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혈영둔(血影遁)
진법을 설치한 뒤에는 한립은 휴식을 취할 마음이 없는지 바로 구곡영삼을 동굴 안의 작은 약초 정원에 조심스럽게 심고 강력한 금제를 걸어 두었다. 원영을 맺기 위해 구곡영삼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이어서 그는 금은색 서금충을 배양실에 넣었다. 삼색 서금충은 예상초로 성장시킬 수 없기에 그저 저물대 속에 보관하는 중이었다. 곤충 배양실 옆에는 특별히 제혼을 위한 방을 준비했다.
폭풍산에서 대량의 음명수를 잡아먹은 후 깊은 잠에 빠진 원숭이는 그가 깨우려 해도 깨어나지 않았다. 이전의 그저 잠이 많던 습성과는 다른 상태였다. 연달아 대량의 혼백을 흡수하고는 또 다시 진화를 하려는 듯했다.
그래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자마자 편히 쉴 수 있게 안배를 해준 것이었다. 동시에 영수가 잠에서 깨기 전에 몸에 품은 명혼주를 철저히 제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영수가 성장을 하다가는 언제가 그의 통제를 벗어날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음명의 땅에서 은색 거대 원숭이가 날뛸 때에도 몸 안의 명혼주가 요동을 치려는 조짐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었다.
원요가 말해준 명혼주 제련의 후유증은 그녀보다 의식이 강대한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제혼 자체가 두 번이나 진화했으니 그런 후유증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었고 그 엄청난 능력으로 고난을 이겨냈으니 영수를 통제하기 위한 작은 위험은 감수할 만 했다.
이외에도 처리할 중요한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바로 그의 몸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바람의 기운이었다!
구급 열풍수 풍희가 천남까지 쫓아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이런 화근을 몸안에 두는 것은 언제고 문제가 될 터였다.
문제는 지금 수행으로 바로 이 사기를 제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법력을 이용해 강제로 몸 밖으로 밀어내는 가장 단순 무식한 방법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또한 단시간에 끝낼 수 없는 작업이라 지금까지 미뤄둔 것이다. 이제 잠시 안정을 찾았으니 처리를 할 때였다.
일단 한립은 약초밭에서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줄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 몇 마리를 풀어 누군가의 방문을 대비하고 자신은 연공실로 들어가 버렸다.
조용한 공간에 가부좌를 한 한립이 몸 안의 상황을 살폈다.
금빛의 구슬 같은 것이 단전 주변에 위치해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호흡을 고른 그가 사기를 감싸고 있던 금빛의 벽사신뢰를 하나하나 풀어보았다.
그러자 사기가 즉시 꿈틀거리며 당장이라도 틈을 비집고 솟구칠 기세였다. 아주 미량의 사기가 빠져 나왔을 때 다시 벽사신뢰로 나머지를 단단히 여몄다.
도무지 바람의 기운이라 불리는 이 혼탁한 사기가 무슨 물질인 줄은 모르나 미량만으로도 한립은 몸을 떨 정도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강력한 인내심으로 버티며 전신의 법력을 이용해 그것을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들이 굴러 떨어졌고 안색도 순식간에 창백해 졌다.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두 시진이 훌쩍 지나갔다.
한립의 두 눈이 떠지며 손바닥을 펴니 중지에서 잿빛 액체 두 방울이 방출되었다. 그리고 그가 마주보던 벽에 두 개의 아주 작은 구멍이 파였다.
겨우 이마의 땀을 닦아낸 그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아주 고통스럽고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지만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매일 일정 시간 이렇게만 한다면 반년 후면 체내의 사기를 완전히 처리할 수 있을것이다.
마음에 걸리던 일을 한 가지 처리한 셈이었다.
휴식을 취하던 한립이 차분히 저물대 속에서 검은색 서책을 꺼냈다.
구령진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서책으로 줄곧 살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았었다.
그 후 이어진 나날들을 한립은 정확히 시간을 배분해 나눠 썼다.
두 시진은 사기를 몰아냈고 나머지 시간들은 구령진법 연구와 명혼주 제련에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꼭두각시들이 그의 명을 받아 외부의 일을 처리했다.
이 외에도 지속적으로 녹색 병을 이용해 예상초를 키워 서금충들에게 먹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곧 번식과 진화가 이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갔다.
그 동안 모패령은 단 두 번 다녀갔는데 그가 시킨 일을 그럭저럭 해내는 것을 확인하자 다른 일은 묻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모패령의 살갑지도 괄시하지도 않는 태도에 한립은 크게 만족했다. 아예 그를 철저히 잊어주는 편이 수행에 집중하는데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나고 구령진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즉시 동굴 앞에 구령진을 펼쳤다. 이제 진법이 영기의 파동까지 감추어 버리니 아무리 돌산을 살펴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흡족한 결과였다.
다시 3개월이 흘러 명혼주의 제련과 바람의 기운을 제거하는 작업도 앞다투어 목표를 이루었다.
의외로 명혼주가 자신의 의식과 거의 일체화가 될 때까지 아무런 두통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제혼이 진화를 해서 명혼주 역시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바람의 기운도 처음에만 기진맥진했지 반절 이상 제거한 뒤로는 한결 수월해졌다. 사기가 발작하며 느껴지던 통증도 약해졌고 시간도 짧아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일부는 가볍게 밀어내 없앴을 정도였다.
한립은 여러 번 몸 안을 탐색한결과 전혀 이상이 없자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급한 일을 마무리 지은 그는 이제 수련과 구곡영삼을 이용한 단약 제련으로 관심을 돌렸다.
수련의 경우에는 고민 끝에 대연결 사성과 청원검결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결단을 할 때의 경험으로 보아 의식이 강대할수록 수행의 경계를 돌파하는 것에 이로웠기 때문이었다.
대연결 사성이 호락호락하지는 않겠으나 시도해 볼만했다.
어쨌든 강력한 의식이 원영 응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을 상대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이로 인해 법력을 늘리는데 지연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그리고 구곡영삼에 관한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는데 다른 재료는 그렇다 치고 구곡영삼과 팔급 반요초 그리고 마노의 뿔은 이곳 천남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단약 제련에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수련을 하는 틈틈이 구곡영삼의 단약 약방을 연구하며 빈번히 비슷한 과정이 필요한 다른 단약들을 제련해 연습을 했다.
이렇게 또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한립은 수중에 갖고 있던 동전과 가죽 서책의 내용을 파악하려 요족의 문자를 익혔다. 서책 안에 쓰여 있는 질풍구변(疾風九變)이란 요족 공법은 조류형 요수 선사를 위한 것으로 법결과 신법 그리고 두 종류의 비술로 이루어져 있었다.
법결과 신법은 완전히 요족 수사를 위한 것으로 엄청나게 강력한 신체를 지니지 못하면 다 익히기도 전에 몸이 붕괴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두 종류의 비술 중 닉풍술(匿風術)이 이전에 익혔던 무명 구결이었고, 나머지 비술인 혈영둔(血影遁)만이 한립의 관심을 끌만했다.
이름 그대로 정혈(精血)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백여 리를 달아날 수 있는 기이한 비행술이었는데 이런 종류의 신비로운 비술은 주로 마도 수사들이 사용하고는 했다. 하지만 혈영둔은 인간 수사들이 사용하는 비술과는 달랐다.
일단, 거리를 조정할 수 없어 무조건 한번 펼치면 핏빛 그림자로 변해 백여리 밖에서 출몰해야 했다.
그리고 술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정혈이 정해져 있어 자동으로 몸 안에서 소실되었는데 만일 부족하면 가는 도중 몸이 터져나가 죽게 된다. 극히 위험한 비술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비술을 펼치려면 날개가 있어야 했다.
혈영둔은 몸을 가볍게 하는 특수한 술법이 가미되어 있어 극히 빠른 이동 중 날개로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작은 힘에도 방향이 꺾여 어딘가로 고꾸라질 수 있었다.
그가 익히기에 적합했다. 다른 이에게 없는 날개가 그는 있지 않은가?
법기에 불과했지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진짜 날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정말 이렇게 신묘하다면 강적을 만났을 때 달아나기 안성맞춤이었다. 어쨌든 풍뢰시를 이용한 번개 같은 움직임도 좁은 범위 내에서는 번뜩이며 수없이 반복해 펼칠 뿐 이렇게 철저히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는 혈영둔의 수련법을 암기하며 이번에는 구리 조각을 살폈다.
구리 조각에는 공법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 설명도 없이 구결 한 단락만 담겨 있었다. 괴이한 수련 자세와 더불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독교가 언급했던 법성진편이란 물건이 일찍이 조각나 사라졌다는 말이 떠올랐다. 완전하지 않은 구결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아쉽지만 다시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이제 대연결과 청원검결을 동시에 익히며 틈틈이 혈영둔 비술을 수련하기로 했다. 아마 비술을 완전히 습득해도 함부로 펼치지는 못할 테지만 말이다.
이렇게 또 반년이 지나갔다.
한립이 석실 안에서 대연결을 수련하고 있는데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즉시 푸른빛으로 변해 동굴을 빠져나가 약초밭으로 돌아갔다.
꼭두각시들을 회수하고 오두막 앞에 선 그가 동남 방향을 바라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차를 우려냈다.
잠시 후 약초 밭 금제 밖에서 예를 차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원 사저 계십니까? 은검봉 규환입니다.”
조금 고음이긴 했으나 젊은 사내의 목소리였다. 유유히 차를 한 모금 넘긴 한립이 차분히 회답했다.
“원 사저는 이미 1년 전 이곳을 떠났으니 찾고자 한다면 모 사숙님의 거처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약초밭을 관리하는 이가 바뀌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사내가 웃음을 띠며 온화하게 말을 이었다.
“원 사저가 없다면 사제와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한데 잠시 실례해도 될까?”
한립은 턱을 쓰다듬었다. 동문 사형이 저리 청하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방을 나선 그가 영패를 꺼내 주변의 안개를 걷었다.
그러자 동남쪽에 노란 의복을 입고 우스꽝스런 외모를 지닌 사내가 서 있었다. 수행은 팔, 구성으로 한립의 표면상 수행보다 낮았으니 이런 자가 어찌 낙운종에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이 상대를 파악하는데 사내는 벌써 싱글벙글 웃으며 친밀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제도 천천봉의 제자일 텐데 얼굴이 낯선 것을 보니 아마 작년에 막 입문했겠군?”
“저는 한 가로 사형의 말대로 작년에 입문하였습니다.”
“한 사제, 나는 은검봉 규환이라 하는데 몇몇 사형들과 이곳에서 수십 리 떨어진 작은 분지에서 영수 관리를 하고 있으니 시간 되면 놀러 와. 비록 수행은 높지 않지만 입문한 지 벌써 칠, 팔년 되어 낙운종의 일이라면 손에 꾀고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한립이 미소를 지었다.
칠현문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모르는 것이 없는 소산반이라 소개하던 소년의 모습과 규환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포권을 하며 물었다.
“사형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규형께서 찾아 주신 것은 중요한 업무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에 규환이 민망한 얼굴을 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중요한 업무라 하기에는 그렇고 그저 사저를 찾아 도움을 구하려 왔는데 5 년 넘게 이곳을 지키던 원 사저가 없다니 난감하게 되었네.”
“도움이요?”
“사실 사제도 알다시피 우리 외문제자들은 자질 상의 문제로 문파에서 경시되지 않나. 법기며 단약이며 우리에게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지. 거기다 1년 내내 일해 영석을 받아도 수행에 도움이 될 단약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그래서 몇몇 사형제들과 녹종(綠踪) 습지에서 설운호를 잡아다가 시장에 팔고는 했지. 작은 여우가 대단한 요수는 아니더라도 영민하고 귀여운데다 말 귀도 잘 알아 들어서 여제자들이 상당히 선호하거든.
그걸로 푼돈을 조금 벌었는데 얼마 전 이종 설운호를 발견했지 뭔가? 은은히 영기가 느껴지고 생김새도 조금 다른 것이 저계 요수로 진화한 것 같았어. 백 개가 넘는 영석을 얻을 기회라 최선을 다했지만 조금만 다가가도 번번이 늪 안으로 숨어 종적을 감추었지.”
청년은 정말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 후 관찰을 해본 결과 이종 설운호가 황정(黃精)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냈어. 최소한 50년 이상 된 황정이 있어야 함정 속으로 유인할 수 있을 듯한데 일단 약재가 수십 년 이상 자라면 영석 열댓 개로는 구입할 수가 없잖아.
그런데 마침 모아둔 영석은 단약을 제련하느라 써버려서 원 사저를 찾아 적당한 황정이 있나 살피려 했던 것이네. 그런데 관리 제자가 바뀌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 혹시 한 사제가 한 뿌리만 빌려 줄 수는 없을까?”
말을 하면서도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초면에 과한 요청을 하는 줄 스스로 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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