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부보(符寶)의 비밀
주인은 남색 뇌주를 설명한 후에는 물건의 소개를 멈추었는데, 아직 탁자에 남은 잘 봉해진 비단함 속 물건은 소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대의 의도를 알아챈 한립은 그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이 얼마나 갖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면 더는 공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일을 위해 한립도 천 년된 영초 두 뿌리 외에 거의 전 재산을 저물대에 담아오긴 했다. 중계 영석 두 개와 백 개에 이르는 하계 영석!
하지만 영석들은 절대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고, 일단은 영초로 해결을 봐야했다.
사실 한립도 수 천년 된 영초가 수도계에서 종적을 감춘지 오래고, 그 때문에 가격이 높을 것이라 예상만 할 뿐, 얼마만큼의 영석이나 법기와 교환이 가능할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방패나, 처음 보여준 금부자모인은 고민을 좀 해보아야겠지만, 천뢰자만은 꼭 거래에 성공해야 했다. 그는 바로 영초 두 뿌리를 내보이지 않고, 일단 저물대에서 한 눈에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작은 목함을 꺼냈다.
그 안에 든 것은 당연히 천 년 된 영초 한 뿌리였는데, 한립은 사람도 어떤 복장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듯, 이렇게 그럴 듯한 용기에 담아 물건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뚜껑을 열지도 않은 온전한 상태로 바로 상대의 면전에 목함을 내밀었다. 차를 마시면서 면밀히 한립의 행동을 살피던 주인은 바로 목함을 가져가 살펴보더니 조심스레 함을 열어보았다.
“음?”
내용물이 드러나자 전 장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려 형께서 이 황정지(黃精芝)를 가지고 만옥루의 보물을 교환하고자 하십니까? 흔한 영초라 이, 삼 백 년 이상이 아니고서는 값어치가 별로 나가지 않을 텐데요.”
확연히 차가워진 상대의 말투에도 한립은 무어라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 주인이 했듯 향차를 자신의 찻잔에 따라 여유롭게 음미하기 시작했다. 이런 느긋한 행동에 주인은 정신이 번쩍 나, 다시 고개를 숙여 목함의 영초를 쳐다보았다.
“헉!”
영초를 보고 또 보던 주인은 무언가에 놀란 듯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곤 바로 의자를 박 차고 일어서서 방 안에서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으로 목함을 옮겨가, 이렇게도 살피고 저렇게도 돌려보며 영초를 확인했다.
“말도 안 돼. 설마, 정말 천 년 이상 된 물건인가? 아니면 그저 겉모습만?”
상대의 황망한 얼굴에 탄식이 겹쳐지자, 그제야 한립의 마음이 온전히 놓였다. 천년 이상 된 영초의 가치는 자신의 예상을 뛰어 넘으면 넘었지, 절대 그 이하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원하는 물건을 교환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주인은 자신이 손님을 앞에 두고 실례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실례였고 또 추태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의 물건에 완전히 홀린 주인은 이것이 정말 천 년 이상의 극상품이라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만옥당에 남겨두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이런 물건이 거래품으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만옥당의 명성이 크게 달라질 터였다.
문제는 천 년 이상 된 영초를 거래해 본 일이 없어, 목함 안의 물건이 천 년 이상의 약성을 지녔는지 확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천 년 까지는 못되어도, 이미 칠팔백 년이 넘은 영초임에는 확실했기에, 진귀하기 그지없는 물건이란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여봐라!”
목함을 만지작거리던 전 장궤가 아래층을 향해 소리쳐 하인을 불러들였다.
“정 어르신을 모셔 오거라. 귀한 물건이 있어 한번 감정을 해주셔야 한다고 전하면 될 게다.”
그가 엄히 명 하고는 정 어르신이란 자를 기다리며 한립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 영초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아, 서로 목함의 존재를 잊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머지않아 백발의 노인이 하인의 부축을 받고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그 자리에 섰다. 자리를 양보하고 그 옆에 가 서니, 전 장궤가 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당신도 감별할 수 없다는 게요?”
노인이 가쁜 숨을 토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정 어르신, 이 물건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천 년된 영약 같은데 확신이 서질 않아 확인해 주십사 모셨습니다.”
공손한 말투로 사정을 설명한 주인이 목함을 노인에게로 건넸다.
“천 년된 영초?”
“자세히 살펴봐 주십시오. 정말 천 년된 황정지(黃精芝)가 맞는 지요?”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정신을 집중해, 목함 안에 든 영초의 형태와, 색깔, 심지어는 표면의 무늬까지 살펴보았다. 동시에 함을 코로 가져가 몇 번이고 향을 맡아보았다.
결국, 정 노인이 목함을 탁자 위에 두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잠시 시간을 끌더니 두 눈을 뜨며 말문을 뗐다.
“축하하오. 이것은 분명 천 년 이상 된 황정지가 맞소. 게다가 땅에서 채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성이 온전이 남아 있는 상품 중에서도 극상품이란 것을 이 노부가 보장하오.”
자신이 원하던 소식을 듣자, 주인은 노인을 다시 공손히 아래층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희희낙락하며 손에 든 함을 연신 보고 또 보았다.
“주인장, 우리 둘은 거래에 대해 할 말이 남은 것 같은데.”
“어……. 아! 제가 잠시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려 형께 용서를 구합니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전 장궤의 희색을 보니, 내가 실망하지 않을 만한 조건을 제시할 것 같군.”
그제야 아직 영초가 만옥루의 것이 아니란 일을 상기한 것인지, 그의 얼굴에 붉은 기가 떠오르자, 그 틈을 노려 한립이 상대를 떠보았다.
주인은 흥분한 기색을 가라앉히고, 원래의 예의 바른 모습으로 돌아와 물건을 탁자 위에 돌려놓았다.
“려 형께서 천 년된 영초를 구할 정도이시니 평범한 수도자는 아니시겠지요. 저도 상도를 아는 이이니, 대형을 속이지 않고 공평한 거래를 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간절하면서도 진실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영초는 제가 보여드린 물건 두 개와 바꾸어 가시거나 혹은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마지막 물건과 교환 가능 합니다. 대형께서 모두 마음에 차지 않으신다면 이곳에서 만족할 만한 수량의 영석을 내어드리는 방법도 있지요. 려 형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한립이 보기에도 상대가 그럭저럭 합리적인 가격을 부른 것 같았다. 일단 자신이 최소한으로 잡은 금액보다는 높았다. 그래서 바로 거래에 응할 마음도 생겼지만, 그러기 전에 마지막 물건의 정체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립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주인이 분별 있게 마지막 함을 열어 한립의 앞에 밀어 놓았다.
“이 안에 든 것이 저희 루의 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형께서 알아보실 수 있겠는지요.”
한립은 비단함 내부를 보고는 경악을 했다. 놀랍게도 그 안에 든 것은 부적이었는데, 상면에 그려진 금색의 벽돌 같은 문양에서 금광이 찬란하여,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부적을 보자 일전의 싸움에서 얻은 잿빛 검이 그려진 부적이 문득 떠올랐다.
‘설마 같은 종류의 부적? ’
깊은 숨을 내쉰 한립이 확실하진 않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부보(符寶)?”
“정말 알아보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런 보물은 수도자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으니, 려 대형의 안목에 탄복했습니다.”
주인이 정말 의외라는 듯 말하자 한립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띄워주는군. 부보라는 것을 들어만 보았지, 사실 아는 바는 거의 없네. 주인장은 아무래도 부보에 대해 아는 바가 있겠지.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나.”
이 말은 정말 온전한 진심이었다. 이 기회를 빌어 부보에 대해 알 수 있다면 줄곧 답답했던 마음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은 생각지 못한 요구에 놀랐지만, 부보에 대한 것이 비밀도 아니었기에 흔쾌에 부보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려주었다.
부보란 그 내력이 굉장해서 놀랍게도 결단기 이상의 수도자만이 제작이 가능한 특수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법보(法寶)를 만드는 고계 수사가 법부의 일부 위력을 특수 제작한 부적에 봉인해, 다른 수도자들이 잠시나마 법보의 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부적이었다.
부보는 부적과 법보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어 몇몇 수도자들은 이것을 위법보(伪法寶)라 부르며 추종하기도 했다.
위법보는 굉장히 특수해서 결단기 이상의 수도자만 제작이 가능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수도자라도 가능했다. 다만 축기기 전의 수도자는 부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없기 때문에, 부보의 원래 위력을 끌어낼 수 없었다.
같은 물건이라도 축기를 마친 수도자가 심신응련법(心神凝煉法)을 운용해야만 완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그 위력이 해일을 일으키고 산을 무너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법기에 비해서는 월등했다.
그래서 축기기 이상의 수사라면 누구나 부보를 탐냈고, 동급 수사의 대결에서 부보나 법보는 상대를 압도할 만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부보는 모든 위력을 다 소모하면 그저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부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부보의 제작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보 자체가 결단기 수사 이상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수량이 적었고, 부보를 만드는데 이용되면 법보는 위력의 일부분을 잃게 된다.
부보를 만드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보여도, 많은 고계의 수사들이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후인을 고려해 부보를 남기곤 했다.
그리고 부보를 제작하면 법보의 위력뿐 아니라 법보의 원주인의 원기도 크게 상했다.
그래서 보통 임종을 앞둔 수사가 세상을 뜨기 전에 남기는 물건에는 위력을 잃은 법보와 수 장 정도의 법보의 위력이 봉인된 부보인 경우가 많았다.
부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한립은 비단함에 든 부보를 다시 살펴보았다.
“금광전부보(金光磚符寶)는 만옥루가 아낌없이 영석을 털어 어느 중소 가문에서 매입한 것으로,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것입니다. 려 대형의 천 년 영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은 마치 큰 손해를 본다는 듯한 기색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한립은 상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서로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지, 절대 상대의 손해는 아니었다. 상대의 눈에 저 부보 보다는 자신의 영초가 더 탐나는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어떻습니까? 려 형께서는 어떤 물건으로 하실 지 결정 하셨는지요?”
웃음기 어린 상대의 물음에 한립은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모두 마음에 쏙 들어서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금광전부보는 후일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물건들이 모두 흡족하니 모두 가져가야겠군.”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국에는 결정을 내렸다. 만옥루에서 모든 거래를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최대한 덜 띄며 천년 영초가 가져올 파장도 만옥루만이 겪게 될 터였다.
“모두 가져가신다니,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얼굴이 어두워진 주인은 한립이 과욕을 부려 천년 영초 하나로 모든 보물을 가져가려 한다 여기고 있었다.
이에 한립은 저물대에서 방금 꺼내 놓은 것과 동일한 크기의 목함을 하나 더 꺼내 놓았다.
“천 년 영초 두 뿌리로, 당신의 비단함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바꾸겠네!”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이 조건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경함이 담겨있었다. 두 번째 목함에 놀란 주인은 한립의 조건에 답하는 것도 잊고 일단 목함을 열어 영초를 살폈다. 확실히 새로 등장한 영초 역시 천 년 영초가 분명했다.
그는 얼굴에 의문을 가득 품고는 하시 한번 눈앞의 삿갓 쓴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립이 삿갓을 써 얼굴을 가렸기에, 주인이 아무리 열심히 본다 한 들 표정을 읽어 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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