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756
756화. 나방
*
“그건 그렇고, 철리와 적멸도 이곳에 들어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오행영족이라면 다들 인원을 파견했겠지요. 수령족(水靈族)은 어느 영장을 보냈는지 아십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수령족은 우리 오행영족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종족이고 신혈을 귀하게 여기니 누구를 파견하더라도 신기한 일은 아니지요.”
“그렇군요. 소문으로는 기령족(器靈族)도 나섰다던데요?”
“기령족이요? 그것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봅니다. 아니, 배신자가 기령족에서 나왔는데 이 일에 끼어들려 하다니!”
황석공이 여인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사실입니다만 기령족은 그래서 오히려 자신들이 배신자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
“흥, 말장난일 뿐이지요. 우리 오행족의 신혈을 노리고 탐욕을 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석공은 아직 화가 가시지 않는지 냉소했다.
“기령족은 인족과 요족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니 아무래도 배신자를 쫓는데도 도움이 되겠지요. 이곳으로 달아났다는 것은 배신자가 인족과 결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마 인족에서 누군가를 파견해 그를 도우려 할 테니 그 전에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초록 치마 여인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야죠! 우리에게 당해 중상을 입은 데다 배신자의 몸에 표식까지 남아 있으니 이쪽 입구만 잘 지키면 달아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우리쪽 인원이 모이면 더욱 달아날 방도는 없지요.”
황석공의 말에 초록 치마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후 두 영족은 낮게 무언가를 상의하다 빛을 반짝이며 수풀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 * *
같은 시각 낙일성의 밀실 안에서 범상치 않은 범인들이 돌 탁자에 모여 앉아 있었다.
“남 성주, 그 영족이 낙일지묘에 갇혀 우리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까?”
검은 염주를 걸고 있는 행각승이 하얀 장포를 입은 중년인에게 물었다.
“예,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영족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중상을 입은 모양입니다. 부상이 악화되고 워낙 상황이 긴박해서 미처 낙일성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가서 데려와야겠습니다.”
“남 형, 이제 우리도 그 영족이 대체 어떤 물건을 갖고 나왔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렇다 치고 황량 선배님까지 청하시다니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궁금합니다.”
새까만 피부의 거한이 입을 열었다.
“근 수사가 무엇을 오해했군. 난 남 성주가 청해서 온 것이 아니라 최근 마음이 불편해서 바람이라도 쐴 겸 와본 것이네. 허나 영족이 갖고 나온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도 궁금하구만.”
이 자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황량영군이었다. 그리고 ‘남 성주’는 바로 낙일성 성주를 뜻했다.
“려 선배님 그리고 근 수사, 제가 무엇인줄 알았으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영족이 무엇을 갖고 달아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성황궁(聖皇宮)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성황궁에서 내려온 명령이요?”
행각승과 거한은 흠칫 놀랐고 황량영군도 눈을 반짝였다.
“성황 어르신께서 친히 관여하신 일이란 뜻입니까?”
행각승이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야 모르지요. 하지만 성황께서 내린 명령이든 아니면 다른 두 분의 뜻이든 다를 바가 있습니까? 게다가 성황궁에서 명령을 전함과 동시에 특사를 파견해 낙일성으로 오는 길이랍니다. 이곳과 천원성의 거리가 멀고 중간에 공간균열이 있어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요. 우리가 그 전까지 이 영족의 안전을 지켜내 성황궁의 특사와 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남 성주가 숙연히 말했다.
“성황궁의 명령이라면 더 따질 것도 없겠지. 그 영족 아이가 지니고 있는 물건이 기대가 되기도 하고 말이야.”
황량영군이 가볍게 미소 짓자 행각승과 근 씨 거한도 시선을 마주치며 더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좋습니다. 려 선배님과 두 수사께서 함께해 주신다니, 그럼 이틀 후에 낙일지묘로 떠나지요. 저희가 찾아야 하는 영족은 지금 낙일지묘의……
“거기 누구더냐!”
남 성주가 막 영족이 숨어있는 곳을 말하려는데 황량영군이 밀실 한쪽 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일갈했다.
쿠쿵!
노란 수정손이 나타나 무언가를 잡아챘는데 회색빛이 반짝이며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잿빛 실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이런, 만혼사(萬魂絲)구나!”
황량영군이 놀라 소리치더니 소매를 펄럭여 노란 기운으로 몸을 감쌌다. 다른 이들도 그 소리를 듣고 대경실색했다.
행각승은 목에 건 염주를 잡아 뜯어 검은 구름으로 변하게 해 몸을 보호했고 새까만 거한은 철방패를 꺼내 앞을 막았다.
또한 남 성주는 입을 벌려 수정 처럼 반짝이는 얼음 연꽃을 피워내 반짝이며 사라졌다.
다들 갑작스런 공격에 긴장하는데 밀실을 뒤덮었던 회색빛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환술!”
황령영군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손짓하자 노란 수정 손이 날아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 안에 은색 분말 같은 것이 도깨비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황량영군은 손가락으로 분말을 찍어 살폈고 은색 가루가 갑자기 분홍색으로 변했다가 사라졌다.
“성체가 된 환염아(幻燄蛾) 분신을 스스로 터트려 버리다니! 하긴 이 정도 영충은 되어야 무형으로 변해 이곳에 숨어들 수 있었을 테지. 방심한 틈에 분신은 달아났을 테고 본체는 낙일성 인근에 숨어 있을 걸세. 우리가 한 말을 얼마나 엿들었을지……. 아, 나방의 분말에 다른 요기가 남아 있는 것이 요족이 기르는 영충 같군.”
그 이야기를 들은 남 성주의 얼굴이 더없이 어두워졌다.
“……내일 바로 출발해야겠습니다. 요족들이 선수를 치게 둘 수는 없지요!”
* * *
한 시진 후, 낙일성 백 리 밖 산 중턱.
수려한 용모를 지닌 소년이 바위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주먹 크기의 나방이 날고 있었는데 날갯짓을 할 때마다 발산되는 형형색색의 빛이 무척 아름다웠다.
소년의 뒤에는 마른 몸매의 궁장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긴 눈꼬리에 짙은 눈썹을 지녔고 언뜻 흉흉한 기세가 느껴졌다.
바로 한립과 일면식이 있는 흑풍족 요족 여인이었다.
평소 오만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가 소년 뒤에 얌전히 서서 말없이 대기하고 있었다.
미세한 파공음이 들리고 가느다란 회색 실이 허공에서 나타나 소년 머리 위에 있는 나방 속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소년이 눈을 떴는데 눈동자가 그윽하니 무척 맑았다.
그는 하얀 손으로 손짓해 우아하게 나방을 불러들이자 나방이 그의 손끝에 앉아 수시로 다채로운 색을 뿜어냈다. 잠시 후 나방이 깜빡거림을 멈추었다.
“황량 그 노인네가 성 안에 나타난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영족과 관련이 있었구나. 성황궁이 나섰다니 영족의 배신자가 지닌 물건이 사소한 것은 아닐 테지. 화염아의 분신을 잃은 것이 아깝지 않은 정보다.”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나방을 머리 위로 날려 보내고 바위에서 내려왔다.
“소 수사, 흑풍족이 저번에 찾아온 아이가 놀랍게도 변이한 진봉족(眞鳳族)의 피가 흐른다지? 자질이 뛰어나 순식간에 5급에 이르렀고 말이야.”
소년이 뒤쪽의 궁장 여인을 향해 물었다.
“환 선배님 말씀대로입니다. 대아 그 아이는 확실히 재능이 있습니다.”
“말이 나와 말인데 우리 경서족(璟鼠族)에도 자질이 썩 괜찮은 젊은이가 있다네.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데 둘이 연을 맺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것이……. 선배님의 깊은 관심에 감사드리지만, 대아는 족장님의 친 손녀인지라 제가 감히 혼사를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궁장 여인은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예의바르게 답했다.
“그야 나도 아네. 공손 형에게 말이나 건네 달라는 것이지. 내가 말하는 젊은이도 신분이 만만치 않아 그 아이와 잘 어울릴 것이야.”
“예, 제가 돌아가는 대로 꼭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공손 형만 동의한다면 우리 쪽에서 사람을 보내 귀 종족과의 혼사를 논의하지. 그리고 방금 내가 한 이야기는 들었을 테지? 영족 하나가 인족에게로 달아나려는데 성황궁마저 관심을 보일만한 귀한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군! 몰랐으면 모르지만 알았으니 이런 보물을 인족이 차지하게 둘 수는 없지. 흑풍족은 모두 공간류 신통을 지니고 있으니 자네가 먼저 낙일지묘에 잠입해 요족들에게 알리고 인족보다 먼저 그 자를 찾으라고 일러 주게. 나는 황량 늙은이를 몰래 뒤쫓을 테니.”
소년이 맑은 목소리로 분부했다.
“예! 존명!”
궁장 여인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러나더니 한손으로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하얀 뇌전이 번뜩이며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소년은 자리를 지키며 한참 침음하다 몸에서 노란 빛을 번뜩이며 나방을 데리고 천천히 땅으로 가라앉았다.
얼마 후, 낙일지묘의 인족과 요족은 거의 동시에 고위층에서 내려온 명을 듣게 되었다.
‘무슨 수를 쓰든 낙일지묘에 숨은 영족을 찾아내라!’
게다가 쌍방이 모두 눈을 부릅뜰 만한 포상을 약속했다.
특히 인간 수사들의 포상에는 수행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영단과 백만 단위의 영석, 황량영군의 천심단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낙일지묘가 들끓기 시작했고 다들 포상을 노리고 미친 듯이 영족을 찾아 헤맸다.
원래 인족과 요족 수사들은 마주쳐도 실력이 비슷하면 피해가곤 했는데 포상이 걸리자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두 종족 사이의 싸움이 빈번해졌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한립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낙일지묘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위험천만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른 장 떨어져 있는 짐승을 보며 한립은 심호흡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두 눈만은 잠시도 상대를 놓아주지 않았다.
고양이 크기의 금전표(金錢豹)는 라연보를 펼쳐 뒤쫓는데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앞선 전투 때문에 그의 푸른 장삼은 너덜너덜했고 잿빛의 갑옷 사이로 금빛 피부가 드러났다.
작은 짐승은 날카로운 네 개의 발톱을 갖고 있었는데 갑옷에 남은 다양한 발톱의 흔적과 핏자국만 봐도 얼마나 사나운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립이 천시주와 용린과 등의 도움으로 근육이 법보처럼 단단했고 회복력이 굉장히 빨라 상처가 나는 순간 곧장 아물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립은 어이가 없었다.
한립은 나무줄기에서 단잠에 빠져 있는 짐승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뭔가에 홀린 듯 다가가 쓰다듬었다.
그런데 낯선 손길에 깜짝 놀란 짐승이 분노하며 한립을 향해 거세게 달려든 것이다.
조그만 녀석이 어찌나 빠른지 펄쩍 펄쩍 뛰어다니는 통에 거의 열댓 마리의 작은 표범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받는 느낌이었다.
의식을 방출하지 못하니 명청령안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순간 그는 그 짐승에 밀려 자잘한 상처들을 입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한립은 라연보를 극성으로 펼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두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에 든 긴 창 형태의 영구가 검은 빛을 머금었다.
후웅!
긴 창이 바람을 가르며 잔영을 남기자 그제야 짐승도 조금 꺼려하며 공세를 늦추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센 한립이라도 언제까지고 창을 휘두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작은 짐승은 한립이 창을 휘두르는 속도가 느려지자 재빨리 달려들어 그의 목 부분을 할퀴고 지나갔다.
기겁한 한립은 더 빠르게 창을 휘둘렀고 이에 작은 짐승은 몇 장 밖으로 물러나 청록색 눈으로 한립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한립과 작은 짐승의 대치 상태가 시작되었다.
체구가 작은 것을 제외하면 분명 그 짐승은 금전표로 보였는데 낙일성에서 살펴본 자료에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게다가 요수도 아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힘만을 위해 싸울 뿐 요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변이괴수일 테지!’