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64
64화. 곡 내의 정황
솔직히 말해 자신도 겨우 축기단 한 알을 먹어 축기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론 축기단을 눈앞의 엽 사숙에게 넘기지 않아도 앞으로 황풍곡 생활이 힘들어 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십중팔구 상대의 원망을 사게 되는데, 보아하니 황풍곡 내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진 인물로 보였으니 더욱 밉보여서는 안 되었다.
“엽 사숙, 축기단을 누구를 위해 얻으시려는 건지 여쭈어도 될까요? 분명 사숙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일 텐데요.”
상대가 자신의 말을 끊었음에도, 노인은 불쾌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기왕 한 사질이 물으니 사숙도 숨김없이 답하마. 이 축기단은 엽 가의 질손을 위해 얻으려는 것이니, 내 뜻을 들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대답에 한립은 몰래 코웃음 쳤다.
‘질손? 그 녀석을 위해 나처럼 한참 아래인 이에게까지 머리 숙여, 축기단을 구하다니 총애가 대단하구나. 보아하니 내가 주지 않았다가는 이 노인에게 화를 입겠어. 그리고 앞으로의 황풍곡 생활을 위해서라도 속은 쓰리지만 축기단은 포기해야겠다. 축기기에 들기 위해서는 또 방법이 있을 거야. 내겐 신비한 병이 있으니, 약방만 알아내면 어떤 단약이든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하나하나 따져 보던 한립이 결국에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리 피를 토하게 했으면 상대방도 신체 부위 하나는 남겨두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한립은 정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사숙, 불경하다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축기단은 사질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제가 자질이 부족하나 한 줄기 희망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이번 축기단 복용의 기회를 포기한다면, 일평생 대도(大道)와는 연이 없을지 모릅니다.”
노인은 한립의 말에 몰래 코웃음을 쳤다.
‘네 자질로 벌써 대도를 논하다니 주제를 모르는 구나.’
그러나 겉으로는 계속 간곡한 어조로 한립을 설득했다. 별별 쓸데없는 약속까지 하면서 계속 한립이 축기단을 내놓게 만들려 노력한 것이다. 그런 공염불에 한립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점차 마음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 상대가 신이 나서 더 높은 가격을 부르도록 만들었다.
“사질! 축기단만 양보한다면 곡내 제자들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잡무도 사질의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게 해주겠네!”
흔들릴 듯 말듯한 한립의 모습에 자신이 아껴둔 조건을 꺼내 들었다.
“잡무요?”
“그렇지 잡무! 우리 황풍곡의 제자가 되면 매월 일을 할당 받는데, 예를 들어 몇몇 광산 지역에 가 감독 임무를 맡는다거나, 본 문에 딸린 지역의 집사 업무, 영금류나 기이한 야수를 돌보는 일 및 각종 영근기초(靈根奇草)를 재배하는 일 등 정말 종류가 다양하지. 이후에 일 처리를 살펴 그에 걸맞은 영석을 나누어주어 제자들을 독려하는 게야. 사숙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문파 내에서 전문적으로 이런 임무를 분배하는 일을 관리하는 관사라 할 수 있으니, 사질이 어떤 것을 원하든 내 말 한 마디면 이루어진다는 말이지.”
가슴을 쭉 피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을 보니 이 노인이 어느 정도 권력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의 말에 한립은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세상 어디를 가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작자들이 꼭 있는 듯했다. 수도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의 입에서 영근기초라는 말이 나왔을 때 벌써 한립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업무는 정말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듯 마음에 쏙 들었다. 이미 시간을 끌만큼 끌어 더 응답을 안 했다가는 너무 탐욕스럽다는 인상을 남기기 십상이었다. 서로 얼굴을 붉히기 전에, 좋게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았다.
생각을 마치자 한립은 결국에는 설복 당했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왕, 엽 사숙께서 이리 잘해주시니 저의 입장에서 사숙의 체면을 세워드릴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방금 말씀해주신 조건만 지켜주신다면, 사질의 축기단은 사숙의 질손에게 내어 드리겠습니다. 질손의 축기 성공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거래가 성사되자 노인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거듭 약속했다.
“사질, 절대 걱정할 것 없네! 사숙이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 것이야. 다만 잠시 후에 장문인 앞에서는 거래에 대해서는 밝히되, 내가 암암리에 도와주기로 한 일들은 꺼내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사숙!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어리석은 말은 삼가겠습니다.”
한립이 단박에 상대의 의도를 알아채고 분별 있게 대답했고, 그런 영특한 행동에 노인은 흡족해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 * *
엽 노인은 거래가 성사되자 한립을 법기에 태워 공무를 논하는 대전으로 데리고 왔다. 황풍곡 장문 종영도에게 상황을 고하려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한립은 거대한 석전 앞에 서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문을 지키는 황풍곡 제자들를 살펴보았다. 모두 한립보다 법력이 훨씬 심후해서 기본공법 10성은 모두 넘었다. 다시 한참을 기다리자 안에서 백의의 중년인이 나와 명했다.
“따르거라. 장문인께서 부르신다.”
그 후, 그는 한립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몸을 돌려 들어가 버렸다.
이런 대우에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연기기 구성에 이른 자신 같은 수도자는 상대의 눈에 차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말 한 마디 나눌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의 태도가 불만족 스러웠지만 그래도 이곳에 온 이유가 있으니 착실히 그의 뒤를 쫓았다.
제자들이 지키고 선 대문만 연달아 세 개를 지나 황풍공의 장문인인 종영도가 보였는데 세 갈래로 난 수염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대청의 양 측에는 열 댓 명의 다양한 복색을 입은 이들이 자리했는데 한립이 들어오니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그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관심을 거두었다. 엽 노인과 왕 사제도 각자의 자리로 가 앉았다.
“네가 한립이로구나.”
“그러합니다. 제자 한립, 장문을 뵙습니다!”
종 장문의 침착한 음성에 답하며, 한립이 대례를 올리려 했다.
“그리 할 것 없다. 자네가 승선령을 가져 왔으니, 본 장문은 필히 선대인들의 규율에 따라 본문의 제자로 받을 것이야.”
마치 춘풍이 불어오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미소와 함께 그의 소맷자락이 가볍게 흩날렸다. 그러자 한립은 숙였던 허리가 무형의 부드러운 기운에 의해 펴져서 어떻게 해도 다시 예를 올릴 수 없었다. 장문에 대한 경외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원래대로 했다면 자네를 본 문에 들이는 것 외에 축기단을 복용할 자격을 주게 된다. 그런데 엽 사제의 말에 따르니, 그 기회를 포기하고 다른 이에게 넘기기로 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종 장문은 한립을 부른 이유에 맞게 확인해야 하는 바를 바로 물었다.
“그러합니다, 장문! 제자의 자질이 부족해 축기단을 복용하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이지요. 이렇게 귀한 물건이라면, 꼭 필요한 사형제들에게 주고자 합니다.”
말을 하면서도 배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가 늘 먹던 단약들과는 달랐다. 바로 축기단이었다!
축기단은 수도계 내에서도 그것을 차지하려 피바람을 불러올만한 귀한 물건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신비한 병을 가졌다 하더라도, 축기단 같은 영단은 완전히 똑같이 배합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더없이 불편했지만, 겉모습은 말 잘 듣는 순한 양 같았다.
“자네의 배포가 이리 크니, 본 장문도 안심이 되는구나. 그래도 안심하게. 본 장문은 자네가 아무 보상도 없이 손해를 보게 하진 않을 테니.”
종 장문의 고개가 엽 가에게로 향했다.
“엽 사제! 한립의 축기단은 원래대로 사제의 질손이 복용하는 것으로 하지. 허나 사제는 반드시 그 손실을 보상해주어야 할 것이야.”
“허허! 장문 사형, 마음 놓으십시오. 꼭 한 사질이 만족하게 할 것입니다.”
“축기단 일은 이렇게 마무리 하지. 그럼 한립은 오늘 부로 본 문의 제자가 되었다. 왕 사제, 한 사질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가는 길에 문규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게. 일단은 전공제자의 수행에 참여하게 해, 품행과 성과를 보아 이후 어디로 발탁할 것인지 살펴보도록 해.”
종 장문이 주도면밀하게 일 처리를 하였다.
“존명, 장문!”
자리에서 일어난 왕 사제가 명을 받들었다. 그리고 바로 한립을 데리고 대전을 나서며, 황풍곡의 크고 작은 규율과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전했다. 한립은 왕 사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황풍곡에 대한 알아갔다.
황풍곡은 일 만여 명의 제자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연기기의 제자가 대부분이었고, 축기기의 제자는 수 백 명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축기기에 이른 인재들이 바로 황풍곡의 진정한 동량들이었다.
그리고 결단기에 이른 엄청난 고수는 몇 사람에 불과했고, 이들은 폐관수련을 하는 경우가 많아 황풍곡 내의 소소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황풍곡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나 종 장문이 찾는 경우에 한해서는 얼굴을 드러낸다고 했다.
곡 내의 유일한 원영기 수사인 종 장문의 사숙조는 구백 살이 넘은 고령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법력을 지닌 이였는데, 법술에 통달하고 신묘하기가 이를 데 없어 살아있는 신선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일찍이 곡을 떠나 월국에도 종적을 찾을 수 없었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며 돌아다닌다니 언제쯤 황풍곡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곡 내에 연기기의 제자가 이렇게 많으니, 모두가 축기단을 복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오직 가장 우수하고 자질이 뛰어난 제자에게만 이런 영광이 돌아갔다.
그래서 10년마다 곡 내의 30세 이하의 제자는 선발 시험에 임하게 되는데 그 경쟁은 굉장히 치열해서, 문파 외부의 승선대회보다 더 심했다.
기본적으로 기본 공법이 11성 혹은 12성에 이른 인재여야, 경쟁에서 살아남아 축기단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친 수백 명의 제자들 중 축기단을 복용한 후 축기에 성공해, 축기기에 드는 이는 겨우 이, 삼십 명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공법은 진일보 하지만, 기초공법 내에서의 성취일 뿐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곡내의 제자들은 세 가지 계층으로 나뉜다.
가장 낮은 계급의 제자가 바로 축기단을 복용해 보지도 못한 보통 제자였다. 곡 내의 대다수가 이런 하급 제자였다.
이들은 원래도 가장 법력이 낮은데다 평소에 잡무도 많아 수련 시간은 더욱 부족해진다. 곡 내의 최하위 층인 이들은 ‘집사제자’들로 불린다.
그들보다 약간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이 축기단을 복용했으나, 아직 축기기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었다. 이들의 기초공법은 대부분 최고봉이라 집사제자들에 비해 법력이 높았고, 간단한 중계 법술 정도는 어느 정도 펼칠 수 있었다.
그래서 보통 집사제자들을 관리하거나 명을 수행하다 하여, ‘영사제자’라 불렸다.
그리고 지위가 가장 높은 부류이자 대우 받는 이들이 바로 축기기에 오른 제자들이었다. 이런 하늘의 총아들이야 말로 진정한 수도자였고, 수도자의 길에 제대로 발을 뗀 수사였다.
황풍곡에는 이런 제자들 외에 문파의 대권을 좌지우지하는 각종 관사들이 있었다. 이런 관사는 축기기에 이르러 어느 정도 수련을 했지만 결단기에 이를 가능성은 없는 제자들 중 선발한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계속 수련하는 것을 포기하고 곡 내의 여러 업무를 맡아 전문적으로 문파를 관리한다. 엽 씨 성을 가진 노인과 대전에서 회의를 하던 십여 명이 바로 관사들이었다.
당연히 이상의 설명은 왕 사숙의 이야기를 빌려 한립이 자신의 의견을 더해 낸 결론이었다.
이로써 한립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스스로의 지위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 다른 동문들과 함께하며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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