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진주 안의 지도
두 달 후 한립은 결국 밀실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으나 눈빛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몸 안에 넣어둔 72개의 청죽봉운검을 떠올릴 때마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그가 이 한 벌의 본명법기를 제련하기 위해 무려 20년이나 공들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제련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아직 위력을 시험해 보진 못했으나 한동안 몸 안에서 배양을 하고 나면 각각의 칼날이 녹황검 같은 보통의 법보 보다는 뛰어나리라 확신했다.
득의양양한 그의 머릿속에 곡혼이 보내온 서금충 산란 소식이 들어왔다.
그는 더욱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하루를 쉰 그는 서금충에게로 갔다. 서금충이 들어있는 밀실은 사방이 새하얀 알로 뒤덮여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밀실 옆에 또 다른 동굴을 판 그는 새로운 서금충의 보금자리에 거대한 신경 제어 진법을 그려 대량의 피를 뿌려 넣었다.
이후 대부분의 알을 새로운 밀실로 옮긴 후 주인을 각인시키는 의식을 진행했다. 기존 방에는 이제 천 개 정도의 알만이 왕성한 기운을 뿜어내며 남아 있었다.
모든 일을 마친 한립은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왔다. 인근의 결단기 수사들을 찾아 오랜만에 담소도 나누고 그간 미뤄두었던 수련을 재개한 것이다.
한립이 속세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동안 난성해 수도계는 연달아 큰 일이 벌어져 요동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사건은 여섯 전각을 포함한 크고 작은 세력에서 돌연 배반자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각 세력의 두목이나 종주 등등이 돌연 목숨을 잃었고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이 세력을 장악했다.
또한 소규모의 문파 등이 대거 멸문을 당하고 보물을 도둑맞는 사례가 생겨났다. 일순간 난성해의 각 세력들이 위기를 감지했고 몸을 움츠리고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더욱 최악은 언제부터인지 난성해 수도계에 성궁 천성쌍성이 이미 주화입마에 들었고 엄청난 수행을 전부 잃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성궁이 몇몇 수하들의 손에 떨어졌고 이미 수행을 잃은 천성쌍성은 실권에서 밀려났다는 풍문도 있었다.
이 소문은 수도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이 촉각을 세우고 성궁 사람들의 반응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놀랄만한 것은 성궁이 뜻밖에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소문을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니 난성해 수사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오랜 기간 감춰왔던 각 세력의 야심과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계략을 세워나갔고 누군가는 동맹을 맺어 나갔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운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평화가 폭풍우가 오기 전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립이 만난 결단기 수사들도 만날 때마다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한립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는 성궁이 난성해를 계속 장악하든 다른 세력이 판세를 뒤집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어쨌든 어떤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자신 같은 사람이야 조심해서 폭풍우를 피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몇 년간은 전력을 다해 비검을 수련하고 뛰어난 기량의 진법법기를 생산할 예정이었다. 이어 외성해로 나가 이번엔 육급 요수들을 사냥할 계획이었다.
어쨌든 결단기 수사가 되었으니 육급 요수의 내단이 든 단약 정도는 있어야 법력 증진의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수일간 낮에는 진법을 연구하고 밤에는 가부좌를 틀고 단전의 불길을 이용해 72개의 청죽봉운검을 길들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금충들의 알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고급 영수대를 챙겨 밀실로 간 한립은 이미 자신을 주인으로 알아보는 딱정벌레들을 죄다 담아서 돌아왔다. 시간이 날 때 틈틈이 그들을 살피고 앞으로 만날 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금의 평안한 수련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이왕 결단에도 성공했으니 자연히 그의 관심이 원영기로 향했던 것이다. 요즘은 자신이 과연 원영에 성공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가끔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처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동굴 밖에 40대 중년인이 서있었는데 맑은 피부에 긴 눈썹을 가진 그는 행동거지도 온화하고 점잖았다.
중년인이 한립이 나오는 것을 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한 선사, 제가 괜히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요.”
“금 형, 방해는요. 어서 안으로 드시죠!”
중년인은 금청이란 자로 인근에 거주하는 결단기 선사였다. 사람이 나쁘지 않았고 한립이 막 결단에 성공했을 때 이것저것 지도를 아끼지 않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세상 구경을 떠났다고 했는데 다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금청이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됐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 바로 가야 할 듯 합니다.”
“무엇이든 말씀 하십쇼!”
한립의 장난기 어린 말에 금청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거처로 돌아와 주변 지인들에게 들으니 한 선사가 몇 년 사이 진법 연구에 어느 정도 성취가 있다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마침 진법과 관련해 어려움이 있어 진법사를 찾으려던 참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한 선사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진법이요? 어떤 것을 이야기 하시는지.”
금청이 한립의 말에 저물대를 뒤져 무언가를 그에게 건넸다.
“이것을 좀 봐주십쇼.”
한립이 받아 들고 보니 뜻밖에서도 엄지손가락만 한 하얀색 진주였다. 그는 의문이 어린 눈빛으로 금청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영력을 주입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조금 비밀스런 말투였다. 한립은 일단 영력을 주입해 보았다. 영력이 진주로 스며드는 순간 눈을 찌르는 듯한 하얀 광채가 분출되었다.
범인이었다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을 정도로 환한 빛이었지만 결단기 수사인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필 뿐이었다.
그 결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랍게도 진주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 이어 의식을 주입한 그는 점차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의식을 회수한 한립이 깊게 숨을 내쉬더니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고대 수사가 남긴 유적인가요?”
“확실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고전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남기다니 아마 고대 수사들이나 할 법한 일이긴 하지요.”
금청은 조금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급한 것 같기도 했다.
한립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나 조개 같은 물건에 중요한 정보를 남겨 두는 것은 난성해의 고대 수사들이 즐겨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진주 안에는 지도가 들어있었다.
“이 진주는 원래 두 개로 두 지도가 합쳐져야 온전한 지도가 됩니다. 저와 다른 선사가 어느 작은 점포에서 동시에 발견했는데 다른 보통의 진주들과 섞여 목걸이를 이루고 있더군요. 저희 두 사람이 하나씩을 나눠 갖고 지도에 기록된 지역을 찾기로 한 것입니다.”
한립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미 지도 상의 지역을 찾았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거의 5, 6년을 헤매다가 얼마 전에 찾아냈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전체가 강력한 진법으로 봉해져 있어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진법에 능한 이를 찾아 함께 진법을 깨기로 약속하고 오는 길입니다. 한 선사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산수들 중 진법에 능한 이를 찾기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또 몇 사람 알고 있더라도 친분이 전혀 없어 걱정하던 차에 한 선사의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두꺼운 낯으로 부탁하러 온 것입니다.
진법만 해결해 주신다면 고대 수사의 유적에서 어떤 물건이 나오든 똑같이 나눌 것이니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금청은 자세하게 사정을 설명하며 그가 마음을 정하기를 기다렸다.
이야기를 다 들은 한립은 바로 답하지 않고 코를 긁적였다.
“금형,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이틀 후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잘 생각해 보시고 정 안 된다 하시면 저도 다른 이를 찾아보겠습니다.”
금청은 시원스레 답하고는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다. 한립은 멀어지는 중년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고대 수사의 유적이란 것이 난성해에서 그리 드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안이 텅텅 비어있을지 고계 수사의 서책이나 귀한 법보 등이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는 무슨 고대 유적을 찾으러 거처를 나서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지금 온갖 기류가 뒤섞인 난성해는 그다지 안전하다 할 수 없었고 청죽봉운검도 배양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위력이 보잘것없었다.
그러니 이런 시점에 출타가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사람이 찾아와 부탁했다면 일말의 고려도 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금청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당초 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 하는 부탁을 안면몰수하고 거절하는 것이 탐탁치가 않았다.
이틀 후 금청이 그를 다시 찾았고 한립은 결국 그를 따라 가보기로 결정했다.
우선 상대에게 받은 호의를 되돌려 주기 위함이었고 또한 생각해보니 그도 고대 수사의 유적이 궁금했던 것이다. 혹시 좋은 물건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크게 기뻐한 금청은 다음날 바로 한립과 함께 곡혼을 데리고 천성성을 나섰다.
곡혼이 한립의 분신인 것이야 인근에 살던 결단기 선사들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으니 금청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 *
두 달 후 금청 등은 난성해 모처의 구석진 해역을 날아가고 있었다.
금청의 말에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했다. 역시 반나절을 더 가자 거대한 섬이 드러났다.
이 섬은 면적이 꽤나 넓어서 방원이 천 리는 될 정도였고 중앙의 산에는 흙이 많아 전체가 황토색으로 보였다.
한립은 조금 놀라 금청을 돌아보았다.
“이 섬입니까?”
“지도를 따라 오니 이 섬이 있더군요. 인근에 사는 범인들에게 물으니 영맥도 전혀 없고 수목도 자라지 못해 버려진 섬이라 했습니다.”
한립은 조금 생각을 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기이한 곳일수록 고대 수사가 남긴 유적일 확률이 높겠지요.”
“허허! 저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섬 전체를 샅샅이 뒤져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럼 진법에 덮여 있다는 곳은 어디 있습니까?”
“서쪽으로 백여 리를 더 가면 거대한 토산이 나오는데 그 인근이 강력한 진법으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금청의 설명에 한립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럼 어서 가보시죠. 어쩌면 금형의 동료가 벌써 진법을 해결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성가신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으니 그들 몫을 더 주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금청이 턱을 문지르며 능글맞게 농을 받았다.
“그럼 가시죠!”
금청은 먼저 푸른색과 하얀색이 섞인 빛줄기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한립도 곡혼과 함께 법보를 재촉해 그 뒤를 따랐다.
백여 리야 결단기 수사에게 순식간에 도달할 거리에 불과했다. 곧 굉장히 높은 황토색 흙산이 한립의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높이에 온 산이 황토색 흙으로 덮여 있어 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흙더미 같았다.
그들이 산에 가까이 다가가자 광풍이 불며 모래와 돌들이 날아올랐다. 엄청난 광풍에 황토가 스며드니 사방이 깜깜해지며 당장 눈앞도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단기 수사들이 모래바람 정도에 겁먹을 리가 없었고 바로 빛의 장막이 쳐지며 그들을 보호했다.
그렇게 십 리를 더 가자 모래바람은 소리 없이 잦아들었고 그들도 토산 밑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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