까? 고층 일수록 가격이 높아지는데 몇 층을 원하시는지요?”
곡혼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동굴을 원하는데 바로 가능하겠지? 위치는 높을수록 좋다.”
“동굴 거처라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바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상대가 가격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말에 백의 선사가 정신이 번쩍 드는지 서둘러 옥으로 된 장부를 뒤져 보기 시작했다.
“가능하십니다! 31층에 세 자리가 남아있고 39층에 네 자리, 49층에 두 자리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 각 동굴의 가격과 구조 그리고 용도를 확인해 보시지요.”
그는 여러 개의 서책을 꺼내 협탁에 올려놓았다. 곡혼은 말없이 그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립은 근 몇 년간 스스로 영석이 부족하다 여긴 일이 거의 없었고 결단기 수사들 중에서도 나름 재력가라 여겨 왔다. 그러나 동굴 거처의 거주 비용을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49층은 말할 것도 없고 31층만 되어도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10년 계약이라지만 영석 이, 삼천 개를 훌쩍 넘으니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쌌다.
곡혼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해서는 말이 없자 백의 수사가 분위기를 읽고는 설명했다.
“선배님, 저희 성산의 영맥이 난성해 제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상위 다섯 개 지역에는 든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저 성산의 어느 구석에서 수행을 해도 다른 일반적인 곳보다는 영기가 짙을 뿐 아니라 30층 이상에선 수련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사분의 일 이상 빨라질 정도이니 이런 높은 비용을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말에 한립이 눈썹을 꿈틀했다. 이때 곡혼이 모든 서책을 한 번씩 확인했다. 그는 한립의 명령에 따라 그 중 하나를 집었는데 바로 39층이었다.
“여기로 하지.”
백의 수사는 곡혼이 정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동굴 거처를 고르자 기뻐하며 말했다.
“예, 영석 2,700개입니다!”
이번엔 곡혼을 시키지 않고 한립이 나서서 영석을 꺼내 주었다. 아주 입이 찢어져라 웃음을 지은 수사는 영석을 받자마자 노란 영패를 곡혼에게 넘겨주었다.
“동굴 거처의 금제를 다루는 영패입니다. 영패를 이용해 자유롭게 거처를 드나드실 수 있으나 10년 후에는 수거를 하오니 부디 잘 지니고 계십시오.”
영패를 받은 곡혼은 대답 없이 바로 몸을 돌려 출구로 향했다. 한립과 지금까지 감히 끼어들지 못했던 노이도 그 뒤를 쫓았다.
누각을 나온 한립이 길게 한숨을 쉬며 조금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너무 비싸잖아. 수련할 곳을 찾는데 이렇게 많은 영석을 지불하다니.”
순식간에 가산을 탕진한 기분이었다. 노이가 슬그머니 한립을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후엔 어디로 가보시렵니까?”
그는 벌써 엄청난 영석이 오고 가는 것이 크게 놀라 움츠러 들었다. 그가 이전에 인도했던 선사들은 기껏해야 수십 개 혹은 수백 개 영석을 주고 거처를 구했다.
단숨에 영석 이, 삼천 개가 오가는 거래는 정말 처음이었다. 노이는 한립에게 더욱 공손해 졌고 이번에 맡은 고객을 만족시켜드려야 한다는 열의가 생겼다.
어쨌든 상대가 지닌 것이 많으니 만족할 만한 안내를 해주면 섭섭지 않게 해줄 거라 예상한 것이다.
“본 성의 시장을 둘러보고 싶으니 비교적 규모가 큰 상점을 소개해 보거라.”
한립은 다시 신풍주를 꺼내 모두를 태우고 날아올랐다.
반나절 후 한립은 거대한 나무 침상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까 노이의 소개로 천성성의 주요 지역을 한번 둘러본 후 약속한 보수를 주고 상대를 보내주었다.
노이가 뛸 듯이 기뻐하며 떠나가는 것을 본 그는 39층 동굴로 들어왔다.
이곳은 서책에 소개가 되어있던 대로 외지고 조용한 곳에 위치했으며 규모가 큰 약초 재배 정원도 갖추고 있었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정말 영기가 충만해서 일반적인 영맥이 흐르는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마 천남 지방에서 머물던 동굴 거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거처를 지키는 금제 역시 대단해서 그가 지니고 있던 간소화된 전도오행진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엄청난 금액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래도 미리 설치된 진법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어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내일 아침 일찍 기존 진법 범위 밖에 그가 지닌 진법들을 더 설치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해두어야 안심하고 수행을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단잠에 빠져들었다. 수개월 간 줄곧 요동치는 법기에서 졸곤 했으니 피로가 쌓일 만도 했다.
이튿날 아침 상쾌하게 일어난 그는 바삐 몸을 움직였다.
능숙하게 동굴 밖에 강력한 진법 법기 세 벌을 설치한 후 약초밭에 각종 영초의 종자를 심어 앞으로 성장을 촉진할 준비를 해두었다.
마지막으로 시장으로 나가 상등품 옥석을 대량으로 구입해 와서는 열댓 장 크기의 밀실을 골라 촘촘히 벽을 메꾸었다.
밀실 전체가 옥빛으로 반짝이자 한립은 조심스레 은빛 딱정벌레 형태의 서금충들을 풀어놓았다.
곤충 요수 중 서열이 높은 서금충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잘 훈련을 시켜 언젠가는 꼭 전력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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