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잔인한 사내
“그러시죠. 려 형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데, 제가 어찌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신 대형께 한 가지 사소한 청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려 형이 앞으로도 영초와 같은 진귀한 물건을 얻게 된다면, 우선적으로 저희 만옥루를 찾아주시겠습니까? 가격은 만족할 만큼 맞춰 드리겠습니다.”
한립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영초의 출처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기에 앞으로는 이런 괴이한 거래를 자제하자고 조용히 다짐했다.
그러나 한립의 속마음을 모르는 주인은 크게 기뻐했다. 만일 정말 천 년 영초를 더 가져온다면, 지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아깝지 않은 일이었다.
거래가 무사히 성사된 한립은 만옥루를 나서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시장 밖으로 나가 백약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혹시나 만옥루에서 고수라도 파견해 자신의 뒤를 쫓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 * *
시장을 나선지 사흘이 지난 저녁 무렵 한립은 태악산맥의 외곽에 도착했다. 그는 날이 저물어 근처의 숨겨진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황풍곡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 동굴은 여러 바위가 막아 외부에서 입구를 찾기 어려웠다. 허기를 채우고 운공을 하다 보니 어느 새인가 밤이 깊었었다.
한립이 잠을 자려고 할 때 돌연 동굴 밖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만옥루 사람이 쫓아 온 것인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사매, 여기가 좋겠군. 외지고 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야.”
어쩐지 귀에 익은 사내의 목소리가 동굴 밖에서 들려왔다. 조금 놀라긴 했으나 한립도 약간 마음이 놓였다.
만옥루 사람이 보물을 탐내 추살 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이 때 한립은 동굴 입구에 다다라, 앞을 막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놈이야!’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한립은 한 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뜻밖에도 모용 형제와 한 바탕 다툼을 벌였던 속 좁고 교활한 육 사형이었다.
그 옆의 여인의 얼굴이 드러나자, 이번에도 한립은 너무 놀라 혀를 깨물 뻔 했다.
“찾았다!”
육 사형은 여인의 몸을 뒤적거리다 갑자기 멈추더니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아기자기한 저물대가 들려있었다. 그가 손에 든 저물대를 뒤집자 그 안에서 대량의 물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기, 부적과 같은 것부터 의복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그러나 육 사형은 다른 물건은 신경 쓰지도 않고 병이나 함과 같은 것만을 골라 뒤지기 시작했다.
* * *
“흐하하! 여기 있었구나! 사매라면 몸에 지니고 다닐 줄 알았지. 역시 내 생각대로야.”
육 사형이 들어 올린 것은 붉은 색의 작은 목함이었다. 목함은 이미 열려 있었지만, 한립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잔인한 사내가 자신의 여인에게도 저렇게 난폭하게 행동하는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안다면, 분명 죽이려 들 것이 뻔했다.
자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법술을 익히고 겨우 11성의 법력을 가진 이는, 육 사형에겐 승산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진짜 싸움이 생기면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한립은 정말 이렇게 잔인하고 독한 인간은 보다보다 처음이었다. 한립은 기다리다 못해 막 배운 염기술을 시현했다. 상대가 무의식중에나마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 일전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육 사형은 붉은 목함을 자신의 저물대에 넣고, 다시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진 사매 곁으로 돌아갔다.
“날 원망하지 마. 그 교활한 계집애가 너랑 완전히 연을 끊고 축기에 성공하면, 문파 내의 홍불 할망구에게 말해 나를 문하에 들게 해주겠다지 뭐야? 그럼 세상을 놀라게 할 공법을 전수 받고 엄청난 성취에 이를 수 있겠지!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우리 사매가 좀 억울해도 어쩌겠어.”
두 눈에 노기를 가득 담고 있던 진 사매는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에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저 양심도 없는 놈의 몸을 물어뜯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몸에는 풍박술(風縛術)이 걸려 있었기에, 그녀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흠. 만일 사매가 진가 가주의 무남독녀만 아니었다면 이런 꼴을 당할 리는 없었을 텐데. 사매의 애정이 미움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그러니 내 장래와 명성을 위해 사매는 여기서 죽어줘야겠지! 어쨌든 우리가 그렇게 서로 은혜(恩惠) 했으니, 누가 날 의심하겠어, 흐하하!”
육 사형이 아주 진중한 체 하며 중얼거리는 데도 거친 손길은 전혀 멈출 줄을 몰랐다.
“사매 그거 알아? 사매가 날 흔들리게 한 건 바로 나처럼 축기단을 복용하지 않고 남겨두었기 때문이야. 분명 기초 공법을 대성한 후에 복용하려 했겠지? 그래야 축기에 성공할 확률이 커지니까. 사실 축기단 하나로는 조금 위태했거든. 사실 이영근자라도 축기에 실패하는 일이 허다했으니까. 그래도 이제 축기단이 두 개가 되었으니 난 아무 문제도 없겠지!”
말을 마친 육 사형이 자신의 저물대를 뒤져 방금 넣어둔 붉은 목함과 청색 자기 병을 꺼내 득의양양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뒤편에 숨어 있던 한립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축기단을 얻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금지 원행까지 감내하려 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축기단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한립은 고민을 하다 결심이 서자, 온 신경을 육 사형의 행동에 집중했다. 만일 작은 약점이라도 발견하면 절대 지체하지 않고 출수해 일격에 그를 죽이고, 축기단 두 알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때 진 사매에게서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굴에 가득했던 원망과 분노는 점차 사라지고, 무언가에 취한 듯 몽롱해져갔다. 육 사형은 손에 든 물건을 챙겨 넣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 자신의 옷도 벗으려고 했다.
한립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육 사형이 발가벗을 때를 노려 습격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육 사형을 지켜보던 한립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육 사형은 서둘러 옷을 벗는 시늉만 할 뿐, 두 눈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한립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품에서 수조부(水罩符)를 꺼내 쥐었다.
그러자 갑자기 좌측에서 무언가가 소리도 없이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막 의식을 확장해 주위를 경계했으니 망정이지, 미리 준비하지 못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든 부적을 몸에 붙이니 남색 물결과 같은 빛의 장막이 일렁였다. 거의 동시에 청색의 밧줄이 쇄도해, 엄청난 속도로 한립을 휘감았으나 장막 겉을 헛돌기만 했다.
“어?”
“쳇.”
육 사형과 한립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만 육 사형은 급습이 실패해서였고, 한립은 상대의 교활한 수법에 당할 뻔 했다는 데 화가 나서였다.
“반응이 아주 빠르군. 실력이 나쁘지는 않아 보이네. 그래도 옆에 숨어 그리 오래 지켜보았으면, 이제는 앞에 나설 때도 되지 않았나?”
손을 휘둘러 밧줄을 불러들인 육 사형이 전혀 당황하지 않은 모습으로, 한립이 숨은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이미 그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 * *
이미 들켜버렸으니 숨어있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한숨을 내쉰 한립이 아직도 일렁이는 광채의 보호를 유지하며 양 손에 법기를 들고 나섰다.
“너였구나.”
완전히 얼굴을 드러내자 육 사형이 뜻 밖에 한립을 알아보았다. 육 사형은 언덕에서 자신을 단 한 번 본 것으로 한립을 기억했다.
이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무서운 심계였다. 결코 한립에게 희소식은 아니었다.
사실 눈앞의 육 사형은 어떤 면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었다. 둘 다 심계에 능하고, 손속에 정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육 사형에 대해 저울질해보고 있는데, 상대의 눈빛이 흉악해 지며 살기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
한립은 조금 더 상대와 대화를 이어가 그의 약점을 찾아볼까 싶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전혀 틈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둘 중 한 명만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괜히 허튼 소리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한립은 두말 않고 왼손을 들어올렸다. 정강으로 만든 환에서 괴성이 들리더니 육 사형이 있는 쪽으로 뻗어 나갔고, 오른손에 들려있던 호리병에서도 거무튀튀한 원구들이 대여섯 개 뿜어 나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멈추지 않고 두 손을 휘저으니 순식간에 수 개의 화구가 생겨났고, 그의 소매가 펄럭이며 화구들이 모여 맹렬히 육 사형을 향해 휘둘러졌다. 한립은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거(去)!”
동시에 뭉쳐있던 화구의 열기가 치솟으며 각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육 사형을 불태우려 했다. 이번 공격에 새로 얻은 법기들과 부보를 제외한 모든 수법이 섞여있었다.
특히 마지막 화구들의 화탄병발 수법은 오풍에게서 배운 방법으로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새 법기들이 손에 익지 않아 그렇지, 잘 다룰 수만 있었다면 바로 그것들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에 얻은 법기들은 이미 지니고 있던 것들에 비해 위력이 강했다.
한립이 이런 수를 내는 동안 육 사형도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양손을 뒤집자 손바닥에 청색의 큰 깃발이 생겨났다. 깃발 주변으로 청광이 자욱했으며, 이빨과 발톱을 매섭게 드러낸 흉악한 청룡이 수놓아져 있었다. 깃발을 손에 쥔 육 사형은 그제야 한립의 연환 공격을 발견하고는 화가 치솟았다.
그는 방금 자신이 가진 물건들 중 가장 위력이 강한 법기인 청교기(靑蛟旗)를 꺼내 들어 속전속결로 죽이려 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공격을 해올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육 사형은 바로 공격을 가하기보다는 깃발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저물대를 뒤져 황색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는 아까운 듯한 눈빛으로 고계 부적을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몸에 내리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구결을 염했다.
그때 한립이 날린 정강환이 옅은 황광을 내며 육 사형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육 사형이 부적을 몸에 댄 채 소리를 높였다.
“풍장술(風墻術), 기(起)!”
황색 부적이 목소리에 따라 백광을 방출하더니, 백색의 돌개바람이 몰아치며 풍막을 만들어내, 한립이 보낸 정강환을 막아섰다.
정강환은 거리낌 없이 풍막 안으로 들어섰지만, 바로 이리 저리 돌개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휩쓸리며 힘없이 튀겨 나왔다.
심지어 그 뒤를 쫓던 원구는 회전하는 풍력을 이기지 못해, 광풍 속으로 진입도 하지 못했다.
한립도 바로 손가락을 이용해 화구의 움직임을 조종했다. 그러자 둘로 갈라서 있던 화구들이 각각 커다란 원호를 만들어, 육 사형의 풍막을 피해 공격을 감행했다.
“히히! 꿈도 크구나.”
그런 모습에도 육 사형은 비웃으며 한 손만을 들어 손쉽게 구결을 맺었다. 동시에 풍막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니, 돌개바람이 양편으로 갈라지며 다가오던 원호들의 앞을 막았다.
‘파팡’
몇 차례 폭발음이 들리며, 미쳐 풍막을 피하지 못한 화구들이 충돌해 들어갔다. 풍막은 조금 흔들렸을 뿐인데, 화구들은 그 속으로 삼켜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곧이어 풍막이 다시 합쳐지며 원래의 형태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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