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뒷거래
한립은 실제로 회광을 조종해보니 여러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물술로 부적을 회광으로 변화시키면, 더할 나위 없이 예리해져 자를 수 없는 것이 거의 없었고, 자신의 손짓 한 번에 적을 공격해 나갔다. 하지만 법술을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회광을 부리려면 너무 많은 법력을 소모해야 했다. 화탄술 같은 경우 백 번 이상 연속해서 펼칠 수 있다면, 회광을 부리는 것은 길어야 일각 정도였다.
이제 생각해 보니, 당시 금광상인이 처음부터 회광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그의 법력이 미미해 부적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난쟁이는 구물술을 펼친 뒤라 법력이 거의 떨어진 상태에 자신보다 법력이 높은 한립과 만났으니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당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또 하나의 결점이 바로 공격 대상과의 거리 제한이었다. 회광은 가까운 거리에서만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바로 둔해져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떨어져 내렸다.
만약 이 두 가지 단점이 전부라면, 한립의 법력이 늘면 자연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는 부적 자체의 결점이었다.
여러 번 부적을 쓰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부적 위에 그려진 회색 검이 발산하는 회광이 사용 횟수가 늘수록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점점 수명이 주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부적은 분명 사용 회수와 기간에 한계가 있어, 그것을 다하면 영성을 잃고 사라질 것이란 말이었다.
그래서 한립은 회광수련을 그만두었다. 이렇게 대단한 물건은 중요한 순간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언젠가 이 부적이 위기의 순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것이었다.
금광조를 만들어 내는 금색 부적 역시 동일한 한계가 있을 터였다. 구결을 아직 모르니 잘 챙겨두었다가 이후를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그 삼각형 영패와 진 씨 족보는 한립이 틈 날 때마다 연구를 해봐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 *
이렇게 5일이 지나 한립이 곡 밖에 걸어둔 팻말을 치우자마자, 려비우가 쏜살 같이 달려와 이 화마 이야기를 떠들어댄 것이다.
이 황당한 소리에 한립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비웃고 있는 려비우의 얼굴을 피했을 뿐이었다. 려비우가 웃음을 멈추고는 진지한 말투로 한립에게 물었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응, 고위층에서 널 보내, 날 떠보라 했겠지.”
한립이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다.
“알면 됐다.”
려비우가 부담을 덜었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네 벗으로서 그 자들에게 어찌 보고를 해줄까? 그들이 날 매수하려고 이미 외인당 부당주에서 당주로 진급시켜주겠다고 약속했어.”
려비우가 말을 하며 실실거렸다. 이 말을 들은 한립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보아하니 안 문주와 그들을 직접 보고 뜻을 전해야, 그들도 마음을 놓겠구나.”
“좋지. 그렇게 전하지.”
려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서 한립과 려비우는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 한립은 려비우에게 근거리에서 화탄술을 보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려비우가 안 문주에게 보고를 올리러 신수곡을 떠났다.
* * *
이튿날 아침, 날이 밝으려는데 한립이 귀신처럼 낙일봉에 잠입해 조용히 안 문주의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안 문주가 막 잠이 깨어 자신의 침상 앞에 서있는 그림자를 보고는 억지웃음을 띄며 물었다.
“한 대인님께서는 무슨 일이십니까. 미리 나가서 영접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오시(午時)에 뵙기로 했는데, 어찌 이리 일찍 오셨는지요?”
한립이 안 문주에게 서늘한 시선을 던지자, 그의 온몸에 나있는 솜털이 다 곤두서는 듯했다. 안 문주의 당황스런 표정을 확인하고는 한립은 만족했다. 방금 그의 시선은 천안술을 펼친 것이었다. 요 며칠 연구 끝에 발견한 천안술의 새로운 용도가 바로 보통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마음이 불안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강호에 떠도는 기공(奇功)인 섭혼술(攝魂術)과도 유사했다.
“별일 아니오. 그저 아침 일찍 대화를 나누면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럼 상대를 불쾌하게 할 일도 없겠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의 한립이 묘하게 답했다.
* * *
안 문주는 한립의 말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어제 려비우가 한립이 오늘 오시에 낙일봉으로 오겠다는 전갈을 전달한 후, 고위층의 일부는 한립을 위험인물로 판단해, 기회를 보아 죽이자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반대하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런 무분별한 행동은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만일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립의 화를 돋울 뿐일 터였다.
사실 한립이 너무 위협적이라는 이유는 핑계에 불과했다. 그들은 한립의 놀라운 성취에 놀라, 그의 무공을 탐내고 있는 것이었다. 양 측은 안 문주 앞에서 의견이 분분해 회의가 끝나갈 때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붉혔다. 결국에는 안 문주의 사숙인 회색 의복의 사내가 서늘한 한 마디를 내뱉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한 의원을 죽이겠다니, 너희는 그의 집안사람 사람들이 복수할 것이 두렵지 않더냐?”
그의 말은 열이 오를 대로 올라 있던 사람들의 머리에, 얼음물을 부어버린 효과를 내었다.
“그렇소! 그가 그리 어린 나이에 그런 무공을 지녔다면, 분명 든든한 뒷배가 있을 것이 분명하오. 만일 함부로 죽였다가 그들이 알게 된다면, 우리 문파는 끝장이 아니겠소!”
한립을 죽이자고 날뛰던 이들도,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에 입장을 바꾸었다. 아직도 한 둘은 여전히 그를 죽이자고 하였지만, 대화로 풀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방금 한립의 의미심장한 말에 안 문주는 크게 찔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어제의 논쟁을 듣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절초도 일문의 문주로서 겪어보지 못한 일이 없는 노련한 강호인이라, 한립의 천안술을 떨쳐버리고는 금세 다시 본래의 상태를 회복했다.
“무슨 말이십니까? 본 문의 모두가 귀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안 문주가 잠시 고민을 한 뒤, 상대의 말투를 보아가며 대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허나 내 알기로는, 내게 불리한 일을 계획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소만.”
한립이 담담히 입을 떼었다.
이 말을 듣는 안 문주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상대의 말투로 보나 홀로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을 보나, 그저 풍문으로 들은 내용일 뿐이지 상세한 내용을 알 것이라 여겨지진 않았다.
“무슨 오해가 있으신 듯 합니다. 어제 확실히 본 당에서 몇몇 배은망덕한 의견을 내는 이들이 있었으나 안심 하셔도 되십니다. 그들은 바로 잡아들여 잘 관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본 문의 대부분 제자들은 한 신의님을 향해 감사한 마음뿐이니, 어찌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불리한 일을 행하겠습니까.”
안 문주가 어찌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진중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는 한립은 냉소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 거물들이란 충분한 이익만 있다면, 배은망덕은 물론이고, 문파를 배반하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립이 신수곡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근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 스스로 냉정함을 되찾고, 탐욕 때문에 이성을 잃을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려비우와 대화를 할 때부터 한립은 의외의 순간에 안 문주를 찾을 계획이었다. 자신이 보통의 강호인보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듣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수법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그 방법이야 무수했다.
그리고 방금 상대를 떠보기 위해 미끼를 던졌더니, 안 문주가 덥석 그것을 삼킨 것이었다. 보아하니 정말 칠현문에서 자신을 해칠 계획을 논의한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립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은 이 칠현문의 일인자와 담판이 끝나면 바로 이곳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이만하면 됐고. 안 문주에게 솔직히 말하리다. 난 오늘 이후 이곳을 떠나, 다시는 노을산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요. 내 떠나기 전, 모두 득이 되는 거래를 하나 하려하오.”
한립이 안 문주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돌연 비밀스런 제안을 했다.
“거래요?”
안 문주는 상대가 떠난다는 소식에 놀랐다가, 다시 거래라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해 졌다.
‘한 신의가 나와 거래할 게 무어란 말인가? ’
그의 마음속에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날 원래 정해진 약속 시간에 한립은 칠현전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직 안 문주만 회의 장소에 들었을 뿐이었다. 안 문주는 모두에게 한립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그가 이미 노을산을 떠났다고 선포했다. 심지어 이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월국(越國) 자체를 떠났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이 이야기에 놀라 서로를 바라 볼 뿐 할 말을 잃었다.
* * *
한립이 노을산을 떠난 후, 안 문주는 바로 려비우를 관문제자로 받고 외인당 당주로 올려주었으며, 려비우에 대한 총애와 신임이 각별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한립의 당숙이 실수로 큰 잘못을 범해 문규를 어겼을 때도, 중론을 무시하고 그를 사면해 주었다.
안 문주는 이후의 방파 간 투쟁에서 수없이 부상을 입었지만 번번이 기적처럼 회복했다. 모두 은으로 만든 약병에 든 환약 덕이었는데, 누군가 그 환약에 대해 물을 때면, 항상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당연히 그 환약을 얻고자 사정한 이들 중 성공한 이도 없었다.
수 십 년이 흘러 안 문주의 임종 직전에서야 그 환약의 이름이 양정단(養精丹)임이 밝혀졌다. 그 때는 단 세 알만이 남아 있었는데도, 그 영약의 명성에 피바람이 불어와, 안 문주의 후인들은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니 지금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 * *
려비우가 약병 몇 개와 서신을 들고는 넋이 나가 거처에서 돌아오니, 그의 방에는 그런 약병들이 무더기로 놓여있었다. 서신에는 한립이 이미 떠났으며, 약병에 든 것은 전심전력을 다해 제조한 영약이니, 아마 려비우의 수명을 늘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려비우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장에는 려비우와 장수아의 혼례를 축하하며 많은 자식을 낳고 다복하게 살라는 말을 더해놓았다.
려비우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더니 돌연 방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방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에 올라 칠현문의 대문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려비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몸조심하고! 잘 가라!”
말을 마치고 돌아오는 려비우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했다. 그 때 마차 한 대가 쏜 살 같이 낡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 * *
넓은 마차 안에는 한립과 곡혼만이 타고 있었는데, 이것은 한립이 은자를 주고 잠시 마차를 빌렸기 때문이었다. 마부는 평범한 검고 마른 중년인이었는데, 말수가 적어 한립이 먼저 무엇을 묻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옆에 있는 곡혼은 체구가 크고 삿갓까지 쓰고 있으니 말하기 좋아하는 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물어오면 정말 성가실 터였다.
한립의 어깨에는 노란 깃털을 가진 운시조(云翅鳥)가 앉아 있었는데, 영성(靈性)이 넘치는 것이라 지금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옷가지와 물품들은 곡혼이 어깨에 메고 있었고, 문 대인의 거처에서 찾아낸 물품들이나 법기(法器) 같은 정교하고 작은 물건들은 한립이 몸에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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