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50
50화. 독살
“왜 그러시오?”
천진이 이상하다는 듯 반문했지만 침산에 대한 믿음이 깊은지 무의식중에 행동을 멈추었다.
“이제껏 요리를 나르던 놈이 아니구나. 원래 있던 자는 어디 간 게냐.”
침산이 뚱보의 물음을 무시하고, 바로 술을 가지고 온 하인에게 물었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로 향했다.
“손님이 너무 많은지라 다른 방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온 것입니다, 어르신.”
하인 복장을 한 청년이 침산의 눈빛에 안색이 창백해져 허둥지둥 답했다. 청년의 표정에 조금 기색을 누그러트렸지만, 아직 마음을 놓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심중산 품 안의 소금지에게 돌렸다.
“금 소저, 아는 자입니까? 정말 소상원의 사람이 맞는가 말입니다.”
“아…….”
제일 인기 좋은 기생의 얼굴에 당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침 어르신, 제 눈에 이 사람이 생소한 것은 사실이나, 저희 소상원에는 수 백 명의 하인들이 있습니다. 소첩이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하하! 삼아, 금 소저를 곤혹스럽게 하려는 게냐? 이렇게 대단한 미인의 눈에 일개 하인이 들어오겠느냔 말이다. 설마 저 놈이 살수라도 될 까봐 이러는 것이야?”
소금지에게 코를 박고 있던 심중산이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형님, 우리처럼 칼밥 먹고 사는 이들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 법입니다!”
“흐흐! 이놈은 걸음걸이도 엉망인데다 저 아무 기세도 없는 눈빛을 보십쇼. 무공을 전혀 모르는 녀석입니다. 정 안심이 안 되면 확인해 볼 방법이 있습니다.”
침삼은 여전히 요리를 갖고 온 청년을 경계하자, 독수재 범저가 돌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보다 사평방에 늦게 돌아온 주제에 심중산의 신임을 독차지한 침삼에게 일찍부터 불만을 가져온 범저가, 이 기회를 틈타 그의 낯짝을 눌러주려 일부러 이리 말한 것이었다.
“아, 어떤 방법인가. 범 아우가 한 번 솜씨를 보여주게.”
표면상으로 별일 아니라는 듯 굴던 심중산이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목숨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범저에게 호응을 보였다.
“이 놈이 무공을 할 줄 모르니. 만일 우리를 해할 생각이었다면 음식과 술에 독을 타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 자에게 전부다 먹여본다면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범 형! 좋은 생각입니다! 이놈아, 어서 어르신에게 올린 술부터 시작해서 전부다 입에 넣어 보거라. 만일 조금이라도 의심스런 점이 있다면 네 놈의 목을 비틀어버릴 것이야.”
해결책을 내놓은 범저에게 박수를 보낸 뚱보 천진이 청년을 향해 큰 소리로 명했다. 처음 의문을 가졌던 침삼 역시 범저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싸늘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요리와 술을 내온 하인은 이들의 뜨거운 눈빛을 받으며 울상을 한 채, 모든 음식과 술을 한 입씩 뱃속으로 삼키는 수밖에는 없었다. 상대가 모두 맛을 보고도 멀쩡해 보이니, 범저의 얼굴에 득의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보아하니 침 아우가 생각이 지나쳤네 그려. 이놈은 정말 하인에 불과하니 다신 흥을 깨지 않도록 하자고.”
범저가 침산을 응시하며 말을 마친 후, 요리를 집어 그가 보는 앞에서 꿀떡 삼켰다.
“허!”
일부러 자신을 겨냥해 시비를 거는 범저의 모습에 혀를 찬 침산이 그를 상대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하! 역시 별 일 아니었구만.”
부하들 사이의 불화를 알고 있었고 그리 신경 쓸 일도 아니었기에, 심중산은 호쾌하게 웃으며 상황을 매듭지었다.
“뭐,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니 네 놈은 이만 나가 보거라. 이 은자는 네게 주는 상이라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소인은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심중산의 품에서 두 냥쯤 되는 은자가 나오자, 하인이 크게 기뻐하며 은자를 받아 들고 방을 나섰다.
“아이참! 침 어르신은 돈 씀씀이가 시원시원하십니다. 앞으로 금지에게도 그래 주셔야 합니다.”
“당연한 것을! 네가 바로 이 어르신의 보배가 아니더냐. 내 시중만 잘 든다면 절대 섭섭하게 하진 않을 것이야. 자, 아우님들! 한 잔 하지! 오늘은 마음껏 취해보자고!”
우렁찬 심중산의 목소리에 방금 들어온 하인에 대한 생각은 모두의 머리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방을 나선 청년이 갑자기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는 은밀히 가까운 처마에 숨어들어, 유령처럼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대략 일다경쯤 지났을 때, 방 안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독입니다! 술과 안주에 독이 있어! 중독이 되었다고요!”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이한 웃음을 흘리더니 숨이 멎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새까만 뚱보 천진이었다.
“감히 이 몸을 해하려 들어! 살려두지 않겠다!”
노한 심중산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지만, 이미 너무 늦은 듯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린 후에 곧 이어 숨을 멈췄다. 이에 독수재 범저와 침산이 공포가 깃든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그 하인 놈! 그 놈이 독을!”
“그 놈에게 해약이 있을 겁니다!”
둘이 동시에 안고 있던 여인들을 밀쳐버리고 방문을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겨우 방문 근처에 이르러서 역시 서서히 바닥을 향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 뚱보 놈이 가장 많이 먹고 마셔대더니 제일 먼저 독성이 발작했군. 흑의인과 서생 같은 놈은 별로 입에 대지 않았지만, 내가 만든 소혼산(笑魂散)은 한 방울만 마셔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
청년이 유유히 방문을 열고 다시 방 안으로 들었다. 방 안에 산 사람은 이미 없었다. 소금지와 다른 여인들도 이미 명을 달리했다.
‘심중산이 독살을 당했으니 소문이 퍼져도 강호의 은원이라 생각들 하겠지. 내가 귀찮아질 일은 없을 거야.’
한립이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품안의 청령산(淸靈散)을 만지작거렸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객잔으로 돌아온 한립은 침상에 눕자마자 단잠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언제부터인가 생긴 습관이었는데 큰일을 처리하고 나면, 깊이 잠에 빠져 꿈속에서나마 정신적 피로를 풀었다.
* * *
한립이 잠에 빠져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중산과 그의 삼대호법의 죽음이 소상원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빠르게 사평방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야망이 있는 인물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심중산의 죽음을 깊게 파헤치려 하지 않았는데, 가원성에서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이런 죽음은 늘 일어나는 일이었다.
심중산도 전 대 방주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 사평방에 남아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공석이 된 방주 자리가 누구에게 넘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제 방주 자리를 놓고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일 일만 남았다.
* * *
바로 이튿날 아침, 별 볼일 없던 소방주 손이구의 손에 사평방이 넘어가 있었다. 손이구가 겨우 하루 만에 자신을 반대하는 고위층을 깡그리 죽였기에 감히 누구도 그를 막지 못한 것이다. 손이구는 순조롭게 사평방 방주의 자리를 차지한 후 아침이 밝자마자 서성의 다른 방파들에게 자신이 방주의 직위를 계승했음을 공표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인 한립은 한숨 푹 자고는 문부에 나타났다. 그가 다시 누각으로 가자 그 앞에서 엄 씨 등이 고운 자태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이번엔 그들 뒤에 가원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문부의 세 딸들이 함께 나와 있었다.
문옥주와 문채환은 이미 본 일이 있었기에 한립의 시선은 자연히 문 대인의 양녀인 문봉무에게 향했다. 문봉무는 뽀얀 얼굴에 샛노란 의복을 걸치고 있었다. 나이는 열 예닐곱 살 정도로 청초한 얼굴에 가녀리면서도 영리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한립의 시선에 문봉무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며시 돌렸는데, 그러자 그녀의 매끄러운 목선이 드러나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한 공자, 그리 끈적한 시선으로 우리 봉무를 쳐다보면 어찌 합니까. 봉무는 부끄러움이 많답니다. 어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지요?”
삼 부인이 특유의 요염한 웃음을 흘리며 한립의 주의를 돌렸다.
“이야기라, 더 할 말이 무엇인지요? 오늘 전 부인들의 결정을 들으러 왔을 뿐입니다.”
한립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다만 오늘 결정을 내리면 서로 협력을 해야 할 사이였기에, 다시 경어를 써 상대에 대한 존중을 드러냈다. 엄 씨가 그의 말에 눈썹을 꿈틀했다.
“한 공자, 그리 서두를 것이 무엇이죠. 어제 고민을 한 끝에 두 번째 길을 가기로 정하기는 하였습니다. 허나 세세한 것은 조금 더 상의를 더 해봐야 할 듯합니다.”
“이미 말했던 것 같은데요. 부인들과 흥정을 할 생각은 없다고요. 부인들은 그저 제가 말한 조건들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시면 됩니다.”
“공자가 보기에 여기 이 아이들의 용모가 어떻다 여겨지죠?”
한립이 정색을 하고 말을 끊자, 엄 씨가 돌연 말을 돌려서 문 씨 집안의 세 딸을 언급했다.
“절세미녀에 타고난 미색이니 무어라 찬사를 해도 아쉬울 용모이지요.”
그녀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한립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충 상대가 말하려는 바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요구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오색문과 독패산장의 악귀 같은 놈들을 모두 죽여주기만 한다면, 난양보옥을 내주어 당신의 해독을 도울 뿐 아니라, 이 아이들 모두를 당신의 아내로 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방금도 봉무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셨지요. 이 조건에만 응해 준다면, 그녀가 당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엄 씨가 딸들을 가리키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마쳤다.
“넷째 어머니!”
“어머니!”
그 말을 끝나자마자 깜짝 놀란 문옥주와 문채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이런 언질을 미리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문봉무 만이 안색이 약간 창백해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당황해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 마음속에 그리던 낭군의 모습과 한립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그 입 다물거라! 이런 일은 부모의 명을 따르는 것이니, 어디 너희가 나선단 말이냐. 조용히 하지 못하겠다면 문부에서 내쫓길 일만 남았다.”
문 씨 자매의 모습에 엄 씨가 얼굴을 굳히고 엄히 꾸짖었다. 그녀의 말에 세 자매들은 모두 놀라 말을 잃었다.
문옥주는 파랗게 질려 입술을 깨물었고 문채환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평소 자신을 아끼던 이 부인과 오 부인을 향해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나마 문봉무의 기색이 제일 나았지만, 그녀 역시 몸이 떨리는지 등 뒤의 담에 기대어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아가씨들을 겁박할 것 없습니다. 제가 그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거니까요. 어떤 조건을 가져와도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들이 하는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던 한립이 단칼에 엄 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눈앞에 꽃 같은 문 씨 자매를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주의 양 대 패자가 하루아침에 비명횡사를 한다면, 분명 큰 화를 불러올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오색문과 독패산장이란 거대한 방회의 수장들이 사라지면, 엄 씨의 경교회가 남주의 절대적 세력으로 급부상할 터였다.
그런 와중에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놈이 문부에 나타나 그 세 딸들을 모두 차지한다면, 자신이 상대 방회의 수장을 죽인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수도자들에게 발각되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자신처럼 반쪽짜리 수도자는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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