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구곡영삼
한립은 내막을 알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모습을 본 현골 상인도 잠시 멍해지며 곧 생각에 잠겼다.
이때 중년인이 원영기 선사들로 추측되는 노인과 냉혈 부인을 발견하고는 차가운 눈빛을 거두고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남학도(南鶴島)의 청 형과 백벽산(白壁山) 온 부인께서도 계신 줄 모르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서책을 거두고는 거짓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례는요. 극음도에서 대업을 하는 오 형을 이리 만나니 운이 좋습니다. 어쨌든 300년에 한번 있는 기회이니 말입니다. 듣기론 만호자 역시 누군가 바친 지도를 보고 찾아온다 합니다. 노부들이 다시 한 번 뭉치게 되는 셈이지요.”
중년인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만호자도 온단 말입니까?”
“그러니 말이에요. 떠도는 말로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허천전에서 수원과(壽元果)를 찾아 장생단(長生丹)을 만들 작정이라 하더이다. 그렇게라도 5, 60년을 더 살아보려고요.”
노인의 말에 만호자를 비웃는 듯한 기색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냉냉한 얼굴의 부인은 여전히 보검을 매만지며 두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다.
한립은 그들이 대화에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중년인은 역시 오축의 몸에 깃들어 나타났던 극음 사조였고 그들이 대화에 따르면 원영기 수사가 한 명 더 올 듯싶었다.
그는 허천전에서 수원과라 불리는 수명을 늘려주는 영초를 찾으러 올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원영기 수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이해못할 것이 아니었다.
한립은 방금 들은 정보를 조합해보며 이 흙탕물에 뛰어들어야 하나 아니면 기회를 보아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공중에 떠있는 기괴한 궁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월국에서 겪었던 혈금시련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곳은 분명 고대 수사가 만든 공간이 틀림없었다.
이 안에는 보물도 많지만 위험도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극음 사조가 보인 뜻밖의 희색이 그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당장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괴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허천전은 300년에 한 번 밖에 열리지 않는 것 같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인연이 없을 것이다. 이 점이 한립을 주저하게 했다.
그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현골 상인의 전음이 전해졌다.
“녀석아 무언가 극음 놈이 탐낼만한 물건을 지니고 있더냐? 아까 그 표정으로 보건대 넌 확실히 큰일 났구나. 큭큭.”
현골 상인의 음성은 매우 평이했으나 분명 그의 상황을 비웃고 있었다.
“극음 도주가 선배님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면 저를 만난 것 보다 더 기뻐하지 않을 지요? 어찌 오랜 세월 못 나눈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시렵니까?”
현골 상인이 그 말에 음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감히 날 위협해?”
“그럴 리가요. 선배님의 신분과 지위가 있는데 제가 감히 위협을 하겠습니까? 다만 강 건너 불구경 하실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완배도 생명이 위태로워지면 부지불식간에 몇 마디 말이 새어 나올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현골 상인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한립은 상대가 화가나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다 여겼다. 그때 귓가에 다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넌 원영기에 이르고 싶지 않더냐?”
그 말에 한립은 크게 마음이 동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냉랭히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히히, 무슨 뜻이라니? 원영을 성공할 확률을 몇 배나 높여줄 영초를 알고 있다는 뜻이지. 그것은 허천전 내에만 존재하는데, 만일 나와 연합해 극음을 해치워 준다면 그것이 있는 장소와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알려주겠다.
요괴에 관련된 특수한 공법을 익힌 내가 이 몸이 아니었다면 어찌 네게 기회가 돌아가겠느냐? 게다가 네가 나와 연합하지 않더라도 극음이 널 찾을 날이 멀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넌…… 큭큭!”
현골은 유혹과 위협을 동시에 하며 극음에 대한 짙은 살의를 드러냈다. 한립은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 것이 고민스러운 것이 분명했다.
현골 상인이 변한 소년의 모습은 아주 태연해서 전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단기 선사가 이런 유혹을 거절할 확률이 아주 미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 극음 사조와 오축은 학자 유생 옆의 빈 기둥 위로 날아올라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때때로 냉담한 부인에게 몇 마디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부인은 보검을 거두어들인 후 바로 두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정말로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극음은 이런 푸대접에도 전혀 민망한 기색도 없이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주시하던 한립은 더욱 그가 꺼려졌다.
그는 수행이 깊을 뿐 아니라 심계도 남달랐던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현골이 그에게 당해 귀신으로 떠돌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음과 현골의 은원관계야 그와 하등 관련이 없었고 중요한 것은 극음이 그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원영기 수사에게 달아날 기회가 전혀 없다고는 하지 못하나 전면전을 벌여서 이길 가능성은 너무 낮았다.
어쨌든 결단 초기인 그와 원영기 선사의 수행 차이가 무척 컸다. 법보가 아무리 강력하고 서금충이 있어도 극음에게는 당해낼 수 없다.
여러 정황을 헤아려 보던 한립이 결국 현골을 향해 물었다.
“선배님이 말하는 바만 믿고 원영기 선사와 싸울 수는 없으니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시지요.”
현골 상인의 얼굴에 희색이 비치며 조용히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협조만 하겠다면 원하지 않아도 말해줄 참이었다.”
한립은 별다른 답 없이 두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다시 현골의 음성이 귀를 울렸다.
“구곡영삼(九曲靈蔘)은 천지영기가 화해 만들어진 영초이다. 본체는 일종의 영초이나 영성이 엄청나서 탄생 직후부터 각종 동물이나 곤충으로 변해 자유롭게 살아가지. 오래 전 내가 허천전에서 처음으로 이것을 보았을 때는 수행도 너무 낮고 적합한 법기도 없어서 놓치고 말았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이미 원영기에 들어 불필요하니 심력을 쏟을 이유가 없었지. 그 결과 너만 덕을 보게 생겼구나.”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구곡영삼? ’
그 이름은 워낙 유명해 오랜 세월 한두 번 들어본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설 속 신선의 풀로 수많은 영초 경전에서 이것을 다루고 있지만 이런 물건이 세상에 진짜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허천전에 구곡영삼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고대 선사들이 남긴 오래 된 유적에 이런 엄청난 영초가 존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구곡영삼이 원영을 응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경전에서도 구체적인 용도는 적혀 있지 않고 모호한 설명만 있을 뿐이었다.
한립은 마두가 자신을 끌어들이려 속이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도 한립의 의심을 읽었는지 말을 이었다.
“걱정 말거라! 이후 관문을 통과할 때 두 번째 관문에서 네가 그것을 찾게 도와 줄 테니. 이후 역도를 처리하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약방을 넘겨주지.
그 약방대로 해야만 원영기에 이를 확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 허천전에는 나도 꼭 얻어야 할 것이 있으니 그때는 네가 날 도와야 할 것이야. 이렇게 되면 극음 놈을 상대로 승산을 키울 수 있겠지.”
소년 모습의 현골은 보상에 걸맞은 조건을 제시해 한립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당신이 정말 극음을 죽일 수만 있다면 도움을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결국엔 일시적인 동맹이 맺어졌다. 다만 이 결속은 아주 약해서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마 극음 사조를 멸한 다음에는 자연히 깨지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한립은 적잖이 안심을 했다.
현골 마두의 말투로 보아 허천전 원행이 처음이 아닌 듯 했다. 길을 아는 동맹자와 함께 하는 것은 눈앞이 깜깜하던 곳에 빛이 비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허천전에 관련된 기본 정보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음 사조를 처리하기에 조금은 믿을 수 있는 상대였다.
한립은 그에게서 이곳 정보를 알아내기 시작했다. 마두와 반나절을 이야기한 끝에 안색이 변했다. 기회가 있는 곳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했던가. 이곳에는 거쳐야 할 관문이 첩첩산중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후 몸과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정말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이 대청 안에서는 기습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몸을 띄우는 등 아주 기초적인 법술 외에 법력을 요하는 법술을 펼치면 영력이 새어나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체내의 법보도 마치 죽은 물건처럼 전혀 꼼짝하지 않았다.
정말 신통한 금제였다.
이후 대청 안 수사들은 더욱 많아져 거의 백 여 명으로 불어났다. 옥으로 된 기둥은 벌써 모든 선사들이 차지해 버렸다.
나중에 온 이들은 자연히 구석을 찾아 바닥에서 휴식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5, 6일이 지나자 새로 들어오는 선사의 수가 감소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전이 지나도록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극음 사조와 학자 차림의 노인은 가끔 입구로 시선을 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한립은 그들의 대화를 떠올리며 어떤 이름을 생각해 냈다.
‘만호자를 기다리는 것인가? ’
오후가 되어 결국엔 입구에 발소리가 울리며 남색 빛이 울렁이더니 두 사람이 연달아 들어왔다.
한 명은 혈색 좋은 늙은 도사였고 다른 한 명은 농부 차림의 마르고 새까만 노인이었다.
그들을 본 선사들이 잠시 어수선해지며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인 듯 했다.
극음 사조와 학자 노인만이 악의를 담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새로 온 두 선사들도 극음 등을 보자마자 적의를 드러냈고 노 도사가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극음 노마, 일찍도 왔구나! 너희 마도인들이 이번 허천전 원행에 기대가 큰가 보군.”
“천오자! 본 사조가 일찍 온 것이 아니라 너희 위선자들이 너무 늦게 온 것이다. 너희가 얻은 지도가 가짜라는 정보가 있어 봐주었더니 결국엔 찾아내고 말이야.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노 도사가 반격하기도 전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극음! 누굴 봐주었다고? 나도 그 말에 포함되는가?”
극음과 학사 노인이 안색이 급변했고 본래 한 마디도 없던 미부인이 돌연 고개를 들어 냉랭히 소리쳤다.
“만천명 당신도 왔군요!”
“원 부인도 왔는데 본인이 온 것이 이상할 일입니까?”
말소리가 전해지며 자색 장포에 옥으로 된 대를 한 중년인이 들어섰다.
눈썹이 짙은 중년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부인을 보더니 바로 극음 사조 등을 훑어보았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이었다.
극음 역시 거만한 상대의 표정에도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이에 한립은 새로 들어온 중년인을 자세히 봐두었다.
‘원영 초기인 극음이 꺼릴 정도라면 원영 중기에 이른 선사란 말인가? ’
한립은 곧 새로 온 3인이 난성해의 선사이며 마도인들인 극음 등과 앙숙이란 것을 알아챘다.
대청의 소란은 중년인이 들어오면서 잦아들었고 은은히 그들의 속삭임 속에서 만법문(万法門) 문주라는 소리가 전해졌다.
분명 중년인의 명성이 앞선 둘 보다 높은 듯했다. 이때 온 부인이 나서 거침없이 따져 물었다.
“만천명. 본 부인 문하의 하녀가 당신네 제자에게 상해를 입은 것이 맞습니까?”
“상해랄 것은 없고 본문 제자가 가르침을 좀 준 것으로 알고 있소. 설마 그런 사소한 일로 내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오?”
“가르침은 무슨! 겨우 축기 초기인 하녀를 괴롭힌 것뿐이겠지요. 아니면 날 모욕하였다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중년인은 별로 개의치 않아하며 차분히 답했다.
쿠쿠쿵!
그때 큰 소리가 나며 대청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원영기 노괴들을 제외하고 모든 선사들이 놀랐다.
극음과 학자 유생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은은한 희색을 드러냈는데 극음 사조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만천명의 눈에는 한기가 돌며 은은한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노도사와 농부 노인도 누가 온 것인지 알아채고는 조금 근심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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