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33
33화. 금광상인(金光上人)
마영은 적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몇 번이나 상대의 고집을 꺾으려 해보았지만, 안 문주의 요패를 이용해 번번이 그를 제압했다. 심지어는 마영 자신이 나가서 알아보는 것마저 불허했다.
이리 하여 마영은 뚱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칠현문에서 상명하복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 자는 그 벌이 아주 엄해, 무공을 폐하고 문파에서 내쫓기거나 심하면 참형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 칠현문의 존망이 걸렸을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조차, 꼼짝없이 저택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한립과 려비우는 이런 정황을 전혀 모른 채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오는 동안은 적을 교묘히 피했지만 이 장로의 거처에 다 와서 처음으로 교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이 함께 나타나자, 강호에서 조금 굴러먹었다고 자신하는 무리의 우두머리조차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수하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들이 누구든 칠현문은 이미 끝났다.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한립이 빙그레 웃고는 려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누가 갈까? 너 아니면 곡혼?”
그 말을 듣자마자 려비우가 대답했다.
“저들의 복장을 보니 분명 단수문의 하급제자들이구나. 며칠간 아랑단에게 쫓기며 당한 수모를 풀어야겠어. 게다가 저 무기도 마음에 들고 말이야.”
려비우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들 중 가장 가까이 있던 푸른 옷을 입은 사내에게 다가갔다.
푸른 옷을 입은 이는 깜짝 놀라 그를 막으려는데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도가 적의 손에 가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목숨을 보전하려 급히 뒤로 물러나, 도광이 번쩍하는 것을 볼 때는 이미 목이 분리되었다.
그 동작은 너무 깔끔하고 빨라, 단수문의 제자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한 명이 죽어나갔다.
적들은 그들이 맞닥뜨린 고수가 자신들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두머리는 과감히 명을 전했다.
“모두 흩어져 칠현문을 구원하러 고수가 왔다고 신호를 보내라!”
이 명령에 그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중 몇몇은 달리는 와중에서 품속으로 손을 넣었는데, 아무래도 그 신호라는 것을 찾는 듯 했다.
가장 빨리 달리던 사내가 무사히 도망친 것을 기뻐하던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더니 날카로운 검이 그의 후두부에서 튀어나왔다 사라졌다.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서서히 지면으로 쓰러지면서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에게 목이 찔렸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멀리 도망을 왔는데 이리 쉽게 잡혀 죽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마지막 힘을 모아 겨우 고개를 돌려 죽기 직전 마지막 장면을 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함께 도망 온 청의인 중 한 명 뒤에 아른거리더니, 경쾌하게 칼을 뻗고는 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 바로 다른 한 명에게도 같은 검광이 번쩍였는데, 그제야 그 전에 당한 이의 시신이 바닥으로 쓰러져 목구멍에서 피를 쏟았다.
저 괴이한 검은 그림자는 아무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 *
가천룡은 매우 득의양양해 있었다. 평소 창백하고 음산하기만 했던 얼굴도 흥분으로 인해 옅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이제 아랑단의 주적이었던 칠현문이 자신의 계략에 무참히 쓰러지고 있었다. 아랑단 방주의 신분으로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는 지금 낙일봉 산허리쯤에서 수많은 홍의의 철위(鐵衛)들에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청년병사들로, 무공이 뛰어날 뿐 아니라 충성심 또한 대단했다.
이들은 주로 호위를 담당했는데, 오늘만은 중소방파들이 불순한 생각을 품을 것을 우려해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그 철창회(鐵槍會), 단수문(斷水門) 등의 우두머리들이 군말 없이 자신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방파들은 아랑단의 독식을 원하지 않았다. 칠현문과 아랑단이 균형을 이뤄야 그들 같은 작은 방파들도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가천룡이 각 방파의 우두머리의 처자식과 가솔을 손에 넣지 않았고, 또 이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약속하지 않았다면 벌써 돌아섰을 터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가천룡은 자신도 모르게 뒤편에 서있는 수십 명의 중소방파의 우두머리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가천룡이 바라보는 시선에 일부는 노한 눈빛으로 눈을 부릅떴고, 또 일부는 눈치를 보며 감히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가천룡은 머릿속에서는 칠현문을 손에 넣은 후 저 방파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가천룡 앞에 천명에 달하는 이들이 칠현문의 초소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렇다 할 대열도 이루지 않고, 손발도 맞지 않아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가천룡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칠현문의 제자들이 힘을 소진하면, 다시 방파의 정예 병사들을 파견해서 연발 석궁으로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 군용 연발 석궁을 떠올리자 가천룡의 얼굴에 희열이 넘쳤다. 지금까지 아랑단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군용 무기의 공이 가장 컸다.
만약 상대의 교섭단을 전멸시키지 못했다면, 낙일봉의 초소를 뚫는 데만도 엄청난 인력을 잃었을 것이다. 그럼 이후에 중소 방파들을 삼키려는 그의 계획에도 차질이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 군용 석궁을 들이는 것에 가천룡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3개월 전, 그는 이미 이번 대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친척이라며 한 군관이 찾아왔다. 그는 아랑단이 마적단이었을 때 함께 했던 당형제로 경주로 물자를 압송해 가는 길에, 가천룡이 아랑단의 방주를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부를 물을 겸 들렸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안부를 물으며 그간의 정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천룡이 칠현문에 대해 털어놓자, 그는 군에서 사용하는 석궁 백여 개면 그까짓 칠현문쯤이야 바로 쓸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는 사람이야 무심코 꺼냈다 하더라도 듣는 이야 어찌 그러겠는가. 가천룡이 곧바로 석궁을 얻을 수 있냐고 묻자, 그 군관은 자신이 운송 중인 물자들 중에 이런 석궁이 많으니, 관리자를 매수할 은자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은밀히 말해주었다.
가천룡이 크게 기뻐하며, 바로 2만 냥이 넘는 은자를 주고 300여 개의 석궁을 받아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뚫렸다!”
“드디어 돌파했다!”
하늘을 울릴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가천룡은 서둘러 낙인봉의 정상으로 고개를 돌려 얼굴을 찌푸렸다. 원래라면 칠현문의 깃발이 꽂혀 있어야 할 초소에는 이미 여러 방파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이전 초소들의 방어 수준으로 보아 최후 방어선은 더욱 고비가 될 것이라 여겼는데, 어찌 이런 오합지졸의 무리들이 그것을 뚫었단 말인가. 설마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인가? ’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그의 수하들은 이런 상태에서 그를 화나게 하거나 심기를 건드리면 험한 꼴을 당한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이, 이미 뚫렸다는데 안 가고 뭐하나?”
누군가 말을 내뱉었는데 말투에는 가천룡에 대한 경의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불같이 화냈어야 할 텐데, 지금의 그는 그 목소리를 향해 공손히 대답했다.
“장 선사(仙師)님, 제 생각에는 이렇게 쉽게 뚫린 것이 무언가 이상합니다. 무슨 덫을 준비했을지 모르니 신중하게 움직이지요.”
“내가 옆에 있는데 무서울 게 뭐야. 이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하겠느냐. 어서 가자, 어서! 이러다 여기서 밤을 다 새겠네. 어서 이 칠현문을 처리하자고.”
가천룡 옆에서 말을 내뱉은 이는 3척 남짓한 난쟁이였다.
이 난쟁이는 마흔 살이 넘고 몸은 빼빼 말랐는데, 금색실로 수놓아진 붉은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온몸에 금붙이를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말할 때마다 입 속에서도 금빛이 반짝였다.
그는 참을성 없는 표정으로 신중을 기하려는 가천룡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 비열하게 생긴 난쟁이가 감히 가천룡에게 불경한 모습을 보이자, 주변의 충심 넘치는 철위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가천령을 향해 강하게 말했다.
“가 방주, 자네가 나를 여기까지 청할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내가 상대해야 할 이가 누군지 분명히 말해주게. 칠현문의 문주는 자네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누구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쓴 것인가?”
“칠현문의 일개 문주 때문에 선사께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선사를 청한 것은 칠현문 문주의 사숙들 때문입니다. 이들은 외부에는 이미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낙일봉의 밀실에 은거하며 폐관수련을 하는 중이라 합니다. 그들의 공력이 이미 화경(化境)에 올랐을지 모르니, 어찌 일반적인 고수가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칠현문의 가장 큰 힘은 바로 그들이니 선사를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천룡의 매우 겸손히 대답했다.
이 홍색 도포를 입은 난쟁이는 가천룡이 오랑캐들의 접경지대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로, 스스로를 금광상인(金光上人)이라 일컬었다.
법력이 무궁무진했으며, 가천룡 앞에서 비검술(飛劍術)과 금강불괴공(金剛不壞功)등을 펼쳐 보인 적이 있었다.
그는 이 두 가지 법술의 위력에 크게 놀랐다. 상대가 바로 수도자(修道者 )라는 것을 알고는 친분을 쌓고자 거금을 털어주고,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오만한 기색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금광상인이란 이는 절대 아랑단으로 대항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대답을 들은 금광상인은 호탕하게 웃다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들의 공력과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도, 내 비검술의 적수가 될 수는 없으니 내게 맡기거라.”
“그럼 선사님만 믿겠습니다. 일이 성사되면 감사의 표시로 금화 2천 냥을 더 드리겠습니다.”
가천룡이 크게 기뻐하여 급히 보수를 올렸다.
이 말을 들은 금광상인은 가천룡의 분별 있는 언사에 매우 만족하여 그를 칭찬했다.
가천룡은 금광상인 같은 능력자가 안전을 보장하니 더는 지체하지 않고, 아랑단의 인물들에게 전부 낙일봉 정상으로 진격할 것을 명했다. 바로 칠현문의 총당인 칠현전(七玄殿)을 치려는 것이었다.
가천룡과 그 무리들이 낙일봉 정상에 도착하자 금세 어둑어둑 해졌다. 그들은 컴컴한 와중에도 칠현전의 호방하면서도 웅장한 기세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가천룡은 칠현문을 멸하고 나면, 당장 총단을 이곳으로 옮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웅장한 건축물이야말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는 바로 진격 하지 않고, 몇 개의 석전을 빈틈없이 둘러쌌다. 칠현전으로 향하는 입구의 분위기를 살피고 사방의 수하들을 돌아본 후에야,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낙일봉 전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의 손이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순간, 칠현문 총당을 섬멸하는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될 것이다.
“잠깐.”
돌연 칠흑 같은 칠현전의 입구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타박타박하는 걸음소리가 점점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림자가 사라지고 서서히 얼굴이 들어난 이는 바로 안 문주였다. 그는 백의적삼에 머리에는 큼지막한 비녀를 꽂고 장검을 차고 있었다.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창백했음에도, 눈빛만큼은 예리한 칼날 같았다. 그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천룡.”
안 문주가 방주의 이름을 불렀다.
“안절초.”
가천룡 역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상대를 알아보았다.
“허허. 이게 누굽니까. 안 문주 아니십니까. 이제야 보는군요.”
가천룡은 그를 보고는 천천히 오른 손을 거둬들였다. 안 문주가 무표정하게 가천룡을 응시할 뿐, 아무 말이 없자 긴장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안 문주가 홀로 나오다니 투항이라도 할 생각이오?”
가천룡이 비웃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소. 난 투항에 관한 일을 상의하러 나왔소.”
칠현문 문주 안절초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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