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8
28화. 려비우와 소녀
‘천안술(天眼術)’은 법력을 눈에 사용하는 것으로, 인체를 관찰해 법력(法力)의 유무를 판단하는 단순한 용도의 간단한 술법이다.
한립도 처음에는 흥미진진하게 이 법술을 탐구했다. 쉬지 않고 자신의 눈에 천안술을 걸어 자신의 몸을 관찰했다. 그 결과 옅은 백광이 자신의 몸에서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백광은 단전으로 갈수록 더욱 짙고 선명해졌다.
보아하니 이 백광이 바로 법력인 듯 했다. 한립은 빛을 보자 손을 뻗어 잡으려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법력도 진기와 마찬가지로 형태도 질감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단지 천안술을 써야지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 법술을 행하고 나서는 바로 흥미를 잃어버렸다. 천안술을 이용해 누구를 살펴본 단 말인가?
매일 자기 자신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립은 화탄술(火彈術) 수련에 집중했다. 실전에서 운용할 만큼 능숙해지려 했고, 다른 종류의 법술로 옮겨가며 돌파구를 찾아 나가고 있었다.
법술을 수련하면서 겪고 있는 괴로움을 떠올리자 한립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법술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었다.
* * *
댕- 댕-
낮은 종소리가 신수곡의 바깥에서 울려 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최근 그를 찾는 환자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거의 도검에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린 심각한 외상 환자들이 많았다. 그는 미리 준비해 놓은 약재꾸러미를 들고 달려 나갔다.
그가 신수곡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한립은 상급 제자 한 명이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한립을 발견하곤 크게 기뻐했다.
“한 대인님 오셨군요. 제 사부께서 극독에 당하셨는데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리 찾아 왔습니다. 서둘러 같이 가셔서 해독할 수 있으신지 좀 봐주십시오.”
한립이 가까이 보니 바로 문파 내 서열 5위인 이 장로가 총애하는 제자 마영이었다. 일전에도 이 장로를 따라 신수곡에 몇 번 들렀었다.
“중독이요?”
한립이 길을 가면서 상세한 상황을 물었다.
“예. 사부님께서 하산하셔서 일을 보시다가, 아랑단의 고수 한 명과 붙으셨다가 상대방의 암기에 당하신 겁니다. 처음에는 독에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상대를 사살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독이 발작해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다른 의원에게 보인 적이 있습니까?”
“예, 당연히 여러 명 찾아갔었습니다. 다른 의원들은 사부님이 희귀한 독에 중독되었다고만 하고, 손을 쓰지 못하더군요. 심지어 약방문조차 써주지 못했습니다.”
마영이 다른 의원들에게 쌓인 불만을 이야기했다. 한립은 열심히 걷는 데에만 집중하는 척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사실 한립은 해독에 대해서 정통하지 못했다. 내상이나 외상 환자를 진료하라면 여러 가지 약재와 또 자신의 역량에 의지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기 드문 극독은 어쩌란 말인가. 비록 자신에게 100가지 독을 모두 해독한다는 청령산(淸靈散)이 있다지만, 이 독에 청령산이 들을 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본 산에 기거하는 다른 의원들이 상처치료나 해독과 같은 강호에서 늘 접하는 환자의 치료의 경우는, 그들이 정통한 분야라 할 수 있었다. 고위층들이 자신의 목숨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데 실력도 없는 의원들을 모아다 놓겠는가.
그런 그들이 약방문조차 쓰지 못한 것을 보면, 이 독이 그만큼 치료하기 어렵고 희귀하다는 뜻이었다. 마영이 거의 소매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이 장로의 거처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의 행동을 보니 사제지간의 정이 깊음을 알 수 있었다.
* * *
이 장로의 거처는 화려하거나 넓지 않았다. 가까이에 곁채가 여러 개 있었고 뜰이 있었는데, 한 장 가까이 솟은 흙담이 이 장로의 거처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둥근 모양의 반월문이 열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이 장로를 살피러 온 손님들이 많았다. 안에 들어가자 한립은 밖에서 보던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립 역시 일찍부터 이 장로가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하급 제자부터 동료 장로들까지 누구에게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고, 문파의 이권다툼에도 끼어들지 않는 호인이었다. 그러니 그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고 인맥 역시 넓었던 것이다.
지금 그런 이 장로에게 사고가 생겼으니, 한 번은 그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던 것이다.
한립이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사람들은 앞다퉈 그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한 신의님 안녕하십니까!”
“한 신의님 오셨군요!”
“이제 살았어. 한 의원님이 오셨어……”
한 동안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들을 보면서 한립도 미소를 띠었다. 속으로는 이런 허례와 가식이 지겨웠지만, 흠 잡을 데 없는 예법으로 예를 올렸다.
다행히 당주나 공봉 같이 품위를 지키는 이들은, 한립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마영은 옆에 서서 한립이 응대하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기색이 가득했다.
겨우 마지막 사람에 이르자 마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립의 어깨를 잡고 안으로 끌었다. 이런 거친 행동이 신의와 교분을 쌓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산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한립은 마영에 의해 바로 접견실로 들 수 있었다. 안에는 몇 명의 가속(家屬)들과 마 부문주(副門主) 및 장로 두 명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려비우가 방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립이 의문 가득한 마음으로 려비우를 살피는데, 그의 옆에는 체구가 작은 소녀가 서있었다.
려비우는 계속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다른 사제들에게 보여주던 것과 다른 세심함이 묻어있었다. 딱 보아도 그녀를 연모하는 듯 했다.
한립은 하늘 높은 줄 날뛰는 려사형을 사로잡은 여인의 얼굴이 궁금했다.
그 소녀는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였는데, 칠흑 같은 머리를 양 갈래를 땋아 늘어뜨리고는 청옥으로 된 머리장식을 꽂고 있었다.
그녀의 여린 몸이 녹색 치마와 잘 어울렸으나, 지금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보는 사람을 애처롭게 했다.
한립이 소녀에게 주의를 기울이자 마영이 급히 나서서 접견실의 사람들을 소개했다. 마 문주와 천 장로는 이미 만나 본 일이 있기에 먼저 나서서 예를 올렸다.
“마 문주님, 천 장로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소(小) 한 대인이 왔구만.”
마 문주가 문주로서의 권위를 따지지 않고, 아주 친근하게 인사를 받았다.
‘한 대인이면 한 대인이자 앞에 소자(小字)는 뭐야? ’
한립이 속으로 불평을 내뱉었다. 천 장로는 고개만을 살짝 끄덕였다. 체구가 우람하고 얼굴에 붉은 빛이 도는 장로는 생소했다. 하지만 손바닥 피부가 거칠고 열 손가락이 짧고 튼실한 것으로 보아 특수한 무공을 익힌 이였다.
“이 분께서는 조 장로님이신데 저희 사부님과는 막역한 사이시지요. 줄곧 본 산 밖에서 취보당(聚寶堂)을 감독하는 업무를 맡아오셨는데, 이틀 전에 본 산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마영이 한 쪽에 서서 소개를 했다.
“음…….”
조 장로는 신이라고 모셔온 인물이 이렇게 젊다는 것 때문에, 그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한립도 담담하게 인사를 올리고는 지나치려 하였다.
“한 대인이 비록 나이는 어리나 의술만큼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렀다 해도 모자람이 없네. 이 장로는 반드시 기사회생(起死回生)할 수 있을 게야.”
마 문주는 두 사람 사이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는 한립의 의술을 칭찬하고 나섰다.
“그렇습니까? 이렇게 젊은이가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녔다니 믿기 어렵군요. 설마 문 대인의 의술보다도 더 고명하단 말입니까?”
조 장로는 성질이 불같은지, 한립의 면전에서 생각도 없이 불신을 표출했다. 그가 이리 말하자 방에 대기 중이던 가속들조차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하! 조 장로가 아직 모르셨구만. 한 대인은 문 대인이 아끼던 제자로 이미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 문 대인의 경지를 넘어섰다네.”
이런 상황에 은근히 기뻐하던 마 문주가, 다시 한 번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겨우 열 몇 살이나 먹은 어린애가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의술을 익혔어도 그리 뛰어날 리가 있습니까?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못 믿겠습니다.”
조 장로가 고개를 저어댔다. 어찌 이런 인물이 장로의 자리에 오르고 또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서서 듣고 있던 한립도 암암리에 눈을 흘길 수 밖에게 없었다.
‘내 의술을 왜 당신 앞에서 증명해야 해? ’
한립도 마 문주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 장로와 마 문주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서로 적대시 하고 있었다.
“조 장로의 혼원수(混圓手)는 이미 절묘한 경지라 위력이 대단하다지요.”
한립의 얼굴에서 불쾌한 기색을 읽은 마 문주가, 희색이 만연해서 화제를 돌렸다. 조 장로를 겨냥해 이야기 한 것이다.
“흥! 마 문주님이 현음지(玄陰指)에 정통한 것만 하겠습니까!”
조 장로도 상대가 문주의 신분인 것도 잊고 말했다.
“허허, 조 장로 과분한 찬사요.”
마 문주는 웃음 속에 칼을 감추는 유형의 인사인지라, 상대가 비꼬는데도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으로 응수했다.
조 장로는 오늘 마 문주의 행동이 묘하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비록 같은 파벌은 아니라 하여도, 이렇게 많은 아랫사람들 앞에서 나서서 서로간의 갈등을 표출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립은 겉으로는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마 문주가 이번에도 자신과 다른 문파 내 고위층간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가 의원으로서 처음으로 마 문주를 만난 이후, 줄곧 암암리에 자신의 파벌로 들어오라는 의사를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립과 같이 의술이 고명한 신의를 자신의 파벌로 끌어들여 자신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전략이었다.
허나 한립은 칠현문 내의 권력 다툼에 끼어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가 청렴하고 고결해서가 아니라, 칠현문 같은 작은 문파를 차지하려 아등바등 권력 싸움을 할 마음도 없으며, 마 문주 같은 인간의 부림을 받으며 비굴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한립도 일단 상대에게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대답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러니 마 문주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팠다.
그의 의술은 아깝고 또 강제로 그를 구속할 방법은 없으니,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오늘까지 이른 것이었다.
하지만 마 문주는 한립이 다른 파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고, 지금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조 장로에게 한립에 대한 인상이 좋게 남을 리 없었다.
마영이 닭싸움 하듯 푸닥거리는 마 문주와 조 장로를 보며 당황했다가 급히 이어서 소개를 마쳤다.
“이 분께서는 저의 사모(師母)이신 이 씨(氏) 부인이십니다.”
마영이 아까 본 소녀와 용모가 비슷한 중년 여성을 먼저 가리켰다.
“그리고 이 분은…….”
“이 분께서는…….”
소녀는 나이가 가장 어렸기에 마지막에서야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장수아라는 이름의 소녀는 뜻밖에 이 장로의 외손녀였다.
려비우는 한립을 모른 채하며, 차갑게 굴어 마영을 난감하게 했다. 마영이 작은 목소리로 해명했다.
“려 호법은 한결같이 이런 태도입니다. 평소 성격이니 한 대인께서는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한립이 빙그레 웃었다. 려비우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앞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을 것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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