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몸은 돌아오고 적은 떠나다
“흥! 앞에 것들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문 대인의 상스러운 말투가 오히려 한립을 놀라게 했다.
“일부러 최후의 순간에 날 함정에 빠뜨리려 한 거면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는 청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 대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더 말할 것도 없다. 네 말을 어찌 믿겠어. 네가 바로 내 손에 죽었단 사실을 잊었느냐? 어찌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겠어? 암암리에 날 속일 궁리를 할 지 어찌 알아?”
문 대인이 연이어 추궁하면서 상대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다 쏟아내는 것 같았다. 이어서 문 대인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립은 이 대화를 듣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낯선 목소리의 남자는 죽었다 살아난 자였다. 그럼 귀신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게다가 문 대인이 행한 기묘한 술법이 모두 저 자의 머리에서 나온 듯 했다.
“하…… 그럼 날더러 어쩌란 말이오. 이미 조상, 부모, 온 식구의 목숨, 게다가 전 족의 명예까지 걸고 맹세를 하지 않았소. 이래도 만족하지 못한단 말이오?”
젊은 사내가 결국에는 불평 섞인 화를 내었다.
한립은 그의 대답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놀랍게도 문 대인의 믿음을 사기 위해, 자신이 전부를 걸고 맹세하다니. 천성이 경박한 이가 분명했다.
“그랬지. 나도 널더러 어찌하라는 것은 아니다. 너도 이미 육체를 잃고 원신(元神)만 남아있으니……. 종일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만 못하겠지.”
문 대인의 말투가 느릿해졌다. 다시 추한 꼴을 보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임자동,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겠다. 거짓을 고해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결국 너도 모든 것을 잃는 게야. 지금 네 원신의 형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겠지? 내가 네게 적합한 육체를 찾아 주지 않으면 너는 사라져 버리고 말겠지. 그러니 대법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내게 말하거라. 절대 널 탓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을 테니.”
문 대인이 포기하지 않고 사내에게 말했다.
한립도 이제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문 대인은 임자동이 자신에게 알려준 대법에 무슨 수작을 부려 일이 잘못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끊임없이 되물으며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알려준 득사지법(得舍之法)은 고칠 곳이 없다니까 그러오! 만약 한 군데라도 이상이 있다면 내 문중의 모든 사람들이 천벌을 받아 처참하게 죽을 거외다.”
임사동이 거침없이 자신의 사람들을 걸고 맹세를 했다. 그 역시 문 대인의 불안을 읽은 것이다.
“게다가 칠귀서혼의 대법이 단시간 내에 엄청난 내력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겨우 이 법술을 펼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는 법. 당신의 영혼은 이미 귀신에게 먹혀서 남아 있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다음에는 뭘 가지고 대법을 실행할 겁니까?”
임자동은 맹세를 끝맺고 문 대인이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도록 다그쳤다. 그 말이 끝나자 석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문 대인만 초조하게 그 안을 거닐 뿐이었다.
한립은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지나가던 신선에게라도 애원하고 싶었다.
저 자가 두려움에 떨어 이 모든 나쁜 계획을 물리기를 빌고 있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좋다. 일단 사람을 부리기 시작했으면 믿고, 의심스럽다면 처음부터 부리지 말라 하였지. 성공이 코앞인데 약간의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문 대인이 결단을 내렸다.
그 소리에 한립은 심히 절망했다. 표정이 드러났다면, 창백하고 위축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을 터였다. 임자동의 말투에도 기쁨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생각해 보시오. 본래 당신의 영혼은 평범해, 선인(仙人)의 길로는 발도 디딜 수 없지 않았소. 그런데 이 방법만 성공하면 신령의 기운을 가진 육체를 갖게 되는 거요. 그럼 선도(仙道)를 닦는 일족이나 문파에 의탁해 수행을 할 수 있지요.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오행을 깨치게 되는 것이오.”
“하하, 그렇게 되면 내 먼저 너와의 약속을 지키마. 난 말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일단 대법이 성공하면 바로 네게도 영적인 능력을 가진 육체를 물색해 주고,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이야.”
문 대인은 그새 임자동의 말에 넘어가 벌써 술법이라도 성공한 것처럼 굴었다. 임자동을 대함이 너그럽고 부드러워졌다.
“그럼 믿겠소. 법술(法術)이 끝나면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수련 구결을 대형께 알려드리지요.”
임자동은 교활하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상대의 틈을 파고들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한립이 듣고 있자니 정말 간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얼굴을 맞대고 살갑게 대화를 나누지만, 각자의 속내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분명했다.
마치 자신을 무슨 물건처럼 취급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으로서는 한립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 대인은 마음의 불안을 떨치고 결정을 내리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는 가느다란 금침 여러 개를, 자신의 머리 뒷부분에 가져다 꽂았다.
눈에서 붉은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그의 원기가 살아나며 술법을 진행하기에 충분한 기운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문 대인은 한립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하게끔 만든 후, 자신도 맞은편에 앉아 양손을 교차해 어깨에 대었다.
문 대인이 손을 흔들자 붉은 광선이 손에서 뿜어져 나와, 한립이 앉아 있던 결계 위로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결계 주변의 옥석에서도 밝은 빛이 나왔다.
문 대인의 입에서 주술을 외는 소리가 들리자, 한립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지며 침잠하려 하고 있었다.
그 주술은 분명 사기(邪氣)가 가득해, 듣는 이의 의식을 잠들게 하는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그는 전심을 다해 이 소리에 대항하려 노력했다. 허나 지금은 그저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이런!’
주술이 막바지에 이르자 한립은 모든 것을 잊고 의식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흐릿하게 문 대인의 낯짝을 살폈는데, 그는 더없이 악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흉악한 놈아!’
한립이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끝없는 암흑 속에서 한립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그는 작지만 하늘과 땅을 자유자재로 떠돌아다닐 수 있는 녹색 빛의 무리였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황색 빛 무리가 갑자기 그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왔다.
그 광구(光球)는 한립보다 훨씬 작았지만 기세가 흉흉했고, 흑심을 품은 듯 한립을 발견하자마자 맹렬히 충돌해 오며, 거대한 입으로 한립을 물어뜯었다.
녹색 광구도 거대한 입으로 변해 격렬하게 반격을 가했고, 몇 번의 충돌 후 황색 광구는 몸집이 큰 한립에게 가볍게 먹혀 버리고 말았다.
한립은 승리의 춤을 추며 자신의 전리품을 맛보았다. 바로 그때 또 다시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왔다.
이번에 광구는 한립과 마찬가지로 녹색이었고, 크기도 훨씬 더 거대했다. 허나 광구의 빛은 어둡고 희미해 한립의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지 못했다.
이번 침입자는 한립의 또렷한 녹색 광구를 보더니, 크게 놀라 잠시 행동을 멈추더니 주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립은 그 광구를 보자 바로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황색 광구보다는 조금 더 버텼지만, 패색이 짙어지자 한 꺼풀 빛 무리를 벗어버리고 도망쳤다.
그는 계속 다른 침입자가 있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더는 없는 듯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한립은 그런 것은 개의치 않고 홀로 즐겁게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이 계속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 * *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흘러나와 한립의 온몸을 돌며 그를 깨우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자 머리가 무겁고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눈이라도 떠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마치 쇳덩이라도 얹은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문득 잠들기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리고는 깜짝 놀라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어! 설마 문 대인의 술법이 실패한 건가? ’
몸이 불편한 것으로 보아 다시 감각을 찾은 듯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참을성 있게 기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눈을 뜨자마자 그가 본 것은 젊고 미남자인 문 대인이 아니라, 그전보다 더 늙어버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를 보자 한립은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상대보다 먼저 공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문 대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치 숨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한립은 가슴을 짓누르던 돌을 치운 듯 마음이 가벼웠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의 마음속에 문 대인은 항상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이었다. 그 늙고 교활하며 손속이 잔인한 문 대인이 이렇듯 어이없이 죽다니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한립이 이마를 만져보니 ‘정신부(定神符)’라 불리며 자신을 억제했던 종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부적과 주술을 배우고 나서야 이때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누런 부적은 갖고 있던 법력을 소진해 채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한립은 문 대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다른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방에 켜져 있던 등불과 초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맑은 청옥들은 거무튀튀하게 색이 변해 버렸다.
석실을 둘러보니 구석 한쪽에 숨어 있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물체는 바로 꿈속에서 보았던 녹색 광구였다. 광구는 필사적으로 한립의 시야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한립도 녹색 광구를 보고 얼떨떨했으나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잠시 후 몸을 일으켜 광구에 가까이 다가간 후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내 생각에 당신은 아마 임자동이겠지요?”
녹색 광구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빛이 아른거리더니, 자신의 이름이 한립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는 상태가 좋아지며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알아 맞추셨군요. 역시 문경인의 제자십니다.”
광구가 마치 사람처럼 말을 했는데, 한립의 추측에 반문하지 않고 바로 자신이 임자동임을 인정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지금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자신을 음해하려 한 원흉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도 한립은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나 임자동은 상대가 이렇게 온화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는 한기가 스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엄청난 화를 당하기 직전의 직감 같은 것이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임자동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산채로 원신 대부분이 집어 삼켜져서, 법력 손실이 어마어마했다.
이제 조금 남은 법력으로는 소한 환술 몇 개만 펼칠 수 있었는데, 그것들의 살상력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니 그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당신은 누굽니까? 문 대인과는 어찌 알게 된 사이이고, 원래의 계획은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말해 보시지요. 이제 제게 남아 있는 것은 시간뿐이니 천천히 말해 보십시오.”
한립이 마치 가면이라도 쓴 냥 아무런 표정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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