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37
37화. 검부(劍符)
한립은 속으로 계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 칠현문 쪽에서 다시 두 사람이 뛰쳐나와 난쟁이에게 달려갔는데, 바로 안 문주의 나머지 사숙들이었다.
비통한 기색이 가득한 그들은 건장한 사내의 죽음에 크게 격분한 듯했다.
안 문주는 본래 사숙들의 경솔한 행동을 말릴 생각이었지만, 두 사숙이야말로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패였으니 말리기보다는 복수심에 불타올랐을 때, 한 번에 승부를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듯 했다.
그들이 달려오는 것을 본 금광상인은 바로 잿빛 광선을 발동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광선이 무지개처럼 두 사람을 향해 뻗어갔다.
그 중 유생 차림을 한 이가 눈썹을 치켜뜨며 손을 높이 들어 올리니, 그 소매에서 아주 얇은 은사(銀絲)가 뿜어져 나와 잿빛 광선과 충돌했다.
이 광선은 은색 실에 의해 잠시 멈추는 듯싶더니,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은사가 아무런 작용을 못 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한립이 장춘공을 운용해 초인적인 안력으로 은사를 보자, 그것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건 놀랍게도 분명 수십 개의 은침(銀針)을 엮어 놓은 것이었다.
유생은 은침이 들지 않았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구부려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이어서 빠르게 회전하던 그의 신형에서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서늘한 조각들이 분출되었다. 이 서늘한 조각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은빛 물길을 이뤄서 광선과 다시 맞부딪쳤다.
‘파캉 파캉’하는 충돌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시작하자, 잿빛 광선도 허공에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또 다른 갈래는 금강조 위로 쏟아져 내렸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잿빛 광선과 충돌 중인 은색 흐름은 쉼 없이 부서지며 잔해를 남겼다.
다만 금강조의 탄력에 튕겨 나온 것들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비도(匕刀), 묵주 팔찌, 표창 등 각양각색의 암기와 잡다한 물건들이 섞여 있었다.
이를 본 금광상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범속한 고철들로는 그의 보물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하압!”
그러던 와중 갑작스런 고함 소리가 사투장에 울렸다. 유생과 함께 뛰쳐나온 잿빛 의복을 걸친 인물이, 어느새 보검을 뽑아 들고 잿빛 광선으로 향했다. 그 보검의 날에 서려있는 백광은 견고 했으며, 놀랄 만큼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망(劍芒)!”
검을 쓰는 자라면 꿈에서라도 얻고 싶은 칭호가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고, 이제 사투장 안팎의 사람들은 모두 흥분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비검을 전설이라 부른다면 검망(劍芒)은 강호인의 신화였다. 검객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은 경지였다.
비검과 검망을 쓰는 두 고수의 결전이 눈앞으로 다가왔으니, 어찌 이곳에 모인 강호인들의 피가 들끓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천룡 만은 간담이 서늘해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비록 칠현문에 숨겨진 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검망을 쓸 정도의 경지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이번에 금광상인이라는 수도자를 청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다.
가천룡의 얼굴이 새하얘졌을 때, 회색 옷을 입은 자가 잿빛 광선의 아래까지 당도했다. 이 때 유생은 암기를 모두 소진해서 회전을 멈추었다.
그러자 광선으로 향하던 흐름이 끊기자 광선은 바로 회색인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양손으로 검을 쥐고는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땅을 박차 검망을 휘둘렀다.
‘챙!’
그가 엄청난 힘을 실어 광선을 칼로 올려 막자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광선의 공격에 몇 걸음 물러서자,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보검 역시 끝부분이 잘려나가 날아가 버렸고, 그의 안색은 누가 봐도 생기를 잃은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잿빛 광선도 바닥으로 고꾸라져 요동쳤다.
광선이 떨어져 내리자 사람들은 동시에 감탄을 터뜨렸다. 유생 차림의 인물 역시 크게 기뻐하며 회색옷을 입은 인물을 보았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난쟁이에게 들이닥쳤다. 그를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어서 피해!”
그 유생이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등 뒤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기도 전에 목덜미가 서늘하더니, 목이 잘려나가 유생도 명을 다하고 말았다.
금광상인은 오만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저어, 지면에서 기세 좋게 광선을 움직였다. 그는 방금 자신의 잔꾀에 속은 유생의 모습에 매우 만족했다.
그는 회색인을 처리하고 바로 칠현문의 참가자를 모두 죽일 생각이었는데 군중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물건이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내게 주는 것이 어떠하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한 영기가 잿빛 광선 위로 드리우며 금광상인과의 연계가 끊어졌다.
그리고 회색인에게 날아들던 광선도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어, 슬금슬금 군중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잿빛 광선이 도착한 곳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 서있었다. 그는 금광상인을 향해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조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가 잿빛 광선을 손가락을 가리키자 그 광선이 뜻밖에도 얌전히 그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수도자!”
난쟁이의 몸에 오싹한 한기가 돌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잿빛 광선이 칠현문 군중들에게로 날아오자, 그들은 난쟁이가 마음을 바꿔 제자들을 모조리 죽인 후에 회색인을 상대하려는 줄 알았다.
그 광선이 사람들의 무리를 뚫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제자의 손에 잡힐 것이라 누가 생각 했겠는가.
칠현문의 안 문주와 마지막 남은 사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지자 더 없이 기뻐했다.
안 문주는 이를 보고 미친 듯 좋아하면서, 한립이 이 사투에 참가한 것에 감사했다. 칠현문의 존망이 한립에게 달려있음이 분명해졌다.
두려움, 의아함, 기쁨 등이 뒤섞인 시선들이 쏟아지는데도 한립은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옅은 웃음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주목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속으론 매우 울적해하고 있었다.
한립이 지금 나서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는 저 난쟁이가 방심하여 금빛 막을 풀고 난 후에야 몰래 기습할 예정이었다.
그 때가서 몰래 등 뒤로 다가가, 아주 작은 불꽃 탄알만 만들어내도 손쉽게 상대를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뜻인지 자기도 모르게 구물술을 외워버린 것이다. 이것을 빼앗아 온 과정은 간단했다.
한립은 그저 자신의 법력을 잿빛 광선으로 쏘아 보냈을 뿐이었다. 광선과 연계를 생성하자 바로 그의 손짓에 망설임도 없이 날아온 것이다.
한립은 상대의 보물을 빼앗은 데에서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와 정면 승부를 하게 돼 걱정되었다.
그는 거북껍질 같은 금빛을 깨버릴 만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립의 표정에서는 이런 걱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심리적으로 우세한 사람이 실제 교전에서도 유리하며 높은 승산을 갖게 됨을 잡안검법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양손을 법력으로 감싸, 잿빛 광선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자 잿빛 광선은 서서히 빛을 잃더니, 잿빛 검이 그려진 부적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부적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법력을 불어넣지 않아도 은은한 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이를 보고 약간 실망했다. 이건 무슨 보검 같은 법보(法寶)가 아니라 괴상한 부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 쓸모가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는 부적을 품속에 잘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금광상인은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상대가 부적에 깃든 자신의 영력을 지어낸 것을 볼 때, 최소한 자신보다 법력이 몇 배는 높은 것이 분명해 먼저 싸움을 걸고 싶지 않았다.
한립은 상대가 몸을 사리며 화조차 내지 않자, 상대가 완전히 겁먹었음을 알았다. 그는 이 상황을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의 몸에 어풍결을 펼쳤다. 그러자 어느새 한립은 난쟁이의 코앞까지 당도해있었다.
한립의 신출귀몰한 모습에, 겁에 질린 금광상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십니까? 난 이 지역의 광물을 건들지도 않았고, 영약이나 영초를 훔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범인의 돈을 좀 챙겼을 뿐이에요. 지역 일족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았으니, 날 죽일 이유가 없다고요.”
이 말을 듣는 한립은 기쁨이 용솟음쳤다. 상대가 자신을 수도가 일족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담담히 웃고는 신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물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소만, 범인들의 일에 끼어들어 이 지역의 질서를 흐트러뜨린다면, 우리 일족에게 누가 되는 일이 아니겠소.”
난쟁이는 상대의 어투가 온화해 자신을 어떻게 할 의도가 보이지 않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는 눈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급히 답했다.
“저는 진엽령(秦葉嶺) 엽가(葉家)의 제자입니다. 이곳을 그저 지나던 길이었으나, 아랑단 방주의 간절한 청원에, 옛정을 보아 잠시 도움을 주려 했을 뿐입니다. 절대 귀 일가의 영역을 침범하려던 의도가 아니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혹시 어느 일가이신지 알려주시면, 다음에 꼭 찾아뵙고 정식으로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난쟁이는 활기찬 말투로 자신이 엽가의 사람임을 밝혔다. 보아하니 엽가의 명성이 높고 그가 유명한 수도가 일족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립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나, 일족에서 그의 생사여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후환을 남기지 않도록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의 살기가 강해졌다.
자신보다 법력이 낮은 수도자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저자의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절대 선량한 인간도 아님이 분명했다. 그러니 한립이 손을 쓰는데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진엽령 엽가라, 바로 그 명성이 자자한 엽가말입니까?”
한립이 놀란 기색을 보이며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이리 집안으로 거들먹거리는 걸 보니, 수도자 사이에서도 위세가 있는 일족이겠지.’
한립이 암암리에 생각했다.
“그러합니다. 바로 그 엽가입니다. 대형께서도 들어보셨다니, 저를 괴롭히거나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난쟁이는 자신의 일족을 아는 체 하자, 목소리가 다소 커졌다.
“엽가라……?”
한립이 일부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일단 일족의 어른을 뵙고, 대형을 어찌 할지 상부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지요. 어떠하십니까?”
한립이 마치 곤란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게 성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별일도 아닌 것을요. 이런 일로 집안 어른들을 귀찮게 해서야,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 것이 뻔합니다.”
난쟁이가 놀라서는 그의 생각을 바꾸려 노력했다. 금광상인은 한립이 줄곧 일족 내에서 수련을 하다가 경험을 쌓으러 막 속세에 나온 거라 여기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상대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심후한 법력을 지닌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 대형께서 그런 점까지 일깨워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립은 마치 정말 감동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곧 손을 뻗어 품에서 검이 그려진 부적을 꺼내 들었다.
“처음 보았음에도 이리 챙겨주시니, 아무래도 이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한립은 표정에 아쉬움이 살짝 드러냈다. 난쟁이는 너무 신이 났다. 손에 넣은 보물까지 쉽게 내주다니. 그는 상대가 생각을 바꿀까 두려워 급히 수결을 맺고 손을 한 번 저으니, 전신의 금광조가 바로 흩어졌다. 이어서 부적을 향해 손을 뻗으며 대답했다.
“이리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체면 불구하고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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