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밤을 틈타 문부에 잠입하다
‘저 자가 오검명? 잘 생긴데다가 여인을 다룰 줄 아는 자이군!’
약간의 질투심이 생겨났는데 자신은 말을 타고 쫓아가도 그의 외모를 이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문옥주와 오공자 사이가 깊어 보여……’
한립이 말없이 눈썹을 끌어올렸다. 이번 일은 자신의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어쨌든 난양보옥(暖陽寶玉)은 반드시 내가 가져야해. 그것도 아주 빨리! 몸 안의 음독이 심상치 않아, 예상보다 일찍 독성이 폭발할 수도 있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문부를 살핀 후 한립은 주루를 나왔다. 한립이 객잔의 방에서 심사숙고를 한 끝에 결국에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밤중에 조용히 경교회를 주관한다는 엄 부인을 찾아가 문 대인이 남긴 증표를 보이며, 문부를 속이고 있는 가짜 제자의 정체를 폭로할 계획이었다. 다만 어찌 보옥을 얻을 지는 차후에 상황을 보아가며 행동해야 할 듯 싶었다.
마음을 먹은 한립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바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밤에 있을 거동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눈을 감자 문옥주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설마 그 여인에게 반하기라도 한 건가? 아냐, 경국지색이니 생각이 나는 것이 정상이지. 반한 게 아니야.’
그가 떨떠름하게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수도자의 길을 향해 가고 있고 있기 때문에, 남녀상열지사에 빠져들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밤이 깊어 삼경(三更) 무렵이 되자 한립은 검은 야행복으로 갈아입고는 은밀히 객잔을 나섰다. 그는 줄곧 지붕을 딛고 순찰을 도는 이들을 피해서 문부의 담 밖에 도착했다.
저택을 둘러싼 높은 담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 한립은 바로 연기처럼 변해 문지기들을 지나쳐 문부의 후원으로 잠입했다.
* * *
후원에 들어서자 상당한 규모의 화원이 나타났다. 화원에는 각양각색의 진귀한 화초가 심어져 있어 어둠 속에서도 짙은 향기가 한립의 코를 자극했다.
‘어? ’
한립은 깊게 숨을 들이 쉬며 향을 즐기다가 그 농염한 꽃향기 속에서 익숙한 약초 향을 구별해냈다.
‘누군가 이곳에 약초를 기르고 있구나.’
익숙한 향기에 한립은 누가 이 약초들을 기르는지 궁금해졌다. 보아하니 문부에도 문 대인의 의술을 계승한 이가 있는 듯 했다. 한립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작게 난 길을 따라, 등불이 밝혀진 방을 향해 스며들었다.
문무의 경계가 매우 삼엄해 오는 길에도 여러 곳에서 숨어있는 보초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립은 그들의 이목을 피하는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한립은 2층으로 된 작은 누각 앞에 이르러 멈춰 섰다. 이곳의 경비는 다른 곳보다 몇 배나 삼엄했다. 못해도 이, 삼십 명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2층에서 아직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분명 문부의 중요인물 중 누군가가 아직 깨어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립은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전광석화처럼 뛰어올라 2층에 올라섰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이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일단 벽에 바짝 붙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뒤, 안의 상황을 파악했다.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한 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평진 비타(秘舵), 은자 칠천 삼백 냥.”
“낙곡진 비타, 은자 오천 팔백 냥.”
“남월진 비타, 은자 일만 오백 냥.”
“오령진 비타, …….”
“이것이 지난 달 비타들이 은밀히 보내온 은자예요. 작년과 비교해보니 사분의 일이 되지 않아요.”
맑고 청량한 여인의 음성이 한립의 귓가를 울렸다. 이 목소리는 활력이 넘쳐서 누가 들어도 어린 소녀의 것임을 알 수 있었으나, 말투에는 다분히 불만이 서려있었다.
“어머니, 비타 책임자들의 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요! 한 달이 멀다 하고 보내오는 은자가 줄고 있는걸요.”
그녀는 화가 나있었다.
“알고 있다. 어미도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또 다른 목소리가 그녀의 음성에 대답했는데 나지막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 안에는 문부의 부인들 중 한 명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언제요! 계속 이렇게 가다간 그 암타들이 총타를 우습게 보는 것은 시간문제일 걸요.”
“나도 지금은 어찌할 수 없단다. 암타의 일은 항상 너의 다섯째 어머니가 관리하고 있지 않으냐. 문부의 다른 이들은 아예 끼어들 수조차 없느니라.”
여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고, 방 안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다시 약간의 시간을 두고서야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방안에 울려 퍼졌다.
“어머니, 정말 다섯째 어머니께서 독점적으로 암타의 일을 처리하게 놔두실 건가요? 어머니께서 회주 대리로 경교회를 맡으신 바에야, 당연히 가장 커다란 세력을 손에 쥐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네 말이 틀리다 할 수는 없으나 너의 아버지께서 이곳을 떠나실 때 암타의 관한 일은 다섯째 어미에게 맡기지 않았느냐. 게다가 그녀가 매월 암타에서 올라온 대부분의 이익을 총타에 상납하고 있으니, 더욱 더 추궁할 수가 없고 말이야.”
여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경교회는 이미 많이 약해져 있어요. 모든 역량을 한 데 모으지 않고서야, 어찌 다시 재기할 수 있겠어요? 정말 아버지도, 기왕 경교회의 일을 어머니께 맡기실 바에야 전부 다 맡기시지. 왜 다섯째 어머니께 암타를 맡기셨는지 모르겠어요.”
소녀는 노기가 충만해서 자신의 아비에게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 입 다물거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리 하셨으면, 당연히 무언가 생각이 있으셨을 터인데, 어찌 감히 자식 된 도리도 모르고, 왈가왈부 한단 말이냐!”
지금껏 차분하던 여인도 이번만은 엄히 딸을 꾸중했다.
“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으시네요!”
소녀가 항상 그래왔다는 듯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오히려 어미를 놀리려 들었다.
“얘가 정말…….”
여인은 소녀를 무척 아끼는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방 안의 여인이 엄 씨이고, 그 여식이 바로 문 대인 소생의 문채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넓은 저택 안에서 단번에 만나길 원했던 상대를 찾았으니 운이 좋았다.
품속에 손을 넣어 주섬주섬 문 대인이 남긴 서신과 증표를 확인한 한립이, 두 사람 앞에 막 나서려는데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머니, 그 사기꾼은 정말 역겨워요! 오늘 화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온갖 간사한 말로 아첨을 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더라고요. 마치 무슨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도 되는 듯 구는데, 정말 못 봐주겠어요.”
그녀가 어미에게 응석을 부리듯 내뱉은 말에, 한립은 찔끔하여 다시 몸을 숨겼다.
“오 가에게 충분히 예를 다하여야 할 것이야. 어쨌든 명의상으론 장래의 제부가 될 이가 아니더냐. 그가 눈치 채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야.”
이어서 엄 씨의 말투가 신중해지며 엄하게 여식을 다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큰 언니가 종일 그 자식에게 엉겨 붙어 혼이 빠져나간 연기를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불쌍해 죽겠어요. 만약에 저였으면, 벌써 그 자식을 일도양단(一刀兩斷)냈을 거예요.”
“어찌하겠느냐. 비록 그놈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서는 큰 애의 명예가 조금 실추되더라도 참아야 한다. 지금 적의 세력이 저리 막강하니 만일 우리를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전면전으로 나설 게다. 그들이 강공을 퍼붓는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을까 두렵구나.”
소녀의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엄 씨의 말에서도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기색이 묻어났다.
“그 놈은 정말 흉악해요. 감히 아버지의 서신을 흉내 내고 마치 아버지의 뜻인 듯 큰 언니와의 혼사를 강요하다니요.”
문채환의 어조에서 오검명에 대한 강한 증오가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자가 네 큰 언니를 지목했다는 게야. 너나 봉무를 원했다면 어찌 했을지 눈앞이 깜깜하구나! 너희 성격에 어찌 그 사기꾼을 참아냈겠느냐. 다만 이번 일로 옥주가 홀로 고생을 하고 있으니, 부군이 돌아오시면 이 어미를 탓하실까 두렵구나.”
“어머니, 어찌 그러셔요. 그 오 가 놈을 속이는 것은, 큰 언니의 계획이었잖아요.”
담담히 말하면서도 한숨이 섞인 엄 씨의 말에, 문채환이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
“어리석은 것아, 옥주도 문부와 경교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하고 있는 것 아니냐. 허나 이대로 계속 옥주를 힘들게 할 생각은 없다. 절대 그놈에게 시집을 보낼 수야 없지. 만일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면, 그 가짜를 잡아들여야해!”
엄 씨는 더 없이 차가운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어버지는 대체 언제 돌아오실까요?”
잠시 후 문채환이 울적하게 물었다.
“부군께선 적어도 이, 삼년 길면 오육 년 내로 돌아 오신다 하셨다.”
“이미 십 년이 지났어요. 이제 부친의 모습조차 생각이 나질 않을 정도라고요.”
엄 씨의 대답에 문채환이 차분히 반문했다.
“걱정 말거라, 네 부친은 한 시대를 호령한 호걸이시고, 일신의 무공 또한 대단하시니 아무 일도 없으실 게야. 분명 급한 사정으로 지체되고 있으실 뿐, 꼭 문부로 돌아오실 것이다.”
엄 씨의 답변은 여식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맞다, 봉무 언니가 마음을 닦고 얼굴도 고아지는 영약을 만들었대요. 제가 나중에 가져 올 테니, 어머니도 드셔 보셔요. 효과가 엄청 좋다고 하던데요?”
소녀가 방 안의 침울한 기운을 날리며 화제를 바꾸었다. 이어서 두 사람은 집안의 일상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더 이상은 쓸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한립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엄 씨와 문 대인 사이의 깊은 신뢰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해보았지만 이미 그들이 오 공자가 가짜인 것을 안다면, 바로 접촉을 해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어쨌든 자신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음독을 몸에 품고 있지 않은가.
고민이 끝나자, 그는 바로 문 대인의 신물인 용의 형상을 창문을 뚫고 방 안으로 던져 넣었다.
‘챙’
반지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며, 맑은 울림을 내자 방안에서 놀란 기색이 느껴졌다. 잠시 후, 방 안에 있던 엄 씨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느 고인께서 이 누추한 곳을 찾으셨는지 모르나, 제가 미리 맞이하지 못한 것을 사죄드리옵니다.”
그녀의 말에 한립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그가 답을 하기도 전에 놀란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상한데……. 저 반지 어디서 본 듯한데, 어머니께서 항상 지니시는 것과 너무 닮았어!’
“어머니! 이곳 좀 보셔요.”
“문용계(紋龍戒)!”
이상한 느낌에 문채환이 바로 반지를 주워서는 엄 씨에게 건넸고, 그제야 엄 씨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립은 상대가 신물을 알아보았음을 깨닫고는, 한립이 문을 두 번 두드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제자 한립, 사부님의 명을 받잡고 사모(師母)님을 찾아뵙습니다.”
“…….”
한립의 말에 방 안은 일순 고요해졌다. 분명 모두 크게 놀라 말을 잃었음이 분명했다.
“들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엄 씨의 명이 떨어졌다.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한립이 조용히 방문을 밀고 들어섰다.
방 안에 들자 바로 엄 부인이 나무로 된 의자에 앉아있고, 그 뒤로 열 대여섯이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 둘은 매우 닮아서 누가 보아도 혈연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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