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재회
한립이 정신을 집중해 사방을 관찰했고 목 노인의 원영이 백 장 밖에서 다시 나타난 걸 발견했지만 원영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번쩍이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남색 구슬 역시 몸을 부르르 떨며 함께 사라졌다. 원영과 구슬이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구슬이 이미 원영을 품은 뒤였다.
목 노인의 원영이 표독스럽게 한립을 노려보고는 그대로 작은 점이 되어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원영이 달아나는 것을 지켜보던 한립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풍뢰시로 쫓을 수는 있겠지만 상대의 속도도 만만치 않고, 굳이 상대의 원영까지 쫓아가 죽여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목 노인의 원영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립이 무표정하게 손을 털어내니 꽁꽁 얼어붙어 있던 그의 육체가 조각조각 부서지며 남색 얼음 가루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 상대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육신을 잃었으니 수십 년 동안 보양을 하지 않고는 원기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마저도 적시에 다른 수사의 몸을 빼앗아야 가능할 텐데, 적합한 육체를 찾는 것은 고사하고 몸을 빼앗는데 성공할지도 불분명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대상을 공략한다면 수행이 크게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허공에 남겨진 두 개의 고보와 상대의 저물대 만으로도 이번 대결에 수확은 괜찮았다. 창곤 상인의 동굴에서 대단한 보물을 찾지 못해도 모란 초원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온 보람은 있게 된 것이다.
한립이 저물대를 끌어다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저물대 속에는 열댓 개 정도의 중계 영석을 제외하면 평범한 연기 재료들과 단약 몇 병이 전부였다.
약병도 열어서 확인하니 특별할 것이 없었다. 정말 모란 초원에는 수도자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원영기 법사가 이 정도 밖에 지니고 있지 않다니.
또한 옥간과 같은 공법이나 영술을 담은 물건을 기대했지만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영술의 법결을 연구해 어떻게 강대한 술법을 순식간에 펼치는지 파악하려 했건만.’
그 다음에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산봉우리를 쳐다보았다. 목 노인의 원영이 도망갔음에도 검은 산은 위풍당당하게 광채를 반짝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이 보물을 향해 손을 뻗자 주인을 잃은 고보가 신속하게 줄어들며 그에게 날아왔다. 한립의 손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손바닥만하게 축소된 산봉우리로 돌아가 있었다.
신기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다. 산봉우리를 뒤집어 검은 소형 산의 아래를 살피니 금색 글자가 드러났다.
“천종봉(千重峰).”
산봉우리를 잘 넣어둔 다음 한립은 어풍차를 챙기고, 목 노인의 원영이 사라진 방향을 살피다 고민 끝에 방향을 잡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은 종적을 감추었다.
* * *
3일 후, 모란 초원 모처의 작은 구릉지대.
사람 키만 한 풀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끝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빛줄기가 날아왔다.
푸른 빛줄기는 구릉 위쪽을 한 바퀴 돌고는 빛을 거둬들였는데 그 안에서 한립이 나타났다.
그가 아래쪽을 살피며 소매를 털어내자 푸른빛들이 유성우처럼 구릉의 어딘가로 쏟아져 내렸다.
구릉 표면이 갈라지며 숨겨져 있던 하얀 보호막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는 네 수사가 그를 올려다보며 웃음 섞인 한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남롱후, 백의 노인, 노부인 그리고 까무잡잡한 얼굴의 사내였다. 남롱후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크게 웃자 곧 보호막이 사라져 버렸다.
“허허! 한 수사도 안전하게 도착했군요!”
“다른 분들은 아직 당도하지 않은 것입니까?”
한립이 미소와 함께 네 수사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른 이들은 쉽게 달아나지는 못했을 거외다. 흩어져 달아날 때 왕 수사와 룡 수사 쪽으로 법사들이 따라 붙는 것을 보았거든요. 법사들의 추격을 떨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니 말입니다.”
까무잡잡한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 한 수사가 무사히 제 시간에 도착한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본 후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모란족의 어풍차가 쫓던 이가 바로 한 수사였을 텐데요. 어풍차의 속도보다 빨리 달아나다니, 이번에 본 후가 제대로 된 수사들을 모집한 것 같습니다.”
남롱후가 기뻐하며 한립을 칭찬했다. 하지만 한립은 그 안에서 상대의 놀람과 의문을 읽어내곤 입술을 말아 올렸다.
“다른 건 몰라도 둔술에는 자신이 있는 편입니다.”
한립이 태연히 웃으며 대충 넘어갔다.
그가 자신이 어떻게 추적을 벗어났는지 말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남롱후도 더는 따지지 않고 모란족과의 전쟁으로 구국맹과 천남 지역 세력에게 생길 변화로 화제를 옮겼다.
백의 노인을 제외하고는 다들 퍽 이 화제에 관심이 많아보였다.
“저번 법사와의 대전은 장장 십여 년 간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얼마나 갈지……. 허나 천남의 정마 양도와 한 수사께서 속한 천도맹 역시 수사들을 파견하겠지요. 낙운종도 천도맹에서의 위치가 있으니 분명 원영기 수사 한 명쯤은 나서야 할 텐데 한 수사는 다시 모란 초원으로 돌아올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롱후가 묘한 말투로 이야기 했다.
“삼대 세력 외에도 일부 산수들 중에서도 자원하여 구국맹을 돕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모란족들도 쉽게 승기를 잡지는 못할 거예요.”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 것은 상대방도 분명 천남 세력들이 결집하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다시 전쟁을 시작하려는 이유입니다. 이미 지난번 전쟁으로 승패가 갈렸는데 또 다시 도발을 하다니. 이번에 새로운 부락을 연합군에 모집하기라도 했을까요?”
까무잡잡한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지요. 그런데…….”
돌연 이야기를 하던 남롱후가 입을 다물고는 어딘가를 쳐다보았고 다른 이들도 긴장한 눈빛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모란 초원이었으니 그들 뿐 아니라 지나가는 모란족 법사와 마주칠 가능성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다.
“다들 긴장 푸시죠. 왕 선사와 두 완배들입니다.”
남롱후가 웃음을 짓다 다른 이들도 긴장을 풀었다. 과연 잠시 후 빛줄기 속에서 왕천고와 왕선, 연여언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남롱후가 먼저 금제를 해제했기에 왕천고 등이 바로 일행에게 합류했다.
“허! 한 수사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니, 놀랐습니다?”
왕천고는 한립이 그들 중에 서있는 것이 정말 의외인 듯했다. 이 귀령문 수사도 어풍차가 한립 방향으로 쫓아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마 길 건너 불 구경하 듯 즐거워했겠지만!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왕 선사께서 후배들까지 챙기면서 무사히 돌아온 것이 더욱 감탄스럽습니다.”
한립이 왕천고 뒤 쪽의 두 명을 훑으며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대답하니 아주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허허! 우리를 쫓던 법사의 둔술이 그다지 빠르지 않아 쉽게 떨칠 수 있었습니다. 어풍차가 따라붙은 한 수사만큼 고생을 했으려고요.”
왕천고의 말에 무언가 답을 하려던 한립이 돌연 안색이 달라지더니 입을 다물었다.
“룡 수사가 오나 봅니다. 모두 제 시간에 모이다니 운이 상당히 좋군요. 한두 명이 비게 되면 금제를 풀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참인데 말입니다.”
남롱후가 희희낙락하며 하늘 저편을 쳐다보자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어렸다.
지금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부족해지면 보물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다른 이들의 귀환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조심하시지요! 아무래도 룡 수사는 누군가의 추격을 받는 중인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백의 노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놀란 일행들은 다시금 룡 수사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하얀 빛 줄기 뒤로 녹색과 붉은 색의 빛줄기들이 죽어라고 쫓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구릉지대 쪽에 도착했다.
“룡 수사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법사 두 명에 불과하니 모두 힘을 합쳐 공격하지요!”
남롱후가 과감히 결정을 내리고는 금빛으로 변해 먼저 하늘 위로 솟구쳤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른 이들을 살피고는 이의 없이 분분이 모습을 나타냈다.
여덟 가지 색의 빛이 구릉지대 위로 솟아 오른 것이다.
하얀 빛줄기가 더욱 속도를 높여 일행에게 합류했고 빛이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의 룡 수사가 나타났다. 얼굴이 창백한 것이 원기를 상한 모양이었다.
“이리 나와 도와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룡 수사가 포권을 취하며 다급했던 표정을 지워냈다.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런데 어떻게 법사가 두 명이나 따라 붙은 것입니까? 처음에는 한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남롱후가 관심을 보였다.
“처음 따라 붙은 법사와 겨루는 와중에 다른 법사가 나타나 이리 된 것입니다. 두 법사를 따돌리려 이틀 밤낮을 내달렸더니 원기가 조금 상했지요!”
무표정한 수사가 자기도 이 상황이 우스운지 쓴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법사 두 명을 맞닥뜨리면 남롱 수사와 운 수사를 제외하면 이 중 누구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노부인이 탄식하며 룡 수사를 위로했다.
“저들의 실력은 모르겠지만 담은 제법 강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달아나지 않다니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해보려는 것일까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던 한립이 가볍게 웃고 있었다. 다른 수사들도 그를 따라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두 명의 법사가 아홉 명의 수사들을 보고도 멈춰 서서는 바로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곳에 모인 수사들이 강대한 의식으로 그들을 빠르게 훑었다.
한 명은 노르스름한 얼굴로 삼베옷에 삼베 모자를 쓰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사나운 인상의 녹의 법사였는데 모두 원영 초기 수준이었다.
남롱후가 얼굴을 굳히고는 소리쳤다.
“두 분이 아직까지 이곳에 있은 것은 우리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시지요!”
분명한 위협이었다.
“우리 둘이 당신들을 전부 어찌 할 수야 없겠지만 당신들도 우리를 죽일 수는 없을 거다. 우리가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끈다면 이곳에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성 싶은가? 지금이라도 얌전히 항복한다면 평안한 환생 길을 보장하지.”
삼베옷 법사가 눈을 뒤집으며 날카롭게 대답했다.
“시간을 끌어? 우리가 허수아비로 보이느냐!”
남롱후도 상대의 언사에 열이 받아 냉소를 흘렸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졌다.
“시간을 끌 수 있을지 없을 지는 해봐야 알 일! 너희 수사들이 모란 초원에 몰려왔으니 이곳의 주인으로서 아주 성대히 대접해주마!”
또 다른 녹의 법사가 무표정하게 일갈했다.
“흥!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자들이로다. 운 형, 칩시다.”
남롱후가 백의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백의 노인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거사를 치르기 전에 법력을 아껴두어야 하거늘. 무뢰배들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니 어쩔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움직이시죠!”
백의 노인은 탄식을 내뱉으며 즉시 입에서 은빛 바퀴를 뿜어냈고 그의 가슴 쪽에서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두 법사도 즉시 신형을 뒤로 물리며 몸의 기세를 올려 수사들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남롱후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금빛 비검을 분출하자 다른 수사들도 소리 없이 법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두 법사의 뒤에서 돌연 붉은 빛이 반짝이며 불꽃이 날아들었다.
막 공격을 하려던 남롱후 쪽은 물론이고 법사들도 잠시 이상을 감지하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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