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적화 노괴
한립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맹 선사가 돌연 중얼거렸다.
“쯧쯧, 분명 음문 자령 선자일 텐데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안타깝네.”
자령 선자라는 칭호는 한립도 들어본 일이 있었다.
‘난성해 제일 미녀라는 이가 바로 저 여인이란 말인가? ’
한립도 조금 신기한 마음에 그녀를 돌아봤다. 이때 자령 선자는 범 부인 등과 이야기를 마치고 표표히 먹구름으로 돌아갔다.
이후 두 여인의 요청으로 모두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열댓 개의 빛이 산봉우리에서 날아올라 북쪽으로 향했다.
한립과 곡혼도 무리의 중간에 껴서 한마디도 없이 그들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맹 선사란 자는 언제부터인가 한립 옆에 붙어 쉼 없이 떠들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 선사는 어찌 범 좌사의 요청에 응한 거요? 나는 첩 중에 범 좌사의 제자가 있어 인정상 거절할 수가 없었지 뭡니까! 한 선사도…….”
“그런 여복은 없어서요. 범 부인이 한 가지 물건을 주기로 약속해 응한 것입니다.”
“아쉽게 되었군요! 묘음문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아리따운 제자들이에요. 특히 좌사와 우사가 직접 길러낸 여제자들은 정말…….”
한 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통에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황풍곡에서 자신을 반겨주던 대사형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은 떠들고 한 사람은 들으며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 * *
반 개월 후 무리가 어떤 황량한 섬 위에 도착했다.
섬 주변에는 묘음문 저계 수사들이 일찍부터 도착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적의 소굴이 있었다.
적을 감시하던 묘음문 제자들이 적들이 모두 섬에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자 먹구름 안에서 자령 선자가 나와 한립을 포함한 선사들을 쉬게 하고는 다음 날 아침 상대가 방비가 안 된 틈을 타 기습하자며 계획을 전달했다.
* * *
다음 날, 해가 뜨기 시작하며 어렴풋이 빛이 비추자 여러 선사들이 섬의 상공에 나타났다.
자령 선자는 무언가 이상한지 작은 섬을 여러 번 훑어보았다.
“여기란 말입니까?”
섬은 너무 작아서 말이 좋아 섬이지 큰 암석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범 부인이 옆에서 조용히 답했다.
“그래, 영수 금선봉(金蟬蜂)이 흔적을 쫓아 이 섬을 찾아냈고 두 분 장로께서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당시 만난 도적들이란 것을 확인해 주셨다.”
자색 궁장 차림의 여인은 드디어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이 풀린 눈치였다. 아마 이곳은 상대의 임시 주둔지임이 분명했다.
자령 선자가 냉정히 명을 내렸다.
“모두 죽여라!”
쿠쿵!
먹구름 속의 적화 노괴가 그 말에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구름에서 벼락을 쳐 진법을 없애 버렸다. 이후 모든 선사들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진법이 깨지자 섬 안의 인물들도 놀란 것 같았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리자 오십여 개의 빛이 날아올랐고 그들을 이끄는 결단기 수사 셋이 묘음문 쪽 선사들을 보더니 얼굴이 굳었다.
“쳐라!”
그들의 반응을 기다릴 새도 없이 소리 친 범 부인이 은으로 된 고리 법기로 선공을 했다. 다른 선사들도 공격에 가세했다. 동시에 상공에 각양각색의 빛들이 나타났다.
한립도 천뢰죽을 얻어야 했으니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곡혼과 함께 각각의 법보를 꺼내 대여섯 명의 축기기 선사들을 한 번에 섬멸할 계획이었다.
둘의 수행이면 축기기 수사들은 가볍게 제거할 수 있어야 했는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들이 한립과 곡혼의 수행을 알아보고는 안색이 변해 모습을 바꿨는데 이전에 월국 황성에서 보았던 살요(煞妖)의 형태였다!
그러나 아무리 변신을 해 능력이 상승했다 해도 조금 시간을 끌었을 뿐 결국엔 한립의 녹황검과 곡혼의 취혼발 아래 목숨을 잃었다.
한립은 그들이 흑살교의 살요들과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단 주술을 외우고 누에고치를 만들어 몸을 변신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체내에 혈응오행단 같은 것을 키우고 있지도 않았다.
‘흑살교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가 넋을 놓는 동안 누군가의 기습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에 그의 마음속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상대 쪽 축기기 수사들 중 십중팔구는 살요로 몸을 변화시켜 목숨을 걸고 그들과 맞섰다.
그들 중 가장 수행이 높은 결단기 수사 셋은 벌써 적화 노괴가 펼친 검은 구름에 갇혀 한 동안은 몸을 빼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쿠쿠쿵!
먹구름 안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로 보아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듯 했다.
상대 축기기 선사들은 결단기 수사 여럿과 열댓 명의 축기기 수사들의 공세 아래 금세 반절이 넘게 죽었으나 여전히 두려움을 모르고 맞섰다.
그들의 용맹스런 태도에 묘음문 선사들도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 격분해 고함치는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와 묘음문 선사들의 귀를 울렸다.
동시에 먹구름 안에서 적화 노괴의 꺼림칙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멍하니 뭣들 하는 게냐? 우두머리가 나오기 전에 모두 없애야지!”
그제야 나머지 선사들이 서둘러 법보와 법기를 들고 공세를 강화했다. 하지만 섬에서 그들을 막아내던 선사들도 더욱 최선을 다해 묘음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섬 아래에서 회백색 빛들이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묘음문 선사들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새로 나타난 다섯 명의 결단기 수사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을 이끄는 중년 거한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있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으나 선명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네 선사들과 비교해 수행이 월등히 높은 것이 결단기 후기로 보였고 나머지는 결단기 초기였으나 눈에 불을 켜고 묘음문 선사들을 노려보았다.
중년인이 얼마 남지 않은 제자들을 둘러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희는 누구길래 감히 은살문 제자들을 도륙하느냐! 피로 맺은 원한은 피로 돌려받겠다!”
묘음문 쪽 사람들은 당황스러웠다.
‘어찌 도적들이 저리 광명정대하게 도리를 논한단 말인가? ’
그 중 머리가 있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의혹이 담긴 시선으로 자령 선자와 범 부인 그리고 탁여정을 바라보았다.
자령 선자의 맑은 눈에도 의혹이 어리더니 막 입을 떼려는 찰나 어떤 이의 고함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헛소리 말고 전부 죽거라!”
놀랍게도 범 부인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조 장로가 돌연 무리를 떠나 손에서 여러 불덩이를 쏘아 보낸 것이다.
상대 쪽 중년 선사가 그것을 보고는 크게 분노했다.
푸학.
눈에 한광이 스치더니 전신에서 십여 장은 될 듯한 회백색 마기가 치솟아 순식간에 해골로 변했다.
해골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튀어나가 입을 벌려 조 장로가 내뿜은 불덩이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불덩이를 삼킨 해골은 지체 없이 다시 조 장로에게 달려 들었다.
조 장로는 당황해 재빨리 무리 속으로 돌아와 소리쳤다.
“모두 함께 칩시다! 상대는 결단기 후기 수사이니 일대일로는 승산이 없소!”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의도가 보였음에도 두 명의 결단기 수사와 묘음문 축기기 제자들은 법기와 법보를 이용해 해골을 막으려 했다.
다만 대다수는 이제 의심을 감추지 않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상황이 복잡해진 것이다. 한립은 별다른 반응 없이 남몰래 곡혼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바로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자령 선자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섰는지 묘음문 제자들에게 명을 내렸다.
“모두 멈추거라! 무언가 일이 수상하게 돌아가는구나.”
그러나 묘음문 선사들은 그 말을 못들은 것처럼 여전히 해골을 공격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한립과 수사들의 안색이 더욱 가라앉았다. 상대 중년 수사도 바보는 아닌지라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과감히 해골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해골이 날카로운 포효를 하며 한 입에 무수히 많은 회백색 불꽃을 분출해 법기와 법보의 공격을 튕겨내고는 다시 중년인 곁으로 돌아왔다.
공세를 가하던 묘음문 쪽 수사들도 감히 적진 깊숙이는 뛰어들지는 못하고 상황이 일단락 됐다.
이 틈을 빌어 자령 선자가 그 중간에 섰다.
“누가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중년인은 청녹색의 기이한 빛으로 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너희가 아무 이유도 없이 본 문의 제자들을 학살하고는 그 이유를 본 문주에게 묻는 것이냐!”
자령 선자는 여전히 침착하게 상대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묘음문의 물건을 강탈하고 문주를 살해한 것이 그쪽 사람들이 아닙니까?”
“헛소리! 우리 은살문이 외부 세계와 교류는 없지만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일은 없다!”
노기를 띤 상대의 말에 자령 선자가 침묵을 유지 했지만 아름다운 두 눈에선 한기가 흘러나왔다.
다른 이들도 둘의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범 부인이 돌연 선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쌍방이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듯 합니다.”
“흥! 쌍방이라? 너희가 당한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
지금 중년인의 심정으로는 내력을 알 수 없는 먹구름 안의 수사만 아니면 함정이고 뭐고 저들을 모두 요절내고 싶었다.
자령 선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무리 속의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 장로와 부 장로께선 설명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자령 선자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한쪽으로 집중됐다.
조 장로와 유생 차림의 중년인이 무표정하게 그곳에 서 있었다. 유생 차림의 중년인은 바로 탁여정과 붙어 다니던 묘음문의 부장로였다.
범 부인과 탁여정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범 부인은 정말 격분한 듯 했다.
“감히 누가 숨어 있느냐!”
돌연 먹구름 속에서 적화 노괴의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벼락이 뱀처럼 꿈틀대며 허공의 어느 지점을 강타했다.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벼락이 내리치니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사라지며 왜소한 청년이 나타났다.
‘오축!’
이미 무리의 가장 뒤로 물러선 한립이 청년의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른 수도자들도 오축을 알아본 듯 했다. 은살문 수사들은 특히 안색이 변해 흉흉한 기세로 오축을 노려보았다.
그 중 중년인은 묘한 표정이 되어 무언가 두렵다는 기색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오축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 상황을 돌아보더니 먹구름으로 시선을 옮겼다.
“헤헤! 명성이 자자한 적화 노괴답소. 설마 본 소주의 은닉술을 간파하다니.”
먹구름 안에서 그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고는 아무런 대답이 없자 오축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한동안 말이 없던 탁여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이 설마 극음도의 수작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본 소주의 작품이지. 묘음문의 물건은 내가 가져갔고 너희 두 장로도 내 명을 받아 은살문을 모함한 것이야.”
오축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웃음을 흘리며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는 진득한 눈빛으로 자령 선자의 몸을 훑었다.
자령 선자는 평정을 유지하며 차갑게 그를 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조 장로와 부 장로 그리고 방금 공격을 감행한 다른 제자들이 소리 없이 오축 곁으로 이동하자 뜻밖에도 은살문과 자령 선자 그리고 오축의 세 세력이 삼각 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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