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칠하련
주인을 잃은 검은 해골이 멍하니 공중에 떠있었는데 온 몸에 넘쳐흐르는 요사스런 기운은 그대로였으나 자아를 잃은 듯 했다.
해골을 살피던 한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솔직히 이렇게 이상한 것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해골의 출처가 의심스러웠으나 아까운 마음에 옥함을 이용해 따로 보관했다.
일을 마친 한립은 주위를 살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곡혼을 데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절반쯤 가다 보니 그를 도와주러 쫓아온 금청 등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한립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기뻐하며 한립을 에워쌌다.
금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선사 그 요사스런 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달아나버린 겁니까?”
“이미 없앴습니다.”
한립의 답에 금청이 크게 마음이 놓인 듯 했다.
“없앴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요사스런 기운이 넘치는 자와 악연을 맺어 앞으로 고생 하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호월과 간 선사는 도리어 안색이 변해 한립을 바라보는 눈빛에 미미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어쨌든 수도계는 강한 자만이 존중을 받는 곳이었다. 이후 그들은 석 선자가 초조해하며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모두 모여 상의를 해봐도 빨리 진법을 깨버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났다. 더 시간을 끌다가 방금과 같은 사단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각 선사들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고 한립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미리 설치해둔 진법 법기들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결계는 순조롭게 해결이 되어서 붉은 보호막은 깨져나갔고 불의 요괴 시악은 튀어나오기도 전에 여러 선사들의 물 속성 법기에 전멸했다.
드디어 괴이한 돌기둥이 모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금제가 없으니 선사들은 의식과 육안을 통해 돌기둥을 탐색했다.
돌기둥의 문양은 무척 기괴해서 기둥 하단부터 꼭대기까지 여덟 개의 거대한 고대부호가 휘감고 있었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게다가 돌기둥 전체에 희귀한 음약옥(陰陽玉)이 균일하게 박혀있어 검고 하얀 빛을 발산했다.
모두 한참을 보고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서로의 표정을 살피다 생각에 잠겼다. 그때 수행이 가장 낮은 석접이 탄식하듯 돌기둥의 이름을 내뱉었다.
“봉령주(封靈柱)…….”
한립 등이 봉령주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가 다시 의심스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월이 목이 메며 물었다.
“선 선자, 잘못 본 게 아니오? 이게 정말 봉령주란 말이오?”
“어찌 잘못 보겠습니까? 거처에 전문적으로 봉령주 관련 정보를 기재해놓은 서책이 있는데 문양과 부호가 그 책에서 설명하던 것과 똑같아요. 겉보기엔 보통의 돌기둥으로 보이지만 사실 열댓 가지 희귀한 제련 재료를 섞어 놓은 것이라 영석 오륙천 개의 가치는 지닐 거예요.”
석접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봉령주라는 것은 사실 고대 수도자가 주변의 영기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거대한 법기였다. 그리고 이런 희귀한 법기는 통상 두 가지 용도로 쓰였다.
우선, 진귀한 영초나 영약을 봉인해 외부로 영기가 새어나가 영성을 잃는 것을 막는 용도였다.
다른 하나는 강력한 귀신이나 요마 등을 봉인해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둘 중 어떤 용도로 쓰이더라도 한립 일행이 대단한 발견을 한 것만은 분명했다.
영약은 말할 것도 없고 봉령주에 갇힌 강력한 혼백을 법보 안에 가두면 위력을 상당히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봉령주가 억압하고 있는 마귀라면 당연히 보통의 혼백이 아닐 것이고 함부로 들어갔다가 오히려 그들이 당할 수도 있었다.
잠시 후 금청이 쓴웃음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조금 골치가 아프군요. 그래도 이렇게 공을 들이고 그냥 돌아가고 싶은 분은 없으시겠지요?”
간 선사가 뒷짐을 쥐고는 쌀쌀맞게 답했다.
“난 꼭 들어가 봐야겠으니 갈 사람들은 가시죠. 반드시 요마가 있으리란 법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한번 상대해보고 싶군요.”
금청이 이번엔 호월을 바라보았다.
“호 선사 의견은 어떻습니까?”
호월이 잠시 침묵했다 겨우 결심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산수는 구속을 싫어해 자유롭게 살아가긴 하나 항상 빈궁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기회가 생겼으니 도전은 해봐야겠습니다.”
금청이 그 대답에 별로 놀란 기색은 아니었고 다시 한립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전 아무 상관없습니다. 모두 살펴보고자 한다면 함께 하지요.”
한립은 차분한 얼굴이었다.
악한 기운을 쫓는 다는 천뢰죽으로 제작한 일흔두 개의 천죽봉운검이 있는데 요마나 귀신 등이 두려울 리가 없었던 것이다.
석접은 금청이 묻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입장을 밝혔다.
“저는 물으실 것도 없습니다. 비록 수행이 축기 단계에 불과하나 아버지께서 주신 악한 기운을 쫓는 법보를 지녔으니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을 거예요.”
금청이 신중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좋습니다. 모두 빈손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으신 듯 하니 기둥을 치워보시죠! 모두 조심합시다.”
간 선사가 눈을 빛내더니 돌연 입을 열었다.
“헤헤, 그거야 금 선사가 걱정할 것 없지 않겠습니까? 누군들 자기 목숨이 소중하지 않겠소. 미리 말하지만 만일 마귀나 요수 같은 것들이 있다면 먼저 굴복시키는 자가 임자입니다. 나중에 다른 말하기 없습니다.”
“그것이야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실력을 발휘해 굴복시키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돌아가는 법이니까요.”
금청이 긍정했고 다른 이들도 이견이 없어 보였다. 선사들을 둘러보는 간 선사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렸다.
석접이 그를 힐끗 보고는 묘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 간 선사께선 이런 데 적합한 특수한 공법이라도 익히고 계신가 봅니다?”
“아……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여러 공법 중 마귀를 상대하는데 전문 공법을 하나 익히고 있었는데 평생 쓸 일이 없다가 오늘 기회가 생겼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간 선사가 한 말에 석 선자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방금 괴인도 요마를 제련해 만든 해골을 쓰던데 간 선사께선 어쩌지 못하시던 데요?”
그 말에 간 선사가 고개를 저으며 민망하다는 듯 해명했다.
“그것 참, 우스운 꼴을 보였습니다. 제가 익힌 재주는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활용할 수 있기에 아까는 미처 손쓸 틈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석접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아무 말 없이 돌기둥을 바라보았다.
“어서 움직이시죠! 이 돌기둥은 전력으로 몇 바퀴를 돌려야만 겨우 쓰러질 테니까요.”
석접의 설명에 일부가 당황스러워했다.
아무리 수도자들이라도 태생적으로 힘이 세지는 않았기에 거력부(巨力符)로 힘을 북돋는 술법을 걸어도 저렇게 두꺼운 돌기둥을 회전시키기는 어려웠다.
한립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려 슬쩍 곡혼을 움직였다.
“힘이라면 자신 있으니 제가 해보지요.”
그가 거침없이 돌기둥으로 향하자 호월 등이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말을 거의 하지 않던 그가 돌연 적극적으로 나서자 조금 놀란 듯 했다.
석접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럼 곡 선사가 수고를 좀 해주십쇼.”
곡혼은 그녀의 말을 듣고 성큼성큼 지나쳐서는 거력부를 이용해 몸에 술법을 걸었다.
“흐압!”
이어 노란 기운이 치솟은 그가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두 손으로 단단히 돌기둥을 쥐었다.
쿠르르릉!
두 장은 될법한 돌기둥이 그가 힘을 주는 방향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다른 선사들은 희색이 만연했다.
곡혼의 두꺼운 팔뚝에 힘줄이 솟아나며 붉어지더니 돌기둥을 힘껏 밀어붙였다.
쿠쿵!
돌기둥이 쓰러지며 땅이 갈라졌기에 엄청난 무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눈은 돌기둥이 아니라 그것이 막고 있던 커다란 동굴로 향해있었다.
동굴에선 한기가 불어왔고 하얀 돌계단이 아래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간 선사가 바로 앞장섰다.
“가봅시다.”
다른 이들도 잠시 망설이긴 했으나 이제와 뒤돌아 돌아가는 이는 없었다.
한립은 모두가 흥분한 모습으로 지하 굴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붉은 빛이 반짝이는 그림 족자를 잠시 매만지더니 결국엔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곡혼 역시 그의 바로 뒤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 굴은 무척 깊어서 일각을 내려가고서야 겨우 다 내려올 수 있었다.
곧 눈앞이 밝아지며 이십여 장의 방원형 대청이 드러났다.
대청은 입구를 제외하고도 왼쪽과 오른쪽에 반원형 통로가 있어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다. 또 곳곳에 주먹만 한 야명주들이 박혀있어 대낮같이 환했다. 어떤 술법을 펼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극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먼저 내려간 호월 등이 대청 가운데에 서서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한립도 무슨 일인가 궁금해져 걸음을 재촉했다.
“이건!”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며 한립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어렸다.
옥처럼 새하얀 해골이 작은 연못가에 쓰러져 있었고 그 머리엔 한 자나 될법한 비취색 화살이 꽂혀 있어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해골이 아니라 연못 중앙에 떠있는 삼색의 연꽃에 가있었다.
연꽃은 아직 피지 않아 꽃봉오리에 불과했으나 파랑, 빨강, 노랑의 세 가지 색이 뒤섞인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연꽃의 위에 화려한 무지개가 떠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연꽃이 떠있는 연못도 진득해 보이는 하얀 액체로 이상한 향이 났다.
호월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이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칠하련(七霞蓮)이 틀림없어. 전설 속에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있었다니! 그리고 이 연못도…… 설마 말로만 듣던 천년석유(千年石乳)?”
석접은 거의 몽롱한 눈이었다.
“어쩐지 그렇게 많은 금제를 쳐놓았다 했습니다. 저라도 이런 물건들을 지녔다면 진법 수십 개를 쳐놓는 수고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청이 그나마 정신이 좀 들었는지 다시 해골을 보며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저 해골은 무엇일까요? 설마 이곳의 주인은 아니겠죠?”
“해골이 누군지가 무에 중하겠습니까? 칠하련이 단지 삼색에 불과하지만 경매에 내놓으면 천문학적인 액수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돈벼락을 맞은 거 아니겠습니까!”
간 선사는 금청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눈엔 이미 욕심이 가득했다.
그들 위에서 한립의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칠하련이란 것이 그리 유명합니까? 무엇에 쓰이는 것이죠?”
그의 목소리에 간 선사 등의 마음이 서늘해져서 한립을 돌아보았다.
서금충의 위력을 모두 보았으니 다른 이들이 협공해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을지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보물을 발견했으니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도 당연했다.
심지어 한립에게 와달라고 청한 금청 조차 조금 망설이는 눈빛이었다. 한립이 비상한 머리로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씁쓸한 마음을 숨기고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일곱 빛깔의 연꽃이란 뜻인 듯 한데 수많은 서책을 보았어도 들어본 기억이 전혀 없군요.”
다른 선사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다 결국엔 호월이 헛기침을 하고는 한립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한 선사는 줄곧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다른 선사들과 교류가 없어서 그렇겠지요. 칠하련은 영초를 다룬 어떤 서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수도계에서 구전되어온 전설의 영초입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범인이 복용하면 죽은 자도 살아 돌아오고 수도자가 복용하면 수행을 크게 증가시켜준다 하더군요. 아예 수행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준다는 말도 있고요.”
“그렇게 신묘할 수야 있겠습니까?”
“알 수 없지요. 실제 칠하련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확신하겠습니까? 허나 경매에 내놓으면 엄청난 영석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겠군요.”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다시 칠하련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새하얀 백골사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연꽃 보다는 백골에 더 관심이 가는 듯 했다. 그가 별다른 욕심이 없어 보이자 모두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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