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711
711화. 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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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깃털 부채는 령보의 모조품이 맞습니다.”
한립의 말에 승려의 무덤덤하던 얼굴에 슬쩍 웃음이 피어났고 그가 막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는데 찬고 각주가 끼어들었다.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안에 들어가 이야기 나누시지요. 안 그래도 막 상고시대의 영주(靈酒)인 진룡음(津龍吟)을 구해둔 참입니다. 평범한 수사들은 이 술 한 모금에 한 달 치 법력을 얻는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향과 맛이 더없이 훌륭하다는 데 있지요.”
살찐 노인은 두 손을 비비며 웃음을 흘렸다. 이제 찬고는 일각의 각주라기보다는 사람 좋은 시골 노인네처럼 보였다.
“진룡음! 빈승이 알기로 진룡음을 빚으려면 인계에서 이미 멸종된 지 오래인 여러 과실을 배합해 숙성시켜야 한다던데요. 그 향기가 그윽한 것이 인계의 다른 영주와는 비할 바가 없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원지 대사가 그 소식을 듣고 희색을 드러내다 한립의 아연한 눈빛에 장난기어린 웃음을 던졌다.
“수사, 이상하게 볼 것 없습니다. 빈승 이미 오래 전 불문에 귀의했지만 영주의 맛을 잊기는 어렵더군요. 사실 예전에도 찬고 수사가 수십 동이의 상고 영주로 유혹해 이곳의 객경 장로가 된 것입니다. 허허, 그렇다고 노승이 술과 고기만 탐하는 땡중은 아닙니다. 다른 계율들은 얼마나 열심히 지키는데요.”
원지의 농담 속에 한립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한립도 그것을 눈치 챘지만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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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높은 하늘 위, 푸른 빛줄기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어려보이는 청년이 붉은 옥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막 천기각을 떠난 한립이었다.
“명성이 자자한 개자공간의 제련법이 이렇게 간단할 줄은 몰랐습니다. 필요한 재료들도 대부분 평범하고요. 이대로만 제련한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겠습니다.”
한립이 둔광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런 걸 개자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고정된 공간균열에 불과하지. 진정한 개자공간은 가지고 다니며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라네.”
그의 귓가에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맞는 말씀입니다. 허나 인계 수사의 역량으로 그런 보물을 제련하기는 어렵겠지요. 수사께서 말씀하셨던 건곤대나 완전한 흑풍기 같은 공간 보물도 진정한 개자공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내 알기로 영계에서도 개자공간을 지닌 이들은 소수일세. 그런 지보(至寶)를 지닌 이들은 거의가 영계의 최정상에 선 이들뿐이지. 그럼 공간 제련 비술도 얻었으니 이제 음라종으로 가 귀라번들을 빼앗아 올 참인가? 이대로 쳐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을 텐데?”
“당연히 이대로 쳐들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음라종에 대수사가 한 명 뿐이라지만 대진 십대 마종 중 하나이니 얼마나 강력한 금제가 걸려 있을 지 알 수 없으니까요. 상고시대부터 이어진 상고종문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에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은…….”
“예, 우선 머리를 쳐야지요. 일단 음라종 종주를 처리한 후에 원영기 장로들을 하나씩 상대하면 일이 수월해질 겁니다. 게다가 시장에 들러 소문을 들으니 요 몇 년간 적잖은 마종들이 음라종의 십대 마종 지위를 노려 음라종 종주가 자주 종문을 나선다고 하더군요.
기회를 보아 그 자만 죽인다면 대수사 없이 금제만으로는 음라종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물론 음직이기 전에 적당한 목표를 잘 선별해야겠지요. 만약 시간을 끌다 화신기 수사라도 끼어든다면 일이 복잡해 질 것입니다.”
“그렇구만. 인계의 대수사들도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겠어! 자네가 거대한 종문 하나를 멸살하려는 것을 화신기 녀석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말일세.”
이번에는 한립도 대꾸하지 않았고 옥간을 회수한 후 속도를 높여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 * *
다시 반 년이 훌쩍 지나 봉주(封州)와 항군(苀郡)의 경계지역.
이름 모를 산맥의 상공에서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천 마리가 넘는 동갑연시(銅甲煉尸)를 이끌고 수십 명의 수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구리 갑옷을 입은 연시들과 흑의인들까지 함께 공격을 가하니 한식경 만에 몇몇 결단기 수사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죽어나갔다.
남은 결단기 수사들도 그리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다투던 수사들은 귓가에 바늘이라도 꽂힌 듯 격통이 느껴지며 귀가 멍해졌다.
“……!”
그 소리에 공격하던 흑의인들의 표정이 급변했고 포위를 당하고 있던 수사들은 희색을 드러냈다.
멀리서 청록색 마기의 구름이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백여 장을 지나 수사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에 가까워졌던 것이다.
“난 또 누가 본 종을 쳐들어왔나 했더니, 혈골문(血骨門)의 필 수사셨습니까?”
바로 그 순간 냉랭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리며 검은 빛을 번뜩이는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대충 소매를 펄럭이며 회색빛으로 변해 청록색 마기의 구름을 향해 날아들었다.
“방 노마!”
놀란 목소리가 마기의 구름 속에서 들리자 뜻밖에도 그는 주저 없이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 했다.
“흥, 이미 본 종의 구역에 들어 와 놓고 어딜 그리 급히 가시려는지.”
누군가 코웃음을 쳤고 회색 둔광이 점점 까닿게 변해 그 속도가 배로 빨라졌다.
새까만 둔광과 청록색 마운(魔雲)이 백여 리를 쫓고 쫓다가 결국 하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흑의인들이 그것을 보고 다시 동갑연시로 맹공을 퍼부었다.
반대로 포위된 수사들은 방 노마라는 소리에 절망한 기색이 가득했고 죽기 전까지 발악했지만 결국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흑의인들은 검은 가죽 주머니에 동갑연시들을 전부 회수하고는 바로 떠나지 않고 하늘 저편만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빛줄기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사담을 나누던 흑의인들이 즉시 양 쪽으로 갈라서서 손을 모으고 기다리자 검은 빛이 번뜩이며 그들 앞에 멈추더니 새까만 인영을 드러냈다.
“종주님을 뵙습니다.”
흑의인 수사들은 긴장된 기색으로 몸을 굽혀 대례를 취했다.
“혈골문은 깨끗이 처리했겠지?”
검은 기운에 둘러싸인 사내가 담담히 물었다.
“종주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본 종에 침입한 혈골문 72명의 수사들은 전부 멸살하여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키 큰 노인이 앞으로 나서서 공손히 보고했다.
“혈골문 장로 필화는 육신을 멸하고 원영만 놓아주었다. 아마 이 일을 계기로 혈골문이 우리를 얕볼 일은 없겠지. 본 종이 인원이 부족하지만 않았다면 바로 혈골문으로 달려가 대가를 치르게 했을 터인데!”
검은 인영이 음산히 중얼거렸다.
다른 흑의인들은 감히 맞장구도 치지 못하고 조용히 다음 분부를 기다렸다.
“일단 너희는 돌아가거라. 나는 홀로 처리해야할 일이 있으니 며칠 내로 돌아갈 것이다.”
“존명!”
흑의인들은 명을 받들고 중년 사내의 형상을 한 검은 기운의 지시 하에 날아올랐다. 검은 인영은 허공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멈춰 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검은 기운 속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고 구경만 하실 참입니까? 그러지 마시고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말을 마친 그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저를 다 발견하시다니 방 수사께서 괜히 음라종 종주가 아니십니다. 그럼 문하의 제자들을 미리 돌려보낸 것은 그들을 위해서였군요?”
낯선 사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자 푸른빛이 번뜩이며 푸른 장삼을 걸친 청년이 뒷짐을 지고 나타났다.
청년은 한립이었고 검은 기운 속 방 씨 중년인은 바로 음라종 종주였다.
한립은 상대를 처리하기 위해 음라종 총단이 있는 방망산맥(邡莽山脈)을 반 년 넘게 감시해오다 오늘에서야 완벽한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너는?”
음라종 종주가 한립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바로 눈을 부라렸다.
“방 종주께서 저를 알아보신 모양입니다.”
“과연 이미 원영 후기의 경지에 들어섰구나. 이곳에 나타난 것은 나를 죽이려는 것이더냐?”
음라종 종주는 검은 기운을 흩어버리고 젊은 얼굴을 드러냈다. 이상할 정도로 창백한 얼굴과 청록색 빛을 번뜩이는 두 눈의 조화가 요사스러웠다.
“맞습니다. 기왕 만남 김에 우리 둘 중 하나는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립은 마치 친한 벗과 이야기 하듯 유유자적하게 말했다.
“좋다. 네 놈이 나를 찾아 왔으니 굳이 천남으로 갈 수고를 덜었구나. 듣기로는 건 노마와 소극궁 한려상인이 네 손에 죽었다던데? 솔직히 나는 그런 소문 따위 믿지 않는다. 이번에 너를 죽여 내 처와 본문 장로들의 원한을 갚겠다.”
음라종 종주는 안색이 수없이 바뀌다가 두 눈에 청록색 빛을 발산하며 광소했다.
이제 주변으로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와 그를 뒤덮었고, 그 안에서 귀곡성이 흘러나오며 몇몇 커다란 인영들이 괴이하게 나타났다.
검은 기운은 농염하기 그지없었지만 남색으로 빛나는 한립의 두 눈에는 그 안에 든 요물이 똑똑히 보였다.
새까만 갑옷을 입은 커다란 연시 셋이었는데, 양 손에 노란색의 단창을 든 연시, 한 손에 청록색 장창을 든 연시 마지막으로 은빛 찬란한 낭아봉(狼牙棒)을 든 연시들이었다.
세 구의 연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초록색으로 눈을 번뜩였고 갑옷을 입은 연시들은 시왕(尸王)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각각이 원영기 급의 수행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특히 머리 부분에 무수히 많은 가시가 박힌 연시는 시기가 짙어 원영 중기 정도로 보였다.
한립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소매를 털어 새까만 작은 병을 발동한 후 수결을 맺었다.
다섯 개의 회백색 기운이 병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구르고는 인간 형상을 한 백골들이 나타났다.
후우우.
백골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뿌드득 뿌드득 갈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전신에서 놀라운 기세를 뿜어냈다.
“오자동심마!”
음라종 종주는 다섯 마귀들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와 건 노마는 오랜 세월 사형제 간이었으니 오자 동심마를 몰라 볼 리 없었다.
상대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든 한립이 던진 법결을 흡수한 다섯 마귀들은 동시에 뼈로 만든 골도(骨刀)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가라.”
음라종 종주도 주저 않고 소리쳤고 검은 기운 속의 연시들도 당당히 다섯 마귀들을 향해 튀어 나갔다.
그리고 음라종 종주가 소매를 털자 새까만 구슬이 손에 들렸고 다른 손바닥을 뒤집자 얇은 천 같은 노란 물체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가 두 보물을 발동하기 전에 이미 세 구의 연시와 다섯 마귀가 먼저 격돌했다.
새까만 갑옷의 연시들은 바로 입을 벌려 녹색 기운을 뿜어냈는데 아직 다섯 마귀의 몸에 닿기도 전에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세 연시들이 오랜 세월 축적한 시독(尸毒)이었다.
일반 수사가 이런 극독에 당했다면 큰 타격을 입었겠으나 오자동심마들은 인간의 육신을 지니지 않아 청록색 독을 보고도 전혀 겁내지 않았다.
그것들은 똑같이 입을 벌려 다섯 가지 색깔의 한염을 분출했다.
한립은 이미 음라종 종주를 반드시 죽이겠다 마음먹었기에 처음부터 다섯 가지 극한의 한염이라는 강수를 놓은 것이다.
다섯 가지 한염들이 한데 모여 오색의 불바다를 형성했고 시독을 단번에 흩어버린 후 거대한 파도처럼 갑옷 입은 연시들마저 덮쳐버렸다.
흉악한 기세를 뽐내던 연시들은 다섯 가지 한염 속에서 행동이 더없이 느렸다.
마치 오자동심마가 육도극성의 뼈로 만들 깃발 위 해골들을 상대할 때 보았던 장면 같았다.
그러나 연시들도 꽤나 신통이 좋은 지 속도는 느렸지만 전신에서 칠흑 같은 시기를 방출해 한염을 막아내며 버티고 있었다.
다섯 마귀들은 그것을 보고 몇 장 뒤로 물러나 다시 한 번 극한의 한염들을 분출했다.
음라종 종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백 년간 수만 개의 동갑연시 중 골라내 배양한 시왕들이 오자동심마의 일격에 붙잡힐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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