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56
56화. 훔치는 기술
한립이 지닌 황룡단이나 금수환이 수도자들 사이에서 상등의 영약은 아닐지라도, 양이 이렇게 많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렇군요!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지니고 다니던 것을 다 털리게 생겼습니다.”
“어쨌든 상계 영부이니 많다 볼 수야 없소. 생각해 보시오. 이 영부만 지니고 다니면 위험에 처해도 등공원행(騰空遠行)을 할 수 있는데다, 새보다 훨씬 빠르게 날 수 있으니 명줄을 하나 더 쥐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소. 그리고 이 영부의 영기가 흩어지기 전까지 몇 번이나 더 사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실용적이요?”
한립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을 갖고 있다는 표시를 하자, 청년은 만면의 웃음이 더욱 짙어지며 자신의 비행부의 장점을 강조해 한립이 생각을 바꾸지 않도록 설득했다.
“교환할 만은 합니다. 그럼 이 부적 묶음이랑 저 서책도 준다면 말이지요.”
이런 열정적 태도에 한립도 상대가 자신의 단약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고 노점에 놓은 공백부적 묶음과 낡은 서적을 가리켰다.
한립의 요구에 청년은 잠시 멈칫했으나, 상대가 요구한 것이 겨우 하급 부적과 절대 팔리지 않을 낡은 주술책임을 알고는 다시 신이 나서 요구에 응했다.
이렇게 비행부(飛行符)가 한립의 물건이 됨과 동시에 부적 묶음과 그가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주술서적이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 낡은 서적을 대충 넘겨보자 안에는 가장 기초적인 초급 주결들과 여덟 개 정도의 하계 법술 그리고 유일하게 초급 중계용인 지자술(地刺術)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런 서적은 다른 수도자들에게는 가치가 없는 물건이었지만 한립은 대만족이었다.
그가 지금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런 기본 주술과 법술이었고, 다른 노점에서도 비슷한 서적들을 팔았지만 가격이 상당했다.
한립은 원하는 물건을 얻어 더 이상 구경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바로 광장을 나서 누각으로 향했다.
누각에 가까이 다가서자 이 누각이 진귀한 오동나무와 거대한 석회암으로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 층마다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세공이 정교하고 아름다웠고, 층마다 영기가 요동치는 것이 송문도사가 말한 진법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한립은 한 바퀴를 돌고서야 자신이 가고자 하는 누각을 찾았고 바로 안으로 들고자 했다.
그러나 별안간 무언가가 그를 막아서더니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는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천안술을 펼쳐 다시 한 번 누각을 살폈다.
한립 가까이에서 옅은 푸른빛이 벽을 만들어 작은 누각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거대한 사발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다시 그 앞에 선 한립이 손가락으로 그 푸른빛을 찔러 보았더니, 부드러운 탄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힘을 더 줄수록 그 탄력이 되돌아와, 이 청광의 방어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송문도사가 준 부적을 꺼내 빛의 장막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바로 원형의 파문이 일더니,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원형의 공간이 생겨났다. 한립은 주저하지 않고 부적을 챙기고는 누각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 광막 역시 점차 줄어들어 다시 원형을 되찾았다. 눈앞의 층옥은 그리 크지 않아, 이층 정도에 면적은 상당해서 수십 명이 들어가도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한립이 미소를 띠고는 층옥 안에 들어가니 대청이 나왔다. 대청 안에는 큰 상 두개와 여러 개의 나무 의자가 놓여 있어 수도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상이라 불리던 어린 중이 대청의 한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참선을 하고 있었다.
“고상대사, 송문도장은 아직 안 오신 겁니까?”
그에게 다가선 한립이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어린 스님은 한립을 상대하지 않고, 계속 입으로 무언가 염할 뿐이었다. 한립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날 쯤에서야 눈을 뜬 스님은, 미안한 기색을 띠고 뒤늦은 답변을 하였다.
“한 시주, 소승이 방금 금강경을 외고 있어, 바로 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소승의 무례를 책망하지 말아주십시오.”
“어찌 대사를 탓하겠습니까? 저는 누구보다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한립이 스님의 말에 미소 지었다. 어린 스님은 한참 후에야 느긋하게 입을 떼었다.
“송문도장과 다른 분들은 이층에서 한 시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시주를 보면 바로 알려 달라 한 것으로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 합니다.”
그의 느긋한 어투에 한립은 조금 답답해졌다.
‘어린 중놈이 누군가 날 찾으면 바로 알려야지, 뭐가 이리 느긋하단 말이야? 앞으로 이런 불자 부류의 사람은 답답해서라도 좀 멀리해야겠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층으로 올랐다. 이층에 올라가자 흑무과 흑진 형제가 계단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다가, 한립을 발견하고 말을 멈추었다.
“한 형, 송문도장이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가시죠.”
한립도 말없이 그들을 따라갔는데 이리 저리 돌고 돌아, 어떤 방 앞에 이르렀다. 방 안에는 방금 본 스님을 제외한 모두와 낯선 인물 두 명까지 모두가 모여 있는 듯했다.
한 명은 열 예닐곱의 소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스무 살 초반의 피부가 보드랍고 하얀 뚱보였다. 이 두 사람이 송문도장의 말한 이들인 듯했다.
“한 형 오셨군요. 앉으시죠.”
송문도장이 예의 바르게 옆의 자리를 가리켰다.
“이 분들이 운문간(云門澗) 오구지와 석탁곡(石拓谷) 황효천이십니다.”
“아이요! 저는 오구지라 하는데 대형을 본 순간 눈에 익은 것이 아마 전생에 연분이 있었나 봅니다. 자, 함께 술 한잔 하며 의형제라도 맺읍시다!”
송문도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녀석이 한립 앞으로 달려 와서는 팔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한립이 슬쩍 웃었다.
“의형제를 맺는 것이야 가능하지만, 내 몸을 더듬는 그 손은 좀 치워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아주 정상적인 사내라, 미소년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어서요.”
한립이 잡힌 팔을 쳐내고 전광석화처럼 상대의 손목을 잡아챘는데, 이미 상대의 손은 그의 옷자락 속에 들어가 있었다.
“콜록! 콜록!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제 손이 어찌 대형의 품속에 있었을까요? 분명 제 손도 대형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려 그랬나 봅니다.”
소년은 한립이 자신의 행동을 간파하자 얼굴을 붉히며 기침을 쏟다가 괴변을 쏟아냈다. 한립은 상대를 붙잡아 둘 생각은 없었기에, 소년이 힘을 주자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는 오구지란 녀석이 흥미로웠다. 수도자 임에도 강호인이나 쓸법한 투기(偸技)를 이용해 자신의 물건을 털어가려 하였으니, 어찌 웃긴 일이 아니겠는가?
허나 상대의 수법이 출중해서 자신이 비슷한 종류의 비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그런 미세한 동작을 잡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방 안의 사람들도 그 때문에 쓴 맛을 보았을 터였다.
“오가 녀석이 상대를 잘못 골랐네. 한 형에게 손을 쓰다 걸렸으니. 그러면서 무슨 투기가 일류라고! 좀도둑질이나 하는 주제에.”
“아이고, 부인 그럼 제가 한 번 더 당신의 물건을 털어볼까요? 물건이 없어지면, 이 태남소회에 참가한 의미가 없어지겠지만요.”
오구지가 입을 비죽거리며 경박스럽게 말했다.
“뭐라고? 이 어린 놈의 자식이 저번에 본 부인의 물건을 훔쳐간 것도 봐주었더니만?”
호평고가 당장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얼굴이 파랗게 변해 화를 냈다.
그리고 그녀 곁의 장부 역시 말없이 등 뒤에 걸어둔 대도로 손을 가져가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이후에 안 일이지만, 이 웅대력이란 자는 벙어리로 태어나 항상 부인의 모든 일을 처리하곤 하였다.
“그만들 하십시오! 모두 같은 수도자들인데, 잘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모두 물러서고 다툼을 삼가해 주십시오.”
송문도장이 얼굴은 찌푸리며 싸움을 말리고 나섰다. 이어서 바로 오구지를 향해서 정중히 당부했다.
“오 형제, 나 역시 물건을 훔치는 것이 자네에게 장난일 뿐이고 악의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허나 이렇게 장난삼아 하는 일이 화를 불러 올 수도 있는 법이야. 물건의 주인이 항상 자네를 봐줄 줄 아는가? 만일 이런 경솔한 행동이 수도일족에게 잘못 걸려 다툼이 벌어져 도와야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겠지!”
소년도 송문도장이 이렇게 까지 말하니 미안한 기색을 떠올렸다.
“사실 태남곡에 오는 도중에 이 투기를 우연히 얻어 신이 나서 연습을 좀 했을 뿐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시도해 보았으나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런데 한 형에게 딱 걸렸으니, 아마 소회상의 대단한 실력자들에게는 소용이 없겠죠. 다들 마음 푸세요. 소제, 다시는 목숨을 건 장난을 하지 않겠습니다.”
“오 형제의 자질이 남다르니, 그런 나이에 8성에 올랐겠지요. 우리 산수 중에서는 기재라 할 만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진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년의 말을 들은 도장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소제 도장의 기대에 어긋남 없이 행동하겠습니다. 모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구지도 제법 사리에 밝은 모양인지, 방에 모인 모두에게 깊이 예를 올렸다. 이렇게 이번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 싶었다. 호평고는 아직도 씩씩대는 모습이었으나, 그래도 얼굴색이 훨씬 나아졌다. 아마 상대의 태도를 사과라 여기고 간신히 받아들인 것 같았다.
“생각지 못하게 한 형제가 오자마자 큰 공을 세우십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도장이 고개를 저으며 웃는데, 윙윙거리는 듯한 새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장, 우리를 찾은 건 무슨 일입니까? 어찌 스님은 없고요.”
한립이 보니 뽀얀 피부의 뚱보가 거침없는 말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송문도장에게 그리 말할만한 자격이 있어 보였는데, 방 안에 있는 누구보다 이 뚱보의 법력이 가장 강했다. 송문도장보다도 더 심후한 법력을 가졌기에, 듣기 싫은 그의 목소리에도 아무도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아하니 수도계나 강호나 별 다를 바 없네. 실력이 있어야 다른 이의 존중을 받을 수 있어!’
약간 비아냥거리듯 중얼거리는데, 송문도장이 불진을 털어내며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입을 떼고 있었다.
“하하! 황 형 성격이 급하군요. 좋습니다. 빈도가 여러분을 찾은 이유를 말씀 드리지요. 태남회 기간도 거의 반절이 지나고 있으니, 수십일 내로 끝날 것입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노점을 연다면 함께 하는 것도 좋겠지요. 이런 연유로 모두를 모여 주십사 청한 것입니다. 다만 고상대사의 경우 이미 수중의 물건을 모두 교환했다 하니, 상의를 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그렇죠. 이제 정말 물건들을 영석이나 다른 것으로 바꿀 때입니다.”
잠시 후 방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눈 후, 내일 바로 함께 노점을 열기로 협의했지만 한립은 제안을 거절했다.
“한 형은 함께 하지 않는지요?”
오구지가 의아한 듯 묻자, 다른 사람도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저는 본래 지닌 물건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침 오늘 저녁 적합한 거래처를 찾아 모두 바꾸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랬군요! 그럼 함께 고생할 것 없죠. 한 형제는 운도 좋습니다. 오자마자 거래를 성공하고요.”
한립의 설명에 호평고가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럼 모두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일을 시작하시지요. 모두 좋은 수확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송문도장이 원만하게 상의를 마치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분분히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미소를 머금고 있던 송문도장이 무언가 생각난 듯, 급히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아! 모두 태남회가 끝나면 서둘러 떠나지 마십시오! 듣기로는 최근 태남소회가 끝나고 우리 같은 산수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된다고 합니다. 모두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모두 천무대(天霧臺) 승선대회에 참가한다면, 함께 행동하는 것이 더욱 안전할 듯 합니다!”
도장의 입에서 실종이란 단어가 나오자, 방에 있던 흑무 흑진 형제, 호평고부부, 오구지와 홍련산인 등은 안색이 바뀌었고, 뚱보 황효천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눈빛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럽시다. 송문도장 말에 우리 형제는 찬성입니다. 함께 행동하시지요!”
“우리 부부도요.”
흑무 형제와 호평고가 연이어 찬성을 하는 것이 이번 일을 심상치 않다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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