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원요
화구가 구슬을 빠져 나간 검은 기운과 만나 폭발하더니 그 안에서 옅은 비명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간교한 요괴가 그가 직접 손을 대도록 구슬 형태로 자신을 유혹한 것이다. 만일 그가 구슬을 욕심을 내 무턱대고 만졌다면 자신의 육신을 두고 세 악귀와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요귀가 합체된 호랑이 요수의 육체가 벽사신뢰에 당할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금뢰죽의 명성으로 보건대 비검 네 자루가 전력을 다해 방출한 뇌전이 일개 요귀 한 마리를 잡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런 필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원혼의 땅에 온 순간부터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요귀들이 하나씩 합체를 할 때에도 그리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당연히 자령 선자와 흑의인의 시선 때문에 처음부터 벽사신뢰를 쓸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요귀들이 합체 후 생각 외로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고 맨 발로 청죽봉운검을 제압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그가 아니었다. 이렇게 결단 후기 선사보다 강력한 요귀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저으며 두 조각이 난 구슬을 내려다보던 한립이 천천히 몸을 돌려 자령 선자와 흑의인에게 걸어갔다.
흑의인은 무척 놀란 눈빛이었다. 비록 마지막 결정적 순간은 놓쳤으나 틈틈이 요귀가 부령술을 펼치고 변형에 합체까지 하는 것은 똑똑히 보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한립이 괴물을 간단히 처치하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고보라도 지닌 걸까? ’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결단 초기 선사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해냈을 리 없었다. 만일 추측대로라면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허천전에서 의지할 버팀목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영기 노괴들이 아니고서는 상처 하나 없이 방금 본 강력한 요귀를 잡는 이는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생각을 마친 흑의인이 복잡한 심경을 담아 한립을 바라보았다. 자령 선자도 크게 놀라긴 했으나 일찍이 그가 보통 결단기 수사와는 다름을 알고 있었기에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대단하십니다, 한 선배님! 이렇게 엄청난 요귀를 간단히 처리하시다니. 선배님과 함께 전송된 것이 저의 복입니다.”
“간단히? 전혀 간단하지 않았소.”
한립의 담담한 부정에 자령 선자가 웃음을 지었다.
“너무 겸손하십니다.”
그의 대답을 마음에 없는 소리라 여긴 것이다.
“방금 빛은 어떤 물건을 이용하신 겁니까? 그렇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다니요?”
옆에서 듣고 있던 흑의인이 말을 꺼냈는데 저음에 거슬리는 음색이 듣기가 고역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한립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담담히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선사가 여인인 것을 알고 있으니 변조된 목소리를 쓸 필요 없습니다.”
자령 선자도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흑의인이 움찔 하더니 두 눈에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해졌다.
잠시 후 흑의인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한 여인으로 변하였다.
“두 분이 이미 알아채셨다니 어쩔 수 없군요. 저는 그저 원행을 편히 하기 위해 남장을 했을 뿐입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조금 뜸을 들이더니 결국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까지 벗어 절색의 미모를 드러냈다.
그녀는 눈처럼 하얀 피부와 까만 긴 머리를 지니고 있었고 이마의 금빛 찬란한 화관은 신비한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냉랭하고 오만한 얼굴까지 너무 아름다웠다.
흑의인이 얼굴을 드러내자 같은 여인인 자령 선자마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슬쩍 한립을 살폈다. 그 결과에 자령 선자의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한립이 상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평소와는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의 여인의 얼굴에서 옅은 붉은 기가 돌았다. 불쾌하기도 했지만 조금 득의양양한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냉랭히 물었다.
“이제 그만 보시지요. 소녀의 얼굴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여인이 이리 쏘아붙였는데도 한립은 전혀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고 심지어 장난스런 미소를 짓는 것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흑의 여인이 눈썹을 치켜세웠고 자령 선자마저 가슴이 콩닥거렸다. 혹시 한립이 이상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닌지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타고난 자질의 한계로 결단하는 여인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많은 사내들이 자신의 반려로 결단기 여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흑의 여인처럼 엄청난 미모까지 갖추었다면 한립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계속된 시선에 흑의 여인이 화가 나려는 찰나 한립이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겨우 100년 사이에 원 소저가 결단에 성공하시다니 축하할 일입니다.”
그녀의 창피한 기색은 원 소저란 말이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흑의 여인은 당황한 기색으로 그의 말을 부인했다.
“원 소저라니요? 사람을 잘못 보신 듯 합니다. 전 완 씨 성을 씁니다.”
그런 태도가 한립도 의외였는지 다시 한 번 그녀를 살펴보았다. 이때 여인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저물대에 한 손을 얹고 적의를 드러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긴장감이 조성된 것이다. 모든 것이 한립이 내뱉은 원 소저라는 말 때문이었다. 한립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사정을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자령 선자야 여러모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히 한립 쪽으로 반걸음 다가서며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실력을 떠나 오랜 세월 알아온 한립의 편에 서는 것이 지금 상황에선 최적의 선택이었다. 한립이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해명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 합니다. 아마 너무 오래 전 일이고 그저 일면식이 있는 사이라 원 선사께서 저를 기억하지 못 하시는 듯 하군요.”
“100년 전에 단 한번 본 사이라고요?”
경계심은 여전했지만 흑의 여인도 표정이 조금 온화해졌다. 여인이 한립을 자세히 살피고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지 물었다.
“저는 선사의 얼굴이 너무 낯설고 어디서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속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100년 전 괴성도의 천도가 시장에 다녀온 일을 기억나십니까?”
“괴성도의 천도가라면 분명 여러 번 갔었지요. 설마 거기서 만난 적이 있단 말입니까?”
흑의 여인이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럽게 한립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도 희미하게 무언가가 떠오르는 눈치였다.
“그렇습니다. 당시 소저는 연 선사라는 분과 함께였고 저는 곡 사숙과 같이 시장을 둘러보다 마주했었지요.”
곡혼을 언급할 때는 한립이 자령 선자를 슬쩍 살폈다. 자령 선자는 곡혼이 분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곡혼을 사숙이라 속여 데리고 다녔다는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상황은 모르겠으나 분신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려 연극을 하고 다녔을 그를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무 이유 없이 발설할 까닭이 없었다. 다만 곡혼을 데려오지 않은 것은 벌써부터 의문이었다. 그렇게 큰 조력자를 어찌 데려오지 않았단 말인가?
흑의 여인이 눈을 깜빡이더니 돌연 무언가가 떠오른 것 같았다.
“그리 말씀하시니 눈에 익은 것도 같습니다. 설마 천도가 거리 입구에 축기 후기인 곡 선배님과 함께 서있던 분입니까!”
그녀의 얼굴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한립은 쓴웃음이 났지만 소리 내어 웃으며 대답했다.
“드디어 기억하셨군요. 아마 당시 제 인상이 너무 평범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 흑의 여인이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상상하던 인물이 아니어서 크게 마음이 놓였고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너무 불쾌히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단지 당시에 선사의 수행이…….”
“당시 한 모의 수행이나 외모가 너무 평범해 원 소저의 눈에 들 리가 없었지요.”
한립의 이런 편안한 기색이 흑의 여인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그가 상당한 능력자임을 알았으니 그녀가 오늘 보인 무례를 마음에 담아둘까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보까지 원기를 크게 상했으니 한립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런 마음에 여인이 웃음을 지었다.
“저도 한 선사님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겨우 100년 만에 놀랍게도 연기기에서 결단기까지 이르시다니요! 게다가 법력도 고강해 귀왕조차 간단히 처리하셨고요.”
여인이 잘 지내보자 건넨 축하에 한립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연기기에서 결단까지 왔단 말인가! 당시 그는 이미 축기기 선사였는데도 그나마 삼전중원공이 없었다면 결단기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눈앞의 여인이야 말로 그 짧은 시간에 연기기에서 결단기에 이른 표본이 아닌가! 사실 그도 흑의 여인을 알아보고 크게 놀랐었다.
그녀는 자질이 보통 사람을 초월하거나 100년 동안 무슨 기연을 만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빠른 성취는 말이 되지 않았다.
방금 상대를 살피며 자신과 같은 결단 초기 선사라는 것은 확인했으나 상대의 법력에 막혀 영근의 자질은 파악할 수 없었다.
미소를 띤 그가 막 무언가 말하려는데 옆에 서있던 자령 선자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일단 가던 길을 가는 것이 어떨지요. 만일 또 다른 요귀가 나타나면 큰일이니 이곳에 오래 머물러선 안 될 듯합니다.”
그 말에 한립이 웃음으로 동의했다. 흑의 여인 원요 역시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세 사람은 다시 방향을 찾아 귀무를 뚫고 나아갔다.
* * *
어느 이름 없는 화원에 기이한 꽃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정교하게 옥으로 지어진 여러 정자가 있어 2, 30명의 선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선사들 중 대다수는 얼굴이 창백하거나 핏자국이 있는 것이 엄청난 고전을 겪고 이곳에 온 듯 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극음 사조와 만천명 등 원영기 선사들도 자리하고 있었고 두 진영으로 나누어 정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궁에서 왔다는 백의인 둘이 고의인지 우연인지 두 무리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조각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화원의 사방 백여 장 밖은 모두 농염한 검은 귀무로 안쪽 세계와 바깥이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돌연 귀무가 갈라지며 차분한 걸음의 소년이 걸어 나왔다.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녹색 장포를 걸친 선사였다.
특이한 점은 그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어떤 고생도 하지 않고 도착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는데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었다.
이때 눈을 감고 심기일전 중이던 극음이 슬쩍 눈을 떠 소년을 확인하고는 실망한 기색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방금 나타난 소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극음 사조를 보는 눈에 악랄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이런 마음을 감춘 그는 성큼성큼 걸어 화원으로 진입했다.
그는 다른 선사들과 함께 정자에 앉지 않고 구석진 곳을 골라 뒷짐을 지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다른 이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중에 한립이 보이지 않자 눈썹이 쳐지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이때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굵은 목소리가 소년의 머리를 울렸다.
“어찌 조력자가 안 보이나? 헤헤, 어쩌면 대단한 요귀에게 당했을 지도 모르지.”
소년이 의식을 통해 거침없이 화를 냈다.
“그 입 닥치거라! 아무 때나 내 몸 안에서 소리를 내지 말란 말이다. 원영기 선사들이 한 무더기인데 만일 그들 중 하나라도 강력한 의식을 지녔다면 들킬 거라 말하지 않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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