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전쟁 (1)
“귀령종과 비슷하단 말입니까? 흑의인들의 구체적인 수는 모르지만 전천성 일전에서만 일고여덟 명의 원영기 수사들이 나타났답니다. 분명 같은 종문의 수사일 텐데 그 정도 규모의 마도 종문이라면 설마 대진국에서 온 걸까요?”
지양 상인이 분석을 하며 낯빛이 안 좋아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흥! 대진국 수사면 또 어떻습니까. 복면을 하고 몰래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그중 일개 종파가 사사로이 천남의 일에 관여하고 있는 것일 텐데요. 그냥 법사라고 생각하고 처리한 뒤에 몰랐다고 하면 그 뿐입니다.”
계속 말이 없던 홍의 여인이 입을 여는데 목소리가 맑고 아름다웠다.
“맞습니다, 봉 부인. 대진국의 어느 마도 종파가 모란인들을 돕는다고 천남을 내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지양 상인이 그녀의 말에 호응했다.
“그건 사실이지만 대진국 수사들은 법보나 공법에 있어 우리 천남 수사보다 강하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만일 내일 대결에 그 자들이 나선다면 일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대진국의 공법과 비술이 무수히 많은데 그 모든 것을 대비할 수도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합환종 노마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그것도 고려를 해보았습니다. 혹시 저희 태진문의 파금주(破禁珠)에 대해 아십니까?”
지양 상인이 모두를 향해 물었다.
“파금주라면 어떤 금제든 파할 수 있다는 일회성 법기 아닙니까? 그런 물건은 저계 금제에만 이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원영기 수사들이 만든 장막을 어찌 할 수 있을까요?”
룡함이 파금주에 대해 잘 아는 말했다.
“일반적인 파금주라면 고계 금제는 어쩌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밖에 떠돌아다니는 파금주들은 불량품에 불과합니다. 진짜 파금주는 진귀한 재료로 아주 어렵게 만들 수 있어서 고계 금제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용도가 광범위한 물건이 아니라 본문이 많이 생산하지는 않았으나 이번 대결을 위해 어렵게 열 개를 모았으니. 참가자 각자가 지니고 있다가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금제를 깨고 나오면 될 것입니다.”
지양 상인은 이미 모든 것을 안배해 두었다는 얼굴이었다.
“어쩐지 지양 상인 같은 분이 내일 대결에 손을 놓고 있을까 의아하던 참입니다. 알고 보니 이런 것을 준비하고 계셨군요. 파금주가 있다면 상대가 무슨 꿍꿍이든 목숨은 보전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 우리 마도 천살종에서도 일종의 비술로 ‘회살환’을 준비했으니 위기의 순간 복용하면 체내의 진기를 소모해 바로 법력의 대부분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후 원기가 약간 상하기는 하겠지만 목숨을 잃는 것 보다는 낫겠지요. 각 자에게 한 알씩 주어 들려 보냅시다.”
합환종 노마가 지양 상인을 보며 보충했다.
“묘책입니다. 그 두 가지라면 저도 크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다.”
룡함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제 흑의인들을 어찌 할지 상의해야겠지요. 그들이 기왕 마공을 익혔다니 정도맹 쪽에서 수사들을 선발해 상대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태진문이나 정도 문파들이 마공에 상극인 공법을 익히고 있으니 그쪽 마수들에게도 효험이 있지 않을까요?”
룡함이 지양 상인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지요. 그 마도 수사들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그러나 법사 중 상사들은 맡아주셔야 합니다.”
지양 상인이 거부하지 않고 바로 룡함의 의견에 호응했다.
“알겠습니다! 법사들 쪽은…….”
지양 상인이 정도맹 쪽에서 대진국 마수들을 상대하겠다고 하자 대청 안의 수사들이 만족해서는 순조롭게 회의를 이어갔다.
늦게까지 회의를 마친 그들은 각자 맡은 바를 수행하러 흩어졌다.
* * *
결전의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순찰을 돌던 수사들은 법사 진영에서 요란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경천동지할 소리와 함께 법사대군이 날아올라 경계 지역으로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도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바로 진영으로 전음부를 보냈고 동시에 천남 쪽에서도 종소리가 울리며 사기가 충만한 수사들이 하늘을 뒤덮을 듯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각양각색의 빛들이 하늘에 떠올라 기세등등한 법사 대군과 함께 거대한 물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쌍방 모두 목숨을 걸고 나선 것이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흉흉했다.
이때 한립은 천여 명의 수사 무리 위에 떠서 멀리 법사 대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전력을 노출하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6, 7만 명의 수도자들이 모인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고계 수사들의 수도 엄청났다.
법사들은 복색은 다양했지만 저계 법사들의 법기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지르르한 사발이거나 주먹만 한 구슬 아니면 가지각색의 깃발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수사 쪽은 저계 수사들부터 법기들이 화려했다. 겉모습 뿐 아니라 뿜어내는 영기만으로도 훨씬 질 좋은 법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법기에서는 부족하지만 법사들은 각각의 무리가 현묘한 진형에 맞춰 떠서는 묵묵히 수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사들은 훈련이 부족해 겨우 대열을 맞추고 있을 뿐 사적으로 잡담을 하거나 무리를 이탈하는 일도 잦았다.
한립이 그 확연한 차이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남 각지에서 이 많은 인원이 겨우 몇 개월 만에 모인 것만 해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한립이 법사 대군 쪽을 세밀히 살폈다.
그가 주의 깊게 보는 것은 법사들이 아니라 법사들 틈에 섞여 있는 열 댓 마리의 만황 요수들이었다.
구국맹 수사들은 이미 거대 요수들의 무서움을 맛보았기에 자연히 눈빛에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한립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오합지졸의 수사들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손바닥을 뒤집으니 손바닥에 두 가지 물건이 나타났다.
엄지 손톱만한 새까만 구슬과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는 새빨갛고 네모난 단약이었다.
두 가지는 지양 상인이 대결 참가자들에게 위기를 대비하라며 보낸 보급품이었다. 조금 의외였지만 한립은 잘 받아 두었다.
이번 법사와의 전투를 이기기 위해 삼대 수사들이 온갖 보물을 풀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삼대 수사들만은 아니었다.
한립은 곧 인접한 다른 수사 무리로 시선을 돌렸다.
천여 명의 수사들 중간에는 붉은색과 초록색을 입은 남녀 수사들이 16명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마도 제일종인 합환종 제자들로 각각 거대한 목관을 지니고 흑백으로 나뉘어 있었다.
목관에는 크고 작은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의식으로 탐색해 보았지만 엄청난 금제가 걸려 있는지 속을 확인할 수 없었다.
목관 외에도 눈길을 끄는 물건은 또 있었다.
어떤 정도 문파가 둘러싸고 있는 일곱 장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청동 받침 위에 놓인 거대한 징이었다.
더 멀리에는 새까만 조각상들을 끌고 오는 무리도 있었는데 서너 장 길이에 조각상들이 상고 시대 흉수를 꼭 닮았다.
그 외에도 각각의 무리가 희귀한 물건들은 죄다 모시고 와 한립도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각 종문이 이번 전쟁의 중요성을 알고 아끼던 보물들을 내놓았다는 뜻이니 승산은 그만큼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이런 것들 외에도 각자의 저물대에 어떤 강력한 무기를 숨기고 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법사들은 거대 요수를 제외하면 특히 주의해야할 보물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한립은 법사들이 정말 아무 것도 없이 나왔을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비장의 한 수를 숨겨 놓았겠지.’
이번 전쟁의 승패는 정말 예측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날아오르던 법사들과 수사들이 모두 모였다. 이 후 극소수를 제외한 병사들이 땅으로 하강해 고요히 기다렸다.
이때 법사 대군 사이에서 세 명이 날아 나왔다.
깡마른 노인과, 난쟁이, 중년 유생으로 모란족 3대 신사들이었다.
수사들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빛줄기 세 개가 빠져나와 지양 상인, 위무애, 합환종 노마 3인이 나섰다.
서로가 수십 장 거리를 두고 허공에서 멈춰 섰다.
“지금이라도 물러도 됩니다. 천남 땅의 절반만 넘겨준다면 이런 분쟁은 멈추고 우호적으로 공존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승패와 상관없이 천남 수도계의 원기가 크게 꺾일 겁니다.”
“헛소리 마시오. 우리 천남 수도계의 원기가 상할 것임은 맞지만 당신들 모란인들은 이번 전쟁에서 지면 거의 멸족이 아니던가? 자중해야 할 상대는 그쪽이란 말이오.”
위무애가 담담히 그의 말을 맞받아 쳤다.
“그렇다면 남은 건 생사를 건 일전뿐입니다! 그 전에 일단 대결을 해서 승패에 관계없이 대결이 끝나는 대로 전쟁을 시작합시다.”
깡마른 노인이 단숨에 대화를 끊었다.
“내기 대결이야 가능하오. 하지만 약속한 인질들은 어디에 있소? 봤다는 수사가 없던데…….”
합환종 노마가 노인을 노려보며 냉소했다. 그 말에 노인이 멈칫 하더니 입술을 달싹거리며 뒤쪽의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법사 무리가 요동치며 맨발에 달랑 의복만 걸친 천여 명 수사들이 법사들에게 끌려 나왔다.
누군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누군가는 열이 받아 주변 법사들을 노려보았다. 지양 상인 등이 인질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을 했으니 안심했겠죠? 그럼 대결이나 시작 합시다!”
모란 신사 중 필 가 난쟁이가 조급하게 외쳤다.
“왜 그리 조급해 하십니까? 미리 무슨 수라도 써놓은 것입니까?”
“대결할 자신이 없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일단 이들을 죽이고 전쟁을 시작하겠습니까?”
위무애의 말에 난쟁이의 안색이 굳어져서는 뜻밖에 협박을 해왔다.
“지금 우리를 협박을 하는 거요!”
“협박이랄 것도 없지요. 내기를 안 하겠다면 우리가 인질들을 살려두어 어디다 쓴 답니까? 죽여서 법사들의 사기라도 올려야지요.”
깡마른 노인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럼 대결 전에 인질들을 풀어주시오.”
지양 상인이 눈썹을 끌어 올리다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먼저 풀어 주라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우리가 하겠소?”
“우리도 너희를 못 믿으니 하는 말이다! 패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위무애가 담담히 반박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럽시다. 쓸 데 없는 말은 그만 하고. 내기 대결 전에 인질의 절반을 풀어 주고 나머지는 승패에 따라 처리하도록 합시다. 이러면 이견이 없겠지요? 만일 이것도 싫다면 그냥 전면전으로 갑니다.”
난쟁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노인이 흉흉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맺었다.
“그러지요. 절반을 풀어 주시오. 우리는 금제를 설치하고 있을 터이니.”
전음으로 서로 상의를 한 끝에 지양 상인이 과감히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더 고집을 부렸다가는 인질들이 전부 죽을 수도 있었다.
여섯 수사들은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가 계획한대로 움직였다.
한립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며 수사들 틈에 숨어 있었는데 대결 전에는 모습을 드러낼 마음이 없었다.
그는 강력한 의식으로 여섯 수사들의 협상내용을 듣고 입 꼬리를 말았다. 인질들 중 일부가 몸에 걸린 금제가 풀려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지양 상인은 미리 준비를 해두었는지 그들이 수사들 틈으로 섞여 들기 전에 수백 명의 수사들을 풀어 따로 마중을 나가게 했다.
첩자가 섞여 있지 않은지, 아니면 몸에 무슨 위험한 금제가 걸려 있지 않은지 철저히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천남 녀석들도 신중하군요. 다행히 실심단(失心丹)을 복용시키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일을 다 망칠 뻔 했습니다.”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던 난쟁이 법사가 혀를 찼다.
“천남 삼대 수사들도 만만치 않으니 그런 수작은 안 하니만 못 합니다. 괜히 경계심을 높여 큰일을 그르칠 수 있어요.”
중 씨 유생이 그의 말에 찬성했다. 한립이 멀리서 보니 한 무리의 수사들과 법사들이 진영을 빠져 나와 중간에서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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